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하지만 답답하기는 도진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정직원이긴 하지만, 사실 지금은 이리 혼자 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 수행 중인 도진은 잡다한 정리나 심부름만 할 뿐이었으니까.
이유는 도진이 아직 힘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이 힘은 육체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많은 설화 속에서 도력, 신력 등으로 다양하게 부르는 신묘한 능력. 그 능력을 위아 세계에서는 ‘덕(德)’이라고 부른다.
도진은 현재로서는 이 덕이 터무니없이 부족해 자유롭게 도술을 펼치지 못했다.
그는 신입이 들어오면 수행에 전념하여 덕을 충분히 쌓은 후 이리의 일을 나눠 받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이리도 조금 쉴 시간이 생길 것이다.
‘스승님을 향한 내 마음이 이렇게 지극한데 왜 받아 주시지 않으실까. 역시 짝사랑은 괴롭고 힘들어.’
짝사랑 중인 스무 살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처럼 느끼기 마련이다. 그게 바로 도진이었다.
“…….”
이리는 뒤통수에 따갑게 와 닿는 애틋한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작업을 해 나갔다.
* * *
이리 만물 대여점은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다. 고객들이 인간의 생활 리듬에 맞춰 움직이지도 않고, 이물의 처리 과정도 달빛을 받아야만 한다거나 특정 시간대에 진행해야 한다거나 하는 식이기 때문이었다.
밤 9시가 되자 이리가 도진을 집에 보내려고 했다. 도진은 이렇게 바쁜데 어떻게 혼자 가겠냐며 자진해서 연장 근무를 하고 결국 또 취침에 성공했다.
다음 날, 둘은 새벽부터 고객 맞을 준비를 했다. 예약 시간이 되자 딩동, 벨이 울렸다. 도진이 나가서 두눈큰입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어서 들어오세요.”
“그대가… 새로운… 직원인가…….”
“맞습니다. 일단 들어오세요.”
두눈큰입은 널따란 흰 얼굴에 점처럼 작은 두 눈, 상대적으로 커다란 입을 가진 위아였다. 키는 도진의 허리까지 오고 팔다리는 없었다.
널따란 얼굴이 도진의 뒤를 따라 데굴데굴 굴러 왔다.
잘 꾸며진 상담실에 두눈큰입을 앉히고 고객용 차를 내왔다. 두눈큰입이 찻잔을 통째로 커다란 입에 넣고 와그작 씹어 삼켰다. 그 모습을 보고 도진이 경악했다.
“아, 뭐하는 거야! 차만 마셔야지 왜 컵까지 깨 먹어? 이게 하나에 얼마짜린데!”
“주, 주니까 먹었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미치겠네. 하아. 나만 답답하지. 나만 답답해. 이러니까 내가 적덕을 못하지.”
도진이 화를 내자 두눈큰입은 어쩔 줄 몰랐다. 흰 얼굴이 점점 노래졌다.
대여점의 고객들은 대부분 도진에게 꼼짝을 못했다. 그의 기운이 너무 거칠고, 거센 탓이었다.
도진은 고객한테 화를 내면 평판만 깎일 뿐이라 그냥 상담실을 나갔다. 그러다 마침 들어오려던 이리와 마주치고는 움찔했다. 이리는 특유의 말간 표정으로 도진을 올려다봤다.
“도진아. 두눈큰입의 갈래가 무엇이지?”
도진이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가 대답했다.
“요물……?”
“…….”
“요괴……?”
“…….”
“요물도 요괴도 아니면…….”
초목과 짐승에서 진화한 위아는 요물 단계를 거쳐서 영물 혹은 요괴로 갈라진다. 영물 다음 단계는 신수나 신령, 요괴 다음 단계는 악신. 악신일리는 없으니 신수나 신령인데, 신수는 굉장히 드문 존재다. 그렇다고 도진의 판단에 저 위아는 신령만큼의 덕을 지니지도 않았다. 그럼 남은 건 하나였다.
“잡귀였군요. 초목과 짐승이 아니라 사물에 뿌리를 뒀기 때문에 사물을 흡입한 거고.”
“그래. 맞아.”
“…들어가서 사과할까요?”
“네가 하고 싶으면.”
“…….”
도진은 ‘굳이 사과까지야’ 싶었다. 이리가 마음을 읽고서 옅게 웃었다.
“다음에는 화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 너는 적덕을 해야 하는 신분이니 남의 미움 살 일은 최대한 자제하는 게 좋아.”
네에, 도진이 대답했다.
이리가 들어가서 상담하는 동안 도진은 아주 짧게 반성하고는 곧 찻잔을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진이 아류개미의 식량에 필요한 재료들을 모으는 동안 이리와 두눈큰입의 상담이 끝났다.
고객을 내보내고 둘은 어제의 계획대로 바로 외출 준비를 했다.
“이러고 나가시게요?”
“응.”
“…….”
도진이 이리가 입은 하얀 생활한복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스승님. 3월 산이 얼마나 추운지 아시…겠죠, 물론. 아시면 옷을 더 껴입어야 할 텐데, 왜 이러실까. 저한테 끌어안아 달라고 이러시는 건가.”
“바깥에서 얼마나 길게 머문다고.”
“그래요. 내가 챙겨야지 뭐. 이리 선인님이 이렇게 헐렁한 분이라는 걸 세상 만물이 알아야 하는데.”
도진이 툴툴거리며 두꺼운 외투를 가지고 나왔다. 흔히들 롱패딩이라고 부르는 외투였다. 이리는 3월에, 선인에게, 롱패딩이라니 과한 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자의 심신 안정을 위해 가만히 입어 줬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차는 선팅이 된 검은색 밴이었다. 본래 모습은 자동차가 아니라 용마(龍馬)로, 용의 대가리를 한 아주 멋진 말이었다. 선인이 되면 모두 용마가 한 마리씩 생긴다. 이리는 용마를 현대에 맞춰 자동차로 변형해서 타고 다녔다.
운전석에는 도진이 앉고 이리는 뒷좌석에 앉았다.
[ ̄︶ ̄/]
용마가 내비게이션을 통해 인사해 왔다. 도진과 이리도 안녕, 했다.
차고지 문을 열고 막 나가려는 그때였다. 도진이 한숨을 팍 내쉬었다.
“아오, 씨. 존나 귀찮게 하네.”
“도진아. 말 조심.”
“죄송합니다. 근데 진짜 너무 끈질기잖아요.”
차고지 문 앞에서 요즘 계속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그 사람이 두 손을 번쩍 들고 흔들고 있었다.
“영상에 나온 사람들이 우리라고 아주 확신하는 모양이에요.”
이리가 불청객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타라고 해.”
“네?”
“태우자고.”
“…저희 지금 산신령 만나러 가는데요?”
“알아.”
이리가 반들거리는 까만 눈으로 도진을 쳐다봤다. 그 맑고 청초한 눈빛에 도진은 더 이상 저항 없이 문을 열고 내렸다. 그리고 여자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 도진의 얼굴은 내내 험악했고, 여자는 신이 난 아이처럼 명랑했다.
“아, 안녕하세….”
당차게 인사하려던 여자는 부드럽게 미소 짓고 있는 청년을 보고 멈칫했다. 이리는 어여쁜 외모도 외모지만, 기운이 너무나 맑아서 늘 사람을 이렇게 멈칫하게 만들었다. 너무 깨끗한 거울에 맨 얼굴이 비치면 멈칫하게 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거기 말고 조수석에 앉으시죠?”
“아, 네!”
이리의 옆에 앉았던 여자가 도진의 험악한 의문문에 얼른 일어나 조수석에 앉았다. 어제와 비슷한 얇은 면티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겉모습은 말끔했으나 도진에게는 오컬트 오타쿠로만 보였다.
오컬트 오타쿠는 전설의 ‘퇴마 영상’ 주인공들과 동승한 것만으로도 좋은지 흐어어, 어흐흐, 어으어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댔다.
“안녕하세요. 퇴마 영상, 맞죠? 그렇죠? 진짜 영광이에요…. 하, 검색하니까 대지구 우주진리교? 그런 사이비 종교는 안 나오더라고요.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지 진짜…….”
“이름이 뭐예요?”
“미, 민지연이요.”
“사는 곳은?”
“사는 곳은…….”
지연이 이리를 힐끔거렸다. 선인을 처음 보면 흠칫하고, 두 번째 보면 힐끔거리고, 세 번째에는 친근하게 느낀다. 그 3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5분 정도였으므로, 민지연은 곧 이리에게 마음을 열게 되었다.
“서울 중랑구에 살아요. 28살이고요. 직장인이고…. ‘새보름’ 회원이에요!”
“새보름?”
“오컬트 동호회요! 실시간으로 퇴마 영상 본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데, 두 분의 촬영 장소가 전북 폐가였던 것도 저희가 알아냈어요. 저희끼리는 새보르미 연구회라고도 불러요. 저희 전북 폐가 진짜 스무 번도 넘게 갔잖아요. 거기서 하룻밤 묵은 적도 있고 또 이석진 아시죠? 석진 오빠도 저희 회원이고…….”
이석진은 출연만 하면 바로 천만 관객을 찍는 유명한 영화배우인데, 지금까지 수많은 매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오컬트 마니아임을 어필해 왔다. 얼마 전 방송에 나와서 퇴마 영상을 언급하며 다시 화제를 일으켰던 연예인도 이석진이었다.
주절주절 떠드는 지연에게 이리가 방긋 웃으며 물었다.
“귀신 좋아해요?”
“어… 엄청요!”
민지연의 목소리가 커졌다.
“옛날부터 좋아했어요. 제가 기가 센 건지 한 번도 기이한 일을 겪은 적은 없지만, 퇴마에 대해서도 정말 많이 공부했어요. 현존하는 퇴마 관련 서적은 전부 읽었고, 서양이랑 동양 귀신에 대해서도 공부하고. 퇴마 영상도 귀신이 너무 좋아서 어차피 바이럴이겠지, 하면서도 본 거였거든요. 그리고 그 영상이 제 인생을 바꿨죠. 저는 진짜 귀신을 봤어요.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그건 정확히는 귀신은 아니었어요. 그리고 저희는 퇴마 일도 하지 않고요.”
“괜찮아요! 퇴마가 아니어도 돼요. 저는 그냥 단지, 뭔가 신기하고 기이한 일을 겪고 싶어요. 제 삶은 너무 따분해서……. 언제나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일상이 지긋지긋해서. 저 같이 평범한 사람은 영원히 겪지 못할 신비한 일들을 저도 겪고 싶어요. 그 영상이 제 인생에 있어서 유일하게 신비로운 것이었어요. 제발, 두 분과 함께하게 해 주세요.”
함께하게 해 달라는 말은 즉, 그런 기이하고 신비로운 일을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했다. 귀신을 보고 싶어 하고, 요괴를 만나고 싶어 하는 인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