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수
뭐여 약사 왜 지맘대로 괜찮다고함?
나도 괜찮아. 대여점에 보자
학교수
저도요ㅎㅎ 날짜는용?
도진아 얼른 스케줄표를 확인했다.
“내일모레 저녁이요.”
“그렇게 빨리 될까….”
모레 저녁 괜찮아?
이해자
아 완전 괜찮죠!!!!
이해자
영수한테 바로 연락할게요. 감사합니다
잠깐만 다른 애들도 되는지 봐야지
약사
당연 됩니다용~
학교수
선인님이 오라하는데 누가 안된다고함
약사
ㅋㅋㅋㅋㅋ
약사
관조자?
학교수
아 관조자는 깍두기고요
도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신령님 또 꽁꽁 숨을 생각이네. 제가 또 의원에 찾아가야겠군요.”
“놔 둬. 저번에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무리했어.”
도진은 답답한 한편, 이리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사실 그때 자신이 너무 건방지게 끄집어 낸 감이 있었다. 이번엔 봐줘야 할 것 같다.
이리 먹으라고 잘라 놓은 약과를 어느새 기어온 끼웅이가 누운 채로 갉아먹었다. 도진은 끼웅이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스승님도 끼웅이 찔러 보세요. 살쪄서 푹신 거려요.”
“애 체하겠다.”
“이 정도 가지고 안 체해요. 이제 익숙해져서. 체하려면, 음. 스승님, 저희는 결혼 언제 해요?”
이리가 차를 마시다 말고 콜록, 기침했다.
“이 정도는 해야 체하죠.”
도진이 피식 웃고는 티슈를 한 장 뽑았다. 이리는 티슈를 건네받기 위해 손을 내밀었는데, 도진은 그 손을 무시하고 이리의 턱을 잡아들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라서 굳어 버린 덕분에 도진은 수월하게 이리의 입가를 닦았다. 그러고 그윽한 시선을 입술에 내리꽂았다.
“스승님 입술 왜 이렇게 붉어요? 본래 재채기하면 이렇게 붉어져요? 저 지금 입술밖에 안 보여요. 하아… 이건 무슨 증상이죠?”
“도진아. 손 놔. 내가 떼기 전에.”
이리는 어쩐지 입술이 바싹 타는 기분에 낼름 핥았다.
“으아아악, 왜, 왜 핥아요!”
도진이 천장까지 닿을 듯이 깜짝 놀라며 후다닥 물러났다. 쿵, 의자가 뒤로 엎어지는 소리에 끼웅이가 놀라서 일어났다.
“이, 이럴 때 혀로 입술 핥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스승님은 정말 잔인한 분이에요! 잔인하고 잔혹해요! 제가 참느라고 얼마나 힘든데, 빤히 알면서 입술을 핥아요? 네? 제가 만약 뽀뽀해 버렸으면 어쩔 뻔했어요! 아, 씨. 뽀뽀할걸!”
도진이 의자를 주섬주섬 일으키곤 다시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스승님, 혹시 뽀뽀해도 된다는 신호였다면… 제자가 너무 흥분해서 죄송합니다.”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잘하네.”
“그럼요. 워낙에 목석인 짝사랑 상대를 뒀다 보니 홀로 연애하는 법을 터득했다고나 할까.”
“이만 일어나자. 내일도 할 일이 많아.”
“스승님이 지금 도망쳐 봤자 어차피 우리는 연인이 될 사이라는 걸 기억하세요.”
“알고 있어…….”
흔치 않은 긍정적인(?) 대답에 도진이 헤벌쭉 웃었다. 그때 핸드폰이 지잉- 울렸다. 신령들 단챗방이었다. 마지막으로 떠오른 메시지를 본 이리와 도진이 눈을 마주쳤다. 둘 다 놀란 눈이었다.
그 메시지는 이러했다.
관조자
나도 갈게
이해자의 연인을 만나기로 한 날, 학문가와 약사는 일찍부터 대여점에 도착했다. 일손을 거들기 위해서였으나 의외로 대여점은 한가했다.
“대여점이 그래도 요즘엔 여유로워졌네요. 이렇게 차 마실 시간도 있고.”
“도진이 덕분에 많이 나아졌어.”
“제가 큰 도움이 된 건 맞긴 하지만, 여유로워지진 않았습니다. 오늘은 저녁에 상견례도 있는데 고객까지 많으면 스승님 피곤하실까 봐 일부러 일정 조율한 거고요.”
도진이 냉정한 말투로 현실을 직시시키며 쪼르륵 차를 따랐다. 약사가 차 향을 음미하더니 호오, 감탄했다.
“바리공주가 준 금광초 차로군요. 선인님, 갈 때 한 줌만 얻어 가도 될까요? 금광초는 차 맛도 좋지만 훌륭한 약재이기도 해서.”
“당연히 되지. 원하는 만큼 가져가.”
“원하는 만큼이라니… 제가 막 한 상자 달라고 하면 어쩌시게요.”
“충분히 줄 수 있어. 도진이가 아주 정성 들여 키워서 무성하게 자랐거든. 뒤뜰에 가 볼래?”
금광초 키우기가 얼마나 까다로운지 잘 알고 있는 약사는 뭐 얼마나 잘 자랐겠나 싶었다. 구경이나 하자는 마음으로 뒤뜰에 갔다가 놀라서 돌아왔다.
“아니, 무슨 금광초로 숲을 만들어 놨군요. 대체 어떻게 하셨습니까? 선인님의 신묘한 술수로 ‘대여점 뒤뜰은 살기 좋은 곳이지. 여기에 군락을 이루면 좋을 거야.’라고 속삭이기라도 하셨어요?”
이리가 짧게 웃었다.
“그런 건 아니고. 말했잖아. 도진이가 정성 들여 키웠다니까.”
“제가 식물 재배에도 천재적인 재능이 있어서 말입니다. 대체 제가 재능을 보이지 않는 분야는 어디일까요? 차도 기가 막히게 끓여. 풀도 기가 막히게 키워. 업무 조율도 기가 막히고. 이제 기가 막힌 연애만 하면 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스승님?”
“푸훕.”
얼마나 잘 키웠길래 이러나 뒤뜰을 보고 돌아온 학문가가 앉으려다 말고 고개를 돌렸다. 웃음을 참지 못한 태닝한 미인은 검은 생머리를 휘날리며 대기실을 떠났다.
“대놓고 대시 중이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화끈하네.”
약사가 볼을 긁적였다. 도진은 뻔뻔하게 턱을 치켜들었고 이리는 민망함에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도진이 이리에게 열렬한 수작 중이라는 걸 모르는 신령이 없었다. 이리를 향해 파렴치하다고 말할 사람은 없지만, 그래도 민망한 이리였다.
“선인님, 김도진의 참을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얼른 대답을 주셔야겠습니다. 거절하려면 냉정하게 단칼에 잘라야 이 녀석이 건방지게 선인님을 넘보지 않을 거 아닙니까?”
“약사 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데요.”
“뭘?”
“스승님과 저는 이미 연애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시기만 정하지 못한 거고요.”
“그 시기가 천 년 후면?”
“천 년 후면 어떻습니까. 우리는 불로불사할 텐데.”
도진은 자신만만한 투로 말해 놓고는 잠시 후 울상을 지으며 이리에게 어깨를 살짜쿵 부딪쳤다.
“스승님. 천년 후는 싫어요. 1년도 못 참겠는데 무슨 천년이에요. 제가 기다릴 수 있는 건 1년뿐이에요. 참고해 주세요.”
“도진아, 그만. 지금 여기 우리 둘만 있는 게 아니잖아.”
“왜요. 흥미진진한데. 야, 너는 만약 선인님이 1년 후에도 안 받아 주시면 어쩌려고?”
“그럼 최후의 방법을 사용해야죠.”
“그게 뭔데?”
“스승님과 저의 사적인 문제니 약사 님께는 비밀입니다.”
“뭐야. 지금까지 잘만 얘기해 놓고선.”
약사가 툴툴거리며 다리를 꼬았다.
끼웅?
“어이쿠.”
무릎 위에서 자고 있다가 굴러떨어지는 끼웅이를 손으로 받아 낸 약사가 이리에게 건넸다.
끼우웅.
익숙한 품에서 얼굴을 부비던 끼웅이가 냄새를 킁킁 맡더니 테이블 위로 폴짝 뛰어올라 제게도 차를 주라고 졸랐다. 도진이 혀를 차며 미니어처 찻잔을 가지고 왔다. 끼웅이는 얼굴을 찻잔에 파묻고 마시다가 후, 하. 하고 고개를 들었다. 이리가 손수건으로 감싸 물기를 닦았다. 옆에서 도진이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다 닦아 주니까 애가 버릇이 안 고쳐지죠.”
“그렇다고 안 닦아 줄 수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