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으로는 조금 멋이 없어도 도술은 도술이라 악신의 사지가 결박되었다. 도진은 얼른 다가가 남자의 이마 쪽에서 부채를 차르륵 펼쳤다. 수묵화가 그려진 흰 부채를 몇 번 팔락이자 남자의 몸 위에 쥐들이 솟아나 우글우글 돌아다녔다.
흰쥐는 없고 거의 회색이거나 검은색이었다. 어떤 쥐는 온몸이 썩어 들어 뼈만 보였고, 어떤 쥐는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었다. 합해서 쉰두 마리나 되는 숫자였다. 쥐들은 남자의 신체 밖으로 벗어나지는 못하고 몸 위에서 징그럽게 배회했다.
도진이 침대 옆 협탁 위에 있던 작은 거울을 남자의 가슴 위에 올렸다.
쥐들 대부분이 거울을 무시했다.
그저 바쁘게 방황하는 쥐들 사이에서 어떤 새카만 쥐가 거울 앞으로 다가왔다. 그 쥐는 마치 거울 속 자신에게 홀린 듯 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이 녀석이군!”
도진이 새카만 쥐를 맨손으로 잡아챘다.
-키이이익!
쥐가 시뻘건 이빨을 드러내며 발버둥 쳤다. 그러나 도진은 아랑곳하지 않게 손아귀에 힘을 줬다.
파직… 하는 짧은소리와 함께 악신의 몸이 으스러졌다. 지옥으로 직행했을 터였다.
도진이 다시 부채를 팔랑팔랑 부쳤다. 쥐들이 남자의 입, 코, 귀 등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남자의 가슴팍이 안정적으로 오르락내리락했다.
이것이 대여점 버전의 구마 의식이었다.
도진이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이리를 돌아봤다.
“스승님!”
“그래.”
‘제가 성공했어요! 그동안 그냥 악신 퇴마는 해 봤는데, 빙의자한테서 꺼내서 퇴마시키는 건 처음이에요. 저 처음인데도 이렇게 잘했어요. 저는 정말 천재인가 봐요. 너무 뛰어난 재능이에요. 다 스승님 덕분이에요. 스승님 사랑해요!’
이런 말을 예상하며 이리가 웃는데 대뜸 도진이 이리의 양어깨를 붙잡았다.
“뽀뽀해 주세요!”
“…뭐?”
“스승님 표정 완전 흐뭇하고 저한테 뽀뽀하고 싶어 하는 표정이었단 말이에요. 빨리요. 뽀뽀해 주세요. 얼른요. 참지 마세요. 어차피 우리는 정인이 될 사이니까요. 아니, 저 지금 심장 너무 뛰어서 제가 스승님한테 뽀뽀해 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싫으시면 피하세요.”
“도진아.”
“그래요. 이게 낫겠어요. 스승님은 그냥 가만히 있으세요. 그편이 스승님의 양심에 낫겠죠? 그냥 피하지만 마세요. 오늘로 제가 한 발짝 큰 전진을 했으니, 우리 사이에도 한 발짝 큰 진전이 있을 때가 되었습니다. 정말 오래 기다려 왔어요. 그럼 제가 스승님에게 직접….”
도진이 눈을 끔뻑였다.
끼우웅?
어느샌가 이리는 사라지고 양손에는 끼웅이만 끼웅거리고 있었다. 하마터면 끼웅이한테 입을 맞출 뻔했다.
정말 쉽지 않은 태고의 선인이었다.
“요즘 이런 경우가 많습니까?”
도진의 물음에 울고 있는 가족들을 보던 베드로 신부가 고개를 돌렸다.
“이런 경우라면….”
“악신이 들리는 경우라든가. 단기간에 음기가 많아지는 경우요.”
“으음. 글쎄요. 숫자만 비교하면 예년과 비슷합니다. 무속인들 쪽은 어떤지 모르겠으나 일단 저희는 그렇습니다.”
배리모스가 막대한 음기를 가져가 인간들 사이에 퍼뜨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그럼 그 음기로 대체 무엇을 할 작정인가.
‘내가 원하는 건 새로운 세상이 아니다. 잃어버렸던 과거의 세상을 되찾는 것이지….’
과거의 세상을 되찾는다. 대체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 도진은 꼭 완벽한 추리를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스승님의 뽀뽀 칭찬을 받아 내겠어….
도진이 열의를 불태우는 사이 구마자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이리가 다가왔다.
“베드로.”
“선생님. 오늘도 대단한 신통력이었습니다.”
“고마워.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몇 년 전 악신에게 영능력을 잃었다는 사제의 일에 대해 알고 있어?”
“예. 5년 전인가. 정확히는 구마 의식 중 악신에게 영능력을 빼앗겼다고 하더군요. 악신이 네가 믿는 신을 모욕하면 영안을 다시 뜨게 해 주겠다고 유혹했으나 사제는 영안을 잃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한데 희한한 건, 악신이 유혹할 때 마치 일시적이 아니라 영구적으로 영안을 열어 주겠다는 식으로 말했다는 겁니다.”
옆에서 사제의 제자가 물었다.
“신부님, 어차피 영안을 한번 잃고 나면 일시적인 개안 외에는 방법이 없잖아요.”
“나도 그렇게 알고 있어서 의문이었다. 악신 특유의 거짓말이었겠지. 선생님, 이 사안이 궁금하시다면 그 사제의 연락처를 알아봐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이리는 궁금했던 부분에 답을 들었다.
둘은 사제들과 인사를 나누고 용마에 올랐다.
차에 오르자마자 끼웅이가 내비게이션에 달라붙었다.
끼우웅! 끼웅.
[(´・ω・`)?]
끼웅웅. 끼우우우웅.
[◑﹏◐;;]
끼웅끼웅.
대여점으로 돌아가는 동안 끼웅이가 용마에게 방금 있었던 악신과의 무시무시한 일을 전했다. 선인의 말인 용마는 사실 전혀 무섭지 않을 테지만 끼웅이의 장단에 맞춰 줬다.
“단짝 친구가 따로 없네. 그냥 사귀어라, 사귀어.”
[o(*////▽////*)q]
“뭐야…?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야?”
도진이 기가 차듯 말하고는 뒷좌석의 이리를 돌아봤다.
“스승님, 직원들이 사내 연애를 하려고 하는데요. 이게 말이 됩니까? 아직 사장님도 연애를 못 했는데. 지들이 뭔데.”
“도진아, 내일까지 이아진 위치 알아 놔 줘. 내일 가 보자.”
“네! 주소 금방 나와요.”
도진이 자세를 바로 하고 신이 나서 핸들을 마구잡이로 돌렸다. 고삐를 마구잡이로 흔드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에 용마가 성질을 부렸지만, 도진은 내비게이션을 보고 있지 않았다.
“배리모스가 이아진 곁에 있을까요? 전 배리모스랑 마주쳐도 좋을 것 같은데. 우리가 그 악신 이름을 처음 들은 지 벌써 7개월째예요. 결전을 치를 때가 되었죠. 만약 배리모스랑 싸우게 되면 꼭 저한테 먼저 맡기세요. 저 너무 강해져서. 제 안의 강력한 힘을 분출할 곳이 필요하거든요…. 크큭.”
호들갑 떠는 도진에게 이리는 안 싸울 거야, 라고 조용히 덧붙였다.
그쪽에서 먼저 덤빈다면 모를까 대뜸 싸움을 걸 생각은 없다. 저번처럼 통영 도깨비라든지 나비의 영물들이라든지 위아를 괴롭혔다는 게 밝혀지면 모를까….
최대한 조용하게 궁금한 부분만 해결하고 올 생각이었다.
* * *
도진이 이해자를 통해 위치를 알아보니 이아진은 문경 오픈 세트장에 있었다. 주로 사극 촬영장으로 많이 쓰이는 곳인데, 이아진과 한수는 이석진의 매니저로서 함께 다니는 모양이었다. 하긴 악신이 빙의된 사람을 홀로 밖에 내보내기는 마음이 편치 않을 터였다.
이리와 도진은 오후에 문경 세트장에 도착했다. 토요일이라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주차장도 꽉 차 있어서 용마를 망아지로 변하게 해 산에 풀었다.
“<겨울밤> 속편 촬영 중이라네요. 세트장을 다 빌리진 않고 경복궁만 대여했다나 봐요. 우리 다른 데는 구경할 수 있어요.”
“구경할 시간이-.”
“있어요! 완전 충분합니다, 스승님. 문경은 사과랑 오미자가 유명하대요. 저 이미 오미자빵 먹을 생각하고 왔단 말이에요. ‘산뷸됴심’ 비석도 봐야 돼요. 조선 시대 때의 순 한글 비석이 몇 개 없는데 그중 하나가 여기 있대요. 어떻게 안 볼 수가 있어요? 완전 보고 싶어요.”
“그걸 그새 검색해 봤어? 이아진 위치를 20분 전에 알았잖아.”
“오면서 검색했어요. 스승님이랑 데이트 한 번이라도 하려면 항상 순발력이 넘쳐야 하거든요.”
제자의 순발력이 기특하고 귀여웠던 이리는 순순히 데이트를 받아들였다.
둘은 문경새재의 드넓은 세트장을 구경했다. 물론 은신술을 펼친 상태였다.
촬영 때문인지 장터거리가 재현되어 있었다. 비단, 표주박, 밥그릇 같은 소품들 사이에 귀걸이와 반지 같은 장신구도 많았다. 도진이 ‘귀걸이 하나 주시오. 이것과 물물교환합시다.’ 하며 끼웅이를 건네는 척했다. 약재가 주렁주렁 매달린 한약방을 지나면서는 ‘김끼웅 달여 먹을까’ 했고, 철퇴나 곤봉 같은 수상한 무기가 널려진 대장간을 지나면서는 ‘김끼웅한테 사용해 볼까’ 했다.
기와집 세트장으로 건너가면서 졸졸졸 물이 흐르는 개울과 돌다리가 나왔다.
“개울 물이 생각보다 맑은데요? 끼웅이 좀 빨아야겠어요.”
끼우웅!
“도진아. 끼웅이 그만 괴롭혀.”
“제가 언제 괴롭혔다고요. 김끼웅, 너 마지막으로 언제 씻었냐? 안 그래도 구리구리한 냄새나는데 잘 됐다.”
“도진이가 끼웅이를 너무 좋아하네. 애 피곤하겠어.”
끼우우웅….
끼웅이가 말해 뭐하냐는 식으로 이리의 손 위에서 어깨를 들썩였다. 도진은 자기가 끼웅이랑 놀아 주는 거라고 우겼지만, 역시 다음 기와집이 나오자마자 ‘끼웅이는 이리 오너라.’하고 또 끼웅이를 건드렸다.
“여기 <겨울밤>에서 은수네 집 아니야?”
“맞아. 여기 표지판 있어. 나 사진 찍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