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132화 (132/203)

도진도 이리와 떨어진 지 30분이 지나며 이리 부족 현상을 겪고 있는지라 얼른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 김에 궁금증 하나를 해결하고 갈 생각이었다.

“야. 이석진. 어때?”

“석진이 형? 석진이 형이 왜?”

“평소에 어떻냐고. 사람들이랑 잘 지내?”

치호가 눈을 끔뻑이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너도 그 소문 때문에 그래? 솔직히 형님이 감정 기복은 좀 있는데, 절대로 소문처럼 해리성 인격장애 정도는 절대 아니던데. 그냥 좀 역할에 몰입을 심하게 하는 편 같아.”

“해리성 인격장애…? 그런 소문도 퍼졌나…. 곤란했겠군.”

“알고 물어본 거 아니었어?”

“매니저나 주변인들은? 이석진 동생도 촬영할 때 동행하던데. 본래 그렇게 가족이 촬영장까지 따라오는 일이 흔한가? 그리고 그 어수룩한 더벅머리  매니저에 대한 평가는? 평소에 세 명이 같이 있을 때 이상한 느낌 같은 건 안 들었어?”

“…….”

질문 폭탄에 치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팔짱 낀 채 무언가 고심하더니 마치 비밀을 알아낸 탐정처럼 날카롭게 말했다.

“이건 혹시 남 험담을 하는지 안 하는지 보기 위한 몰래카메라…! 내가 속을 줄 알아? 석진이 형도, 매니저 형이랑 누나도 다 좋은 사람들이야. 저는 절대로 동료 뒷담을 하지 않습니다. 몰래카메라를 멈춰 주세요.”

“뭔 헛소리야….”

도진은 아무래도 치호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마침 저쪽에서 스태프가 곧 촬영이 시작된다고 알려 왔다.

도진은 관계자 외 출입 금지 구역에 들어온 김에 이석진의 연기나 조금 보고 갈까 했다. 연기는 배리모스가 아닌 이석진으로 하겠지?

“너 진짜로 촬영 스태프도 아니고 출연 배우도 아니면 얼른 나가. 스태프한테 말해서 쫓아내기 전에.”

“이석진 연기만 보고.”

“석진이 형 저녁까지 촬영 없는데? 지금쯤 차에서 대기하고 있을걸.”

“차 어디 있는데.”

“제1 주차장.”

도진은 그대로 돌아서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촬영장을 나갔다.

오늘 중 유일하게 도움이 되는 치호였다.

치호는 수상쩍은 눈빛으로 도진의 뒷모습을 보다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멤버들한테 산속에서 봤던 여우 키우는 남자를 여기서 봤다고 알려 주기 위해서였다.

그 여우 이름이 뭐더라.

아!

애들아 나 개똥이 키우는 사람 봤다;

메이슨

ㅎㄹ

승헌

와 그때 그 남자? 역시 제작진이랑 한통속이었나

요하

개똥이라니?

아 요하는 못봤구나

납량특집 촬영 때 본 은색 털의 예쁜 여우인데 이름이 개똥이임

메이슨

이름 잘어울려

승헌

맞아ㅋㅋ개똥이ㅋㅋ 구수한데 잘어울려

어째서인지 요하는 그 뒤로 말이 없었다. 치호는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스태프의 부름에 핸드폰을 집어넣고 달려갔다.

아무도 몰랐지만, 그때 여우 요괴 개똥이는 대여점에 클레임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 * *

이리와 도진은 제1 주차장으로 향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잔챙이들은 따라오지 못하게 했는데, 정작 주차장에도 잔챙이 몇 마리가 모여 있었다.

“처, 처, 천천히 먹어.”

뀨웅뀨웅.

“마, 많이 있으니까 처, 천천히.”

삐이! 삐이이.

주차장 구석에서 잔챙이들에게 도토리묵과 찹쌀떡을 바치고 있는 사람은 바로 퇴마사 한수였다.

“인간한테는 보이지 않게 하는 은신술이네요. 저번에는 모르지 않았어요?”

“배리모스가 알려 줬나.”

“하긴 배리모스도 한수를 잘 이용하려면 은신술은 가르쳐 놓는 게 편하겠죠.”

“이 차 안에서 이석진이랑 이아진이 자고 있네.”

이리가 구석의 커다란 검은색 밴을 가리켰다.

“그럼 배리모스도 여기에…?”

“아니. 배리모스는 없어. 혼 상태로 어디론가 간 모양이구나.”

도진과 이리는 쪼그려 앉아 있는 한수에게 향했다. 잔챙이들에게 정신이 팔린 한수는 가까이 다가갈 때까지 눈치채지 못했다. 막 요물 단계에 들어선 잔챙이 새앙토끼 한 마리가 한수의 느린 움직임이 답답한지 눈을 뾰족하게 뜨고 바짓단을 입에 물었다.

뀨웅 뀽!

“아, 아, 알았어. 미, 미안. 줄게.”

한수가 얼른 새앙토끼에게 찹쌀떡을 뜯어 줬다. 새앙토끼는 만족스럽게 돌아서다가 이리와 도진을 발견했다.

뀽뀽!

이리 선인이 뛰어오는 잔챙이를 반가이 맞이했다. 새앙토끼를 보고 있던 한수가 고개를 들었다.

“흐이익!”

바로 엉덩방아를 찧어 버리는 퇴마사를 보고 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가 현서윤이야, 뭐야. 다 큰 인간이. 쯧.”

끼웅!

끼웅이가 도진의 주머니에서 고개를 쏙 내밀었다. 한수에게 갈까 잠깐 고민했지만, 주위에 잔챙이들이 많아서 그냥 안전한 주머니에 있기로 했다.

“두, 두, 두 분이 여, 여긴 무슨 일로.”

“전해 줄 게 있어서 왔다.”

도진이 성큼성큼 걸어가 한수의 옆에 같이 쭈그려 앉았다. 한수는 어째서인지… 주춤주춤 일어나 그 앞에 무릎 꿇었다. 영락없이 양아치에게 협박당하는 모습이었다.

“얼마 전에 배리모스가 엄청난 음기를 집어삼킨 건 알지?”

“히익.”

“아오. 진짜 그놈의 함구령. 빨리 스승님한테 풀어 달라고 해. 뭔 대화를 할 수가 없잖아.”

“죄, 죄송, 죄송합….”

“도진아. 그만해.”

이러다가 한수가 울 것 같아서 이리가 다가갔다. 도진이 얼른 일어나더니 돌연 두 팔을 멋지게 휘둘렀다. 크게 원을 그렸다가 흐압, 하면서 모았다가 두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키자 그곳에 구름 의자가 나타났다.

“스승님, 여기 앉으세요.”

“고마워.”

도진은 한수를 향해 코를 치켜들었다.

“봤냐? 구름 소환술이야. 대단하지? 넌 이런 거 할 수 있냐?”

“저, 저, 저는… 부적으로….”

“할 수 있다고?”

한수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인상을 확 구기는 도진의 팔을 이리가 진정하라는 뜻에서 툭툭 건드렸다.

“배리모스가 만월 가문의 주술서를 전해 줬다면 거기에 적혀 있었을 거야.”

“은신술은 몰랐잖아요.”

“주술서에 은신 부적은 없었을지도 모르지. 그 만월 가문이잖아. 주술서만 수천 권이었을 거야.”

“만… 월?”

한수가 고개를 기울였다.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이 도진이 물었다.

“배리모스가 바로 만월 가문의 사역마였다. 몰랐어?”

“모, 몰랐…어요. 그, 그-.”

한수가 무언가를 얘기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도진이 당장에 멱살을 잡으려 했지만 이리가 말렸다.

한수가 얘기하려고 한 것은 처음 배리모스를 발견했던 산의 이름이었다. 보름산. 그들의 놀이터였던 곳…. 만월이라는 단어를 듣자 불현듯 떠올랐다. 즐거운 추억이 되었어야 할 고향은 이제 떠올리면 후회와 공포만 가득한 곳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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