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진 잠적 나흘째. 여동생 연락 두절, 무슨 일?]
[이석진 실종, 매니저는 같은 보육 시설 출신이었다…]
[경찰, 이석진 실종 신고 접수... 수사 착수는 아직]
[이석진의 유일한 가족, 무당 이아진의 신당에 가보니]
[‘겨울밤2’ 관계자, 이석진 잠적 예상했다]
[이석진이 앓고 있다는 해리성 인격장애... 다중인격이란?]
[이석진 잠적. ○○○와의 관련성은?]
아침부터 이석진과 관련된 온갖 뉴스 기사로 인터넷이 도배되었다. 이석진이 말도 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이 사실만으로도 충격인데 다중인격설까지 알려지면서 한국에서는 모였다 하면 이석진 이름부터 꺼내게 되었다.
워낙 유명 배우였던 탓에 TV 아침 뉴스에서도 이석진의 잠적 혹은 실종 사건이 한 꼭지를 차지했다. 회사든, 집이든, 길거리에서든 사람들은 반드시 이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건 대여점의 위아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침 오늘 상수리나무의 새순을 먹는 날이라 삼삼오오 모인 위아들은 이석진 얘기에 여념이 없었다.
“세상에… 이석진이 다중인격이었다니. 설마 무슨 일 생긴 건 아니겠지?”
“내가 예전에 유앙 신령에게 이석진 사주 들고 가서 점 본 적 있는데 오래 산다고 나왔더이다.”
“대체 다중인격이란 게 뭣이 중요하다고 이 난리인지 모르겠소. 연기만 잘하면 그만이지.”
“지금 잠적했다질 않소? 그 훌륭한 연기도 이제 못 보게 생겼구만.”
“연기를 못 보면 안 되지! 내가 ‘겨울밤3’를 얼마나 기대하고 있는데…. 그럼 우리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나가서 찾아야 하질 않소?”
“좋지! 함께 찾아보자고. 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이리 선인께 도움 줄 수 있는 이물이 있는지 물어봅시다.”
“그럽시다! 선인님께 여쭙고 약과도 얻어먹읍시다!”
“약과!”
“약과!”
“동작 그만. 왜 대화가 이렇게 흘러요?”
도진이 당장 이리에게 달려가려는 자그마한 멧밭쥐 요물들을 잡아다 다시 상수리나무 뿌리에 앉혔다.
“아이쿠. 김도진. 다 듣고 있었나?”
“들으라고 말한 거 아니었습니까? 바쁜 스승님 귀찮게 굴지 말고 얌전히 새순만 뜯다가 가세요.”
“하지만 이석진이… 연기 잘하는 이석진이 이대로 영영 없어지면 ‘겨울밤3’의 달나그네는 누가 맡는단 말이냐?”
“하아. 그냥 쫓아내 버릴까.”
쫓아낸단 소리에 위아들이 합! 입을 다물었다. 이제 초겨울에 접어드는 계절. 상수리나무의 새순을 충분히 수확하지 못하면 쫄쫄 굶으며 올해를 마무리해야 했다.
도진은 조용히 나뭇가지에 달라붙는 잔챙이들을 보고 한숨을 짧게 쉰 후 대여점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상담이 끝난 고객과 이리가 상담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항상 든든하게 챙겨 줘서 고맙소, 선인.”
“뭘. 부족하면 언제든 말해.”
“부족할 일 없을 것 같소. 그럼 내년에 뵙겠소.”
“응, 안녕.”
“김도진도 잘 있거라.”
“안녕히 가세요.”
끼우웅!
“아아. 그래. 암인도. 허허, 이것 참. 인사할 직원이 점점 늘어가는구만.”
커다란 가방을 염색약으로 가득 채운 위아가 대여점을 떠났다. 이리가 작업대 앞에 앉자 도진이 얼른 상담실을 청소하고 새로 차를 내왔다.
“스승님, 차 드시면서 하세요. 오늘 여유롭잖아요.”
“고마워. 너도 앉아.”
“네.”
도진은 이리의 옆에 앉으며 핸드폰을 꺼내 기사 하나를 보여 줬다. 차를 홀짝이던 끼웅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핸드폰에 관심을 보였다.
“이것 보세요. 인터넷에 이석진의 다중인격에게 폭행당했다는 글이 한두 개가 아니에요. 전부 다 주작일까요?”
“배리모스가 인간한테 직접적으로 폭력을 사용하진 않았을걸…. 나와의 약속이 있었으니까.”
“이때다 싶어서 관심받으려는 인간들이 많나 봐요. 기자들은 또 이런 인터넷 글 확인도 안 하고 다 기사로 퍼 나르고 있고…. 이 기사 좀 보세요. ‘이석진 잠적, ○○○와의 관련성은?’ 이래 놓고 들어가면 매니저가 수상하다는 내용이에요. 퇴마사 놈 이름까지 까발렸어요. 이 글 읽고 사람들은 또 매니저 조사해야 한다 그러고요.”
“문제가 많구나.”
기사를 훑던 이리가 고운 미간을 살포시 접었다. 도진은 저가 보여 줘 놓고 아차 싶어서 얼른 핸드폰 화면을 껐다.
“근데 대체 무슨 일일까요? 배리모스 놈이 뭔가 위험한 계략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됩니다.”
“글쎄…. 의심되는 바는 있는데 정확히는 얘기를 들어봐야 알겠지.”
“이아진이나 퇴마사한테 연락해 볼까요?”
“그쪽에서 연락이 올 거야. 전화를 받으면 오늘 저녁 시간으로 약속을 잡아 줘.”
“네.”
‘만약 연락이 안 오면요?’라는 질문은 할 필요 없었다.
이리가 이렇게 말했으면 반드시 연락이 온다는 뜻이니까.
그리고 20분 후 이리가 다음 고객과 함께 상담실로 들어간 사이, 정말로 전화가 왔다.
전화를 건 이는 퇴마사 한수가 아닌 무당 이아진이었다.
그녀는 다소 울음기가 담긴 그러나 결코 연약하지 않은, 강단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 도와주세요. 배리모스가 오빠 몸으로 어디론가 사라져서 일주일째 돌아오지 않습니다.
* * *
그날 저녁, 이아진과 한수가 이리 만물 대여점을 찾았다. 초인종 앞에서 쭈뼛대는 한수 대신 아진이 초인종을 눌렀고, 기다렸다는 듯 도진이 둘을 맞이했다.
“들어와라. 기다리고 있었… 아니, 둘 다 얼굴 꼬라지가 왜 그래?”
“우리 꼬라지가 뭐가 어때서… 그러시죠.”
“5분 전까지만 해도 서로 부둥켜안고 존나 펑펑 울다가 간신히 울음 멈추고 눈물 닦고 차에서 내린 것 같은 꼬라지인데.”
“…….”
도진의 정확한 추론에 아진은 입술만 짓씹었다. 퉁퉁 부어서 백 년 묵은 붕어가 친구 하자고 할 것 같은 몰골의 한수가 우물쭈물 물었다.
“아, 아, 안녕… 하세요. 이, 이리 선인님은…?”
“안에서 기다리고 계신다. 얼른 들어와.”
도진이 집 안으로 둘을 안내했다.
둘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은 내부에 매우 놀라워했다. 정원의 정자나 피크닉 테이블, 항아리 단지, 커다란 상수리나무 위에서 놀고 있는 잔챙이들을 보면서도 놀라고. 풀을 뜯고 있는 까만 망아지 용마를 보고 또 놀라고. 중문을 통과해 들어오자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아늑한 응접실을 보고 또 놀랐다.
끼웅. 끼우웅. 끼웅!
끼웅이가 응접실 테이블 위에서 방방 뛰었다. 몇 번 봤다고 낯을 가리지 않게 된 끼웅이는 이미 둘이 앉을 자리에 낑낑대며 방석도 갖다 놨다. 둘은 끼웅이에게 인사하면서도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이거 진짜 살면서 한 번 먹을 수도 없는 귀한 차인데 특별히 준다. 음미하면서 천천히 마셔라.”
도진이 생색내면서 금광초 차를 내왔다.
“고맙… 습니다. 선인님은 어디 계시죠?”
“흠. 우리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지?”
“…한수 오빠가 아는 만큼은, 알고 있습니다.”
“야, 그냥 말 편하게 해. 닭살 돋으니까. 선인님은 곧 내려오실 거야. 차나 마시고 있어.”
“…고마워.”
아진은 경계하느라 마시지 않았다. 그러나 한 모금 한수가 눈을 크게 뜨고 다시 호록, 호로록 마시는 모습을 보고 호기심이 생겼는지 입에 갖다 댔다.
“……!”
입술부터 퍼져나가는 이 향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온몸을 잠식했던 불안의 그림자에 따뜻한 빛이 드리워지는 것 같았다.
끼우웅.
끼웅이가 맛 좋지? 실컷 마셔! 라는 듯 계속 찻잔을 들이키는 포즈를 취했다. 아진은 이석진이 사라진 후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이리는 두 사람이 찻잔의 절반을 비우고 심신의 안정을 어느 정도 찾았을 때쯤 나타났다. 둘은 벌떡 일어나 이리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특히 아진의 태도는 요전번과 퍽 달랐다. 그때와는 다르게 이리 선인의 도움이 절실한 탓이었다.
“편히 앉아서 얘기하자. 배리모스가 언제 집을 나갔다고?”
“일주일 전…. 11월 20일에 나갔어요.”
아진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동안 바깥을 싸돌아다니던 배리모스는 어느 순간부터 외유를 멈추고 서재에 틀어박혔다. 한수와 아진에게는 오로석영지 부적 용지를 만들게 하고, 그 부적지로는 정확히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려 주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배우 일도 멈추고, 거의 보름이 되도록 서재에서 무언가를 연구하더니 일주일 전, 식사하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