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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182화 (182/203)

182화.

둘은 탑으로 향했다.

“어때? 칠계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지?”

“확실히 아름다운 곳이네요. 마음이 뭔가 편안해지고…. 하지만 칠계 중 가장 아름답지는 않아요.”

“너는 지금까지 어디가 가장 아름다웠는데?”

이리가 극락의 여러 지역을 떠올리며 물었다. 도진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이리 선인의 궁궐이죠.”

“…….”

“스승님의 궁궐이 제일 아름다워요. 우리 종종 거기로 데이트 가요. 끼웅이 떼어 놓고 둘이서만 하룻밤 묵고 오고 그래요. 아, 침대 미리 사 놔야겠다. 완전 큰 사이즈로. 둘이서 막 구를 수도 있는-.”

끼웅, 끼웅!

“뭐? 너도 구르고 싶다고? 오히려 자리를 피해 줘도 부족할 판에 뭘 같이 구르려고 해. 스승님, 끼웅이 너무 뻔뻔하지 않아요?”

“네가 제일 뻔뻔해. 아마 세상에서 제일 뻔뻔할 거야.”

“아니에요. 저도 자만하고 싶지만 세상엔 분명 저보다 뻔뻔한 사람이 존재할 겁니다. 왜냐하면 제가 진짜 뻔뻔했다면 이미 옛날에 스승님 주무시는 틈을 노려 그 입술을….”

탑 출입구 쪽에 다다를수록 뭔가 북적북적하고 수선스러워서 말을 중단했다.

“하늘꽃밭이 본래 이렇게 시장통 같아요?”

“아니, 내가 알기로는 늘 한적하고 조용한데. 가 보자.”

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자 이리를 알아본 하늘꽃밭 사람들이 허둥지둥 인사했다. 하늘꽃밭 사람들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인간 혼령보다 짐승과 초목 갈래의 위아들이 많았다. 감나무 머리, 대추나무 머리, 양 머리, 소 머리, 뱀 머리….

“선인님, 선인님!”

“선인님?”

출입구 쪽에서 두 명이 방방 뛰며 이리를 불렀다. 허리에 부적띠를 두른 여성과 남성, 도진도 기도식 때 인사했던 도화녀와 비형랑이었다. 둘 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장발에 부부는 닮는다는 말을 증명하듯 똑 닮은 외모였다. 다만 도화녀는 반묶음, 비형랑은 댕기 머리라는 확연한 차이점이 있었다.

“선인님께서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가져갈 혼이 있어서 왔어.”

이리가 바리공주가 준 출입증을 살짝 보여 줬다.

“아아, 바리공주의 일을 도와주고 계시는군요. 저희는 탑 일이 그새 소문나서 오셨나 했어요.”

“마고의 부재로 바쁘다고는 들었는데. 탑에 무슨 일 났어?”

“도르래가 움직이질 않아요. 일단 들어와 보세요. 도진아, 너도 들어오렴.”

부부가 둘을 안으로 안내했다. 탑의 1층에는 엘리베이터로 사용하고 있는 도르래가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잘 움직이던 게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멈췄다고 했다. 까마득한 지하에서 멈춘 탓에 보이는 거라고는 밧줄뿐이었다.

“연료도 충분하고, 기계 결함도 없는데 대체 왜 안 움직이는지 모르겠어요.”

“나도 기계는 볼 줄 모르거든. 박씨부인한테 말해 봤어?”

“너어어어어무 바쁘셔서 아직 얘기 못 꺼냈어요. 저희끼리 어떻게든 해 보다가 정 안 되면 그때 말씀드리려고요.”

“제가 한번 봐 볼게요.”

도진이 머리 위의 끼웅이를 이리에게 넘기며 소매를 걷었다. 딱 봐도 손가락 하나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단단한 팔뚝 근육이 드러났다.

“도진아…. 네가 어떻게?”

“스승님, 저는 장사입니다. 몸으로 하는 건 다 잘해요. 가만히 기다리고 계세요. 엘리베이터 타고 올라올 테니까.”

도진이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리는 이마를 짚었다.

“선인님, 김도진이 오색하늘 폭포수를 연료로 사용하는 엘리베이터를 본 적이 있어요?”

“아니, 처음 봐.”

“그럼 저 자신감은 대체….”

“그러니까 말이야. 내가 한번 보고 올게.”

“네, 부탁드립니다.”

“끼웅이를….”끼우웅! 끼웅! 끼우웅!

그동안 끼웅이를 봐 달라고 넘기려던 이리가 끼웅이의 격렬한 저항을 맞닥뜨렸다. 동시에 받으려고 손바닥을 펼치던 도화녀도 귀엽다는 듯 웃으며 손을 거뒀다.

“선인님과 떨어지고 싶지 않은가 봐요.”

“애가 아직 겁이 많아.”

이리는 손가락을 붙든 채 파들파들 떠는 끼웅이를 저고리 앞주머니로 옮기고, 아래로 내려갔다.

도르래는 지하 9층에서 멈춘 상태였다. 설비 직원들은 기술력이 뛰어난 작은 금저들이었는데, 다들 도진을 둘러싸고 있었다.

꾸욱, 꾸욱. 꾹꿀. 꾸우우꿀!

“아, 뭐라 그러는지 모르겠고. 다 비켜. 이런 건 대부분 때리면 돌아가게 되어 있어.”

꾸우우꿀. 꿀꿀!

“도진아, 그만.”

뭔가 기둥 같은 걸 떼어 내려던 도진이 우뚝 멈췄다.

“스승님도 내려오셨어요? 조금만 있으면 제가 고쳐서 갈 텐데.”

“오히려 네가 고장 내게 생겼구나. 뒤로 나와 있으렴.”

도진이 토라진 얼굴로 물러났다. 이리는 어차피 기계는 볼 줄 모르니, 금저들 앞에 앉았다. 귀여운 황금 돼지들이 이리의 앞에 모였다. 끼웅이가 주머니에서 고개만 쏙 내민 채 구경했다.

금저들은 꿀꿀거리면서 도진의 행패를 토로하고는, 다시 꿀꿀거리면서 어떤 점이 문제인지를 말했다.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듣던 이리가 먼지를 털며 일어났다.

“스승님, 뭐래요?”

“연료 공급에 이상이 있다는구나. 폭포에 문제가 생긴 모양이야.”

“연료가 폭포예요?”

“오색하늘 폭포수.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 일단 둘에게 얘기하자.”

“네!”

엘리베이터를 고치지 않으면 11층에 다다를 수 없다. 둘은 곧장 올라가 도화녀와 비형랑에게 얘기했다. 도화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금저 녀석들, 아까 저한텐 분명히 연료엔 문제가 없다고 했는데.”

“폭포수가 예상치 못하게 급격히 따뜻해져서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고장 난 것 같아. 금저들은 왜 이 정도 열기도 견디지 못하게 설계했냐, 한 소리 들을까 봐 일단 숨긴 거지.”

“더더욱 한 소리 해야겠군요.”

“도화, 폭포수에는 내가 다녀오겠소. 선인님은 도화와 함께 쉬고 계십시오.”

비형랑이 날개를 펼쳤다. 극락에서 만든 탈부착 가능한 날개 아이템이었다. 비형랑의 풍채는 요리이기와 맞먹을 정도로 커다랬는데, 거기에 날개까지 활짝 펼치자 혼탑의 1층이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도 같이 가자. 빨리 해결해야 빨리 돌아가니까.”

“그럼 등에 타십시오.”

“우리도 날 수 있습니다! 스승님, 타시려면 제게 업히세요.”

도진의 목소리가 매서워졌다. 혼자였다면 언제 남의 등에 타서 편하게 가 보겠냐며 냉큼 업혔겠지만, 이리가 외간 남자의 등에 업히는 건 싫은 까닭이었다. 물론 이리는 누구의 등에도 탈 생각 없었다.

하늘꽃밭 동쪽의 오색하늘 허공에서 솟구친 물줄기가 지상의 산등성이에 수직 낙하하여 강을 만들었다. 강물은 오색 빛깔이었고, 강 주변의 초목도 껍질과 잎사귀, 꽃잎 등이 오색 빛깔을 띠었다. 물줄기 또한 콸콸콸 막힘없이 쏟아졌다.

보기에는 평화로운 광경이었으나 무엇이 문제인지는 오자마자 알 수 있었다.

“후우.”

비형랑이 손부채질을 하면서 긴 머리를 틀어 올렸다.

“이 부근 온도가 확연히 높군요. 한여름에도 이토록 더운 곳이 아닌데.”

끼우웅….

덕 많은 이조차 땀 흘릴 정도이니 끼웅이는 녹아 가고 있었다. 얼음 하나를 만들어 주머니에 넣어 준 이리가 주위를 둘러봤다.

“본래 이 근처에는 위아들이 안 살아?”

“예. 하늘꽃밭에 없어서는 안 되는 폭포의 수원이니 진입조차 금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오는 길에 펜스가 있기는 했다.

“스승님, 꽃과 나무가 시들고 있어요. 열기를 견디지 못하나 본데요.”

“네가 긴급 처치해 줘.”

“네!”

비형랑은 김도진이 뭘 어떻게 ‘긴급 처치’할 것인지 의심과 의문을 품고 지켜봤다.

도진이 허공에 손을 휘젓고 무언가 짧게 외우자, 그의 주위에서부터 한기가 퍼져 나갔다. 도진이 차가운 기운으로 둘러싸인 손을 폭포의 수원에 가까이 대고 냉기를 강물로 집어넣었다. 그러자 주위 온도가 천천히 낮아지기 시작했다.

“김도진의 도술이 무척 훌륭하군요.”

이리가 미소 지었다.

“이건 긴급 처치이고, 근본적인 이유를 찾아야 해. 비형랑, 너는 도화녀에게 이 일을 전달해. 원인은 우리가 찾아볼게.

“예, 감사합니다. 선인님.”

비형랑이 떠나고 도진과 이리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앗, 차가. 스승님. 차가운데요?”

“그렇네.”

허공에서 솟구치며 사방으로 흩어지는 물방울은 아주 차가웠다. 하늘에서 나오는 물은 이상이 없고, 낙하하여 지상에 부딪히면서 온도가 변화했다는 뜻이다.

“땅이 문제인가 봐요.”

둘은 다시 산으로 내려왔다. 도진 덕분에 오색 빛깔의 초목들은 다시 생기를 찾고 있었다. 이리는 아래를 둘러보다가 음, 하고 어딘가로 시선을 고정했다. 도진의 눈에는 당연히 아무 이상도 없어 보였다.

“도진아, 여기에….”

“쉿, 그 예쁜 입술 다물어요.”

“…….”

“제가 알아낼 테니까.”

도진이 땅에 납죽 엎드렸다.

끼우웅?

엎드린 채 땅을 기어 다니는 도진을 끼웅이가 손가락질했다. 이리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친 거 아니란다….

스승에게 능력 있는 인물로 보이고 싶은 나머지 사족 보행을 해 버린 도진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지하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졌다.

주먹을 내지르면 땅이 갈라지고 이 아래 있는 것을 바로 꺼낼 수 있겠지만, 그러면 이곳의 환경이 망가진다. 그건 이리가 바라는 바가 아닐 터였다. 도진은 사족 보행을 멈추고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다가 목표한 것을 찾았다. 커다란 바위 틈새에 사람 한 명이 겨우 지나갈 공간이 있었다.

도진은 성큼성큼 걸어서 그 앞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불꽃이 일어났는데 그 불꽃의 냄새가 매우 매캐했다.

끼우웅!

고통스러워하는 끼웅이를 본 이리가 작은 부채를 만들어 냄새가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도진은 반대로 커다란 부채를 만들어 틈새 쪽으로 냄새를 밀어 넣었다.

크르르릉!

마침내 바위 안쪽에서 냄새를 견디지 못한 불구렁이가 튀어나왔다. 새빨간 비늘을 가진 영물로, 몸에서 뜨거운 열을 발산해 내는 특기를 가졌다.

몸길이가 10m는 될 법한 거대한 영물이 이리를 알아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크르. 크르르.

“안녕, 불구렁이야. 괴롭혀서 미안.”

“스승님이 아니라 제가 괴롭혔습니다.”

크르르.

“네, 죄송합니다. 그런데 불구렁이 님, 어제나 오늘 이곳으로 이사 오셨죠?”

크르르….

“죄송한데, 저 구렁이 언어를 몰라서. 인간 말로 좀 해 주세요.”

구렁이가 새빨간 혀를 날름거리며 말했다.

“그래. 어젯밤 이사 왔다. 뭐가 문제냐, 김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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