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아아아아악.
살려 줘어어!
으아아아아아아아아.
내가 잘못했어 제발 구해 줘!
여기서 꺼내 줘어!
이군이가 양 귀를 틀어막았다.
“이, 이게 다 형벌 받는 죄인들의 비명이옵니까?”
“네. 끔찍하죠. 신령님도 죄 안 짓게 조심하세요. 여긴 신령이라고 봐주는 곳 아니니까. 김도진, 너도 조심해라. 여기서는 장사도 힘 못 쓴다. 투옥 중인 장사 죄인이 서른 명인가 있지.”
“장사가 서른 명이면 저승사자 죄인은 몇백 명 되겠네.”
“크흠.”
실제로 오백 명쯤 되기에 일호가 민망한 헛기침을 했다. 도진을 이기기는 정말 쉽지 않았다.
곧 열차가 멈춰 서고 창백한 관리 직원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일호 님과 홍연 님….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세상 근심은 모두 짊어진 듯 죽을 상이었고, 말투도 기운이 없었다. 눈빛도 깊은 피로에 젖어 있었다.
“잠깐 약재방에 갈 일이 있어서 왔다.”
“외부인은 들어갈 수가 없사온데….”
“내 일행이다. 믿지 못하겠는가.”
“아닙니다…. 문을 열어 드리겠습니다….”
관리 직원들이 터덜터덜 걸어가 문을 개방했다. 일행이 약재방 건물 안쪽으로 들어갔다.
으아아아!
살려 줘!
고통스러워!
죽여 줘!
건물 안에 들어왔는데도 끔찍한 비명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는 것처럼 컸다.
“일하는 분들도 힘들겠사옵니다…. 얼굴이 말이 아닙니다.”
“맞아요. 저승이 육계 중 가장 바쁜 곳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수천 년이 되도록 직원 복지를 이토록 형편없게 방임하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저는 왕이 되면 방음 장치를 지옥마다 더 설치하고, 직원들에게 심리 상담과 치료를 필수적으로 받게 할 거예요. 무인 지옥도 점차 늘릴 계획이고요.”
홍연은 인간계의 로봇과 인공 지능을 도입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그로 인해 일자리를 잃을 직원들도 분명히 생길 테니, 보완점을 찾기 위해 관련 논문과 책을 읽으며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아까 일호가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 운운한 건 바로 이런 연유인 것 같았다.
도진은 조금 놀랐다. 그는 저 죽상을 한 직원을 보고서 그냥 ‘힘들겠지’ 하고 지나쳤다. 왕이 되면 개선해야겠다, 그런 생각은 갖지 못했다.
이 차이는 뭘까?
홍연은 저승에 살기 때문에, 이런 광경을 많이 보아 왔기 때문에 달랐던 걸지도 모른다.
도진도 대여점에서 일하기 때문에, 대여점의 복지를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하긴 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도진은 대여점의 복지를 어떻게 개선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었다. 진상 고객과 관련된 규율을 몇 개 만들고, 이물 관련 의뢰는 받지 않겠다. 이 정도를 구체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구체적이라고 하려면 어떤 정책을 시행했을 때 벌어질 일까지 생각해 방안을 고안해 놓아야 한다.
인공지능 도입 후 일자리를 잃을 직원들을 대비하는 홍연처럼.
생각에 잠긴 도진에게 홍연이 말을 걸었다.
“김도진, 만약 네가 왕이 되더라도 지옥 직원들의 복지는 개선해 줬으면 좋겠어.”
“…그래.”
도진은 ‘너도, 만약 네가 왕이 되면 대여점 복지를 개선해 줘’라고 말해야 할까 잠깐 고민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왕이 될 테니까.
약재방에도 바깥 직원과 마찬가지로 우울한 눈빛을 한 혼령 직원들이 있었다.
“일호 님? 어쩐 일이십니까.”
“약재방에 뭐 하러 왔겠냐. 약재 받으러 왔지. 문 열어.”
“아, 지금 안에 이미 방문 중이신 분이-.”
“선객이 있어? 누구지?”
일호는 자신보다 높은 사람은 저승에 몇 없으므로 별 고민 없이 문을 열어젖혔다. 쓰고 떫은 약재 냄새가 확 코끝을 찔러서 도진이 눈살을 찡그렸다. 그러다가 안쪽의 선객과 눈이 마주쳤다. 무섭도록 냉정한 표정을 한 미형의 남자는 도진도 아는 이였다.
“강림도령!”
홍연이 기겁하며 외쳤다. 강림이 손에 들고 있던 삼베 주머니를 소매 안쪽으로 집어넣었다.
“너희가 여긴 무슨 일이냐. 또 무슨 사고를 치려고.”
“아, 그. 그게.”
홍연과 일호가 죄라도 지은 듯 쭈굴쭈굴해졌다. 염라대왕 앞에서는 대찬 두 사람이지만 직장 직속 상사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위축되는 모양이었다.
“김도진.”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신령인가. 왜 왔는지 밝히지 않을 거면 나가라.”
“아, 안녕하십니까. 강림도령님. 저는 신령 이군이라고 하옵니다. 저희가 여기 온 일은 다름이 아니라… 케르베로스의 뿔을 얻어야 해서 말이옵니다.”
“케르의 뿔을?”
강림도령이 하얀 미간이 찌푸려지는 걸 보고 도진이 얼른 입을 열었다.
“지리산 산신령이 얻어 오라고 했습니다.”
“…….”
예상대로 막 성을 내려던 강림도령이 부연 설명하라는 듯 눈짓했다.
도진은 이번에도 부연 설명을 이군이에게 맡겼다.
이군이는 지리산 신령의 과제와 늪이무기, 구미호와 있었던 일을 고했다.
“그런가…. 결국 진현계로 올라가시는가.”
이제 만나기 어려워지겠군…. 강림의 중얼거림에는 벌써부터 그리움이 담겨 있는 듯했다.
“케르의 뿔은 세 번째 줄 다섯 번째 상자에 있다. 알아서 가져가거라.”
“…수수께끼나 심부름 안 시키고요?”
“나는 그 요괴들과 달리 너희와 놀아 줄 시간이 없다.”
차갑게 일갈한 강림이 도포를 휘날리며 옆을 스쳐 지나갔다. 홍연과 일호가 그 뒤에 대고 안녕히 가십시오! 빠릿빠릿하게 인사했다. 강림이 떠난 후 일행은 강림이 말한 곳에서 케르베로스의 뿔 상자를 찾았다.
엄지만 한 옥색의 뿔이 가득 담긴 상자에서 이군이는 딱 한 개만 집어 들어 비단 주머니에 소중히 모셨다.
“마지막 재료는 수월하게 얻었군요. 저는 혹시라도 지옥 가마솥을 청소하라고 하면 어떡하나 걱정했사옵니다. 열기에 견디는 열의(熱衣) 조각보도 구해 왔는데 쓸 일이 없어서 다행이옵니다.”
“강림도령이 냉정하기는 해도 그렇게 미치지는 않았어요. 유능한 상관이죠.”
강림이 떠나자마자 긴장이 풀린 홍연이 웃으며 말하다가 문득 진지해졌다.
“열의라…. 음. 가마솥을 청소하는 드론에 열의를 덧씌우는 것도 괜찮겠네. 그러면 내구력도 높아질 거고. 열의의 무게만 견디도록 개조하면….”
“야, 너는 나와서까지 그 생각이냐. 네가 아니라 김도진이 왕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후견인이란 게 초 치는 말이나 하고. 김도진네 이리 선인님의 반의반이나 닮아 봐라.”
돌아가는 열차 안에서 홍연과 일호가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도진은 홍연의 열의(熱意)에 감동 받으려다가 말았다.
* * *
늪이무기의 비늘, 아지시시의 꼬리 털, 케르베로스의 뿔.
세 가지 재료를 모두 모은 이군이는 곧바로 지리산으로 향했다. 그 옆엔 도진도 함께였다. 저승에 들어갈 때는 아무 데서나 삼도천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서 들어갈 수 있지만, 나갈 때는 정해진 구역에서 대가를 지불해야만 나갈 수 있다. 직원에게 주소를 말하면 그 위치로 출구를 열어 주는 식이었다.
도진은 바로 대여점으로 가고 싶었지만, 이군이가 2인분의 티켓값을 지불했으므로 큰맘 먹고 양보했다. 지리산까지 온 김에 또 산신령을 안 보고 갈 수는 없는지라 함께 산에 올랐다.
지리산 산신령은 산 중턱의 나뭇가지 위에 앉아 중천에 뜬 태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산신령 대부분이 그렇듯 수염을 길게 기른 노인 모습이었다.
“그래…. 다 구해서 왔느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던진 물음에 도진은 인사할 타이밍을 놓쳤다. 이군이가 주머니를 가지고 총총총 다가가 산신령에게 건넸다.
“모두 구해 왔사옵니다.”
“수고했다. 이제 백운산 도깨비에게 가서 관자를 만들어 달라 하거라. 널 기다리고 있을 게다.”
“지금 말이옵니까?”
“꾸물거릴 필요가 있느냐? 당장 가거라.”
“아, 예!”
이군이가 도진에게 눈인사하고는 허둥지둥 산속으로 떠났다. 이미 50년 어치의 덕을 지불받았기 때문에 붙잡지는 않았다.
산신령이 나무 위에서 내려왔다. 체구는 이리보다도 더 작고 왜소했으나 눈빛은 깊고 영험했다.
“산신령님, 처음 뵙습니다. 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