184화.
동굴은 불구렁이가 사는 곳처럼 깊지 않았다. 둥글고 넓적한 모양으로 파여 있었는데 구석에 60cm 될 법한 어린 잔챙이들이 파들파들 떨고 있었다. 도진은 이 잔챙이들이 괴이한 소리에 무서워서 떠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흐어어엉…. 후이이잉….
바로 이 귀여운 새끼 코알라, 새끼 겨울잠쥐, 새끼 노루와 새끼 박새들의 울음소리가 동굴에서 바깥으로 퍼지며 괴이한 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도진은 무척 놀랐지만, 상대가 애들이라서 일단 달랬다.
“야, 야. 애들아. 울지마. 너네 왜 여기 모여서 울고 있어. 와, 이렇게 귀여운데 그런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다니. 너네 부모님은 어디 있냐?”
뀨우웅.
찌이익. 찍찍.
잔챙이들이 서로 꼭 붙은 채 뭐라고 말했다. 사람 말을 하는 잔챙이들은 없는 걸까? 도진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이리를 향했다.
“마고의 아이들이야.”
도진의 뒤에 가려져 있던 이리가 나타나자 잔챙이들이 눈물 콧물을 흩뿌리며 달려들었다. 아직까지 이리의 저고리 주머니에 들어가 있던 끼웅이가 기겁하면서 튀어나와 도진의 얼굴에 찰싹 붙었다.
도진이 뺨에 달라붙어 울고 있는 끼웅이를 주머니에 넣고, 이리의 옷을 더럽히는 어린것들도 하나하나 떼어 냈다. 잔챙이들의 종류는 다양했다. 짐승과 초목, 사물 등. 공통점이라고는 갓 태어난 듯 어리다는 점뿐이었다.
“야, 우는 건 좋은데 스승님한테 안기지 마. 스승님도 이 기회를 틈타 마구마구 쓰다듬지 마요!”
“하지만 도진아, 애들이 우는데.”
“저도 울어 버릴 거예요. 뿌애앵.”
“그럼 네가 애들을 잘 달래 보렴.”
도진은 우는 아이 달래기에는 소질이 없지만, 이리가 애들을 귀여워해 주는 모습은 더 보고 싶지 않아서 최선을 다해서 달랬다.
아이들은 의외로 금방 울음을 멈췄는데, 그 이유는 도진이 아니라 끼웅이였다.
끼웅끼웅!
찍찌익.
끼우웅.
뀨우….
끼웅끼웅.
찍찍.
끼웅이가 제법 어른스럽게 애들을 달래며 대화하는 동안 이리가 도진에게 설명했다.
새로운 혼을 심을 때는 두 번의 과정을 거친다. 첫 번째, 씨앗 심기. 두 번째, 혼을 심기. 씨앗과 혼은 항상 한 세트다. 그러나 간혹 혼을 심기 전 씨앗이 죽어 버리는 경우가 생긴다. 싹이 트기 전 화분이 죽어 버린다거나 씨앗 자체에 이상이 있다거나 등 여러 이유로….
“마고는 그런 경우엔 한 세트인 혼을 간직하고 있다가, 혼탑 심마니가 실수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혼이 없어진 씨앗이 생기면 자연 발아시켜서 혼을 넣어 주고는 해. 이 아이들이 그런 경우야.”
“육체는 어디서 구하고요?”
“하늘꽃밭에는 혼꽃, 그러니까 혼살이꽃만 있는 게 아니라 뼈살이꽃, 살살이꽃, 피살이꽃, 숨살이꽃 화단도 있거든. 본래는 죽은 이를 살리는 용도로 키웠는데, 마고는 앞으로 이 꽃으로 새 생명을 탄생시키겠다고 선언하고 실제로 그렇게 사용하고 있어. 그게 더 의미가 있다고 하더라.”
죽은 이를 되살리는 것,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
도진은 무엇이 더 의미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었다. 다만 마고할미의 결정이 아주 과감하다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과감한 결단에 반발하지 않고 모두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마고할미가 대단히 신뢰받는 ‘대모’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그리고 여기까지 듣자 대모의 아이들이 여기서 왜 울고 있었는지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아이들이 울고 있었던 이유는… 마고할미 때문이었군요.”
마고할미의 품에서 뛰놀던 아이들이 이 땅끝 동굴에 모여서 울고 있는 이유.
대모님이 하늘꽃밭을 떠났다. 진현계라는 곳에 가서 왕이 되었다고 한다. 이제 앞으로 영원히 볼 수 없다. 우리는 버려졌다. 대모님이 보고 싶다. 너무 슬프다….
그런 의미의 울음이었던 것이다.
“너무 바빠서 아이들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하고 간 모양이야. 도진아, 네가 해 줄래?”
“네, 스승님. 자자, 여기 주목. 얘들아, 주목! 야!”
도진이 서슴없이 바닥에 철푸덕 앉아 아이들과 시선을 맞췄다. 그러나 아무도 집중하지 않았다.
아이들이 주목하고 있는 끼웅이를 집어 들어 제 머리로 옮긴 후에야 애들이 찍찍, 뀽뀽거리며 모여들었다.
“애들아, 다들 내 말 잘 들어. 너희 생각과는 달리 대모님은 너희를 버린 게 아니야. 대모님은 워낙 뛰어난 분이셔서 다른 곳에서 도움을 요청받아 그곳으로 아주 잠시 가신 거야. 거기도 너희처럼 대모님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거든. 대모님이 너희에게 도움을 구하는 사람을 외면하라고 가르치진 않았지?”
뀽뀽!
찍찍!
“그러니까 여기 모여 울지 말고 의젓하게 대모님을 기다려. 그래야 대모님도 돌아오시면 흐뭇해하시면서 칭찬해 주지. 만약 너희가 내내 울고 있었다고 들으면 대모님은 슬퍼하실 거야. 너희는 대모님의 슬픈 얼굴이 보고 싶어. 아니면 웃는 얼굴이 보고 싶어?”
뀽뀽! 찌익찍!
“상대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면 네가 먼저 웃어야 해. 옆에서 친구가 울고 있으면 나도 울고 싶잖아. 대모님도 마찬가지겠지. 그럼 대모님의 웃는 얼굴을 보려면 어떡해야 할까?”
끼우웅! 뀽뀨웅. 찍찍찍!
“김끼웅 너는 왜 대답- 크흠, 그래, 정답이야. 이렇게 총명한데 왜 울었어. 자, 이제 웃어 봐. 김치, 하고. 그래, 착하다아.”
아이들이 꺄르르 웃으며 도진에게 안겼다. 도진은 애들의 귀와 머리, 등을 마구잡이로 쓰다듬었다.
“제법 아이들을 잘 달래는군.”
동굴 입구 쪽에서 저음의 여성 목소리가 들렸다. 도진과 이리는 이미 기척을 눈치챘기에 놀라지 않았다. 끼웅이만 동굴 천장에 닿을 것처럼 펄쩍 뛰었고, 다른 아이들은 반가운 목소리를 들은 듯 와아아- 기뻐하면서 그자에게 달려갔다.
“오랜만입니다, 이리 선인님. 그리고 박도진.”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익숙하게 아이들을 품에 안는 그자는 바로 박씨부인이었다.
마고의 아이들을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고, 혼탑에 돌아와 가져가야 할 혼도 무사히 챙겼다.
산후조리원으로 돌아가기 전, 박씨부인이 바리공주에게 줄 게 있다고 해서 혼탑 1층에서 잠시 기다렸다.
“박씨부인은 언제 봐도 존재감이 엄청나네요. ‘본능’은 저보다 약하다고 말하는데 이상하게 압도되는 기분이에요. 제 성 틀렸다는 말도 못 했어요.”
“타고난 기운이 강한 사람이야. 박씨부인이 유일하게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때는 가족이 앞에 있을 때뿐이지.”
“반려자도 혼탑에서 일하나요?”
“응. 지금은 육아 휴직 중.”
“육아 휴직이라면….”
“박씨부인의 막내가 세 살쯤 됐을걸.”
눈을 굴리던 도진이 물었다.
“그냥 궁금해서 묻는 건데 첫째와 막내의 나이 차이는 몇 살인가요?”
“천 살쯤 되려나….”
“금슬이 엄청 좋군요….”
“위아 세계의 대표 가는 잉꼬부부라고 생각해.”
“아뇨.”
“응?”
“대표 잉꼬부부 아니라고요. 왜냐하면 우리가 있으니까.”
“…….”
“만약 스승님과 제가 아기를 낳을 수 있다면 첫째와 막내의 나이 차이는… 측정 불가능일 거예요.”
이리가 끼웅이의 귀(가 있을 법한 부근)를 막으며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마침 박씨부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등에는 활과 화살통, 왼쪽 허리에는 검, 오른쪽 허리에는 곤봉, 손목에는 철편을 감고, 종아리에는 비도를 찼으며 가슴에는 부적을 품고 있는… 온몸이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박씨부인이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앞에 섰다.
“선인님, 하늘꽃밭의 일을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늘꽃밭의 수호인으로서 오늘의 일을 잊지 않겠습니다.”
끼우웅….
이리는 파들파들 떠는 끼웅이를 천을 사이에 두고 토닥여 주며 미소 지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야. 그렇게 비장할 필요 없어.”
“한 가지 일을 또 부탁드리게 되었으니 비장해지는군요.”
박씨부인이 바리공주에게 전해 줄 주머니를 건넸다. 주머니는 이리가 손을 들기도 전에 도진이 냉큼 받아 가벼운 손짓으로 허공에 넣었다.
“박도진, 너는 기도식 때보다 성장했군.”
“김도진입니다.”
“박 씨가 아니라니 안타까운 일이다. 개명하거라.”
박씨부인은 재능 있는 청년은 일단 무조건 박씨 집안으로 영입하려는 버릇이 있었다.
“부모님이 물려준 성씨라 개명은 못 하겠습니다. 그런데 키가 몇입니까? 장군신 외에 저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는데.”
“6자 5척 될 것이다.”
6자 5척은 2m였다.
“혹시 장군신… 이십니까?”
박씨부인은 기골이 장대하면서도 몸 쓰는 일은 한 번도 안 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외모를 지녀서 장군신 같기도 했고, 선인 같기도 했다.
“나는 도사다. 하늘꽃밭의 일이 바빠 선인이 되지 못했지. 하계 족속들이 내 수련을 방해하는군. 너는 왕이 되면 하늘꽃밭에 자꾸 침입하면 하계 족속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야… 족쳐 버려야지요….”
갑자기 ‘왕이 되면’이라니. 도진이 얼떨떨하게 대답하자 박씨부인은 여전히 진중하게 말을 이었다.
“훌륭한 대답이다. 홍연의 답보다 마음에 드는군.”
“박씨부인, 홍연이 여기 왔었어?”
“예. 얼마 전에 와서 하늘꽃밭의 개선해야 할 사항들을 묻고 갔습니다. 왕이 되면 개선에 노력해 보겠다고. 수첩에 열심히 기필하던데, 그 수첩의 종이가 여백이 없을 정도로 새까맸습니다.”
이리는 열성적인 홍연이 기특한지 미소를 걸쳤다. 반면 도진의 표정은 웃지도 울지도 않은, 오묘하고 복잡한 표정이었다.
“제가 물었습니다. ‘만약 네가 왕이 되지 못하면 이 자료는 어찌할 것이냐?’. 그러자 주저 없이 대답하더군요. ‘김도진에게 전달해야죠’. 김도진, 네게도 홍연에게 줄 자료가 있느냐?”
“…없습니다”
도진이 솔직히 대답하고는 바로 물었다.
“홍연은 하계 족속을 어떻게 처리하겠다고 대답했습니까?”
“특정 조건 하에 머무를 구역을 주겠다고 하더군. 그들만의 구역이 생기면 동시다발적인 침입이 사라질 거라고.”
“…….”
“나는 영 마음에 안 든다. 전면전을 시작해도 부족할 판에 아예 자리를 깔아 주다니, 쯧.”
박씨부인은 혀를 차고서 덧붙였다.
“하지만 그 혼령이 왕이 되면 따라야겠지. 그게 자연의 뜻이니까.”
그 앞에서 이리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했다.
당연히 도진의 표정은 더더욱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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