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150화 (150/203)

끼웅이와 비슷하게 생겼는데 색만 달랐다.

끼웅?

도진의 셔츠 앞주머니 속에 숨어 있던 끼웅이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끼웅? 끼웅?

삐웅….

하얀 그림자가 이리의 손바닥 위에 엉금엉금 올라탔다. 그리고 이리의 손가락 중 검지와 중지를 끌어안고 오들오들 떨었다.

“귀엽습니당!”

“외계인이란 귀여운 종족이군용!”

“저희가 키우겠습니당!”

세지들이 방금 전과 다른 이유로 호들갑을 떨었다. 반면 도진의 얼굴은 점차 심각해졌다.

“이게 무슨… 설마….”

끼웅이의 비슷한 모습. 그림자 잡귀, 암인. 설마 퇴마사의 사역마인가 싶었던 것이다. 이리는 웃으며 제자의 걱정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도진아. 이 아이는 새로 태어난 위아란다.”

“네…? 새로 태어난 사역마라고요?”

“아니, 아기 잡귀라는 뜻이야. 일단 나가자. 나가서 설명해 줄게.”

이리는 하얀 잡귀를 손가락으로 조심히 쓰다듬으며 물었다.

“나랑 같이 갈래?”

삐이….

하얀 잡귀가 이리의 손가락을 끌어안은 채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였다.

“잠깐만요. 위험한 녀석일 수도 있어요. 제가 들게요.”

“그래. 태어난 지 삼 일째 된 애니까 조심히 다뤄….”

삐이, 삐우웅. 삐우우웅.

도진이 하얀 잡귀를 데려가려고 손을 뻗자 잡귀가 격렬하게 고개를 저었다. 이리의 손가락에 달라붙는 녀석을 보고 도진의 붉은 눈은 더욱 더 흉흉해졌고, 그에 따라 잡귀도 더더욱 달라붙었다. 눈물을 퐁퐁퐁 쏟아내는 모습이 끼웅이랑 색만 다르지 똑같았다.

끼웅!

그때 끼웅이가 주머니에서 나와 팔을 타고 미끄러져서 이리의 손바닥에 안착했다. 하얀 잡귀는 저와 비슷한 모습을 한 끼웅이를 보고 눈물을 멈췄다. 끼웅이가 하얀 잡귀를 열심히 설득했다.

끼웅, 끼웅.

삐웅…?

끼우웅.

삐이….

끼웅, 끼웅!

안심하라는 제스처에 하얀 잡귀도 점점 경계를 풀었다. 끼웅이가 하얀 잡귀에게 손을 내밀자 하얀 잡귀가 그 손을 붙잡았다. 끼웅이는 덜덜 떠는 하얀 잡귀를 데리고 도진의 팔을 타고 올라가 셔츠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정말 귀엽지?”

“저한테 귀여운 건 스승님밖에 없어요.”

“…일단 나가자.”

이리가 하얀 잡귀를 데리고 폐가를 나가려 하자 세지들이 방방 뛰었다.

“데려가지 마세용. 저희가 키울게용.”

“너무 귀여워용. 저희가 종이를 배불리 먹일게용.”

“양질의 신문지가 많이 있어용.”

“다들 조용. 잡귀 본인에게 물어보겠습니다. 잡귀의 뜻을 따라야 해요. 알겠습니까?”

“알겠어용.”

도진이 주머니를 툭 치자 까만 잡귀와 하얀 잡귀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

“여기서 살래. 아니면 우리 따라갈래? 세지들이랑 같이 살고 싶으면 나와.”

삐이.

하얀 잡귀가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세지들은 아쉬워했으나 하얀 잡귀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요괴들과 헤어진 이리와 도진이 용마에 올랐다. 세지들의 집에 머무른 시간은 20분밖에 되지 않았는데, 도진은 200분 정도 머무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의 술법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는 점에 속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이리가 옆에 없었다면 ‘더 열심히 해야지!’로 끝났겠으나 이리가 그 쪽팔린 짓거리들을 다 목격했으니… 여린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도진이었다.

그러나 이리가 조수석에 탑승하자 화가 단번에 가라앉았다. 도진의 눈에 기쁨과 즐거움의 파도가 일었다.

“스승님, 안전벨트 해 드릴게요.”

“고마워.”

도진이 기다렸다는 듯 수작질하는 동안 끼웅이가 주머니를 기어나와 하얀 잡귀와 용마에게 서로를 소개해 줬다.

끼웅, 끼웅.

[(⓿_⓿)]

삐이…. 삐웅.

[~(=^‥^)ノ]

끼우웅.

도진이 출발하자고 핸들을 탁탁 두드렸다. 용마가 내비게이션에 입력해 놓은 데이트 코스 장소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이리가 하얀 잡귀의 정체를 설명했다.

“이 아이는 사흘 전에 세상에 태어난 신종 위아야.”

“신종…. 새로운 종이란 말씀이세요? 끼웅이랑 같은 사역마 출신 잡귀 암인이 아니고요?”

“갈래는 잡귀가 맞는데, 암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 색이 어둡지 않잖아. 명인(明人)이라고 이름 지어야겠구나.”

“이런 경우가 간혹 있나 봐요.”

“가끔 있었어. 이제 임금님께 바로 보고를 드리면 천지신명에게 새로운 종의 출현을 알릴 거야.”

“신기하네요. 모습이 안 보였던 이유는 뭐예요? 누군가 이 녀석이 새로운 종이라는 걸 알아채기 전에는 아무도 볼 수 없다. 이리 선인이 이름을 붙인 후에야 새로운 종이 된다- 뭐 이런 겁니까?”“재미있는 추론이지만 그런 건 아니고…. 원래 그런 특성을 지닌 위아이기 때문이야.”

이리가 하얀 잡귀의 머리 어느 부분을 손가락으로 꾹 누르자 그 부분이 투명해졌다.

[Σ੧(❛□❛✿)]

깜짝 놀라는 용마를 보고 끼웅이가 끼웅끼웅 웃었다.

“빛이나 전자파를 완전히 흡수하는 능력이 있어. 반사되는 빛이 없으니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 그동안은 겁먹어서 계속 빛을 흡수한 채로 돌아다니다가 나를 보고 경계를 풀어서 보이는 거야.”

“와…. 무슨 메타물질도 아니고.”

아니, 메타물질이 맞나? 메타물질로 이루어진 위아?

도진은 이리를 따라서 하얀 잡귀를 톡 건드렸다. 그러자 그 부위가 투명해졌다가 다시 돌아왔다.

오오, 거참 신기하네. 감탄하면서 계속 툭툭 건드리자 하얀 잡귀가 끼웅이의 뒤쪽으로 숨었다. 도진이 비웃었다.

“숨어도 세상에서 제일 겁 많은 녀석 뒤에 숨냐.”

무시하고 더 건드리려고 하는 그때였다.

끼웅!

끼웅이가 양팔을 번쩍 들고 도진의 손가락에 위협적인 자세를 취했다.

끼우웅…!

“어쭈? 스승님, 얘 좀 봐요. 지금 저한테 반항하는데요.”

“그러게. 친구 보호하네. 정말 귀엽다.”

“자식 키워 놔도 소용없다는 말이 딱 맞아요. 스승님, 저에겐 영원히 스승님뿐이에요. 스승님께도 저뿐이구요.”

“제자 키워 놔도 소용없다더니….”

“뭐라고요?”

“…….”

“스승님. 뭐라고 하셨어요. 제 눈을 보고 다시 말씀해 보세요. 소용없다뇨? 이렇게 든든하고 멋지고 근사하게 자란 제자를 보고 키워 놔도 소용없다니요? 네? 다시 말씀해 보시라고요!”

이리가 속으로 탄식했다. 명인이 문제가 아니었다. 잠깐의 농담으로 대차게 삐져 버린 도진을 풀어 주기 위해 밤까지 단풍 데이트를 즐겨야 하는 미래가 눈앞에 선해서였다.

* * *

그날 밤, 이리는 진현계로 올라가 왕에게 새로운 종의 탄생을 보고했다. 면류관을 벗은 왕은 기도식 때보다 더욱 수심이 깊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만사가 피곤하다는 표정으로 설명을 듣던 왕이 나직이 한마디 했다.

“그래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

이리는 순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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