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리 만물 대여점-7화 (7/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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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지연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왜 제가 저기에 누워 있나요?

엄마랑 지현이는 어째서 저렇게 수척한 모습으로 앉아 있나요?

저는 죽은 건가요?

제가 귀신이었던 건가요?

더듬더듬 내뱉는 질문에 도진이 뚱하니 비아냥거렸다.

“여기가 영안실로 보이나. 딱 봐도 혈색도 좋고, 숨도 내쉬고 있는데 무슨 귀신 타령인지. 생각이란 걸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이리는 대답 없이 침대맡으로 다가가 누워 있는 지연의 ‘몸’에 손을 가져다 댔다. 그의 손이 이마에 닿자 지연은 순간 무언가 머리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확 퍼지는 느낌에 파드득 몸서리쳤다.

“읏. 이게 무슨…….”

지연은 분명 뜨거운데도 추워서 팔짱을 끼고 부들부들 떨었다.

“어, 어떻게…. 왜? 대체 저는 언제부터…. 어떻게 된…. 아. 싫어. 나는…….”

도진이 혀를 찼다. 지연의 몸과 영혼을 잇고 있는 하얀 실이 영혼의 동요로 인해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지연은 현재 생령(生靈) 상태이나, 이러다가 실이 끊어지면 그때는 정말로 혼령이 될 터였다. 즉, 죽어 버린다는 뜻이었다.

도진이 걱정하는 것은 ‘덕(德)’의 손실이었다.

위아들의 세계에서는 ‘덕’이 화폐이자 에너지고 힘이다. 그런데 이 덕이라는 것은 나쁜 짓을 할 때마다 일정량이 흩어지기 때문에 수행 중인 이들은 악행을 금기시했다. 나쁜 짓에는 욕설과 거짓말 같은 사소한 행위도 포함된다.

도진은 적덕 중인 신분임에도 말버릇도 험하고 위아들에게 무례한 짓도 자주 하고는 했다. 하지만 그건 그때마다 벌금처럼 납부하는 덕의 양이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눈앞에서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상대의 죽음에 내가 연관되어 있다면 바로 업이 생겨 버리므로, 열심히 쌓아 놓은 덕이 단번에 사라져 버릴 터였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혼령이 되면 원혼으로 진화할 가능성도 있었다.

도진이 긴장에 주먹을 꽉 말아 쥐는데 이리가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지연 씨는 이쪽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그런가 생각만큼 패닉에 빠지지는 않네.”

지연은 누가 봐도 공황 상태였다. 혼에서는 검푸른 독기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하얀 실은 거센 풍랑을 만난 듯 크게 흔들렸다.

그럼에도 이리가 그렇게 말하고 나자…….

“아…. 네. 저는…. 이쪽에 대해 잘 알고 있어서 크게 놀랍진 않아요.”

지연은 순식간에 차분해졌다.

도진의 긴장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리의 이 신묘한 술수는 언령은 아니었다. 입 밖으로 꺼내지 않고 지연을 지그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차분하게 만들 수 있었다. 이 능력은 선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었다. 특히 이리 선인은 이 능력이 아주 뛰어나서 같은 선인들조차도 한 수 물러난다고 들었다.

“엄마…….”

지연은 가족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어머니와 동생은 우울한 얼굴로 아무 대화 없이 앉아 있기만 했다. 소형 텔레비전 속 예능인들은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그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았다.

가족이 아픈 자의 표정은 대개 이런 법이다. 어떤 것도 담고 있지 않은… 넋이 나간 듯한 표정.

“생령이 인간에게 접촉하면 안 돼. 몸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때 실컷 안아 주렴.”

“어떻게… 돌아가요? 아니, 그것보다… 저는 왜 이렇게 된 거예요? 대체 언제부터….”

지연이 눈물을 흘렸다. 생령 상태에서 흐른 눈물은 자연스럽게 스르르 사라졌다.

“일주일 전에 동네에 놀러 왔다고 했지? 그때 작은 교통사고가 있었어. 사고 후 몸은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향하는데, 신체에 깃들어 있어야 할 영혼은 ‘신비한 안개’를 지나치지 못하고 그대로 빠져나와 버린 거야. 본래대로라면 안개를 보지 못했겠지만, 죽음과 비슷한 경험을 하고 나면 일시적으로 영안이 열릴 때가 있거든. 하필 그 타이밍에 우리 대여점의 안개를 봤던 거지.”

“대여점…?”

“이리 만물 대여점. 우리 가게의 이름이야.”

“어떤 가게인가요?”

“자연에 스스로 발생하는 이물로 세상 만물을 돕는 가게.”

“세상 만물에 인간은 없나요? 그… 위아라는 것들만인가요?”

“물론 인간도 포함이란다.”

이리가 수묵화가 그려진 부채를 펼쳤다.

이제 보니 그 수묵화엔 긴 꼬리를 가진 쥐가 그려져 있었다.

“지금 이 이물로 널 도울 생각이야.”

지연이 씁쓸하게 팔을 늘어뜨렸다.

“저는… 돌아가면 기억을 잊는군요. 그래서 이렇게 하나하나 설명해 주시는 거지요?”

“맞아.”

“이런 꿈을 꿨다고…. 꿈으로라도 기억하고 있을 순 없나요?”

“불가능해.”

지연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아까처럼 패닉에 빠진다거나, 돌아가기 싫다고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다.

이리는 부채를 펼친 채 지연에게 다가갔다. 지연은 입술을 피가 나오도록 깨물며 말했다.

“저는… 평범한 게 싫어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건…. 초중고를 나와 대학 졸업 후 취업. 퇴직할 때까지 출퇴근만 반복하는 직장인. 그게 제게 놓인 길이에요. 저는 누구나 다 걷는 그 길을 걸어가고 싶지 않아요. 험난하더라도… 특별한 길을 가고 싶어요…….”

이리는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력 7월 20일에 태어나 초등학생 때 5년간 반장을 맡고, 중학생 때 용돈을 모아 어머니에게 값비싼 생일 선물을 드렸으며, 고등학생 때는 친구와 여행을 갔지.”

“…….”

“대학교에서는 남자친구와 보육원 봉사활동에 간 적이 있구나. 대학 졸업 후 면접 세 번 만에 취직했고, 회사에서는 월요일에 출근하면 반드시 데스크를 닦는 걸로 하루를 시작해. 오컬트를 좋아하며 특이한 동호회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까지, 이런 사람은 78억 인간 중 오직 너밖에 없는데 어째서 이게 평범한 걸까?”

“대체 무슨 소리세요? 7월 20일에 태어난 사람만 수만 명일 거예요. 5년간 반장을 맡은 사람도요. 학교 졸업 후 면접 세 번만에 취직한 사람은 수십만 명은 될걸요. 저희 회사에도 월요일에 책상 닦는 사람 저 말고도 있단 말이에요.”

“월요일에 책상을 닦는 다른 사람도 초등학교 때 5년간 반장을 맡았었대?”

“…….”

“사소하고 평범한 모든 경험들이 겹치는 사람은 이 세상에 너밖에 없어. 인구가 78억 명이나 되는데도 오직 한 명뿐이라니 정말 대단할 정도로 특별하지.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이렇게 유일하단다.”

“…….”

“그리고 너는 일단 나와 이런 대화를 나눈 것만으로도 더는 평범하다고 할 수 없잖아.”

“그럼 뭐해요……. 기억을 못 하는데.”

“이번 생에서 덕을 쌓으며 열심히 살다 보면 다음 생에서는 네가 원하는 삶을 어느 정도는 선택할 수 있을 거야. 우선은 네 어머니와 동생의 고통을 멈춰 주는 게 가장 먼저 쌓아야 할 덕이겠지.”

지연은 그런 막연함은 싫었다. 아득한 미래보다 바로 지금 이 현실에서 귀신과 요괴를 겪고 싶었다.

그러나 수척해진 어머니와 동생을 보고 있자니 더는 고개를 저을 수 없었다.

아주 미약한 끄덕임에 이리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지연은 작별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그냥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언젠간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을 품고 싶었다.

“조심히 돌아가렴.”

이리가 부채를 지연을 향해 한번 팔락였다.

그러자 지연의 몸이 차차 줄어들더니 하얀색 쥐로 변했다. 어른 주먹 두 개를 합친 크기의 흰 쥐는 잠깐 혼란스러운 듯 주위를 맴돌면서 킁킁거렸지만, 곧 가야 할 길을 아는 것처럼 침대 다리를 기어 올라가 자신의 몸으로 향했다.

흰 쥐가 귓구멍 안으로 들어갔다.

마뜩잖게 지켜보던 도진이 다가왔다.

“끝난 거예요? 당장 큰 변화는 없네요.”

“오래 비워 놓은 만큼 적응 시간이 필요하니까 바로 일어나지는 못할 거야. 그보다 방금 쥐 색깔 봤어?”

“네. 하얬네요.”

“흰 쥐 영혼은 흔치 않지. 정말 평범하지 않은 인간이었어.”

“완전 세상에서 제일 안 평범한 사람이 스승님 눈앞에 있는데요.”

도진이 뚱하니 내뱉자 이리는 귀엽다는 듯이 웃으며 올려다봤다. 뻔뻔하고 느물거리는 도진이지만 이리가 이렇게 쳐다보면 어쩔 수 없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제 돌아가죠. 오늘도 할 일이 많아요.”

“응.”

둘은 병실을 나섰다. 지연이 정신을 차려서 기뻐하는 가족을 보고 돌아간다면 좋겠지만, 대여점에는 둘을 기다리는 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병원에 머물던 자그마한 위아들이 이리와 도진을 보고 흠칫흠칫 놀랐다. 어떤 녀석은 호기심을 품고 다가왔고, 어떤 녀석은 멀리서 경계했으며, 어떤 녀석은 재빨리 도망쳤다. 그중에서 호기심에 다가오는 위아들의 수가 가장 많았다.

이리는 다가오는 위아들에게 상냥하게 인사했다. 도진도 상냥한 표정을 꾸몄다. 위아라는 존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리 선인’과 ‘이리 만물 대여점’을 인식한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모두가 잠재적인 고객들이므로 친절하게 대해야 했다.

“후우, 진짜. 친절한 척하는 것도 고역이에요.”

차에 오른 후에야 도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가 빙그레 웃었다.

“친절한 척한 거였어? 그 아이들은 그렇게 안 느꼈을 것 같네.”

“아,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얼마나 성질 팍팍 죽이면서 위아 고갱님들한테 최선을 다하는데. 서운하게 이러실 거예요?”

“조금만 더 성질 죽이자.”

“여기서 더 죽이면 뭐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살라는 거지. 치….”

도진이 툴툴거리며 차를 출발시켰다.

이리는 제자의 귀여움에 살며시 웃고는 마지막으로 병원 건물로 눈길을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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