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은 사라진 석진을 찾는 게 급선무다.
그러나… 마경에서 석진이를 데리고 나온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배리모스는 석진이를 놓아주지 않을 텐데.
그리고 이리 선인에게 도움을 청한 자신들을 용서하지도 않을 것이다.
마경에는 김도진과 저만 들어가기로 한 상황. 어쩌면 김도진은 마경의 악마들과 싸운 후, 빠져나오자마자 배리모스와 2차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수는 배리모스에게 석진의 몸이 인질로 잡혀 있는 한 악신의 편에 설 수밖에 없었다.
‘이리 선인과 김도진이 구출 후의 일을 예상하지 못할 리가 없어. 분명히 무언가 방비를 해 놓겠지….’
한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왜냐하면 석진을 구해야만 하니까. 그게 그의 책임이자 의무니까.
잠시 후 이리와 도진이 대여점 뒷문으로 나왔다. 이리는 처음 보는 물건 두 가지를 들고 있었다. 둘 다 자그마했는데, 하나는 원통형이었고, 하나는 원반 형태였다.
“도진아, 자리로.”
“네!”
도진이 한수의 옆에 섰다. 한수가 어깨를 한껏 움츠린 채 달달달 떨었다. 사람이 옆에 와서 선 게 아니라 집채만 한 호랑이가 옆에 와서 선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힐끔, 위를 올려다보자 집채만 한 호랑이는 교육을 기다리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한수도 조금 겁이 달아났다.
“일단 간단히 설명부터 해 줄게. 둘 다 앉으렴.”
“예!”
“아, 네, 네…!”
바닥에 앉으라는 뜻인가 했는데, 어느샌가 뒤에 의자가 생겨났다.
“마경은 칠계 중 진현계 다음으로 생긴 곳이야. 아주 오래된 곳인데도 한동안 왕이 없다가 천 년 전에 한 신령이 마경의 지배자가 되었어. 이름은 스스로도 잊은 지 오래고… 지금은 ‘역천의 악신’으로 불려.”
“잠깐만요. 신령이요? 대요괴라든가 악신이 아니고요?”
“악신인 동시에 신령인 존재이지.”
한수는 이 간단한 설명도 절반은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그토록 오랫동안 왕이 없던 곳의 지배자가 될 만큼 강하다라는 사실만은 분명하게 알아들었다.
“스승님.”
“응.”
“얼마 전에 이군이 신령이 이런 말을 했었어요. 하계의 악신이 5천 년간 수련하여 갈래를 역행해 신령이 되었다고. 그런데 다시 타락해서 악신으로 돌아갔다고. 혹시 마경의 지배자가 바로 그 악신입니까?”
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래서 ‘역천의 악신’이라고 불린단다.”
“뿌리가 뭐예요?”
“바위.”
“바위…….”
현대에서는 인간, 짐승과 초목, 사물 외에는 위아가 태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뿌리가 바위라는 것은 구름에서 태어난 관조자만큼이나 오래전에 태어났다는 뜻이었다.
“마경에는 태고의 위아들이 좀 있나 보네요.”
“내가 알기로는 대여섯 정도 살고 있어.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돼.”
“왜요?”
“그들에게도 ‘장사의 본능’ 같은 게 있거든. 상대도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덤비지 않을 거야.”
도진의 입매가 씰룩거렸다. 이리에게서 강함을 인정받아 기분 좋은 것이다.
“너희는 역천과의 결투만 준비하면 돼. 한수야. 일단 여기까지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하렴.”
“어, 없… 습, 니다.”
“…….”
“저, 저는, 다, 당신들의 세계가 구, 궁금하지 않, 아요. 그, 그냥 석진이만… 데, 리고 오면…. 그, 그걸로 만족할게요.”
“…알았어. 네가 숙달해야 하는 주술은 두 가지야. 오전 내로 습득을 완료하고 오후에는 부적을 만들어 보자.”
“예…!”
이리가 한수에게 부적을 전달했다. 한수는 살면서 처음 보는 복잡한 문양을 얼른 외웠다.
“스승님, 저는요?”
“네게는 무기를 줄게.”
이리가 들고 온 이물 두 가지를 합체했다. 그러자 마치 검 손잡이 같은 모양이 만들어졌다. 이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손에 쥐자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빛을 내뿜는 검신이 뻗어 나왔다.
노란 광채가 얼마나 현혹적인지 한수가 넋을 잃고 검을 구경했다. 도진은 새 선물을 받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투로 말했다.
“이게 바로 ‘황용검(荒鎔劍)’ 이군요! 지금까지 한 번도 대여 나갔던 적이 없다던.”
황용검은 만들어진 지 오래되었으나 팔린 적도, 대여 나간 적도 없다.
이물의 위력을 견딜 만한 사용자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인이거나, 장군신이거나, 도진 같은 장사면서도 선인의 길을 걷는 자가 아니라면 황용검 손잡이를 쥐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빨려 들어가 쓰러졌다.
“이 검으로 역천 악신의 신체를 반으로 갈라 버릴게요!”
“수천 번 내리친다 한들 역천의 몸은 갈라지지 않을 거야. 다만 이 검에는 특별한 이능이 있지.”
“이능이요?”
“그걸 지금부터 보여 줄게.”
이리가 검을 고쳐 잡고 자세를 취했다.
흐읍! 돌연 도진이 가슴을 움켜쥐고는 땅에 주저앉았다. 한수가 깜짝 놀라며 도진을 부축했다.
“왜, 왜, 그러세요? 어, 어디 아, 아픈 거면….”
“검을 잡은 스승님이 너무 아름다우셔서. 크흡.”
“…….”
한수는 머쓱하게 웃고 다시 부적 공부에 빠졌다.
이리가 검술을 펼쳤다. 동작 하나하나가 유려하면서도, 흐름에 막힘이 없었다. 도진은 곧 황용검의 특별한 이능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물의 신묘함보다 이리의 유려한 검술이 더 매혹적이었다.
“스승님은 활도 잘 쏘시고, 검도 잘 다루시고. 도술뿐만이 아니라 체술도 뛰어나셨군요. 왜 지금까지 제게 검을 안 가르쳐 주셨어요? 이렇게 아름다운 검술을 구사하시면서….”
“내가 장사에게 검을 가르칠 정도로 육체 능력이 훌륭한 편은 아니란다. 단지 오래 살았을 뿐이지….”
“하긴 스승님이 가르쳐 주셨다고 해도 저는 스승님처럼 부드러운 검술은 펼치지 못할 거예요. 다시 한번 보여 주세요. 제자는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럼 열심히 수련해.”
이리가 몽롱한 제자에게 검을 던졌다. 위험천만한 행동이었으나 도진은 당연히 가뿐히 붙잡았다.
이리는 도진과 한수가 자유롭게 수련할 수 있도록 결계로 영역을 구분해 줬다.
확실히 도진은 도술 수련을 할 때보다 검술 수련을 할 때 좀 더 활기가 돋았다.
흐압! 합! 스와아압! 히야압! 스승니임! 하압!
기합 소리에 이상한 소리가 들어가 있긴 했지만….
도진의 수련을 지켜보던 이리는 제 도움이 더는 필요하지 않으리라 판단하고 한수에게 다가갔다.
부적의 잘못 그린 부분을 몇 군데 짚어 주고 조언을 몇 마디 하다가 본론을 꺼냈다.
“한수, 네게는 따로 부탁할 게 있어.”
“부, 부탁이요? 무, 무, 무엇인지, 마, 말씀만 하시면.”
“퇴마사만이 만들 수 있는 걸 부탁하려고 해.”
한수가 눈을 끔벅였다. 이리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 * *
29일, 정오. 마경으로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오빠. 잘 다녀와. 안 그러겠지만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김도진 뒤를 잘 따라다녀.”
“으, 응.”
“석진 오빠만이 아니라 오빠도 내 가족이야. 세상엔 우리 셋밖에 없어. 그러니까 꼭 다치지 말고 와. 알았지?”
“으, 응. 너, 너도. 너무 거, 걱정하지 말고, 기… 다려. 서, 석진이. 꼭 데리고 올게.”
피가 섞이지 않은 남매가 눈물의 이별 인사를 나누는 동안, 이해자와 도진, 이리는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주먹만 한 작은 크기, 반구 형태처럼 보이는 이것은 바로 한수가 만든 사역마였다.
‘저번처럼 의지가 있는 사역마가 아니라 그냥 비어 있는 몸만 만들어 주면 돼. 끼웅이보다 작아도 되니까 금방 만들 수 있을 거야.’
이리가 사역마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를 아낌없이 지원한 덕분에 하루 만에 만들 수 있었다.
끼우웅? 끼웅?
끼웅이가 반구 형태의 그림자 사역마의 냄새를 맡으며 기웃거렸다. 이게 살아 있는 것인지, 그냥 물체인지 혼동이 오는 모양이었다. 끼웅이가 손으로 동그란 부분을 꾸욱 누르자 그만큼 쑤욱 들어갔다. 손을 떼니 탱글탱글 탄력 있게 다시 볼록해졌다.
끼웅끼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