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촬영에 온 무당은 모두 네 명이었는데 한 명만 잡신이 달려 있었고, 셋은 사기꾼들이었다. 만약 여우 구슬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요사스러운 기운을 느낀 무당이 요하를 의심했겠지만, 지금 요하는 그냥 평범한 인간의 기운 그 자체였기 때문에 무당은 아무런 관심을 갖지 않았다.
게다가 납량 특집인 만큼 늦은 밤에 촬영하는 샤먼 콘텐츠팀과는 달리 무당들은 해 질 무렵 짧게 굿판을 열고 돌아간다고 하니, 요하로서는 이보다 더 다행일 수 없었다.
‘좋았어. 이대로 촬영만 끝나면 돼.’
무당들이 돌아가고 나 혼자 미션 할 때 역시 기절할까? 실신을 해야 납량 특집 3탄이 없겠지?
멤버들이 들으면 기겁할 생각을 하는 동안 메이크업 수정이 끝났다.
“요하야, 요즘 무슨 일 있어? 피부가 너무 얇아져서 실핏줄이 비칠 정도네.”
“그런가요? 사실 이 납량 특집 때문에 걱정하느라 잠을 통 못 잤더니…. 하하.”
요하는 메이크업팀에게 적당히 둘러대고는 멤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떠들고 있던 멤버들이 요하가 오자마자 조용해졌다. 그들은 요하를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처럼 쳐다봤다.
“괜찮냐? 너무 무리하지 마.”
“맞아요…. 오늘 같은 날은… 좀 우울하게 있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형.”
요하는 오늘 아침, 이들에게 헤어졌다고 말한 상태였다.
분명 내가 찼다고 했건만 아무도 안 믿는 눈치였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아 오해를 방치했다.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무당들과 샤먼은 납량 특집에 걸맞은 각종 공포 괴담을 나누었었다. 무당들은 폐가를 둘러보면서 ‘저기에서 어떤 아저씨가 목을 매고 죽었어.’, ‘소녀의 혼이 아직도 이곳에 묶여 있구나’ 같은 말들을 했고, 그러면 샤먼은 ‘너무 무서워요’, ‘얼른 영혼들이 평화를 찾으면 좋겠네요’ 같은 리액션을 했다.
저녁쯤 무당들은 굿을 하고 떠났다. 근방의 잔챙이 위아들이 굿을 하면서 생긴 음기들을 정화하기 위해 모여들었지만 아무도 요하의 정체를 눈치채지 못했다.
요하는 비록 몸은 지치고 힘들었지만 순조롭게 흘러가서 기분이 좋았다.
사건은 밤 11시, 본격적으로 미션 촬영을 할 때쯤 일어났다.
-사람들이다. 사람들이 많다아….
-양기가 너무 많아서 괴로워….
-아아 저것들 때문에 머리가 아파….
무당들은 굿 중에서도 귀신을 제압하는 굿이 아니라 귀신에게 먹이를 주며 달래는 굿판을 벌이고 떠났다. 음기를 잔뜩 만들어 냈다는 뜻이었다. 음기를 먹기 위해 모여드는 위아들 중에는 착하고 귀여운 잔챙이들만이 아니라 원혼들도 있었다.
-으으… 저 녀석들이다. 저 놈들에게서 양기가 뿜어져 나온다….
음기를 포식하러 왔다가 엄청난 양기에 주춤주춤 물러난 원혼들이 한곳을 가리켰다.
바로 샤먼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싫어……. 끔찍해…. 저것들을 전부 죽여야 해….
-으으, 머리 아파……. 괴롭다, 괴로워….
-저것들의 두개골을 파내 버리겠어….
요하는 음산한 저주를 퍼붓는 원혼들을 애써 못 본 척했다.
“밤 되니까 좀 으슬으슬하다.”
“체온이 낮아져서 드는 착각이야. 나는 귀신 같은 거 안 믿어.”
“안 믿는데 그룹명이 ‘샤먼’이어서 어떡하냐?”
“형들, 그거 알아요?”
“뭐?”
“귀신은 싸우는 소리에 이끌린대요.”
“…야, 더 싸워. 귀신 오라고 해. 하나도 안 무서워.”
귀신 이야기를 시작하자 양기가 점점 흐려졌다. 태양의 방사선을 막아 주는 자기장이 약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원혼들이 크크크 섬뜩하게 웃으며 가까이 다가왔다. 요하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피디님. 요하 벌써 갔는데요?”
치호의 말에 다들 와하하 웃었다. 요하도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작가가 그들에게 미션지를 줬는데, 그나마 다행으로 합동 미션이었다. 폐가 주변에 숨겨놓은 무지개색 카드 일곱 장을 찾아와야 했다. 몰입도를 위해 VJ는 따라다니지 않았고, 대신 카메라 수십 대를 곳곳에 설치했다. 드론 카메라도 날아다녔다.
멤버들이 폐가에 들어가자 원혼들이 크크크 웃으며 따라왔다.
“으악.”
요하가 넘어지는 척하면서 원혼 하나를 발길질했다. 원혼이 꾸에엑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왜 그래요, 요하 형?”
“아, 넘어져서.”
“설마 들어오기 싫어서 다친 척?”
“아니거든!”
원혼 하나를 해치운 영물은 그 뒤로도 놀라는 척 원혼에 주먹질을 하거나, 기겁한 척 어퍼컷을 날리거나, 우는 척 목을 졸랐다. 사실 원혼은 결코 약한 존재가 아니다. 갈래로 치면 엄연히 여우 요괴와 동급이지만, 영물인 ‘여우 요괴’는 여러모로 특별한 존재라 원혼들이 맥을 못 췄다.
요하가 멤버들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싸우는 동안 멤버들도 열심히 미션을 해서 석 장을 찾아냈다.
“폐가에서는 이게 전분데 설마 산속에도 숨겨 놨나?”
“와, 맞나 봐. 저기도 카메라 달려 있어.”
“저길 어떻게 들어가. 선생님들 너무 악랄해요!”
멤버들이 한마디씩 했지만, 요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설마… 저 음기가 바글바글한 곳으로 들어가라고?
저쪽은 산신령의 결계도 약한 것 같은데…?
시력을 돋우자 음산하게 웃으며 손을 까딱이는 원혼의 옆 나무에 미션 카드가 묶여 있었다. 요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요하야. 너 지금까지 너무 뒤에만 있었어. 여기서부터는 앞장을……. 야?”
승헌이 어두운 산속을 멍하니 바라보는 요하를 흔들었다. 요하가 어쩐지 짜게 식은 눈으로 바라보자 승헌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
“무지한 인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일을 저지르는구나 싶어서….”
“그게 뭔 소리야?”
“아무것도 아니야. 내가 앞장설게. 잘 따라와.”
요하가 저벅저벅 어두운 산속을 향해 걸었다. 우거진 나뭇가지들이 서로 부딪쳐 흔들리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원혼들의 찢어지는 웃음소리도 함께였다.
요하가 문득 멈춰 서서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원혼 하나를 노려봤다. 메이슨이 팔뚝을 쓸었다.
“요하 형, 지금 어딜 보는 거예요? 너무 무서워서 미쳤나 봐요.”
“난 요하가 무섭다. 왜 저렇게 침착하냐.”
“애들아, 지금 촬영 중인 거 알지? 빨리 미션 클리어하고 요하 귀신 들리기 전에 나가자.”
그들은 진심으로 무서워져서 최선을 다해 카드를 수색했다. 빠르게 세 장을 더 찾아내긴 했으나 마지막 장인 보라색은 색도 어두워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치호가 대체 얼마나 깊숙이 들어가라는 거냐며 아우성을 쳤다. 요하는 여우 요괴의 안력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보라색 카드를 찾아냈다.
-이거 찾아? 이거 찾아? 이거 찾아? 이거 찾아? 이거 찾아?
원혼 하나가 덤불 속에서 보라색 카드를 쥐고 유혹했다. 요하가 다가가려다가 멈칫했다.
저 원혼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어둡고 무거운 음기를 내뿜고 있었다.
악신과 원혼의 사이에 있는 존재로, 지금의 요하보다 훨씬 강한 녀석이었다. 다행히 산신령이 쳐놓은 결계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으나 섣불리 접근하지 않는 게 좋았다.
“어? 형. 저쪽 수풀에 걸려 있네요. 제가 가지고 올게요,”
다트가 곧장 섣불리 접근했다.
“아, 안돼. 잠깐!”
요하가 다트를 뒤따르고, 멤버 중 두 명이 한곳으로 향하자 나머지 셋도 자연스레 그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여기서부터는 내 영역이다… 이히히히히.
요하는 악신화되어 가는 원혼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돼. 우리 멤버들은 누구도 못 건드려!
* * *
“어? 형. 저쪽 수풀에 걸려 있네요. 제가 가지고 올게요,”
“아, 안돼. 잠깐!”
치호는 아까부터 뭔가 상태가 이상한 요하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가, 요하와 다트가 수풀로 들어가자 자신도 얼른 그 뒤를 따랐다.
“어?”
치호는 눈을 비볐다. 요하의 뒤에 뭔가 몽실몽실하고 하얀 게 보인 탓이었다.
“뭐지? 요하야, 너 뒤에-”
치호가 입을 여는 그때였다.
순식간에 한겨울의 설산에 놓인 것처럼 섬뜩한 느낌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영감이 전혀 없는 이라도 육감이 발달하면 이렇게 스스로에게 경고를 주고는 한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그는 이미 원혼의 영역에 들어섰다.
-끼히히히히히.
치호는 바람 소리가 꼭 귀신 웃음소리처럼 들려서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럼에도 찢어지는 듯한 귀곡성은 오히려 선명해지기만 했다.
“제작진이 음향 효과 살벌하게 줬나 봐. 그치?”
옆에 있던 승헌에게 말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당황한 마음에 주위를 둘러보자 아무도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요하야. 이승헌. 뭐야, 씨. 다들 어디 있냐?”
분명 다 같이 있었는데. 앞에 요하가 있고 양옆에 승헌이랑 메이슨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아무도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덤불과 나무….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와 나무…… 나무.
-끼히히히히.
그리고 귀신의 웃음소리.
다들 어디 갔지? 산이라 밤 되니까 춥긴 했다만… 이렇게 추웠나? 잠깐. 저렇게 생긴 나무도 있나? 꼭 괴물이 팔을 뻗치고 있는 것처럼….
깡마른 팔을 하늘 높이 치켜든 듯한 이상한 나무가 가지를 흔들며 치호를 유혹했다.
꼭 이쪽으로 오라는 것처럼 보였다.
여기에 오면 네가 원하는 게 있어- 하고 말해오는 것 같았다.
치호가 멍하니 나무 쪽으로 다가갔다.
한 걸음, 한 걸음….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캬웅!
어디선가 들려온 짐승 울음소리가 치호의 멍한 정신을 깨웠다.
파드득 어깨를 떤 치호가 촬영 중이라는 것도 잊고 욕을 내뱉었다.
“하, 씨발. 미친.”
괴상한 나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앞에는 야트막한 낭떠러지가 펼쳐져 있었다. 3m 될법한 높이로, 여기서 떨어지면 절대로 무사하지는 못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