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68화 (6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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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혼이 흐느적거리며 골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차를 적당한 곳에 주차했다.

“생전에 고시 공부를 했었나 보네요. 야, 안 내리냐? 안 내릴 거면 차 잘 지켜라.”

끼우웅!

용마의 내비게이션에 달라붙어서 훌찌락 울고 있던 끼웅이가 두 사람이 내리려고 하자 헐레벌떡 따라왔다. 겁이 너무 많아 무조건 둘 중 한 명 곁에는 붙어 있어야 했다.

-나느은 저기서 죽었다…….

골목으로 들어가자 ‘푸른 드림 원룸텔’이라고 적힌 간판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원혼이 보였다. 다른 원혼 서넛도 근처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도진이 인상을 썼다.

“포도청 지부가 여기 있다면서요. 다 안 잡아가고 뭐 한대요?”

“노량진에서는 악신이 아니면 잘 나서지 않을 거야. 원혼이 워낙 흔한 곳이라.”

“노량진에서 원혼은 유흥가 흡연 같은 거군요…. 그럼 저승사자들도 그냥 방치해요?”

“주기적으로 와서 회수해 가는 걸로 알아. 잘 봐, 다른 원혼들은 1~2년 된 원혼들이잖아. 오래된 원혼들은 없어.”

“아, 맞네요. 때깔이 이 원혼이랑 다르네.”

혼령이란 기본적으로 지박령이므로 잡귀 이상의 갈래가 되거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근처를 떠나지 못한다. 서정원은 잡귀 이상의 갈래이기에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 있었고, 그러다 보니 주기적인 대청소에서 제외된 모양이었다.

다른 원혼들은 이 원혼보다 머리카락도 짧았고, 좀 더 현대적인 차림새였다. 반면 이 원혼은 검은 머리가 발목까지 길었고, 차림새는…….

“이거 잠옷 아니에요?”

도진이 눈을 가늘게 떴다. 처음엔 원피스를 입고 있나 했는데 가만 보니 펑퍼짐한 잠옷 같기도 했다.

“야, 이거 잠옷 맞지? 너 자다가 죽었냐?”

-모른다……. 나는 도대체 왜 죽은 것인가……. 왜…. 억울하다……. 원통해. 이번에는 분명히… 분명히 합격이었는데에…….

“그러니까 사인을 우리가 같이 분석해 주겠다잖아. 잠옷 맞지?”

-아아 억울해……. 너무 억울해서 편히 죽을 수조차 없다…….

“내 말 듣고 있냐? 야.”

도진이 원혼에게 주먹질도 못 하고 성질만 부리는 사이 근처의 혼령, 잡귀, 잡신, 원혼들이 주변에 몰려들었다.

-저기 좀 봐, 이리 선인이야….

-진짜 이리 선인이다….

-세상에 내가 이리 선인을 다 보네.

-이리 선인. 나는 억울하다…….

순서대로 혼령, 잡귀, 잡신, 원혼이었다. 원혼이란 대개 이렇게 자기 할 말만 하고 대화가 통하지 않는 존재들이었다.

“안녕. 혹시 여기 있는 서정원이라는 사람을 아는 혼령은 없어?”

이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 원혼은 제외하고 세 부류에게 물었다. 다행히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허공을 보고 혼자 말을 거는 미친 청년이 되지는 않았다.

-글쎄, 생전엔 오고 가며 봤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기억이 안 나는군…….

-저 녀석 죽은 지 10년은 넘어 보이는데에?

-이 동네에서는 최대 3년 안에 무조건 포졸들이나 저승사자들에게 잡혀가거든요. 아마 저 원혼을 아는 이는 없을 거예요.

사람은 죽고 나면 생전의 기억이 희미해진다. 가족과 친구, 연인 등 각별한 사이가 아닌 이상 교분이 없었던 이를 기억할 리는 만무했다.

“혹시 10년 전에 이 고시원에서 사고가 일어난 적은 없어? 아마도 밤중에.”

-밤중 사고라…….

-그런 고시원이 한두 곳이 아니어라.

-생각해 보니까 나도 밤중에 고시원이 불에 타서 죽었지요. 아아… 억울하다. 생각해 보니까 너무 억울하다.

괜히 잡귀 하나면 억울한 감정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이리는 얼른 웃으며 귀신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다들 고마웠어. 이제 각자 할 일 해.”

-할 일이 없는데…. 구경하면 안 되나요?

“…멀리서는 괜찮아.”

몇몇은 남아서 구경하고, 몇몇은 할 일을 하러 갔다. 그 할 일이란 인간들을 뒤따라 다니며 음기를 퍼뜨리는 일이었다.

도진이 속삭였다.

“스승님, 이 녀석들 다 제령하거나 회수하자는 말씀은 안 하시네요?”

“저승사자들이 3년에 한 번 와서 청소하니까. 내가 끼어들었다가 저승 쪽에서 갑자기 영체의 수가 확 줄어든 걸 알고 이상하게 여길 수도 있어. 그리고 이곳은 원체 음기에 휩싸인 곳이라 사람들도 기본적으로 내성을 가지고 있으니 괜찮을 거야.”

“음기 면역이라. 괜찮은 속성이네요.”

끼우웅…….

귀신들이 흩어지자 끼웅이가 이리가 입은 베스트의 아래쪽에 달린 주머니에서 머리를 내밀었다. 그러나 긴 머리를 늘어뜨린 원혼은 아직 자리하고 있음을 알고 금방 쏙 숨어들어 갔다.

“이 녀석은 왜 이리 겁이 많은지.”

도진이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며 장난쳤다.

“애 놀리지 마.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보자. 그럼 기억이 날지도 몰라.”

둘은 운영을 하는 건지는 의문인 어둡고 허름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뒤를 돌아봤다. 서정원의 원혼이 간판에 붙은 채로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들어가고 싶지 않다.

“장난하냐. 야, 들어가야 뭐라도 기억하고 단서 하나라도 찾을 거 아냐.”

-아아, 억울해……. 왜 죽었는지 몰라서 억울해…….

“그러니까 그 죽음의 이유를 찾아서 들어가자는 거잖아.”

-아아, 나는 죽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느낌이 좋았는데…. 왜 눈 떠 보니 죽어 있었단 말인가 왜에…….

“스승님.”

도진이 일방적인 대화는 그만 시도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냥 퇴마해 버리죠?”

“진정해…. 일단 우리끼리 들어가자. 고시원 사장이나 여기 사는 사람한테 서정원이란 사람에 대해 물어보면 단서가 나올 거야.”

“저딴 것을 위해 왜 그래야 할까요. 그냥 저승사자들한테 맡기고 싶은데요.”

“10년 넘은 혼령이니까 본 김에 처리하자….”

도진은 성질이 났지만 결국 이리의 말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막 문을 열려다가 멈칫했다. 잠시 기다리자 문이 활짝 열리며 누군가 나타났다. 처음엔 인간인가 했는데 아니었다.

“으아앙. 여기도 아니다. 큰일이다. 어떡하면 좋냐.”

거북이 얼굴에 고양이 몸을 가진 위아가 짧은 팔로 펑펑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그러다 이리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이리 선인!”

“뭐야. 복배바리잖아.”

도진이 팔짱을 꼈다.

노량진이 위아가 드문 곳이라고 해도 복배바리 같은 인간 사회 속에 터를 잡고 사는 종들은 반드시 존재했다.

복배바리는 커다랗고 부리부리한 인간의 위협적인 모습에 움찔하더니 도진을 빙 둘러서 이리에게 다가갔다.

“이리 선인! 진짜 이리 선인이 맞나? 마침 잘 만났다! 내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 같노라. 집을 찾아 줘라!”

“아오, 씨발.”

뒤에서 도진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금 원혼을 떼어내지도 못했는데 이 새끼가 지금 뭐라는 거야?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으나 다행히 복배바리는 야차 같은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리는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이 근처에서 살고 있어?”

“근처에서 산다. 내가 이 동네에서만 30년을 살았다.”

“그런데 왜 길을 잃고 지랄…….”

자꾸 구시렁거리는 도진에게 이리가 눈짓으로 함구령을 내렸다. 실제 도술을 쓴 건 아니지만 도진은 알아서 입을 다물었다.

“이름이 뭐야? 이 건물엔 왜 들어갔어?”

“나는 아등이고 이 건물이 내 집이랑 비슷해서 들어갔는데 내 집이 아니었다. 영영 미배바리가 되는 건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리 선인을 만나서 정말 다행이다. 자, 이제 나를 내 집에 데려다 줘라!”

복배바리가 짧은 팔을 허리에 얹고 당당히 요구했다. 도진은 화병이 날 것 같아 괜히 불쌍한 끼웅이를 꺼내고는 양 손바닥에 가두고 짤짤이를 하듯 흔들어 댔다. 서정원이 흥미로운 듯 목을 길게 빼고 얼굴을 들이밀었다.

끼웅, 끼우웅.

끼웅이가 애타는 비명을 지르며 도진의 손가락 사이로 스멀스멀 빠져나왔다가 원혼과 눈이 마주치고 꼬르륵 기절했다.

“알았어. 저 원혼의 혼만 회수시킨 후에 집을 찾아 줄게.”

“저 긴 머리의 원혼 말이냐? 죽은 지 오래되어 보인다.”

“혹시 본 적 있어?”

“으음.”

복배바리가 눈을 갸름하게 뜨고 서정원의 얼굴을 살폈다. 핏발 서린 눈에 창백한 피부, 보라색의 거친 입술과 썩어들어가는 목덜미…….

“으으, 무섭다. 자세히 볼 수가 없다. 우리 복배바리는 귀신을 싫어하노라.”

이리는 다른 방향으로 틀었다.

“혹시 12년 전 밤중에 이 근처에서 일어난 사망 사고에 대해 알아?”

“노량진은 항상 사망 사고가 많은 곳이다. 하지만 이리 선인의 말이니 한번 떠올려 보겠다.”

복배바리가 팔짱을 끼며 생각에 잠겼다. 팔이 너무 짧다 보니 그냥 손등만 덮고 있는 모양새였다.

“아, 12년 전에 바로 이 푸른 드림 원룸텔에서 일산하탐소가 누출되어 한 명이 사망한 적이 있었다.”

“일산화탄소 말이구나.”

이리는 핸드폰으로 날짜와 지역, 일산화탄소 사망 키워드를 넣어 검색했다. 그러자 기사가 여러 개 쏟아져 나왔다. 사망자는 스물여덟 살 여성이었다. 일산화탄소의 원인은 좁은 방에 튼 히터였다.

“서정원. 이쪽으로 와서 기사를 읽어 봐.”

이리가 서정원을 불러 기사를 보여줬다. 긴 머리를 늘어뜨린 채 기사를 읽던 서정원이 끄으, 끄, 으으그 기괴한 소리를 내며 몸을 비틀었다.

-아아 억울하다……. 억울해……. 너무 억울하다…….

서정원은 머리를 감싸며 주저앉았다.

-내가 왜 그렇게 죽었어야 했나……. 원통하다…. 우리 엄마랑 아빠, 딸 용돈 3년이나 대 주느라고 힘들었는데 호강 한번 시켜 드리지 못하고 죽었다…. 나는 외동딸이라 부모님에게는 나밖에 없었는데…. 아아 억울하다…. 재작년보다 작년보다 성적이 좋아서 기대했는데… 내 노력은 어떻게 된 것이냐.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거면 왜 28년이냐 고생을 해야 했던 것이냐……. 너무 억울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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