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58화 (58/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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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아의 출입국장은 대한민국 최동단에 있다. 독도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안개 속에 가려진 섬이 있는데, 그 섬 하나가 통째로 출입국장이었다.

육지에 출입국장으로 떠나는 배가 있었지만 그들은 타지 않았다. 선인이 타고 다니는 용마는 아주 근사한 날개도 갖고 있으니까. 평소에는 수납하고 다니지만 오늘은 이리가 날개를 꺼내는 걸 허락해 줬다. 검은 날개를 활짝 펼친 자동차가 바다 위를 날아 섬에 착륙했다.

출입국장의 주차장은 아주 넓었는데, 빗자루부터 자동차까지 주차된 교통수단이 너무 많아서 차 댈 데가 없었다. 다만 마구간에는 자리가 있었다.

“어쩔 수 없다. 마구간에 들어가 있어.”

[(▀0▀)]

“선글라스 벗어 봐.”

[✪0✪]

당연히 용마는 더 좋아했다.

망아지로 변한 용마를 마구간에 맡겨 놓고 원형 돔 형태의 건물에 들어오자 요물, 영물, 요괴, 신령, 잡귀 등 각양각색의 위아들이 바글바글했다. 90%가 한국에 입국하는 위아들이었다.

“이봐요. 벌써 여섯 시간째 기다렸소. 대체 언제쯤 배를 탈 수 있는 거요?”

“허허. 나는 지금 열두 시간째 기다리고 있소. 어디 한국에 들어가는 게 쉬운 줄 아시오?”

“아까 나보다 빨리 온 이가 바로 배를 타던데 그건 어떻게 된 거요?”

“그 사람은 그만치 덕을 지불한 거요.”

“덕 없는 위아는 그냥 짜지고 있으라는 거로구만.”

“다들 소란 부리지 마세요. 소란 부리면 기다리는 시간만 리셋됩니다.”

줄 서 있는 위아들이 불평불만 하면서도, 출입국장 직원인 혼령의 외침에 금방 입을 다물었다. 군데군데 텐트도 보였다. 수도권 집중화 현상은 인간 세계뿐 아니라 위아 세계에서도 심각했다.

반면 한국에서 출국하는 구역은 줄이 없다시피 해서 도진과 제임스는 곧장 매표소로 향했다.

매표소 직원은 소복을 입은 혼령이었다. 기웃기웃하던 직원이 도진의 얼굴을 확인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어머나. 정말 부리부리하고 잘생겼어!”

“네? 절 아십니까?”

“이리 만물 대여점의 직원분 아니신가요? 이리 선인님께서 부리부리하고 잘생긴 직원이 찾아올 거라고, 율도국 왕복 티켓 세 장을 미리 예매하셨어요.”

“역시 스승님이 보기에도 내가 어지간히 잘생겨서. 아, 근데 저희는 두 명인데요.”

“그럴 리가요. 이리 선인님이 착각하실 분이 아닌데.”

끼웅?

그때 도진의 소매에서 끼웅이가 고개를 내밀었다. 도진이 아, 하고 납득했다. 요 쪼매난 녀석도 티켓을 끊어야 하는구나.

직원이 태블릿 PC를 두들겼다.

“선인님 말씀으로는 신령, 잡귀 그리고 장사라고…. 아, 잠시만요. 장사?”

직원이 고개를 갸웃하더니 일어나서는 선임 혼령에게 다가갔다. 자기들 딴에는 수군거리며 대화하는데 도진에겐 다 들렸다.

“선배, 이분이 장사라는데요. 장사라는 갈래가 있어요?”

“장사? 아! 세상에. 나 장사 처음 봐. 어디, 어디?”

선임이 도진을 구경 왔다. 그는 실례라는 생각도 않는 건지 핏발이 선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정말 장사세요? 몇 살이세요? 이렇게 커다란 성인 장사라니 저 처음 봅니다.”

“네. 영광이죠? 사인이라도 해 줄까요? 사진은 좀 그렇고.”

도진이 한술 더 뜨자 혼령들이 좋아하며 꺄르르 웃었다.

혼령들의 관심을 사로잡으며 티켓 세 장을 받고 제임스와 항구로 향했다. 배가 오려면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율도국행 배를 기다리는 이들은 도진 일행을 포함해 총 세 그룹뿐이었다.

한 그룹은 같은 마을을 이루고 사는 도깨비들인 듯했고, 다른 그룹은 발끝까지 내려오는 흰 베일을 두르고 있었다.

제임스는 다소 기가 죽은 듯 어깨를 움츠린 채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역시 한국은 위아의 수도답네요. 제가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이렇게 많은 위아는 처음 봐요….”

도진은 자기도 처음이라고 하려다가 말았다.

이렇게 많은 위아들이 한곳에 모여 있는데, 큰 싸움도 일어나지 않고 평화롭다니. 포도청 직원들이 여기저기서 지켜보고 있긴 했지만, 개구리와 뱀 같은 천적 관계의 위아들도 얌전히 줄만 기다리고 있으니 신기할 뿐이었다. 멀찍이서 텐트를 치고 있던 한 놈이 도진 일행을 향해 목을 길게 쭉 뺐다.

“저 흡혈귀 옆에 있는 놈은 꼭 인간처럼 생겼는데 뭔가?”

“잠깐. 저 부리부리한 눈매는 혹시?”

“혹시 뭐?”

“이리 만물 대여점의 신입 직원이 딱 저런 외모라고 들었네.”

“아, 부리부리. 듣고 보니 정말 부리부리하군, 그래.”

“저 사람 대여점 직원 맞아. 아까 여기 직원이랑 대화하는 거 들었어.”

“대여점 직원이 여긴 웬일이지? 혹시 이리 선인께서도 오셨나?”

수다 떨던 위아들이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등을 돌리고 서 있던 다리 다섯 개 달린 말이 히이잉 울면서 외쳤다.

“이리 선인? 이봐, 자네 지금 이리 선인이라고 했나? 이리 선인이 오셨어?”

“뭐 이리 선인이라고?”

“야, 들었어? 저쪽에 이리 선인이 계신가 봐!”

“이리 선인, 선인은 어디 계신가!”

나름 잘 서 있던 입국줄이 흐트러졌다.

우당탕탕, 일대 소란이 일어나자 출입국장을 지키는 포졸들이 몰려왔다. 포졸이 모두의 앞에서 이리 선인은 오시지 않았다고 몇 번이나 소리친 다음에야 장내가 좀 정리되었다.

‘스승님과 함께 왔으면 큰일 날 뻔했네. 인명 사고까지 발생했을지도.’

단순히 이리 선인의 유명세 때문에 소란이 일어난 건 아닐 터였다. 이들 중에는 대여점 방문을 위해 한국에 들어오려는 이들도 많을 테니까. 모두가 잠재적인 고객들이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어 율도국행 배가 항구에 착륙했다.

이곳은 바다지만… 입항이 아니라 착륙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바다가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이었다.

“안녕하세요. 율도국행 하늘선 지금 도착했습니다. 일행별로 줄 서 주시고, 일행 리더께서는 티켓을 꺼내 주세요.”

배에서 내린 혼령 직원이 비지니스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객들을 맞이했다. 도진 앞의 두 그룹이 승선하고, 도진 차례가 되었을 때 혼령이 티켓 내역과 셋의 얼굴을 확인했다.

(왕복) 율도국

신령 1명, 장사 1명, 잡귀 1명. 총 3명.

목적-업무

귀항 시각 5월 10일 23시 59분까지

“안녕하세요. 율도국 세 분, 맞으시지요? 신령, 장사, 잡귀시고요?”

“맞습니다.”

“귀항 시각을 넘기면 불법 체류자가 되니 조심하세요.”

“네.”

직원이 티켓에 날인을 하면서 도진을 올려다봤다.

“장사는 살면서 처음 뵙네요.”

“사인해 줘요?”

“네? 아, 아뇨. 괜찮습니다.”

“후회하실 텐데. 저는 장차 왕이 될 몸이라고요?”

“아, 하하…. 배는 30분 후에 출발하니 들어가서 대기하시지요.”

진상 고객에게도 친절함을 잃지 않은 직원이 팔을 뻗으며 안내했다. 도진과 제임스가 안으로 들어갔다. 제임스는 객실로 들어가고 싶어 했지만 도진이 갑판에 남자 어쩔 수 없이 옆에 움츠리고 섰다. 정말 독립적이지 못한 흡혈귀였다.

안내를 마친 직원은 이제 율도국행 고객이 없다고 판단하여 다시 결계를 만들었다. 그러다 도진과 잠깐 눈이 마주쳤고, 직원은 곧바로 비지니스 미소를 싱긋 선보였다. 도진은 관심 없다는 듯 다른 데로 시선을 뒀다. 직원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소문대로 진짜 부리부리하구나.’

엄청 잘생겼는데 위압감이 장난 아니었다. 장사라는 선입견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데 율도국에 무슨 일이라도 있나. 아까도 왕 후보가 한 명 율도국에 방문하더니.’

직원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현계의 왕 후보는 총 셋, 그중 두 명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호기심이 샘솟았다. 사실 모인 이유를 영 모르겠는 건 아니었다.

‘역시 ‘그 대회’ 때문이겠지?’

만약 그렇다면 당장 따라가서 구경하고 싶지만, 무단퇴근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부디 율도국 사람들이 소문을 마구마구 퍼뜨리기를 바라며 마저 일을 하러 떠났다.

* * *

율도국까지 가는 데에는 대략 1시간 20분이 소요되고, 배 안에서 음식물 섭취는 불가능하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와 일본어, 중국어 안내까지 끝난 후 배가 둥실 떠올랐다.

‘율도국…….’

이리 선인은 도진에게 율도국의 왕이 어떤 식으로 통치하는지를 보고 오라고 했다.

율도국의 왕은 도진도 익히 잘 아는 자였다. 어떠한 사적인 친분도 없지만,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잘 알 것이다.

홍길동.

‘전우치에 관한 정보들이 많이 와전된 것처럼 홍길동에 대한 정보 또한 하나 빼고는 다 틀렸다고 봐도 무방하지.’

‘하나요?’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슬픔에 집을 나온 거. 이거 빼고는 다 틀렸어.’

집을 나온 홍길동은 도우 선인의 제자로 들어갔고, 역대 가장 빠른 기간에 기도식을 거행하고 도사가 되었다. 도우 선인에게서 독립한 홍길동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며 떠돌다가 동해상에 강원도 면적만한 섬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 터를 잡고 나라를 세운다. 그 나라의 이름이 율도국.

스스로 ‘대왕’이라는 칭호를 붙인 그는 강력한 도술로 율도국과 주변 바다를 통째로 들어 올려 상공에 자리 잡았다.

‘마음만 먹으면 선인도 될 수 있다고 했지. 하지만 율도국을 통치하는 데에 덕을 모두 소진하고 있어서, 아직은 도사에 머물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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