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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만물 대여점-20화 (2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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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는 스케줄표에 방금 전 위아가 반납하겠다고 약속한 날짜를 표시하고 일어났다.

“오늘은 일이 좀 빨리 끝났네. 데려다줄까?”

“네? 데려다주다뇨?”

“집에 가야지.”

“여기가 제 집인데요.”

도진이 눈을 댕그랗게 떴다. 날카로운 눈매지만 동그랗게 뜨면 또 동그랗게 보여서 귀여웠다.

“어제 제가 양보해 드렸잖아요. 그럼 됐지 왜 오늘도 꺼지라고 하세요?”

“꺼지라는 게 아니라…. 좋은 집 놔두고 왜 자꾸 불편하게 여기서 자려고 해. 용마 타면 1분도 안 걸리는데 가서 자렴.”

“그거 아세요? 요즘 우리 아파트 단지에 도둑 든 곳이 두 집이나 있대요. 막 저 자는 도중에 도둑 들어오면 어떡해요? 도진이는 무서워서 세상에서 제일 짱 쎈 이리 선인님 곁에서 자야겠어요.”

“도둑이 들었다고? 진짜야? 수행 중인 사람이 거짓말하면 큰일 난다.”

“거짓말 아니에요! 뉴스도 났다고요.”

도진이 핸드폰으로 빠르게 검색해서 이리에게 뉴스를 보여줬다.

도진이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주인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침입해 금품을 훔쳐 가는 일이 한 달 사이에 두 번이나 발생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럼 더더욱 집을 비우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무슨 말이에요. 집에 있다가 도둑이랑 마주치면 이렇게 약한 제가 어떻게 해결을 하라고. 저 먼저 씻을게요!”

뻔뻔하게 말한 도진이 냉큼 일어났다. 옷자락이 붙잡히기라도 할세라 빠르게 계단을 올라가는 뒷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해서 이리는 오늘만 봐주기로 했다.

도진이 미성년자일 때는 자고 싶다고 해도 꿋꿋이 돌려보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아무리 가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머리가 커서는 아주 끝까지 남아서 어떻게든 자려고 했다.

내일은 꼭 집에서 자게 해야지, 생각하며 이리도 2층으로 올라가자 도진이 자기 방에서 갈아입을 옷을 챙겨 나오고 있었다.

대여점에서는 아주 가끔 투숙객도 받는다. 2층의 방 세 개 중 두 개가 바로 그 게스트룸이었다. 그 중 하나를 도진이 직접 뚝딱뚝딱 리모델링해서 자기 침실로 만들었다. 이리의 침실 바로 옆이었다.

“저 씻고 올게요! 같이 영화 봐요. 절대 먼저 주무시지 마세요.”

“알았어.”

씻을 필요 없이 간단한 도술로 몸을 청결하게 만들 수 있는 이리와는 달리 아직 능력이 없는 도진은 꼬박꼬박 목욕을 해줘야만 했다.

이리는 침실에 들어가 간단한 주술로 몸을 청결히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그의 침실에 있는 건 침대와 작은 협탁뿐인데 허전해 보인다거나 삭막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협탁 위에 옹기종기 자리 잡은 인형들 덕분이었다.

독수리, 사자, 호랑이, 악어…. 전부 도진이 어릴 때 이리에게 준 것이었다. 자기 딴에는 이리를 지켜 주라고 맹수들만 골라서 선물했다. 이제 도진은 인형은 쳐다도 보지 않았지만 이리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다.

이리는 검은색 실 팔찌를 풀어 협탁에 올려놓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 인형들은 선인의 곁에 있은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으니 언젠간 귀물이 되고 또 잡귀나 도깨비, 영물로 진화할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게 되면 나중에 왕이 된 도진에게 권속으로 삼으라고 줘야지.’

이리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둑어둑한 방 안에 가만히 앉아 있으려니 잠이 솔솔 왔으나 제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개를 흔들며 졸음을 쫓아냈다. 그러다가 제자가 고심해서 선별했다며 사제지간 로맨스 영화를 수줍게 재생했을 때는 저절로 잠이 확 달아났다.

* * *

쿵쿵쿵!

갑작스레 들려온 큰 소리에 이리가 눈을 떴다. 시간을 보니 새벽 2시가 막 지나고 있었다. 도진이 고른 사제지간 로맨스 영화를 끝까지 다 봤을 때가 자정이 막 넘어가는 시각이었으니 그렇게 오래 잠들었던 건 아니었다.

쿵- 쿵-

발소리 같기도 하고, 어딘가에 몸을 부딪치는 것 같기도 한 수상한 소리가 아래층에서 들렸다. 고객이라면 초인종을 누를 텐데….

이리가 잠기운을 쫓아내며 문을 열고 나오는데 어둠 속에서 손 하나가 나오더니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스승님. 저예요. 쉿.”

도진이 이리를 뒤에서 끌어안은 채 나직이 속삭였다.

“아래층에 도둑 새끼가 침입한 것 같아요. 여기에서 기다리세요.”

이리가 손 떼라고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 도진이 힘을 풀자 이리는 차분하게 말했다.

“내가 내려갈게. 너는 여기서 기다려.”

그러자 도진은 형형한 눈빛으로 코웃음을 쳤다. ‘지금 장난하세요?’라는 표정이었다.

“위험하니까 제가 내려갈게요. 제가 스승님을 지켜 드리겠습니다.”

위험하면 당연히 스승이 내려가야 맞지 않겠니……?

그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이리는 1층의 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이미 짐작을 했으므로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은 아무 무기 없이 맨손으로 내려갔다. 사실 그의 맨손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무기이기도 했다.

이리가 침실에 들어가 옷을 갖춰 입는데 우당탕탕 큰 소리가 들렸다.

“야, 이 개새끼야-!”

“끄아아악. 위아 죽는다! 사람 살려라.”

“이 도둑놈의 새끼가 어디서 엄살이야!”

“이리 선인. 얼른 나와라! 나 죽는다! 아이고!”

“감히 우리 스승님한테 나오라 마라야. 진짜 확 대머리로 만들어 버릴까 보다.”

설마 도진이 기어코 고객에게 폭행을 저지른 건가? 얼른 계단을 내려오자 야차 같은 얼굴을 한 도진과 그런 도진에게 털을 뜯기고 있는 거북이 얼굴에 고양이 몸, 짧은 팔다리를 가진 위아 하나가 있었다. ‘복배바리’였다.

“도진아, 놓아 줘.”

“이 새끼 도둑놈이에요. 저거 보세요. 이물 진열 방에 들어가려고 도구까지 챙겨 왔잖아요.”

그의 말대로 복배바리 주변에 펜치와 톱 같은 게 널려 있었다.

단 1m 남짓한 복배바리가 사용하기 좋도록 되어 있다 보니 미니 사이즈로 위협적이라기보다는 귀여웠다.

“일단 놓아 주고 상담실로 들여보내고 너는 자러 가.”

“미쳤어요? 도둑 새끼랑 스승님을 단둘이 두고 자러 가라고요? 절대 그럴 순 없죠. 하. 마침 내가 여기서 안 잤으면 아주 이 도둑놈의 새끼에게 ‘그래 뭐가 필요하니, 말만 하렴’하고 이물 방도 열어 줬겠네. 이러니 내가 스승님만 두고 외박을 하겠냐구요. 사람이 다정한 것도 정도껏이지 도둑놈한테까지 다정하면 아니 그러면 나한테도 다정하게 뽀뽀라도 해주든가 그건 또 한사코 거부하면서-”

도진이 잔소리를 퍼부었다. 이리는 불을 켜야겠다며 얼른 자리를 피했다.

상담실 분위기는 냉랭했다. ‘새벽에’ ‘도둑질하러 와서’ ‘들켰음에도 뻔뻔하게 구는’ 위아에게 도진은 무척 화가 났다. 뒷덜미를 거칠게 붙잡고 달랑달랑 들고 와 상담실에 내동댕이치는 광경을 보고 이리는 속으로 기겁했다. 도진은 차도 내오지 않았다. 이리가 차를 내오라고 세 번이나 말한 뒤에야 차를 내어 줄 정도였다.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껄렁한 자세로 노려보는 도진과는 달리 이리는 시종 상냥하고 다정했다.

그가 찬찬히 이 도둑을 살피니 복배바리 치고는 오래 산 듯했으나 이제는 생명의 기운이 희미하여 수명이 다해 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리 선인…. 제자분이 너무 무시무시하고 부리부리하다. 내쫓아 주면 안 되겠나?”

“그건 곤란한데….”

“이리 선인의 제자가 사람을 죽일 뻔했다…….”

도진이 코웃음을 쳤다.

“왜 자꾸 자기 보고 사람이래. 너 사람이 아니라 위아잖아.”

“도진아. 직립 보행을 하고 인간의 문명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위아는 사람이라고도 불러.”

“…….”

도진이 뾰로통하게 입을 다물었다. 이리는 위아에게 상냥한 어조로 물었다.

“며칠 전에 전화했었지? 석쇠 모래시계랑 금물 금붕어. 안 된다고 했더니 결국 훔치러 왔구나.”

복배바리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도 본인이 저지른 죄를 아는 눈치였다.

“이물은 만물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알고 있다……. 왜 이리 선인의 마음대로 대여 금지를 하는 것인가……. 나는 금지에 반대하노라……. 금지를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노라…….”

복배바리가 어물어물 말했다.

“아, 이 새끼가 진짜!”

도진이 쾅, 테이블을 내려쳤다. 복배바리가 화들짝 놀라서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꼬리는 털이 한 올, 한 올 바짝 선 채 부풀어 올랐다.

“너 ‘만물의 주인’이라는 말 못 들어 봤냐?”

“이리 선인을 칭하는 칭호로 알고 있다.”

“그래. 잘 아네. 거기에서 ‘만물’이 바로 ‘이물’이야. 멍청아.”

“뭐?”

“이물들은 전부 내 스승님 거라고. 다정한 이리 선인님이 위아들을 위해서 자기 물건을 아낌없이 베풀고 계신 거라고!”

“뭐?”

“아아아악. 존나 답답하네. 왕 되면 헌법 제1조에 ‘이물은 이리 선인의 것이다’ 이것부터 적어 넣겠어. 씨발.”

“도진아, 진정해.”

이리가 성난 황소처럼 흥분한 도진을 다독였다. 복배바리가 말을 더듬었다.

“나는 전혀 그런 건 듣지 못해서…. 미안하다.”

“괜찮아.”

“그렇다면 판매를 하지 않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석쇠 모래시계나 금물 금붕어는 선인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 않은가. 이왕 베푸는 거 배포를 크게 쓰시면 좋겠다.”

도진이 또 으아악 괴성을 지르며 복배바리의 털을 쥐어뜯으려는 걸 이리가 가로막았다. 도술로 인해 꼼짝도 못 하게 된 도진이 뜨거운 콧김을 씩씩 뿜어 댔다.

“네 간단한 정보와 석쇠 모래시계, 금물 금붕어가 필요한 이유를 말해 줘. 사연에 따라서 대여를 해 줄 수도 있어.”

복배바리가 눈을 느릿하게 끔뻑였다. 거북이 같은 눈으로 느릿느릿 끔뻑끔뻑하더니 결국 이리의 다정한 눈빛과 나긋한 말투에 마음을 열기로 했는지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노량이다. 나이는 180살이고…. 한국 서울에 살고 있다.”

이리가 도진에게 건 무형의 힘을 풀어 줬다. 도진이 씩씩거리며 의뢰서에 노량의 정보를 적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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