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116화 (116/203)

116

이리와 도진은 울다 지친 금서를 거울못에 다시 데려다 놓았다. 금서는 작별 인사를 건넨 뒤 거울못의 은신처로 들어갔다.

도진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저 통통한 뒷모습 좀 봐요. 엄청 쓸쓸해 보이네요. 다음 생의 행복한 삶이 확정되었는데. 좀 기뻐하지.”

“친구의 희생이 있었는데 어떻게 기뻐하겠어.”

“희생이 아니에요. 지네는 손해 본 게 없잖아요. 덕이야 다시 쌓으면 되는 거고. 저는 반대 상황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생각밖에 안 드네요.”

하긴 도진의 말대로 와가 금서의 덕을 빼앗은 게 아니라 다행이었다.

이리는 예전의 나쁜 기억 때문에 섣불리 안 좋은 생각을 가져 버린 자신을 반성했다.

“스승님도 괜히 슬픈 생각 하지 마시고 아름다운 풍경 좀 구경하세요. 슬플 필요가 없다니까요? 왜냐하면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는 아름다운 이별로 끝이 났으니까!”

연못가를 반드시 한 바퀴 돌고 가고야 말겠다는 도진의 강력한 주장에 이리는 연못가를 걸었다.

목백일홍 꽃은 다 진 후였지만 그래도 제법 운치 있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이리는 그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지금 내가 좀 냉정한가?’

아무리 아름다운 이별로 끝이 났다고 하더라도 이제 곧 금서는 죽는데… 이렇게 평화로운 마음이 들어도 되는 걸까?

요 근래 감정 관련한 얘기를 하도 들은 이리는 자신이 냉정하거나 무정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를 위해 100년에 족하는 덕을 준 지네는 정말 대단한 아이였다.

물론 이리도 나비나 보부상을 위해서라면 100년, 아니 1,000년의 덕이라도 줄 수 있었다. 그 정도는 이리에게 오색 바다를 한 숟가락 뜨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래서 지네와 잉어의 우정이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이리는 이만큼 덕이 많지 않았을 때를 기억했다. 아주 오래전 태고의 선인들이 살아 있었을 시절.

그때는 친구들도 저도 다 덕이 적었다. 물론 지금에 비하면 적다는 것이지 당시 존재하는 모든 것들보다 많았지만.

만약 그때 친구가 자신을 위해 덕을 달라고 하면 나는 줄 수 있었을까? 가만 생각해 보면 그 시절 이리는 친구들에게 무언가를 준 적이 없었다. 오히려 받기만 했던 것 같다.

‘이리. 이게 너한테 필요할 거야.’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던 팔찌. 이리는 이 실팔찌를 친구가 줬다는 것도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팔찌를 준 녀석이 자운이었나, 섶되였나. 아니면….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나는 매정한가? 나는 무정한 사람인가? 친구들의 이름을 잊다니. 나는…. 내 감정에는 정말로 문제가 있는 건가? 죽음을 앞둔 잉어가 연못에 있는데 평화롭게 산책을 해도 되는 걸까?

“진짜 평화롭네요. 매일매일이 이렇게 평화로웠으면 좋겠다. 달그림자 좀 보세요. 아름다워요.”

끼웅. 끼우웅.

제자와 어린 잡귀가 동시에 연못의 야경을 찬양하며 이리의 상념을 깨웠다. 마치 이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타이밍이었다.

문득 허리에 무언가 살포시 얹히는 감촉이 들어 내려다보니 엉큼한 제자가 허리에 팔을 감을까 말까 하고 있었다.

이리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도진의 시종일관한 엉큼함으로 마음에 위로를 받을 줄은 몰랐는데.

“그렇구나. 아름답고 평화롭네.”

“연못이 조금만 더 깊었으면 뱃놀이하자고 했을 텐데요.”

“배는 어디서 구하고?”

“만들면 되죠!”

도진이 손을 허공에 마구마구 휘저었다. 그러자 연못에 투명한 나룻배 한 척이 나타났다.

“어때요? 저 이제 도술을 제법 잘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지막지하게 잘한다구요.”

“금방 가라앉을 것 같은데.”

“스승님 열 명이 타도 안 가라앉아요. 아. 진짜 물놀이하고 싶다. 스승님, 발만 잠깐 담그면 안 돼요?”

“물에 들어가지 말라고 적혀 있는 거 안 보여?”

“그럼 손만 잠깐 담글게요.”

도진이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끼우웅!

끼웅이가 기겁하면서 도진의 주머니에서 빠져나왔다. 이리가 손을 내밀자 얼른 이리에게 이동해서 어깨까지 팔을 타고 올라왔다. 이리는 끼웅이를 조심히 쥐어서 미리 주머니 안으로 옮겨 넣었다. 도진이 분명 물장난을 치리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도진이 연못으로 팔을 뻗었다. 손을 이리저리 휘젓자 고요한 수면에 파문이 일었다. 작게 흔들었을 뿐인데도 연못 끝까지 흔들리는 수면을 이리가 가만히 바라봤다.

‘장사가 던지는 돌은 한낱 돌멩이와는 다를 것입니다. 언젠가 선인님의 호수에 큰 파문이 일 날이 기대가 되는군요.’

‘그동안 누가 건드려도 파문조차 일지 않던 호수가 드디어 흔들리는구나 싶어서 말이야.’

내가 정말 이 녀석과 연인이 된다면….

도진의 손짓 한 번에 가슴이 술렁거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스승님.”

“…응?”

도진의 부름에 한 박자 대답하자 도진이 고개를 돌리고는 씨익 웃었다. 개구쟁이 소년처럼 장난기 넘치는 웃음에 이리도 덩달아 미소 지으려는 그때, 도진이 이얍! 하고는 손으로 찰싹 수면을 내리쳤다. 물방울이 이리에게 튀었다. 예상한 바였으므로 이리는 웃기만 하고 막지는 않았다.

끼웅!

이래서 끼웅이를 안전한 주머니에 옮겨 넣었던 것인데. 끼웅이는 괜히 고개를 내밀고 있다가 물에 젖어 버렸다.

이리는 물방울이 튄 옷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여전히 애 같구나. 도진아.”

“애라뇨! 저 같은 어른이 어디 있다고.”

도진이 얼른 손을 탈탈 털고 일어났다.

“저는 어른이에요. 스승님보다 키도 이만큼 크고, 손도 이만큼 크고. 양심상 애라고 하면 안 되죠. 스승님, 안아 봐도 돼요? 오늘따라 왜 이렇게 처연해 보이죠?”

“이제 돌아가자. 밤이 늦었어.”

“네. 그런데 정말 안아 보면 안…. 아니, 끼웅이 이놈은 언제 건너갔어요?”

도진이 축축한 끼웅이를 잡아 들어 제 주머니에 넣었다. 끼웅이가 바동바동거리며 이리에게 살려 달라는 듯 양팔을 뻗었지만 이리는 그저 가만히 미소 짓기만 했다.

다시 마음의 평온을 찾은 선인이 앞서 걷자 도진이 얼른 따라왔다. 이리는 축축한 소매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도진아. 10월 한로에….”

“네에.”

“…나비의 연회에 가야겠어.”

“나비 선인님의 연회요? 좋죠. 그때까지 입장료 꼭 모을게요. 스케줄 표에도 표시해 놔야지. 제 첫 연회 참석이네요. 나비 선인님한테 완전 영광이겠다.”

당연한 듯 같이 가는 것으로 확정 짓는 제자가 아주 귀여웠다.

“거기 가면 기본적으로 천 년 이상 산 선인들뿐이니 언제나 몸가짐에 주의하렴. 네가 워낙 아이 같아서 많이들 놀릴 텐데 발끈하면 안 돼.”

“진짜 웃기는 사람들이네요. 이렇게 큰 애가 어디 있다고. 스승님도 마찬가지예요. 저 여기서 당장 옷 벗어요? 상의 탈의해요? 이렇게 근육질 아기 보셨어요? 네?”

덩치는 커다란 게 옆에 딱 붙어서 저는 애가 아니라고 찡얼찡얼대니 이리는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하… 이리 선인의 즐거움을 담은 작은 웃음소리가 고요한 밤에 퍼져 나갔다. 까만 실팔찌가 파르르 떨렸다. 이리조차도 느끼지 못한 아주 미약한 진동이었다.

20. 알바생

[글쓴이: 익명]

[제 목: 올해 초부터 이상한 구인글 올리고 있는 곳.jpg]

[내 용:

친구들이랑 알바자리 찾다가 발견했는데

찐소름주의

(사진-

이리만물대여점

경력성별나이무관1명

서류정리/연봉4000/9-6

연락처☞ )

올해 2월부터 알바 사이트에 올라오고 있는 글이야

스샷에 내가 뭘 한 게 아니라 연락처가 처음부터 비워져잇음

온라인 지원은 불가능ㅋㅋㅋㅋㅋㅋ

되게 여러 번 올렸던데 뭐하는 곳이냐 여기 ]

전체댓글수 16| 욕설이나 비방 댓글은 자제해주세요.

(익명) ?? 이게 뭐가 소름 ㅋㅋ

(익명) 만물대여점? 약간 골동품상점 같은 건가

(익명) 만화대여점인듯

(익명) └대여점 다 없어진 거 아니었나

(익명) 난 뭔가 게임 바이럴일 것 같다는 생각 든다ㅋㅋㅋㅋ

(익명) 나도 바이럴에 한표 요즘엔 다 빌드업 꾸준히 하더라고ㅋㅋ

(익명) 미궁게임처럼 소스코드 따고 추리해서 연락처 알아내면 뭐가 나오는 게 아닐까?

(익명) └오 호랭이랑 토깽이한테 공략해달라고 하자 ㅋㅋㅋ

(익명) └호랭이랑 토깽이가 누구야?

(익명) └게임 스트리머들 ㅈㄴ유명한데 왜 모름

(익명) 연봉 높다.. 뭐하는 곳일까

(익명) 사채 쪽..?ㅋ

(익명) 여기 다단계회사야 나 아는 사람이 다니다가 겨우 빠져나왔어

(익명) 그런데 아님? 조폭이랑 연루된 흥신소 같은

(익명) 여기 사이비종교단체야 나 아는 사람이 다니다가 겨우 빠져나왔어

(익명) 사이트 관리자한테 물어보자 뭐하는 덴지 궁금하다ㅋㅋㅋ

[글쓴이: 익명]

[제 목: 그 연락처 비워두고 글 올리는 업체 알바 사이트에서도 연락처 모른대ㅋㅋㅋㅋ]

[내 용:

(사진)

이 스샷 참고

아니 뭔가 골동품점이면 나이든 분이라 연락처 적는거 까먹고 복붙만 하고 계시는지도 모르니까 걱정되는 순수한 마음에!!!! 알바사이트에 전화했거든 ㅋㅋㅋ?

근데 가입정보에 연락처가 안 적혀 있대

이게 말이 안 되는게 가입할 때 사업자등록증도 적고 본인인증도 해야만 구인글을 올릴수있는 곳이란 말이야

분명히 핸드폰으로 본인인증까지 마쳤다는 건데 어떻게 연락처가 안 적혀있을수 있냐구 말이 안된다고 하니까 상담사도 자기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함

뭔가 더 물어봐봤자 상담사만 곤란해할것 같아서 끊었다

이리만물대여점 대체 뭐하는 곳이냐

이 정도면 소름 맞지?]

전체댓글수 13| 욕설이나 비방 댓글은 자제해주세요.

(익명) 사이비라니까.. 우리 매형의 처남이 거기 있다가 겨우 탈출했어 조폭이랑도 연관된 무서운 곳임 함부로 파헤쳐선 안돼

(익명) └매형의 처남 ㅇㅈㄹ

(익명) 알바사이트의 바이럴글이네 ㅋㅋㅋ

(익명) 바이럴 ㅇㅇ

(익명) 오잉.. 뭐지 오류인가??

(익명) 그것이 신기하다 ㄱㄱ

(익명) …? 연락처 제대로 적혀 있는데 무슨 소리야?

(익명) └???????

(익명) 윗댓인데,, 연락처 손가락 옆에 핸드폰 번호 잘 적혀 있는데?

(익명) └ ㅁㅊ.. 소금소금

(익명) └ ㅅㅂ 갑자기 오컬트글 만드네

(익명) └ 아 왜저래 진짜ㅡㅡ; 너 뒤에 귀신 있다

(ㅇㄱ) └ 번호가 보인다고??? 번호가 적혀있단 소리여? 알려줘 공유해줘봐ㅋㅋㅋ 궁금하다

(익명)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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