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155화 (155/203)

마치 나뭇가지가 낙엽을 떠나보내듯 아무런 저항 없이 모두를 떠나보낸 분이다.

그 이유는 하나.

죽는 이의 입장을 존중해서…….

그들을 떠나보내고 홀로 남을 자신보다 떠나가는 그들이 더욱 소중했던 것이다.

“도진아.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괜히 테이블 무너뜨리지 말고….”

도진은 그제야 손의 힘을 풀었다. 테이블 모서리가 투두둑, 하고 떼어졌다. 간단한 주술로 잔해를 치운 도진이 스승님, 하고 불렀다.

“응.”

“…삐웅이가 떠나는 날, 끼웅이 엄청나게 울텐데.”

“…….”

“밤에 내내 훌쩍거리겠어요. 시끄러우니까 혼자 자라고 하고 저는 스승님 방에서 잘게요.”

“그럴수록 같이 재워야 하는 거 아니야?”

“음, 맞네요. 그럼 우리 끼웅이를 사이에 두고 같이 자요. 침대 킹 사이즈니까 완전 가능합니다.”

도진은 원래부터 이런 말을 하려고 했던 것처럼 두 눈을 번뜩였다.

“절대로 끼웅이 선 넘어가지 않을게요. 제자 믿으시죠? 정 걱정되시면 부적 붙여 놓고요. 저는 그냥 끼웅이가 걱정돼서 그래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스승님도 걱정되고요.”

“내 걱정은 왜?”

도진은 좀 돌려 답하고 싶었다.

그러나 워낙 솔직한 성격인 데다가, 방금 전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삼켜 버리는 바람에 이번에는 가감 없이 생각을 그대로 내뱉었다.

“본래 겉으로 담담해 보일수록 속은 여린 경우가 많잖아요. 스승님이 혼자 우실까 봐 걱정돼요.”

“내가… 혼자… 울까봐…?”

“네.”

“…….”

“놀랍게도 네입니다, 스승님. 저 스승님 눈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요.”

이리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감동하길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이렇게 떨떠름해할 줄은 몰라서 도진은 조금 상처였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걱정이 되는 것을….

기어코 이리에게 차 한 잔을 다 마시게 한 도진이 일어나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돌아보았다. 스승은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도진은 이리가 떨떠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색한 것이다.

혼자 울까 봐 걱정했다는 게. 그런 걱정을 받았다는 게.

도진은 문을 닫고 1분을 헤아린 후 ‘다음 고객!’ 크게 외쳤다. 그는 콧김을 내뿜으며 어질러진 개수대를 정리했다.

그래. 스승님은 감정 기복이 적고 언제나 잔잔하신 분이다. 감정의 색이 아주 흐릿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두고 봐. 내가 꼭 격정적인 감정의 폭풍에 휩쓸리게 할 테니까!’

도진은 깨끗한 물줄기에 씻겨 나가는 찌꺼기들을 보며 굳건히 다짐했다.

* * *

11월 10일.

끼우웅…….

끼웅이는 아침부터 기운이 없는 삐웅이가 걱정스러워 2층에서 내려오지를 않았다. 걱정돼서 올라와 본 도진을 보채 죽을 쑤게 하고, 미니어처 밥그릇에 담아서 삐웅이 앞에 대령했다.

끼웅.

삐이이….

끼우웅….

일어나 앉지도 못하는 삐웅이를 부축해 앉힌 끼웅이가 호호 불어가며 죽을 먹였다.

삐이….

삐웅이는 두세 입 받아먹다가 다시 누웠다. 시름시름 앓는 삐웅이를 보며 끼웅이는 큰 결심을 했다. 암인은 계단을 굴러떨어지다시피 하며 내려가 작업대 앞의 이리에게 달려갔다.

끼웅, 끼웅!

삐웅이가 많이 아프니 해결해 달라, 내 덕을 주겠다. 그 작은 몸짓에 이리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끼웅아…. 미안하지만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문제야.”

이리 선인이 어찌할 수 없는 문제라니?

세상에 그런 게 어디 있단 말인가.

내 덕이 너무 적어서 그런가? 좀 더 열심히 모을 걸. 더 착하게 살 걸.

끼웅이가 눈물을 퐁퐁 쏟아 내며 이리의 옷을 축축하게 적셨다.

“야. 스승님 곤란하게 만들지마.”

도진이 끼웅이의 뒷덜미를 잡아 제 셔츠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바로 또 그 부분만 축축하게 젖어 갔다. 도진이 착잡한 마음으로 끼웅이를 토닥이는데 이리가 말했다.

“도진아, 삐웅이한테 가자.”

“…지금요? 지금, 한낮인데.”

“응. 용마 데리고 와.”

이리가 먼저 올라갔다. 도진도 망아지로 변한 용마를 데리고 2층으로 향했다. 이리의 침실에 마련해 준 침대에서 삐웅이가 쌕쌕 가쁜 숨을 내쉬고 있었다. 끼웅이가 엉엉 울면서 삐웅이에게 안겼다.

끼우웅. 끼웅.

삐웅….

삐웅이는 마지막 힘을 짜내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끼웅이를 부드럽게 안아 줬다.

삐이, 삐….

세상을 너무 무서워하지 말고 이리 선인과 김도진, 용마와 함께 행복하게 잘 살아가라는 말이었다. 아무리 끼웅이라도 이쯤되면 삐웅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할 수가 없었다.

끼웅! 끼우웅. 끼우우우웅!

도진의 예상대로 끼웅이가 대성통곡을 했다.

에휴. 어쩌냐.

욕을 삼킨 도진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승님, 저승사자는요?”

“팔일살이처럼 단명하는 존재는 저승사자가 데리러 오지 않아. 저승사자가 혼을 수거하러 오는 이유는 혼이 무거워서 저절로 올라가지 못하기 때문인데, 팔일살이들의 혼은 대부분 아주 가볍거든.”

“아. 혼이 알아서 저승에 올라간다는 뜻이군요. 갓난아기들 죽을 때처럼….”

차라리 저승사자를 대면하면 어떻게 시간을 끌어 보기라도 할텐데.

도진이 의자를 끌어다 앞에 앉았다. 서 있는 이리에게도 앉으라 권했으나 이리는 고개를 저었다.

푸르릉.

용마가 주둥이를 두 잡귀에게 비비적거렸다.

삐이…….

마침내 삐웅이도 눈물을 똑똑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도진이 에휴우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주저 없이 손을 내밀어 삐웅이를 토닥이는 도진과는 달리 이리는 그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지켜봤다.

이리라고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도진의 말처럼 속으로 울 생각도 없었지만.

삐웅이는 말하자면 단 한 번도 윤회하지 않은, 완전히 새로운 혼이고 어떻게 보면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윤회에 들어간 이후부터가 말이다.

지금의 삐웅이는 짧은 삶에 눈물짓고 있으나, 언젠가는 너무 오래 살아서 그저 죽고만 싶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삐웅이가 깊고 깊은 우울과 무기력증에 빠져 있을 때 또 어딘가에서는 새로운 혼이 태어나 자신의 짧은 삶에 눈물짓겠지.

자연이란 그런 식으로 평형을 이루는 것이다.

이리의 눈앞에서 8일의 짧은 삶을 끝낸 혼이 팔랑팔랑 꽃잎처럼 허공에 떠올랐다.

끼웅이가 혼을 붙잡기 위해 폴짝 뛰며 팔을 뻗었지만 손은 혼을 통과할 뿐이었다.

끼웅, 끼웅.

어찌나 대성통곡을 하는지 하루 종일 울 기세였다. 용마의 꼬리가 추욱 쳐졌다. 도진도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눈꼬리의 눈물을 훔쳤다.

다들 슬퍼하는데, 왜 나는 눈물이 나지 않을까.

이리는 검은 팔찌를 매만지며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이리의 뒷모습을 도진이 바라봤다.

붉은 눈은 그답지 않게 여러 복잡한 감정이 깃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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