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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가 눈을 깜빡이며 이리를 바라봤다. 보통 사람이 이리를 마주하면 늘 그렇듯이 둘은 친근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죄송하지만 저 좀 도와주실 수 있으세요?”
“어,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제가 면허 딴 지가 얼마 안 돼서 주차하기가 어려워서요.”
이리가 대각선 방향에 삐뚜름하게 서 있는 용마를 가리켰다. 용마는 본래 주차장 구석에 이 주차장의 모든 차량 중 가장 올바른 자세로 잘 쉬고 있었으나 이리의 부름에 잽싸게 달려와 적당히 어색한 지점에 어색한 자세로 정차한 상태였다.
“어쩌지. 내가 큰 차는 운전한 적이 없는데.”
“내가 할게.”
아저씨가 차에 타려다 말고 나왔다.
“감사합니다.”
“아니, 뭘. 나도 초보 때는 주차가 제일 어려웠지. 그런데 어려 보이는데 면허를 빨리 땄네. 차는 부모님이 사 주셨나?”
“제가 샀어요.”
“그래요? 어린데 기특하네. 우리 아들내미랑 비슷해 보이는데 열심히 일했나 봐. 우리 아들은 대학 다니면서 흥청망청 쓰기나 해서 미치겠어. 알바를 하긴 하는데 그 돈 모아서 차 살 생각은 안 하고, 며칠 전에는 이런 쓰잘데기 없는 거나 사오더라고. 시계 같은 건 거슬려서 잘 안 쓰는데 말이야.”
아저씨가 어버이날 선물로 받은 듯한 스마트 워치를 완곡한 화법으로 자랑했다. 그 워치는 아주머니의 손목에도 고이 채워져 있었다.
“여보, 그뿐만이야? 요 시계랑 블루투스 이어폰도 함께 줬잖아. 주말마다 열두 시간씩 일한 돈으로 아깝게 그냥 차나 살 것이지.”
남편의 자랑을 아내도 거들었다. 이리가 작게 웃었다. 인간들이 물어보지도 않은 자식 자랑을 하는 모습을 보면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콜록! 그때 아저씨가 허리를 숙이고 기침했다.
“감기 걸리셨어요?”
“그런가 보네. 나이가 드니까 별 기미도 없이 감기가 찾아오는가 봐.”
“자기야. 얼른 주차해 주고 우린 가자.”
“그래.”
자식 자랑을 더 하고 싶어도 몸 상태가 따라 주지 않으니 중년인이 씁쓸한 얼굴로 이리의 곁을 스쳤다. 이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검지와 중지를 펼친 후 시계방향으로 180도 회전했다. 이리가 뒷짐을 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끼에에에에에.
그 간략한 움직임으로도 원혼이 중년인의 정수리에서부터 빠져나왔다. 이리는 일단 원혼을 주차장 천장에 붙들어 놨다.
아주머니의 옆에 서서 주차가 끝나길 기다리는데 마침 성큼성큼 걸어오던 도진과 눈이 마주쳤다.
“형, 무슨 상황이에요?”
“내가 주차가 서툴러서 두 분께 부탁드렸어.”
“아하…….”
“어머……. 형제?”
아주머니가 호기심을 비췄다. 형제가 둘 다 잘생겼다는 말로 시작해서 그런데 큰 쪽이 동생이야? 라는 질문이 이어졌고, 동생이 노안이라는 게 아니라 형이 너무 동안이다 라는 칭찬으로 끝이 났다. 일반인과 마주할 때면 늘 겪는 상황이었다.
그사이 아저씨가 주차를 깔끔하게 마치고 차에서 내렸다. 이제 으슬으슬한 기운도 사라졌을 테지만 팔짱을 끼고 어깨는 움츠린 채였다.
이래서 원혼 빙의가 무서운 것이다. 대상이 무속인이 아닌 이상 10여 분의 짧은 빙의로도 후유증을 남기니까. 아마 중년인은 사나흘은 심적으로 불안함을 느끼며 추워할 것이다.
“형제인가?”
“이쪽이 동생이래, 글쎄.”
“아이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도진은 정말 노안은 아니었다. 다만 체격이 큰 데다가 옆에 상대적으로 작은 이리가 붙어 있다 보니 이렇게 되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뭘. 이런 거 가지고.”
“보답을 드리고 싶은데, 무 좋아하세요?”
“응? 뭐?”
“도진아. 차 트렁크에서 꺼내 와.”
이리가 도진에게 말했다. 도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차 트렁크를 열었다.
그곳에 무가 있었다. 흙에서 막 뽑아 온 듯 싱싱하고 실한 무였다. 녹색 잎은 어째서인지 축축했다.
도진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로 무를 들고 왔다.
“무……?”
“무…….”
부부도 어안이 벙벙한 상태가 되었다. 도진이 부부에게 무를 넘겼다. 남편이 잎 부분과 뿌리 부분을 붙잡아 들었다. 제법 무거웠다.
“아니, 그…. 그러니까 이 무를 우리한테 준다고?”
“네.”
주차를 도와줬다고 보답으로 무를 받는 건 둘에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마 앞으로도 없을 테고. 남편이 사양하기 위해 무를 어색하게 내밀었다.
“하하. 우리는 이런 보답 괜찮으니까-”
“아까 기침하시더라고요. 무를 잘게 채를 썬 다음 꿀을 무가 잠길 만큼 붓고 실온에서 서너 시간 숙성하면 맛있는 무 꿀즙이 되거든요. 이걸 식전에 두 숟갈 정도 드시거나 차로 마시면 감기에 효과가 있을 거예요.”
본래는 실온에서 사흘은 숙성해야 하나, 이 무는 대여점 정원에서 키우는 영험한 무라서 숙성 시간이 퍽 줄어들었다.
“그렇구나. 고맙다. 잘 해 먹을게.”
“무 꿀즙 어렸을 때 우리 엄마가 해주곤 했는데. 무가 튼실해서 무생채랑 깍두기, 뭇국까지 다양하게 해 먹을 수 있겠어.”
거절하려고 할 땐 언제고 부부는 오히려 이리에게 고맙다고 인사하며 무를 소중히 품에 안고 차에 올랐다.
부부가 탄 차가 떠나고 도진이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혹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 예상하고 트렁크에 무를 넣어 가지고 다니세요?”
“아니…. 간단한 도술로 무를 이동시켰을 뿐이야.”
“스승님, ‘간단’의 뜻 아시죠?”
“알지. 그보다 원혼이나 처리하자.”
이리가 천장에 꼭 붙어 짓눌려 있는 원혼을 바닥에 추락시켰다.
-끼에에에에.
진득진득한 흙탕물처럼 퍼졌던 원혼이 서서히 사람 모양으로 변해 갔다. 젊은 여성이 바닥에 쓰러져 울었다.
-억울해! 억울해! 나는 너무 억울해! 원통하다! 전부 미워! 이리 선인도 미워!
원혼을 중간계에서 쫓아내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 제령, 퇴마, 혼의 회수.
인간 범죄자로 예로 들자면 제령은 범죄자를 구속하여 감옥에 보내는 것이고, 퇴마는 범죄자를 즉결 처형하는 것이며, 혼의 회수는 범죄자를 교화하는 것이다. 상당히 인도적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은 원혼의 소원을 이뤄줘야만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왜 내 마음을 몰라 주냐며 땡깡을 피우는 원혼을 내려다보며 도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제령해 버리죠…… 라고 하고 싶지만 분명히 제령이랑 퇴마는 안 된다고 하시겠죠? 혼 회수시킬 거죠, 그쵸. 맞죠?”
이 원혼은 ‘원혼’의 ‘워’ 정도로 아직 교화의 여지가 있는 상태다. 도진의 예상대로 이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하니 10년은 넘은 듯한데 원혼이 안 되고 아직 잘 버티고 있잖아.”
“제 눈엔 잘 버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진 않지만 뭐 그래요. 빨리 소원 들어주고 우리는 남은 일정을 즐겨요. 영화도 봐야 되고, 저녁에는 커플 팔찌 원데이 클래스도 예약했단 말이에요. 야, 우는 척 그만하고 일어나. 일단 차에서 대화해.”
도진이 엎어져 있던 원혼의 팔을 잡아들고 용마에 태웠다. 원혼을 태운 게 마음에 안 드는지 용마가 내비게이션에 [(╯‵□′)╯︵┻━┻]라는 표정을 띄웠다.
원혼의 머리카락이 무척 길고 구불구불하게 엉켜 있어서 뒷좌석을 죄다 차지하는 바람에 이리는 조수석에 올랐다.
끼웅…….
끼웅이는 차 안에서는 늘 내부에 영역표시를 하며 나돌아 다녔는데, 이번엔 무서운 원혼 때문에 나오지도 못하고 도진의 소매로 깊숙이 숨어들었다. 이리라면 부드럽게 감쌌겠지만 도진은 오히려 손목을 탈탈 털어서 끼웅이를 놀렸다. 그동안 원혼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억울해……. 나는 원통해.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순 없는 법이야…….
“야, 알겠으니까 말해 봐. 뭐가 그렇게 원통한데? 그리고 왜 선인님을 보고 도망친 거야?”
-나는 도망친 적이 없다……. 그렇게 오해하면 곤란하다. 나는 억울해.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저씨 몸에 들어갔으면서 무슨.”
“네 이름과 나이, 사망 원인을 말해.”
이리가 힘을 실어 말하자 원혼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며 대답했다.
-내 이름은 서정원. 나이는 스물여덟. 사망 원인은… 몰라.
“모른다고?”
-몰라. 나는 내가 왜 죽었는지 몰라. 그래서 억울해. 그래서 너무 원통해. 그래서 이대로 떠날 수가 없다. 아아 억울하다……. 이럴 수는 없는 법이야…….
간혹 자기도 모르게 죽는 경우는 이런 억울함으로 저승사자를 피해 도망다니는 경우가 있긴 하다.
“네가 사망한 장소는 기억해?”
-기억한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이다.
“일단 그쪽으로 가자. 네가 나가서 위치 안내해.”
이리가 뒷좌석 창문을 내렸다. 원혼은 눈치를 보면서 슬금슬금 기어 나갔다. 원혼이 사라지자마자 끼웅이가 소매에서 뚝 떨어졌다. 끼웅이는 눈물방울을 매달고 이리의 주머니 속으로 기어들어 갔다.
잠시 후 전면 유리창에 구불구불한 까만 머리가 불쑥 내려왔다. 원혼이 핏줄 터진 눈으로 주차장 밖을 손가락질했다.
“도진아, 가자.”
“네. 빨리 해결하고 데이트해요.”
도진은 원혼이 안내하는 방향으로 용마를 몰았다.
* * *
원혼은 노량진의 고시촌에 다다른 후에야 멈췄다. 노량진 고시촌은 위아는 극히 드물고 대신 인간의 혼령은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곳이다. 혼령, 잡귀, 잡신, 원혼 때때로는 악신까지 나타나는 곳이 바로 노량진이라 포도청의 유일한 지부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