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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103화 (103/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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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웅이가 한 말은 오늘 하룻밤만 여기서 보낼 것이고, 나는 푹신하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하니 이 집에서 가장 푹신한 베개를 가져다 달라, 였다.

그런데 늦은 밤 취침을 앞두고 한수가 내민 것은 손수건 한 장이었다. 그것도 무명베로 만든 얇은 가제 수건!

끼웅이는 이런 손수건으로는 낮잠 침대로밖에 쓴 적 없다.

충격받은 암인이 다시 눈물을 쏟았다. 이석진은 “저 눈물이 어디서 나오는 걸까. 해부해 보고 싶다….”라고 말해 2차로 울렸다. 한수만 땀을 뻘뻘 흘리며 쩔쩔매는 가운데 아진이 푹신한 솜 베개를 가지고 와서 문제를 해결했다.

끼웅이는 한수의 베개 옆에 제 베개를 영차영차 끌어다가 놓고 잘 준비를 했다. 한수가 웃으며 끼웅이를 구경하는 그때 이석진이 들어왔다.

“한수 형, 부적 내가 떼어 줄게.”

“아, 으, 응.”

한수가 현재 착용한 의수는 인간이 만든 게 아니라 배리모스가 알려 준 주술로 만든 가짜 팔이었다. 그래서 어깨 부근에 부적이 잔뜩 붙어져 있었다. 한수가 직접 뗄 수도 있지만 이석진은 꼭 자신이 떼어 주고 싶어 했다.

한수와 이석진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한수가 상의를 벗자 볼품없이 마른 몸이 나왔다. 이석진은 미간을 좁힌 채 부적을 조심스레 하나하나 떼어 냈다.

“의수 주문 넣은 거 다음 주에 온다고 했어. 그럼 더 이상 부적은 사용하지 않아도 돼.”

“으, 으응.”

“…미안해, 형.”

“뭐, 뭐가?”

“나 때문에…. 나한테 팔을 주는 바람에.”

“아, 아니야! 나, 나쁜 건 악… 흐읍.”

악신이라고 말하려다가 괜히 입에 담고 싶지 않아서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콜록, 콜록. 이석진이 기침을 내뱉었다. 늘 약을 먹고 있지만 밤이 되면 어김없이 나오는 기침이었다.

“어, 얼른 가서 쉬, 쉬어.”

“알아서 쉴 테니까 가만히 있어, 형.”

이석진은 모든 부적을 떼어 내고, 그 위를 따뜻하게 적신 손수건으로 닦아 낸 후 잠옷을 입혔다.

“빨리 그 사람들을 찾아야 해.”

“그, 그 사람들?”

“‘퇴마 영상’의 그 사람들. 이리 선인과 제자라는 사람 말이야.”

“…….”

한수가 눈동자만 굴려서 암인을 내려다봤다. 암인은 부적을 톡, 톡 건드리고 있었다.

“나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사람이 팔을 가져갈 때 배리… 악신이 전혀 방어하지도 못했다면서. 만인사도 겁을 잔뜩 먹고 바로 도망쳤고. 그들이라면 분명 우리를 구해 줄 수 있을 거야. 형, 내가 반드시 그 사람들을 찾아낼게.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참아.”

“…….”

“여차하면 내가 방송에서 이리 선인과 제자를 찾는다고 말해 버릴 테니까….”

끼웅?

끼웅이가 거듭해서 들려온 ‘이리 선인’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고개를 번쩍 들고 허둥지둥 다가와 이석진의 허벅지에 손을 척, 올렸다.

끼웅, 끼웅?

그러나 안타깝게도, 아니, 한수에겐 다행히도… 이석진은 주술의 효과가 다해 끼웅이를 보지 못하는 상태였다.

“저, 절대 그러지 마. 계, 계략을 꾸미는 걸, 알면, 그, 그것이 널 가만두지 아, 않을 거야.”

“상관없어. 그렇게 해서 이리 선인을 만날 수만 있다면….”

“서… 석진아.”

“응.”

“그, 그 서, 선인이란 사람이 저, 정말로 이, 이길 수 있, 을까?”

이석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진이는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던데…. 형 생각엔… 아니야?”

한수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석진은 안타까운 듯 한수를 바라봤다.

“만약 그것이… 내가 아니라 형한테 빙의했다면 형은 주저하지 않고 이리 선인에게 도움을 청했겠지. 아니, 그자가 아니더라도. 사기꾼 같아 보여도 퇴마사라는 퇴마사한테는 모두 연락했을 거야. 형은 겁이 많지만, 그만큼 용기도 많은 사람이니까.”

“…….”

“하지만 형이 아니라 나한테 빙의하는 바람에…. 내가 다칠까 봐 형은 시도조차 못하고 있는 거야. 맞지?”

오랜 시간 함께해 온 형제인만큼 이석진은 한수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고 있었다.

한수는 가만히 눈꺼풀을 내렸다. 끼웅이가 계속 끼웅끼웅, 하면서 이석진의 옷자락을 흔드는 모습이 꼭 ‘내가 이리 선인을 알아. 소개해 줄게. 따라와’ 하는 것 같았다. 석진이 영감이 없어서,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아진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미안, 형. 내가 자기 전에 너무 안 좋은 소리를 했네.”

“아, 아니야. 내, 내가 미, 미안해.”

“우리 이런 얘기만 하면 항상 서로 미안하다고 하다가 아진이가 혼낸 후에야 끝나는데. 갑자기 문 열고 쳐들어오는 거 아냐?”

“그, 그러게.”

한수가 어설프게 입꼬리를 올렸다.

마른세수를 연거푸 하던 이석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얼른 자.”

“으, 응. 너, 너도 잘, 자.”

“응. 형도.”

이석진이 방을 나갔다. 끼웅이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자 한수가 조그맣게 속삭였다.

“서, 석진이랑 아, 아진이한테는 그, 그분에 대해 마, 말하지, 마.”

끼우웅?

“아, 안 돼. 희, 희망은 벼, 병 같은 거야. 부, 부질없는 희망을 품는 건, 벼, 병을 앓는 거랑 똑같아. ”

끼우웅…….

끼웅이는 한수가 하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한수가 필사적으로 부탁하니 둘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한수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부, 불 끌게. 잘, 자.”

끼웅.

끼웅이가 베개에 누웠다. 한수가 스위치를 내리고 방 안은 캄캄해졌다.

끼웅이는 오늘 하루가 무척 고단하여 잠이 잘 오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크나큰 오산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드르렁 쿠울…….

끼우웅!

암인은 귀… 가 있을 법한 곳을 틀어막으며 괴로워했다.

한수는 굉장히 코골이가 심한 인간이었다. 살면서 코골이라는 걸 처음 들은 끼웅이는 처음엔 잡귀 잡아먹는 위아가 그르렁대는 줄 알았다. 저 정도면 일부러 잠 못 들게 하려는 속셈 아닐까? 시끄럽게 해서 쫓아내려고?

끼웅이는 베개 위를 이리저리 구르다가 도저히 잠들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났다. 한수의 얼굴에 올라타 입술을 찰싹 찰싹 때렸지만 한수는 으음, 뒤척이기만 할 뿐이었다. 끼웅이는 힘없이 제 베개에 몸을 묻었다.

드르렁, 쿠울.

끼웅…….

이리 선인이 보고 싶었다.

이리 선인은 항상 소리 없이 조용히 자는데…. 이리 선인은 자기 전에 충분히 쓰담쓰담도 해 주고, 꿈에서 심심하지 않도록 인형도 베개에 같이 올려놔 준다. 그런데 이 인간은 쓰담쓰담도 안 해 주고, 인형도 주지 않았다. 오히려 시끄러운 코골이로 잠들지 못하게 한다.

이리 선인은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아직 11시쯤으로, 여기 인간들은 다 잠들었지만 대여점의 두 사람은 잘 시간은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을 찾아다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늦은 밤에 밖에 돌아다니면 위험한데. 그렇게 위험한 바퀴들이 빵빵 큰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곳인데.

‘끼웅아, 어디 있어? 네가 좋아하는 약과를 준비해 놨어. 같이 먹어야지.’

‘김끼웅! 얼른 나와. 그동안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네가 스승님이랑 놀 때 방해하지 않을게!’

그렇게 외치면서 이 늦은 밤에 무서운 길거리를 헤매고 있으면 어떡하지? 나를 애타게 찾고 있으면?

끼웅….

새까맣고 동그란 얼굴에서 눈물이 솟아났다. 적막한 가운데에 한수의 코골이 소리만 가득했는데, 그 코골이에 더 서러워졌다.

난 조용한 곳이 좋아. 언제나 상냥하고 따뜻한 이리 선인의 곁이 좋아. 김도진도 날 놀리기는 하지만 강하고 좋아. 날 지켜 줄 수 있어. 김도진이 옆에 있으면 안심이 돼.

두 사람이 보고 싶어.

그리움을 참지 못한 끼웅이가 일어났다. 하지만 지금 바로 대여점에 찾아가기에는 밤이 너무 무서웠다. 일단은 한수의 코골이 소리만 피할 생각이었다.

문틈을 비집고 나와 거실에 섰는데, 거실 한복판에 이석진이 서 있었다.

끼웅!

깜짝 놀란 끼웅이가 소리를 내자 이석진이 돌아봤다. 홍채에 푸른빛이 스며 있었고, 눈빛이 날카로웠다. 칼날 같은 한기가 감돌았다.

“넌 뭐야?”

서늘한 음성을 듣는 순간 끼웅이는 이 사람이 이석진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잡귀?”

이석진의 탈을 쓴 그것이 성큼성큼 다가와 끼웅이를 움켜쥐었다.

너무나 시린 한기와 압도적인 위압감에 끼웅이는 발버둥 치지도 못했다. 평소 겁먹었을 때는 눈물을 퐁퐁 흘리며 부들부들 떨고는 했지만 지금, 정말로 목숨의 위기를 맞닥뜨린 상황에서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얼음처럼 얼어붙은 어린 잡귀를 배리모스가 흔들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이딴 잡귀가 붙은 거야?”

신경질적으로 말한 배리모스가 끼웅이를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대로 쥐어 터뜨릴 생각이었다.

벌컥, 하고 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서, 석진아?”

한수가 눈을 끔벅이다가 시리도록 푸른 눈을 보고 상황을 판단했는지 뒤로 주춤 물러났다.

“너, 너, 이, 일어났….”

“그래. 일어났다, 멍청한 새끼야. 이건 뭐야? 왜 이딴 잡귀가 내 집에 있어?”

“아, 안 돼. 주, 죽이지 마!”

한수가 다급히 달려왔다. 한쪽밖에 없는 팔을 휘적거리며 끼웅이를 돌려 놓으라고 덤벼드는 비쩍 마른 남자를 배리모스가 한심하게 바라봤다.

“정말 죽이지 않길 바라면 주술을 사용해서 빼앗아야지. 머리가 안 돌아가? 아니면 내가 알려 준 거 그새 다 까먹었어?”

“주, 죽이면 안 돼. 오, 오늘 우, 우연히 마주쳐서, 데, 데리고 왔어. 아, 안 그래도, 내, 보내려고 했어.”

“주술로 빼앗아 봐. 그러면 살려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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