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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귀신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귀신이 아이들을 피하고 꺼렸다. 그 이유가 한수의 퇴마사 핏줄에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형, 형! 아진이가 만난 귀신이 그러는데 산 안쪽에는 더 신기한 게 많대. 우리 오늘은 깊숙이 들어가 보자.”
“아, 안 돼. 위, 위험해. 오, 오늘은 비, 비도, 온다고, 했어.”
“아진이도 겁을 안 내는데 형은 왜 이렇게 겁이 많아? 내가 지켜 줄 테니까 무서워하지 마.”
“하, 하지만.”
“형, 내년에는 중학생 되잖아. 그럼 우리랑 보름산에서 놀 수 있는 시간도 적어질 텐데. 그전에 보름산 정복하자. 응?”
초등학교에서의 마지막 여름 방학, 한수는 동생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했다. 가장 어린 아진이라도 보육원에 두려고 했으나 왜 자기만 따돌리냐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워서 하는 수 없이 같이 데려가야만 했다.
아침부터 하늘이 흐린 날이었기에 동생들에게 미리 우비를 입히고 장화를 신겼다. 동생들은 한수의 마음도 모르고 핑그르르 돌며 천진난만하게 장난을 쳤다.
“오늘도 산에 올라가려고?”
“네, 조금만 놀다 올게요.”
“비 오면 추울 테니까 얼른 내려와야 한다.”
“네.”
한낮인 데다가 워낙 제집처럼 산을 누볐던 아이들이라 선생님들은 딱히 막지 않았다.
빠르게 산 중턱까지 다다른 아이들은, 마을 어른들이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설치해 놓은 철조망을 가뿐히 넘어서 더 깊은 안쪽으로 향했다.
“우와. 진짜 귀신들이 더 많아! 못 보던 애들이 많이 있어.”
“아, 아진아. 내, 내 곁에서, 떨어지지, 마.”
“응. 오빠 옆에 꼭 붙어 있어야겠다.”
아진은 아직 8살에 불과했지만 한수는 13살이었고, 어떤 귀신이 무해한지, 어떤 귀신이 해를 끼치려는지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철조망 너머에는 음산한 기운을 내뿜는 귀신들이 많았다. 딱 보기에도 흉측하게 생긴 귀신들은 대놓고 아진을 노렸다.
보육원에서도 가끔 아진의 몸으로 기어들어 가려는 귀신이 있어서 언제나 한수가 옆을 지켜야만 했다. 신기하게도 귀신들은 한수가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하면 마치 어른에게 얻어맞은 것처럼 타격을 입었다.
아진이 한수에게 달라붙자 서늘한 시선들도 점차 사라졌다.
“여기 있는 귀신들은 어떻게 생겼어?”
“그냥 좀 더 귀신처럼 생겼어.”
“좀 더 귀신처럼? 테레비에 나오는 하얀 소복 입은 귀신들 말이야?”
“응. 다른 애들은 귀엽고 인형 같은데 여기에는 귀신 같은 귀신들이 많아.”
“나도 보고 싶다.”
“집에 가서 스케치북에 그려 줄게, 오빠.”
“나, 나도 그, 그려 줄게. 다, 다 기억해서.”
석진이는 이 끔찍한 것들을 왜 보고 싶어 하는 걸까? 한수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석진의 환심을 사고 싶어서 늘 성심성의껏 귀신 그림을 그려 줬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어느 정도 채울 만큼 탐방을 진행했을 때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더니 금방 굵은 빗줄기가 되어서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 이제 도, 돌아가자.”
“그래, 오빠. 나 추워.”
“알았어. 근데 비 좀 피했다가 가자. 지금 내려가다가 미끄러질 수도 있어.”
차라리 그때 흙탕물에 조금 미끄러지더라도 바로 돌아갔으면 어땠을까.
아이들은 석진의 말에 따라 비 피할 곳을 찾았다.
“저기 엄청 커다란 나무가 있어!”
“상수리나무네? 몇백 살은 먹은 것 같아.”
아이들이 발견한 나무는 다른 나무들보다 훌쩍 더 큰 키에 기둥이 성인 다섯 명이 팔을 두를 정도로 커다랬다.
“이 정도면 보호수로 지정해도 되겠다.”
석진의 말대로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 나무였다. 희한하게 그들을 계속 따라왔던 귀신들이, 그들이 나무 아래로 들어가자 기겁을 하며 도망쳤다. 그래서 한수는 이 나무가 정말 영험하게 느껴졌다.
울창하게 뻗은 가지 아래에서 비가 멎기를 기다렸지만 빗줄기는 오히려 강해지기만 했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비에 한수는 차마 나가자고 할 수가 없었다.
속절없이 기다리기만 하던 중 석진이 말했다.
“이 나무, 뿌리가 썩은 것 같아.”
커다란 크기만큼 뿌리도 굵었는데, 땅에 나와 있는 부분을 보니 버섯이나 이끼 같은 게 피어 있었다. 아이들은 자연스레 뿌리를 따라 시선을 옮기다가 뿌리들이 무언가를 둘러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저게 뭐야?”
“가 보자!”
아진과 석진이 벌떡 일어나 말릴 틈도 없이 달려갔다. 한수도 얼른 따라가서 보니 항아리 하나가 땅속에 파묻혀져 있었다. 뚜껑과 항아리를 부적이 붙은 매듭으로 묶어 놓았는데, 부적의 문자는 알아볼 수 없었고 종이도 너무 낡아서 곧 부스러질 것 같았다.
“이게 뭐지? 보물단지 같은 건가.”
“열어 보자. 먹을 게 있을지도 몰라.”
“아, 안 돼. 여, 열지 마. 나, 남의 건데.”
“여긴 깊은 산이잖아. 누가 버린 게 분명해.”
석진이 매듭에 손을 댔다. 그러나 매듭은 너무 단단해서 풀어지지 않았다. 아진도 조막만한 손으로 풀기 위해 애를 썼지만 끄떡도 하지 않았다. 매듭이 뜻대로 안 되자 아이들이 불평하기 시작했다.
“형, 형도 얼른 열어 봐. 우리보다 힘세잖아.”
“맞아. 왜 보고만 있어? 얼른 열어 줘!”
한수는 아이돌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손을 가져갔다. 딱히 힘을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무언가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그냥 여는 척만 한 후 안 열린다고 셈이었다.
그런데….
한수가 손을 가져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부적이 부스러지고 매듭이 스르르 풀렸다. 한수는 등골이 섬칫해졌다.
불길한 예감에 그만두려고 했다. 그러나….
“우와, 신기해, 마법 같아.”
“어떻게 했어? 우리는 못하는데.”
동생들의 탄성이 들려왔다. 아진과 석진은 열 수 없는 것을, 동생들이 손을 댔을 때는 꼼짝도 하지 않았던 것들, 자신은 열 수 있었다.
남은 못하는데 나는 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열 수 있다.
그 생각이 들자 멈출 수가 없었다. 한수는 매듭을 전부 풀고 항아리 뚜껑에 손을 가져갔다.
카랑- 마치 도자기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뚜껑에 쩌저적 금이 갔다. 한수가 기겁하며 애들을 데리고 얼른 뒤로 물러났다.
쿠웅! 쿠웅! 심장 소리인 줄 알았던 커다란 소리는 땅 밑에서 나는 것이었다. 항아리를 감싸고 있던 상수리나무 뿌리가 낡은 금속처럼 부식되어 가고, 항아리 뚜껑의 금 사이로 무언가 검은 기운이 빠져나왔다.
검은 그림자의 끝이 뱀의 꼬리처럼 움직였다. 마치 두리번거리는 것 같았다. 말도 안 되지만, 꼭 살아있는 것처럼.
“오, 오빠. 저게 뭐야?”
“뭐가 보여? 나는 아무것도 안 보여.”
석진에게 보이지 않는다면 저 검은 것은 귀신이었다.
어린 한수는 본능적으로 저 귀신이 지금까지 본 귀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걸 느꼈다.
그때 한수와 검은 것의 눈이 마주쳤다.
사람이나 동물의 눈이 아닌 기괴한 형태의 노란 눈 하나가 저를 응시하고 있었다.
한기가 발끝부터 정수리까지 올라왔다.
“도, 도, 도망가!”
“형?”
“어, 얼른 도망가! 머, 멀리 가야 해!”
한수는 아이들의 손을 붙잡고 무작정 달렸다. 비탈진 길에 아진이 넘어졌다. 한수가 얼른 아진을 부축했다. 어린애들의 발걸음쯤은 가뿐히 따라잡은 검은 그림자는 한수, 아진을 그대로 지나치고는 조금 떨어져 있던 석진의 몸에 스며들었다.
그런 것도 모르고 서둘러 아진을 업고 돌아선 한수는, 우뚝 서 있는 이석진과 마주했다.
강한 빗줄기 속에서 이석진이 감고 있던 눈을 떴다. 그 눈은 흰자가 없이 새카만 색이었다. 검은 것이 이석진의 입을 빌려 말했다.
「퇴 마 사 · · · 」
기괴한 느낌이었다. 쇠를 긁는 듯 흘러나오는 음성은 마치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소리를 내뱉어 본 적 없는 사람이 간신히 성대의 힘을 쥐어짜서 내뱉은 것 같았다.
「참 으 로 오 래 기 다 렸 다 · · · 」
그리고…….
아주 깊은 그리움이 느껴졌다.
13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의 심장마저 철렁 내려앉을 정도의 아득한 그리움이.
* * *
끼웅!
한수는 손가락을 흔드는 미약한 힘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작고 까만 그림자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도 그림자네….’
배리모스는 그림자 특성을 지닌 악신이었다. 배리모스가 알려 준 주술에도 그림자를 이용하는 술법이 많았다.
‘사역마도 그림자였어….’
사역마를 만드는 건 정말 힘들었다. 사역마 하나를 만들겠다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많은 위아들을 괴롭혔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지만 배리모스가 사역마를 만들지 않으면 이석진의 몸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다니겠다는 끔찍한 협박을 하는 바람에 죽을 힘을 다해야 했다.
그렇게 만들어 낸 사역마는 배리모스의 표현에 따르면 ‘반푼이’였다. 아무리 뛰어난 퇴마사의 재능을 지닌 한수라도 이렇게 어린 나이에 제대로 된 사역마를 만드는 건 불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이 끼웅이와는 크기부터가 전혀 달랐는데도 같은 ‘그림자’라는 것 때문에 사역마가 떠올랐다.
‘이리 선인의 손에 죽은 거겠지….’
한수는 사역마에게 미안한 감정을 품고 있었다. 반푼이였지만 어쨌든 제가 만들어 낸 존재인데 고생만 하다가 죽게 한 것 같아서….
끼웅! 끼우웅. 끼웅.
끼웅이가 허리에 손을 얹고 무언가를 말했다.
“미, 미안. 뭐, 뭐라고 하는지 모, 모르겠어.”
끼우웅. 끼웅.
“미, 미안.”
끼웅이는 한숨을 포옥 내쉬고 다시 포도를 갉아 먹었다. 한수가 볼을 긁적이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