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귀여운 잡귀로군요….”
화담이 만나고 처음으로 미소를 지었다. 쓰다듬으려는 듯 손가락을 가져가자 끼웅이가 흠칫하면서 이리와 도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두 사람이 반응하지 않자 끼웅이는 도망치지 않았다. 화담은 끼웅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시왕들도 반려동물을 키울 거면 이런 귀여운 아이를 키우면 좋을 텐데….”
“시왕들의 반려동물들은 전부 케르베로스의 아이들이지?”
“예…. 만날 때마다 꼭 제 옷을 뜯어먹습니다…. 마치 널 뜯어먹을 수 없으니 옷으로 참아 주겠다는 듯이….”
“여기는 새 옷을 사려고 온 거야?”
“옷도 살 겸… 휴식도 취할 겸…….”
화담이 벤치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먼 하늘을 올려다봤다.
“죽을 것 같을 때 종종 휴식 삼아 극락에 옵니다….”
어찌나 아련한지 아스라이 사라질 것 같았다. 눈앞에서 저승으로 가 버리지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다. 물론 저승이 거처이긴 하지만….
“시왕들에게 힘 조절 좀 잘해 달라고 말해 봤어? 그들도 대화를 하면 알아듣는 사람이란다.”
“이미 그분들은 나름대로 자제하고 계시기 때문에….”
시왕은 성격이 너무 호탕하고 거칠어서 그렇지, 호인과 악인 중에서 분류하라면 호인에 속할 사람들이다. 그러나 고래 아홉 마리 사이에서 일하는 새우는 고래들의 정겨운 터치 한 번에 몸이 산산조각나는 충격을 입는다는 게 문제다.
“고래 사이에 낀… 새우의 잘못이 아니겠습니까…. 이 자리에 올랐을 때부터 각오했던 일입니다…. 제가 선택한 길이니… 참아야지요….”
겸허한 말투에 이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도진은 아니었다.
도진은 부채질 속도가 빨라지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흔들면서 말했다.
“참기만 하는 건 능사가 아닙니다. 새우도 엄연히 그 집단의 일원. 예를 들어 열 명 중 한 명이 수어를 사용한다면, 다른 아홉 명은 수어를 배워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수어 사용자를 집단의 일원으로 뽑아 놨으니까요.”
“…….”
“언젠가는 이 집단에 또 다른 새우가 들어올지도 모르는데 그 새우에게도 참으라고 하실 생각입니까? 그리고 종종 극락에 데리고 와서 휘청거리며 산책이나 하시려고요? 무언가 불편하면 개선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저 참고 견디는 게 아니라요.”
화담이 생각에 잠겼다.
하고 싶은 말을 다 마친 도진은 입술을 삐죽이며 이리를 쳐다봤다. 이리는 도진을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잠시 후 화담이 말했다.
“맞는 말이네…. 나도 시왕의 일원. 그들은 변화를 꾀하겠다며 선인을 시왕으로 뽑았으니… 내가 그들에게 적응해야 하는 것처럼 그들도 내게 적응해야 하는 법이지…. 김도진, 자네 덕분에 머리가 맑아졌네, 고맙네.”
“뭘요. 다 제 스승님의 훌륭한 가르침 덕분입니다.”
도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나 얼굴은 히죽거리고 있었다. 제 스승의 흐뭇한 표정을 본 순간부터 이미 입꼬리가 귀에 걸린 도진이었다.
“우리는 이제 가야겠다. 화담, 돌아가면 우선은 힘 조절부터 부탁하고 그래도 안 되면 염라에게 말해 봐.”
“예, 그런데 사실 힘 조절보다 급선무인 게 있습니다….”
“뭔데?”
화담이 넓은 소매 속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변성
(사진) 제르베로스,봤냐,아주그냥,사람같이굴어,꼬리흔드는거봐,
진광
자가용의 반대말은?
커용 ㅎㅎ
오늘도 웃음 가득한 하루 되시길~✿ܓ
송제
푸ㅎㅏㅎㅏ~~ 자네도 즐거운 하루,,, ㅎ
태산
(사진) 저승에 무지개가 떳ㅅ네 ~~^^ 다들 무지.개같은 하루 ~~ ^^
송제
깔깔깔!
전륜
오늘·회의·10분·정도·늦음··
송제
알~
태산
RR
“와, 씨…. 존나 보기만 해도 스트레스….”
도진이 질색하며 멀어졌다.
“그래…. 어떤 의미로는 힘 조절보다 이쪽이 더 급선무인 것 같네.”
이리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 * *
푸히잉!
“너 그새 좀 살쪘다. 뭘 얼마나 처먹은 거야.”
푸르릉.
끼웅끼웅.
“뭐? 하나도 안 쪘다고? 봐 봐. 주둥이에 볼살이 아주 그냥 찹쌀떡처럼 늘어져서 말랑말랑하게…. 스승님!”
도진이 선치 마을 사람들과 인사 중인 이리의 손을 덥석 붙잡아 용마의 볼살을 만지게 했다.
“완전 말랑거려요. 만져보세요.”
“그러게.”
이리는 몰랑몰랑한 볼살을 주물거리고 있자니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었다. 용마 또한 기분 좋다고 발굽을 타닥타닥 땅에 부딪쳤다.
“선인님, 이제 가면 또 언제 극락에 오십니까?”
“글쎄. 대여점 시간이 허락한다면 언제든 오고 싶지만….”
“곧 열세 번째 구역도 개방한다고 하니 그때는 꼭 와서 축제를 즐기세요.”
“언젠데?”
“사실 지금 준비는 다 되었는데, 진현계 4대 임금님 즉위식이 끝나면 그때 공식적으로 개장한답니다.”
“내년이겠구나. 알았어.”
율도국 팔씨름 대회, 선인의 기도식 등 많은 행사가 있지만 위아 세계의 가장 큰 행사는 뭐니 뭐니 해도 진현계 임금의 즉위식이다. 그 때문에 다른 지역들은 큰 행사들을 즉위식 뒤로 미루고 있었다.
“이리 선인, 이제 떠나십니까?”
“이제 가면 또 언제 봅니까?”
“뭐 이리 선인께서 떠나신다고?”
“이리 선인!”
“이리 선인!”
작별 인사 시간이 길어지자 귀신같이 알고 극락인들이 몰려들었다. 무릎까지밖에 안 오는 자그마한 것들부터 이리의 세 배는 될 법한 커다란 것들까지.
그래, 안녕. 시간이 나면 꼭 다시 올게. 응, 안녕. 안녕. 도진은 정신없이 인사하는 이리의 팔을 잡아당겼다.
“작별 인사하다가 시간 다 가게 생겼네. 저기요, 정말로 이리 선인을 존경한다면 이제 그만 보내 주시죠. 스승님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피곤하거든요.”
“이봐. 우리한테도 흔치 않은 기회라고.”
“어떤 흔치 않은 기회? 이리 선인을 더 피곤하게 만들고, 괴롭힐 기회 말입니까?”
부릅뜬 눈과 강한 일갈에 위아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이리는 도진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진정시켰다. 어쨌든 도진 덕분에 기나긴 작별 인사 시간이 끝났다. 이리는 위아들에게 언젠가 꼭 다시 오겠다고 약속한 후 통로를 만들었다.
“으아아아, 집이다.”
끼우우웅!
푸히이잉!
통로를 통해 대여점에 돌아오자마자 도진과 끼웅이, 용마가 짠 것처럼 두 팔과 앞다리를 번쩍 들며 포효했다. 그사이 침입자는 없었는지 수색하는 듯 정원을 뛰어다니는 셋을 보며 이리가 미소 지었다.
방금 전까지 있던 곳에 비해 춥긴 하지만, 그리고 이제 또 해야 할 업무를 생각하면 조금 아득해지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우리 집이 제일 극락이었다.
29. 구출 작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