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166화 (166/203)

칠성신은 바로 지척에 있는 카페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칠성신이 산다고 해서 도진은 카페의 가장 비싼 음료와 디저트를 시켰다. 배수정과와 옥수수떡케이크였는데 꽤 맛있어서 앙금이 조금 풀렸다.

“저희 생일과 스승님의 생신이 날짜가 가깝거든요. 며칠 남지 않아서 슬슬 선물을 골라야 하는데, 저희 취향이 각자 다 달라서 도저히 의견이 모이지 않습니다. 스승님께서는 일곱 명이 의논해서 의견을 모아 한 가지만 선물하라고 말씀하신 바 있고요. 매년 이맘때마다 싸움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냥 순번 정해서 차례대로 정하면 되잖아.”

“하지만…!”

첫째 탐랑성이 눈을 부릅떴다.

“저희 스승님께서 모두 다 함께 상의해서 의견을 정하라 하셨단 말입니다. 순번을 정하는 건 스승님의 말씀을 어기는 행위입니다.”

다른 여섯 명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과는 다른 의미의 스승 광신도였다.

이들이 말하는 스승이란 바로 바리공주였다.

한국 민담에서는 칠성신이 바리공주의 제자들이 아닌, 바리공주가 낳은 일곱 형제라고 잘못 알려졌다. 바리공주는 칠성신을 갓난아기일 적부터 돌봤으니 자식이나 마찬가지라며 흔쾌히 웃어넘겼다. 칠성신도 그 오해를 적극적으로 바로잡지 않아서 위아들 중에서도 잘못 알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나도 바리공주의 취향은 잘 알지 못해서. 박씨부인이나 계화에게 부탁하는 게 어때? 셋은 절친한 사이잖아.”

“박씨부인은 너희끼리 선택하라면서 힌트도 주지 않습니다. 계화 낭자는 워낙 자기 취향이 뚜렷하다 보니 옷을 골라 달라고 하면 무조건 플라워 프린트, 가방을 골라 달라고 해도 무조건 플라워 프린트. 심지어 노트북을 골라 달라고 해도 꽃문양이 새겨진 노트북을 어디선가 찾아오는 분이고요….”

“그럼 마고는?”

“대모님은 좀 대하기 어려운 분이라서…. 예전에 어렵사리 여쭌 적 있는데 생일 선물쯤은 바쁜 사람 귀찮게 하지 말고 알아서 고르라고 하시더군요.”

“도화녀나 비형랑….”

보다 못한 도진이 나섰다.

“스승님, 그냥 빨리 골라드려요. 우리 할 거 많아요. 갈 데도 많고요. 끼웅이도 얼른 솜사탕 먹으러 가고 싶대요.”

끼웅?

옥수수떡케이크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끼웅이가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끼웅이는 그냥 떡이 좋다는데.”

“솜사탕을 더 좋아할 거예요.”

도진이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꾸욱 눌러서 끼웅이를 다시 케이크에 파묻어 버렸다.

“칠성신 선인님들, 잘 골라드릴 테니 걱정마시고요. 지금 후보는 몇 개입니까?”

“당연히 일곱 개라네.”

“뭐라고요? 아니, 뭐 서너 개로 간추리지도 못했습니까?”

“다들 의견을 굽히질 않으니…. 이럴 때는 첫째의 말을 좀 따라 주면 좋으련만.”

“이럴 때는 막내의 말을 따라야지요.”

“아니, 솔직히 첫째나 막내나 한날한시에 세상에 나왔는데 뭔 소리. 이럴 때는 중간인 넷째의 말을 따라야 한다고.”

칠성신이 다투기 시작했다. 그 사이 개중에서 가장 차분한 둘째 거문성이 태블릿PC를 꺼냈다.

“목록은 이러합니다.”

1. 등산복(첫째) : 스승님은 산에 다닐 일이 많으시니까.

2. 등산화(둘째) : 옷은 우의를 입으시면 되니까 신발을 드려야 함.

3. 배낭(셋째) : 날아가시면 되니까 가방을 드려야 함.

4. 선글라스(넷째) : 요즘 인간계에 자외선이 심하니까 시력 보호.

5. 메쉬 햇(다섯째) : 요즘 인간계에 자외선이 심하니까 두피 보호.

6. 시계(여섯째) : 등산인이라면 자고로 방위와 고도, 온도계가 포함된 등산 시계를.

7. 스틱(일곱째) : 무릎 관절을 보호하고 부상을 방지하는 등산 스틱은 등산인의 필수템.

누가 이 리스트만 보면 바리공주가 등산광이구나 할 것 같았다.

“그… 애들아. 바리공주가 산을 많이 타긴 하지만 그래도 사막이나 초원을 다닐 때도 많은데 너무 등산 위주가 아닐까?”

“사막과 초원 필수템은 이미 선물 드려서 말입니다.”

“가끔 해저에도 가는 걸로 아는데.”

“잠수부 세트도 이미 맞춰 드렸습니다.”

“으음…….”

이리는 고르기가 어려운지 계속 스크롤만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 했다. 도진이 이리의 손에서 태블릿을 가져가서 하나하나 읽고는 둘째에게 돌려줬다.

“고민할 필요 없습니다. 저는 딱 보자마자 뭘 드려야 할지 알겠던데요.”

“버, 벌써 골랐단 말이오?”

“예.”

“하지만 우리는 자네보다는 선인님의 의견이 궁금한데.”

이리가 얼른 말했다.

“내 의견이 도진이 의견이야.”

“그렇다면…. 말해 보거라. 무엇이 좋겠느냐?”

칠성신이 저마다 기대하는 얼굴로 도진을 쳐다봤다. 도진은 아주 간단하게 답을 내렸다.

“전부 사세요.”

“뭣?”

“전부 사서 전부 선물하라고요. 돈이 없는 것도 아니시잖아요? 그리고 앞으로도 선인님들이 원하는 선물을 일곱 개든, 열네 개든, 스물한 개든 전부 사세요.”

“하지만 스승님께서는 우리에게 의견 통일하라고….”

“전부 사는 걸로 의견 합일했다고 하면 되잖아요.”

“……!”

“……!”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던 칠성신이 크게 놀랐다.

“자, 잠깐만 시간을 주게. 선인님, 잠시 토의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칠성신이 멀찍이 떨어진 곳에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도진이 음료를 쭈욱 들이켰다.

“스승의 하명을 지키려다가 자아가 없어진 케이스군요. 스승님은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자아가 아주 확고하니까요.”

“그런 걱정은 해 본 적 없어….”

“스승님께 생일이 있었다면 저는 저 등산 세트보다 훨씬 값진 걸 매년 선물했을 텐데.”

“예를 들면 어떤 거?”

“제 손 편지라든가… 제 사진이라든가.”

“사진은 괜찮지만 손 편지는 사양할게. 읽을 수가 없어서.”

“글씨 연습할게요. 저는 뭐든 잘하기 때문에 악필 교정도 며칠이면, 아니, 몇 시간이면 끝날걸요.”

자아가 확고하다 못해 자존감이 하늘을 찌르는 발언에 이리가 웃었다. 옥수수떡케이크에 굴을 파면서 갉아 먹고 있던 끼웅이가 배부른지 밖으로 기어 나왔다. 이리가 티슈로 끼웅이를 닦으려 하자 도진이 가져가서 거칠게 쓱쓱 대충 닦고 앞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어머. 꼭 엄마랑 아빠 같네.’

‘그러게. 저 잡귀가 되고 싶다.’

‘김도진이 선인님을 연모한다던데 사실일까?’

‘헉, 눈 마주쳤어. 정말 부리부리하다.’

이 와중에도 여기를 힐끗대는 위아들에게 도진이 일일이 장인의 눈 부라림을 선사했다.

“우리 칠성신이랑 헤어지면 은신술 펼치고 움직여요. 한국에서보다 더 걸리적거리는 게 많네요.”

“여기가 도심이라 그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다가와서 말 거는 위아들은 없을 거야. 기껏해야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는 정도.”

“얼른 가고 싶다. 그냥 바로 일어날래요?”

“칠성신은 어쩌고.”

“저분들은 자기들끼리 결정하면 되지. 왜 우리한테 기다리라고 하는 건지. 바리공주는 시원시원한 성격으로 알고 있는데 제자들이 소심해서 고민이 많으시겠어요.”

“칠성신이 그렇게 소심한 성격은 아니야. 악신들과 싸울 때 보면 나도 섬뜩할 때가 있어. 제 스승에 관한 것에만 조심스러워지는 거지.”

악신들이 틈만 나면 장악하고자 노리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극락과 하늘꽃밭이다. 중간계는 이리 선인이 있으니 일찌감치 포기하고, 진현계는 침입조차 불가능하니 포기하고.

저승은 장악해도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포기하고, 천지천해는 천지신명이 넷이나 되는 곳이라 포기하고…. 남은 곳은 극락과 하늘꽃밭.

하늘꽃밭 소속인 바리공주는 본래 칠성신에게 하늘꽃밭을 지키게 하려고 했는데, 극락의 소별왕이 오방장군만으로는 악신들의 위협을 막기가 힘들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바리공주는 제자들에게 극락을 지키라 명했다.

한마디로 칠성신은 파견직이었다. 그래서 기도식 때도 극락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잠깐만요. 그럼 저분들은 바리공주 님을 1년에 몇 번 보지도 못하는 겁니까?”

“1년에 몇 번이 아니라 10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할걸. 저번 기도식 때 오랜만에 얼굴 본다고 좋아했어. 선물은 배송으로 주고받는다고 했고.”

“하…. 어떻게 스승님이랑 10년에 한 번 보면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지? 저라면 미쳐 버렸습니다. 저는 한 시간에 한 번 스승님 얼굴을 안 보면 마음이 몹시 불안하고 울화가 치솟거든요.”

“그건 병이 아닐까 싶은데….”

“스승님은 어때요? 절 10년에 한 번밖에 못 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엄청 불안하고 슬프겠죠?”

이리는 곰곰이 생각해 봤다. 관조자와는 수백 년간이나 얼굴을 안 보고 지냈어도 ‘엄청 불안하고 슬프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사실 10년이라면 천문학적 단위를 살아온 태고의 선인에게는 찰나나 마찬가지였다. 눈 한번 깜빡하면 지나가 버릴 시간.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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