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 Thrill Out (5/16)

달칵 소리와 함께 서랍의 잠금장치가 풀렸다. 장진우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수리공은 친히 서랍을 슬쩍 잡아당겨 열어 보이곤 열쇠 구멍에서 가느다란 공구를 빼냈다.

“다 됐습니다. 확인해 보시죠.”

수리공이 물러나자마자 다급히 서랍 손잡이를 잡았다. 서랍은 걸리는 것 없이 수월하게 열렸다. 안에 든 물건들을 확인하려다 아직 돌아가지 않은 수리공을 의식했다.

“아, 수고하셨습니다.”

바로 지갑에서 지폐 몇 장을 꺼내 건넸다. 얼결에 돈을 받은 수리공은 아리송한 표정이 됐다. 출장비라기엔 턱없이 많은 금액이었기 때문이다.

“저, 선생님….”

“금액이 부족한가요?”

“아뇨. 그게 아니라….”

“늦은 시간에 고생 많으셨습니다. 살펴 가시죠.”

장진우는 더 말할 것 없다는 듯 인사를 건넸다. 얼떨떨하게 서 있던 수리공은 멋쩍게 뒷머리를 만지작거리다 꾸벅하고 진료실을 나갔다. 장진우는 그를 배웅하듯 따라가서 진료실 문을 꽉 닫았다. 누가 들어올까, 확실히 잠가 두기도 했다.

다시 김제국의 책상으로 돌아와 서랍을 확 당겨 열었다. 문제의 메모리 카드가 보였다. 한 개도 아니고, 수십 개에 달했다. 저절로 욕설이 튀어나왔다.

“변태 새끼.”

김제국이 장진우 자신과 주완의 관계를 눈치챈 건 언제부터였을까.

‘장 선생, 또 당직이야?’

언제부터인가 김제국은 장진우를 걱정하는 척, 장난스레 타박하곤 했다. 그 음흉하던 웃음이 뭘 의미하는지 까맣게 몰랐다. 찍힌 영상을 감상하며 그걸 어떻게 써먹을까 즐겁게 고민했을 김제국을 떠올리자 부아가 치밀었다. 그 메모리 카드들 외에 또 다른 증거 자료가 있는 건 아닌지 우려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제국의 진료실을 다 뒤져도 특별히 의심 가는 물건은 없었다. 장진우는 어지럽혀진 김제국의 진료실을 본래대로 정돈해 두고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인적 없는 복도를 지나, 제 진료실로 들어선다. 재차 안에서 문을 잠그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곤 수많은 메모리 카드 중 하나를 노트북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 안에는 날짜별로 정리된 영상 파일과 그 영상들에서 캡처한 듯한 이미지 파일이 수십 개씩 저장돼 있었다. 그중 하나를 재생했다가 입을 막았다. 주완의 얼굴도, 장진우 자신의 얼굴도 선명하게 찍혔다. 두 사람의 행위 역시 웬만한 성인 콘텐츠보다 적나라했다. 새삼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장진우는 바로 메모리 카드를 빼서 철제 쓰레기통 안에 넣었다. 다른 메모리 카드들도 모조리 쏟아붓고 종이에 불을 붙여 던졌다. 머지않아 메모리 카드에 불이 붙으면서 매캐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했다. 역겨운 냄새를 풍기며 피어오르던 검은 연기는 서서히 차가운 겨울바람에 씻겨 창문 밖으로 흘러 나갔다.

마지막으로 노트북 사용 기록도 삭제했다. 그제야 비로소 체증이 내려가는 듯했다. 장진우는 금세 까맣게 탄 메모리 카드들의 잔해를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장진우 자신의 약점을 잡은 김제국도, 그의 메모리 카드들도, 그리고 주완까지도.

“…….”

아니, 그런가? 돌이켜 보면 김제국이 팔아 치운 사람 중에 다시 병원으로 복귀한 사례가 더러 있었다. 비교적 저렴한 장기를 떼여, 생명 부지에는 크게 이상이 없는 경우였다.

하지만 대부분은 홀연히 사라진 후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이런 사람들은 서류상으로 ‘퇴원’ 처리됐는데, 주완도 그중 하나였다.

그렇다면 그도 다신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신세가 된 걸까? 어쩌면 그의 동생이라던 우형석이 김제국을 손보기 전에 주완을 찾아 데려갔을 수도 있다. 그로 인해 주완이 어딘가에 멀쩡하게 생존해 있을 수도.

확률이 낮은 가정일지언정 제 두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으니, 다 끝났다고 여유를 부릴 순 없었다. 조심해서 나쁠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장진우는 창문을 닫고, 뭔가를 태운 흔적만 남은 쓰레기통을 챙겨 제 진료실을 나섰다. 문을 잠그고 아무 일도 없었던 양 복도를 걸어 나갔다. 희미한 형광등 아래 빠른 보폭으로 병원을 벗어나는 그의 그림자가 유유히 미끄러졌다.

유복한 가정, 유능한 아버지, 자애로운 어머니. 평탄했던 삶이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했던 건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그날,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여기까지 오진 않았으리라고 감히 확신할 수 있었다.

당시 레지던트 3년 차였던 장진우는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생활에 지쳐 가고 있었다. 밤낮이 따로 없는 응급실에서 쉴 새 없이 밀려드는 환자들을 돌보고 있노라면 진이 다 빠졌다. 아무런 사고도 할 수 없고, 어떤 의욕도 없던 시기였다.

눈 붙일 틈 없이 바쁘게 뛰어다녀도 좋은 소리 한 번 듣지 못했다. 환자의 보호자들에게 드잡이를 당하고, 선배들에겐 사소한 걸 빠뜨렸다며 정강이를 걷어차였다. 정말 죽지 못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심정이었다.

그날도 그런 날 중 하루에 불과했다. 아니, 장진우 자신이 고집만 부리지 않았다면 필시 그렇게 무난히 지나갔을 터였다.

새벽에 헬기로 긴급 수송됐던 환자는 산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추락 사고를 당했다고 했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심각했다. 숨을 쉴 때마다 가르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코와 입으로 울컥울컥 새빨간 피가 솟구쳐 나왔다. 숨쉬기가 곤란한지, 산소 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다. 바이털도 좋지 않았다.

환자의 기도가 부어 기도 삽관은 어려웠다. 그럴 때 시도하는 게 기관지 절개술이었다. 문제는 그걸 시행할 전문의가 상주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무수한 콜을 보냈지만, 당장 달려올 사람이 없었다.

그대로 두면 환자가 위험했다. 뭐든 해야 했다.

누군가가 덜컥 팔을 잡아채는 바람에 퍼뜩 의식이 돌아왔다. 어느새 덜덜 떨리는 손에 메스가 들려 있었다.

‘설마, 하려고?’

‘해야지. 그냥 두면 위험하잖아.’

‘그러다 잘못되면?’

‘손 놓고 있어도 마찬가지야.’

동료는 장진우에게서 손을 뗐다.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기도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명백하게 네 책임이라고, 선을 긋는 것 같았다. 역시 그때, 그만뒀어야 했을까?

결국, 장진우의 처치를 받은 환자는 쇼크로 의식을 잃었고 다신 눈을 뜨지 않았다. 유가족은 소송을 걸었지만, 당시 병원에 도착한 환자의 상태가 매우 위중했었다는 사실이 인정되면서 패소했다. 그 뒤로 누구도 장진우에게 죄를 묻지 않았다.

하지만 견딜 수가 없었다. 떨리는 손이 미끄러지면서 메스 끝이 예상보다 깊숙이 파고 들어갔던 감촉을. 그 뒤로 수련의를 마치고 전문의를 획득한 후로도, 그날의 악몽을 떨치기가 어려웠다. 메스만 잡아도 손이 떨렸다. 외과 의사에겐 치명적인 트라우마였다.

의학부 시절에도 수석을 도맡아 했고, 주변의 기대가 상당했기 때문에 좌절감 역시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그렇게, 반년 만에 도망치듯 숨어든 곳이 바로 중앙 정신 병원이었다.

장진우의 아버지인 장철민이 이사장이지만, 실제 설립자는 그의 할아버지였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러 결탁의 수단으로 운영됐다. 그 병원에 입원했던 환자들은 시대적 정치범부터 유명 정‧경계 인사와 그 가족까지 실로 다양했다.

그곳에선 누구도 장진우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그의 이력에 관심을 두는 일도 없었다. 전공이 정신과가 아닌 것조차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외부에서 따로 감사를 나온 적도 없었던 것 같다. 그야말로 방치되고 잊힌 무법 지대나 다름없었다.

제대로 치료나 상담이 진행됐을 리 만무하다. 그저 환자들에게 일정하게 약물만 주입하면 그만이었다. 환자가 난동을 부려도, 발작을 일으켜도, 얌전하게 굴어도 날마다 주입되는 약물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러면 대개는 금세 기운을 잃고 조용해졌다.

하지만 411호실만큼은 예외였다. 그곳의 환자는 하루가 멀다고 소란을 피웠다. 그럴 때마다 김제국은 성가셔 죽겠다는 표정으로 주사를 챙겼다. 한번은 몸부림이 너무 심해 바늘이 부러진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환자는 무의미한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같은 일이 반복됐다.

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지치지도 않는 걸까. 미약하던 호기심은 그 병실의 주인, 주완을 만나면서 금세 풀렸다.

깜빡 잊고 두고 온 책을 찾아 휴게실에 갔을 때였다. 책을 놓아둔 자리에 주완이 앉아 있었다. 그는 별 재미도 없을 인문학 서적에 심취해, 장진우의 인기척조차 인지하지 못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을 되뇌는 목소리는 희미했고, 불안정하게 떨리고 있었다.

‘자, 휴식 시간 끝났습니다. 환자분들 모두 병실로 돌아가실게요!’

간호조무사가 멀리서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제야 주완은 화들짝 놀라 책을 덮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키던 그는 장진우를 맞닥뜨리자마자 돌처럼 굳었다. 책을 품에 안은 그의 두 눈에 감출 수 없는 당혹감과 두려움 같은 것이 교차했다. 그건 곧 자신에게 쏟아질 멸시와 조롱에 관한, 앞선 절망이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어떤 처분만을 기다리는 그를 보고 있자니, 속에서 묘한 정복욕이 꿈틀거렸다. 심장이 요란하게 들썩거리는 게, 단순한 흥분이나 떨림과는 사뭇 달랐다.

너그러워 보이는 미소를 지었다.

‘빌려줄까요, 그 책?’

예상대로 주완의 낯에 의아한 기색이 번졌다. 초점 없던 두 눈이 동그래지면서 장진우를 가득 담아냈다. 그렇게 보니 그늘이 져서 그렇지, 제법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그날, 간호조무사에게 쫓기다시피 병실로 돌아가면서도 주완은 연신 고개를 돌려 장진우를 바라봤다. 그 필사적이고도 절박한 눈빛에 목덜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정상과 비정상의 세계를 구분 짓는 문 앞에 멈춰 선 그는 책을 소중하게 꼭 끌어안은 채 장진우를 향해 꾸벅 고개를 숙였다. 정체 모를 희열이 온몸을 꿰뚫고 뇌리를 직격했다.

더 건드려 보고 싶었다. 저로 인해 그 목석이나 다름없던 사람이 어디까지 반응할지 궁금했다. 시작은 그 정도였다.

주완은 장진우에게 꼬박 2주 만에 책을 돌려주면서 못내 멋쩍어했다. 그도 그럴 게, 새것이나 다름없던 책이 그새 10년은 된 것처럼 너덜너덜해졌기 때문이다. 몇 페이지는 기어이 뜯겨 나왔는지 고른 절단면 사이사이에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기도 했다. 도대체 얼마나 반복해서 그 책을 읽은 건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피식 웃자, 주완의 어깨가 흠칫 떨렸다. 슬며시 고개를 든 그의 낯엔 얼떨떨한 표정이 걸려 있었다.

‘이게 그렇게 재밌었어요?’

‘…….’

‘그럼 이건 더 재밌을 텐데. 한번 읽어 볼래요?’

대수롭지 않게 다른 책을 권했다. 그러자 주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오랫동안 굳어 있었을 입꼬리가 조금 꿈질거린 것에 불과했지만, 분명히 서툰 웃음이었다.

앙상하디앙상한 손목을 잡아챘다. 주완은 피하지 않았다. 그 손등에 가만히 입술을 묻었을 때도 생경한 눈빛을 할 따름이었다. 하루하루 그에게 다른 책을, 잡지를, 일간지를 선물했다. 주완은 언제든 장진우가 주는 모든 것을 기껍게 받았다.

언젠가 주완이 신문에 실린 퍼즐을 다 풀었다며 환하게 웃었던 적이 있다. 그를 말없이 보다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는 다소 놀란 듯 어깨를 굳히긴 했지만,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다음에도, 그리고 또 그다음에도.

산송장 같던 사람에게 표정이 생기고, 없던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죽어 가던 사람을 살려 내는 기분이 그런 걸까. 그맘때의 주완을 보고 있으면 장진우 자신이 마치 신이라도 된 것 같았다.

매일 소란이 벌어지던 투약 시간, 김제국을 대신해 주완을 찾아갔다. 그러곤 이불을 뒤집어쓴 채 떨고 있던 그에게 나직이 속삭였다.

‘이제 약 같은 건 안 먹어도 돼요. 주완 씨 아픈 거 아니잖아.’

그때 주완은 기적이라도 만난 것처럼 굴었다. 정말 그래도 되냐고 절실하게 매달리는 눈빛엔 당해 낼 재간이 없었다.

남자를 상대로 발정하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더구나 환자에게.

하지만 그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어떤 강렬한 충동이 이성을 짓누르고 몸을 지배했다. 장진우 자신만이 세상의 전부인 사람의 모든 걸 집어삼키고 싶었다. 정신없이 닫힌 몸을 열고 들어가 속살과 체온을 만끽했다. 제 손으로 소생한 존재가 온몸과 마음으로 자신을 욕구하길 원했다.

정신을 차린 건 이미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일탈에 맛을 들인 후였다. 불 보듯 뻔한 결말뿐인 관계를 지속하면서, 주완에게 향하는 발길을 멈출 수 없었다. 본디 파멸만이 전제된 관계는 그로써 강한 자극이 되고, 남다른 스릴을 선사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주완은 언제부터인가 처음 만났던 그때처럼 서서히 표정을 잃어 갔다. 어떤 선물로도 그의 반응을 얻을 수 없었다. 원래도 말수가 많지 않았던 그는 끝내 입까지 다물어 버렸다.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구석까지 몰아 놓고 괴롭혀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정말 절 꺼내 줄 수 없나요?’

한번은 주완이 직접 그렇게 물었던 적도 있다. 정말 꺼내 줄 방법이 없는 건지, 아니면 꺼내 줄 의지가 없는 건지.

‘또 투정이네, 우리 주완 씨.’

장진우는 픽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러곤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 주고, 잘 자라며 입도 맞춰 줬다.

이후로 주완은 좀처럼 장진우와 말을 섞지 않았다. 웬만해선 눈도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그는 하루하루, 빠르게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멈출 수 없었다. 아니, 어찌 되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박주완은 장진우 자신의 손아귀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을 테니까.

며칠 전까진 분명히 그랬었는데, 오산이었다.

‘선생님은… 정말 절 꺼내 줄 수 없나요?’

장진우는 어둠이 내린 도로를 질주하며 지난 일을 회상했다. 정말 자신을 꺼내 줄 수 없냐던 주완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주완과의 관계를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를 바깥으로 끄집어내 굳이 골치 아픈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어디에 있든 변함없이 장진우 자신의 영역 안에 머물게 될 거였다. 어차피 자신이 아니면 누구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러니 이왕이면 위험하지 않은 선택을 한 것뿐이다.

하지만 늘 손 닿는 곳에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주완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이름 모를 상실감이 밀려왔다. 당연히 제 것이었는데, 이제는 어디인지도 모를 곳으로 아스라이 증발해 버렸다. 아무리 손을 뻗고 휘저어도 그에게 닿을 수 없다.

일종의 금단 증상인 걸까. 이상하게 초조하고, 자꾸 감질이 났다.

그건 그렇고.

“…뭐지?”

룸미러를 빤히 봤다. 그곳에 검은 세단 한 대가 비쳤다. 그 차가 눈에 띈 건 병원을 막 벗어났을 무렵이었다. 늦은 시간이라 왕복 2차선 도로가 텅 비다시피 했는데도, 추월하지도 않고 장진우의 뒤만 바싹 따라온다. 조짐이 좋지 않았다.

장진우는 확인차 문을 모두 잠그고 도로 한쪽에 잠시 정차했다. 그러자 뒤쫓아 오던 검은 세단이 그 곁을 유유히 지나쳐 갔다.

괜히 긴장했나. 그저 방향이 같았을 뿐인데. 픽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얼마 안 가 서서히 속력을 줄이며 멈춰 서는 검은 세단을 보고 싹 걷혔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들의 목표는 장진우 자신인 게 분명해 보였다.

장진우는 다시 차를 움직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듯 본래 차선대로 주행하다가 어느 순간, 반대편 차선으로 핸들을 틀어 빠르게 검은 세단을 지나쳤다. 그러면서 찰나나마 검은 세단 쪽의 동태를 살폈다. 짙게 선팅된 탓에 안을 들여다볼 수 없었지만, 장진우의 차가 곁을 지나치던 순간, 앞뒤 좌석의 검은 인영들이 일제히 장진우 자신을 돌아보는 게 느껴졌다. 등골이 서늘해졌다.

누가 보냈을까.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주완의 동생이라며 병원으로 찾아왔던 우형석. 차 번호까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그가 타고 왔던 차도 저 검은 세단과 동일 차종이었다.

설마 우형석이 기어이 다 알게 된 건가. 예상대로 김제국이 그에게 잡혀 실종된 거라면, 김제국은 순순히 혼자 죽지는 않을 터였다. 우형석에게 주완과 관련된 모든 비밀을 나불댔을 게 자명했다. 조금 전 장진우 자신의 손으로 모든 증거를 없애 버리긴 했지만, 왜인지 우형석이라면 그딴 건 신경 쓰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확신이 들었다.

행여 우형석에게 잡히면 김제국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게 될 거였다. 그렇게 호락호락 당해 줄 순 없었다.

경찰서로 직행하면 검은 세단도 추격을 포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경찰과 얽혀서 곤란해지는 건 우형석뿐 아니라, 장진우 자신과 병원도 마찬가지였다.

고민하는 사이 교차로가 나타났다. 집으로 가려면 좌회전해야 하지만, 오히려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아 직진했다. 이번에도 검은 세단은 장황한 엔진 소음을 발산하며 장진우를 따라왔다.

반대편 차로에는 간헐적으로 차가 한 대씩 지나갈 뿐이었다. 그래도 타이밍만 잘 맞춘다면 추격자를 따돌릴 순 있을 터였다.

장진우는 기회를 엿보며 빠르게 내달렸다. 그러다 중앙 분리대가 사라지자, 브레이크를 밟아 순간적으로 속력을 줄이면서 단번에 유턴했다. 뒤쫓아 오던 검은 세단도 서둘러 따라오려 했지만, 차가 크게 헛돌면서 바로 차머리를 돌리지 못했다.

곧 반대편 차선에서 달려오던 다른 차가 길을 가로막고 있는 검은 세단을 향해 날카로운 경적을 울렸다. 급정거로 타이어가 노면과 거칠게 마찰하며 마모되는 소음도 잇따랐다. 장진우는 계속해서 현장을 벗어나고 있었으므로 결국 두 차가 서로 충돌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저 더는 룸미러에 보이는 차가 없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머지않아 조금 전 그냥 지나쳤던 교차로가 나타났다. 서서히 속도를 줄여 매끄럽게 우회전하려던 장진우는 그러나,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예기치 못한 뭔가가 우회전하려던 방향에서 확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개나 고양이 따위는 아니었다. 순간적으로 핸들이 제멋대로 붕 돌아가는 게 느껴졌다. 찢어질 듯한 타이어 마모 소음이 울려 퍼지며 차가 끝도 없이 미끄러졌다.

차는 곧 뭔가와 격하게 부딪히며 멈춰 섰다. 그 여파로 몸이 크게 들썩이면서 안전띠가 가슴을 꽉 옥좼다. 덜컥 숨이 막혔다. 차체에 박은 머리도 멍하게 울렸다.

“…으윽.”

장진우의 차가 들이받은 건 길가에 듬성듬성 심어진 가로수였다. 차에 받혀 부러진 나무 윗부분이 차의 전면을 덮고 있었다. 그 충격으로 앞 유리엔 방사형 금이 갔다.

장진우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자신의 진로를 방해하며 갑자기 튀어나왔던 것의 정체를 파악하려 반대편 차선을 응시했다. 문제의 방해물은 아직 그 자리에 있었다. 이내 장진우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던 건 그 방해물이 다름 아닌, 그를 뒤쫓아 왔던 검은 세단이었기 때문이다.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삽시에 등줄기가 서늘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한참 그 자리 그대로 머물던 검은 세단의 차창이 반쯤 내려갔다. 거리가 멀고 차 안이 어두워, 탑승자들의 면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건 그쪽에서 장진우 자신을 똑똑히 주시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마치 암묵적으로나마 어떤 경고를 던지는 것 같은, 집요한 시선이었다.

이윽고 도로에는 인적이 뚝 끊겼다. 건널목의 신호등만 일정한 주기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검은 세단의 창문이 스르륵 올라갔다. 이어 방향을 바꾼 차는 빠른 속도로 장진우로부터 멀어져 갔다.

장진우는 그 뒤꽁무니를 하염없이 지켜봤다.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렇게 됐다. 두 발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았다.

한참 만에야 고개를 저어 정신을 차렸다. 허둥지둥 다시 차에 올랐다. 그러곤 사고를 신고할 생각도 하지 않고 후진해서 제 차를 덮친 가로수에서 벗어났다. 차 안으로 유리 파편과 나뭇가지가 우수수 떨어졌다. 개의치 않고 검은 세단이 사라진 반대 방향으로 거침없이 질주해 나갔다. 그런 장진우의 얼굴은 희게 질려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

취기로 얼굴이 달아오른 장철민은 비틀거리며 룸살롱을 나섰다. 차까지 데려다주겠다는 일행들의 손길도 마다한 채였다.

평소라면 운전기사가 으레 가게 안까지 들어와 부축했을 텐데, 오늘따라 그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또 차에서 곯아떨어진 건가. 개에게도 사람다운 대우를 해 주면 제가 사람인 줄 안다더니, 딱 그 꼴이었다. 장철민 자신이 좀처럼 큰소리를 안 내고 점잖게 구니까, 고용주 무서운 줄을 모른다. 속으로나마 한탄하며 밖으로 나갔다.

바로 대기 중인 자신의 차가 보였다. 태평하게 음악까지 듣고 있는지, 그 소음이 차 밖까지 왕왕 울렸다. 장철민은 고개를 저으며 뒷좌석 문 쪽으로 걸어갔다. 평소라면 얼른 내려 문을 열어 줬을 운전기사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잠깐 자리라도 비웠나 싶어 안쪽을 들여다봤지만, 버젓이 운전석에 사람의 실루엣이 비쳤다. 한참 운전석을 쏘아보던 장철민은 대놓고 혀를 차며 스스로 뒷좌석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차 안엔 최신 가요가 쿵쿵거리며 요란스레 울리고 있었다. 고막을 찢을 듯한 소음에 장철민의 미간이 확 찌푸려졌다. 뒷좌석에 몸을 앉히자마자 일부러 크게 헛기침해 봤지만, 운전기사는 좀처럼 음량을 줄이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는다.

“이봐, 자네….”

기어이 한마디 할 작정으로 운을 떼다 멈칫했다. 그의 차 뒤쪽에서 전조등을 켠 채 검은 세단 한 대가 유유히 다가왔기 때문이다. 지독한 눈부심에 두 눈이 절로 가늘어졌다.

한참 빛 공해를 퍼붓던 세단은 불시에 전조등을 껐다. 그리고 그 직후, 세단의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눈에 봐도 조폭인 사내들이 내렸다. 그들은 장철민의 차를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불안해진 장철민이 서둘러 문을 잠갔지만, 잠금장치는 바로 달칵 소리를 내며 다시 열렸다. 장철민은 당황한 얼굴로 운전석을 돌아봤다. 그제야 그를 마주 보는 운전석의 남자는 장철민이 고용한 기사가 아니었다.

곧이어 뒷좌석의 양쪽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사내들이 하나씩 들어와 앉았다. 장철민은 얼결에 그 둘 사이에 끼인 꼴이 됐다. 사내 중 하나가 날이 예리한 나이프를 장철민에게 내보이더니, 곧 그것을 그의 복부에 꾹 가져다 댔다. 덜컥 숨이 막혔다.

보조석 쪽으로 접근했던 사내는 문만 열어젖힌 채 잠자코 서 있었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세단의 뒷문이 열리더니 그곳에서 우형석이 내렸다. 그는 제 수하가 열어 둔 보조석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 앉았다. 그가 착석하자마자 수하가 조용히 문을 닫아 주었다. 그로써 장철민은 완전하게 포위당했다.

“누, 누구요…!”

장철민의 목소리가 볼품없이 떨렸다. 우형석은 놀리듯 그의 말투를 따라 하더니 피식 웃었다. 장철민의 양옆에서 그를 붙잡고 있던 사내들은 따라 웃지 않았다.

곧 우형석이 고개를 슬쩍 비틀어 장철민을 응시했다.

“영감님이 중앙 정신 병원 이사장, 장철민이야?”

“그렇습니다만, 대관절 이게 무슨 짓입니까?”

장철민은 분주히 사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파악하려는 의도보단 여기서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을지를 가늠해 보는 것 같았다.

우형석은 이마를 긁적이며 성가신 어조로 대강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 병원 환자 중에 박주완이라고 있어요. 아니, 있었지. 어쨌든 내가 그 작자 동생 되는 사람인데. 얼마 전에 박주완을 퇴원시켜 달라고 했더니, 그 병원 김제국이란 의사가 당장은 곤란하다더라고? 뭐라더라? 원장 허락을 받아야 된다고 그랬나? 그런데 뒤가 좀 구려 보여야죠. 내가 그런 식으로 남 뒤통수 까는 놈들 한두 번 본 게 아니라서. 우리 애들 좀 풀어서 알아봤더니 그 인간, 그거 아주 물건이던데? 영감님도 알고 있었어요? 그 인간이 영감님 병원 환자들 야금야금 팔아넘기고 있었다는 거.”

“무슨 소립니까? 처음 듣는 얘깁니다.”

장철민이 미간을 찌푸리며 정색했다. 이 와중에도 펄쩍 뛰는 게, 김제국의 만행에 관해선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우형석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곤 다시 입을 열었다.

“부정하고 싶겠지만, 안타깝게도 다 사실이고요. 중요한 건 그 의사가 하필 박주완까지 홀랑 팔아넘겼다는 거겠죠. 그러곤 잠적해 버렸어. 이렇게 된 마당에 난 대체 어디에 가서 내 핏줄을 찾아야 할까요, 영감님?”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난 전혀 모르는 일이고, 관계도 없는 일입니다.”

“어떻게 관계가 없어요. 그 병원이 영감님 건데.”

“나한테 원하는 게 대체 뭐요!”

“그래, 이렇게 나오셔야지.”

우형석이 픽 웃으며 뒷좌석에 앉은 사내에게 가볍게 눈짓했다. 그러자 그 사내가 어떤 종이를 꺼내 장철민이 잘 볼 수 있도록 적당히 펴 들었다. 거기에 적힌 글귀를 읽어 내리던 장철민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 종이는 오늘 날짜로 작성된 차용서였다. 상당한 액수가 적혀 있었다.

“골치 아픈 일이잖아요. 아무리 버린 거나 다름없는 병원이래도 영감님이 이사장인 이상 책임은 져야 할 텐데. 행여 거기서 벌어진 만행이 전파라도 타 봐. 어떻게 되겠어요? 거기다 영감님 아들도 그 병원 의사라면서? 그럼 동료 의사가 어떻게 뒷돈 챙기는지, 모르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래서, 입막음 조로 돈을 내놓으란 겁니까?”

“아니, 그렇게 표현하시면 서로 기분밖에 더 상하나. 어찌 됐든 난 내 핏줄을 찾아야겠고, 요즘 온통 거기에 정신을 쏟았더니 일을 통 못해서 우리 애들이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거든. 영감님 여기저기 좋은 일도 많이 하신다니까, 사람 하나 살리는 셈 치고 후원이나 하시죠?”

결국은 돈이다. 우형석이 건넨 차용증은 곱게 접혀 장철민의 재킷 안쪽에 넣어졌다. 장철민은 한발 물러서면서도 호락호락하게 굴지 않았다.

“일단 당신 얘기가 모두 사실인지, 진위부터 가리는 게 순서겠죠. 사실 확인만 되면 얼마든지 원하는 대로 해 드리리다.”

“뭐 그거야 영감님 마음인데, 오래는 못 기다려요. 이틀입니다.”

우형석은 시한을 선고하고 미련 없이 차에서 내렸다. 그러다 불쑥 고개를 숙여 장철민을 들여다봤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지만, 난 적당히 쉬운 놈이 아닙니다. 허튼수작 부리려면 뒈질 각오 정도는 해 두는 게 좋을 겁니다.”

장철민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우형석은 얼어붙은 장철민에게 가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이곤 제 차로 향했다. 그때까지 장철민을 붙잡고 있던 사내들도 그를 따랐다. 그들의 검은 세단은 등장했을 때처럼 매끄럽게 후진하더니, 장철민의 차를 유유히 앞질러 멀어져 갔다.

“…….”

여전히 차 안에서는 최신 가요가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런데도 우형석과 대화하는 동안엔 그 사실을 까맣게 잊었다.

탁 맥이 풀렸다. 술에 취해 헛것이라도 보고 들은 것이라면 좋겠지만, 확인차 더듬어 본 재킷 안주머니에선 우형석의 차용증이 바스락거렸다.

장철민은 두툼한 손으로 막막하게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

‘환자분께서 사망하셨습니다.’

의사는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고통에 이지러졌던 동생의 얼굴 위로 새하얀 시트가 덮였다. 눈조차 편히 감지 못한 채였다.

침상을 에워쌌던 의료진은 탈력감에 젖어 하나둘 자리를 떴다. 한차례 소란이 지난 자리엔 한 생명을 소생시키기 위해 동원됐던 각종 장비와 돌처럼 굳은 사내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하나뿐인 피붙이를 잃고도 사내는 울지 않았다. 자신이 왜 울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머리에서 눈앞에 펼쳐진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이럴 순 없었다.

땅에 박힌 듯한 다리를 겨우 떼서 어디론가 향했다. 등 뒤에서 자꾸만 울부짖는 동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기가 어려웠다. 거친 숨이 끊임없이 터지면서 호흡은 점점 더 가빠져만 갔다.

경황없이 흔들리는 시야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한 번씩 이상하게 보는 것도, 건널목을 지날 때 운전자들이 삿대질하며 온갖 욕설을 퍼붓는 것도, 기어이 뭔가에 걸려 넘어지면서 쓸린 곳이 쓰라리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목표물만 보며 뛰는 사냥개처럼 맹목적으로 달리고 또 달릴 뿐이었다.

꼭 들어야 했다. 동생이 왜 그렇게 된 건지 반드시 알아야 했다. 그전에는 무엇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다리가 후들거릴 만큼 내달린 끝에 그 집 대문 앞에 도착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초인종을 부술 것처럼 마구 눌러도 안에선 별반 대꾸가 없었다. 두 주먹으로 대문을 두드렸다. 목청껏 나와 보라고 고래고래 소리도 질렀다. 그대로 주먹이 으스러져 가루가 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격해지는 감정을 누를 수가 없었다. 눈동자가 타오르는 것처럼 화끈거렸다. 시야는 샛노랗게 번져 갔다.

한참 만에야 문이 열렸다.

하지만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기대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한 무리의 사내들이 나오더니 각목을 휘둘렀다. 달려오느라 힘이 빠진 다리가 맥없이 꺾이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기다렸다는 듯 구둣발이 턱을 걷어찼다. 몸이 뒤로 넘어졌다. 순간 밤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캄캄한 어둠 천지였다.

사내들은 성가시게 한다고 구시렁거리며 멱살을 잡았다. 그러곤 집 안으로 끌고 들어가 무자비한 폭력을 퍼부었다. 도살장의 개처럼 묶여 쏟아지는 몽둥이세례를 받았다. 코와 입에서 울컥울컥 피가 터졌다. 두 귀는 물에 잠긴 것처럼 먹먹해졌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부러진 갈비뼈가 덜그럭거리며 통증을 유발했다. 터진 머리에서 흐른 피가 얼굴 옆면을 되직이 핥으며 바닥으로 뚝, 뚝 떨어졌다.

곤죽이 됐을 즈음, 기다렸던 이가 다가왔다. 시야가 좁아지고, 그마저도 혼탁해 실루엣만 겨우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도 그가 웃고 있단 걸 깨달았다. 그는 막 식사를 마쳤는지 고깃국 냄새를 풀풀 풍기며 이쑤시개를 우물거렸다.

‘눈 돌아간 짐승한텐 매가 약이지. 똥개 새끼가 아무거나 주워 먹고 뒈진 걸 나더러 어쩌라고. 거둬 준 은혜도 모르는 새끼.’

커다란 쇳덩이가 가슴으로 날아와 부러진 뼈마저 산산이 빻는 듯했다. 한낱 인간을 향한 믿음의 대가는 그렇게나 가혹하고 볼품없었다.

사내는 몇 번이고 욕설을 퍼부으며 부은 뺨을 후려쳤다. 몸이 갈수록 축 늘어지고, 의식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말 듯 했다.

사내가 금세 더러워진 제 손을 털며 쯧 혀를 찼다.

‘그만 처리해.’

다가오는 인영들을 보다가 까무룩 의식을 놓았다.

“하악…!”

두 눈이 확 벌어졌다. 익숙한 천장이 단숨에 시야를 채우면서 아찔한 현기증을 촉발했다. 가슴은 빠르게 부풀었다가 가라앉으며 부족한 산소를 빨아들였다. 격하게 덜컹거리는 심장이 기어이 살갗을 뚫고 나올 듯했다. 목덜미와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끔찍한 감각에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까마득한 날숨을 뱉으며 쭈뼛 굳었던 몸을 이완시켰다. 손을 들어 젖은 이마를 문지르기도 했다. 여전히 하루의 시작은 찜찜하기 그지없었다.

샤워라도 할 생각에 몸을 일으키다 주춤한다. 제 몸부림에 깬 건지, 재규어가 고개를 들고 권수혁을 보고 있었다. 놈은 곧 권수혁이 평소처럼 악몽을 꿨을 뿐이란 걸 인지하곤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악몽에 시달린 그에겐 어떤 애교나 위로도 통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었다.

그 옆쪽의, 주완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손을 뻗어 그가 누웠던 곳에 가져다 대 봤다. 미약한 온기가 느껴졌다. 화장실이라도 간 건가.

권수혁은 가운을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천천히 집 안을 둘러보다가 부엌에서 주완을 발견했다. 그는 양쪽 다리를 의자 위로 끌어 올려 안고, 그 무릎에 턱을 지그시 대고 있었다. 그 탓에 흰 목덜미가 훤히 보였다. 긴 세월, 햇볕을 받지 못한 살갗은 밀가루처럼 새하얬다. 종종 살아 있는 사람이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조금 전, 문 열리는 기척을 들었는지 주완이 고개를 돌렸다. 곧 두 사람의 시선이 엉겼다.

“…….”

“…….”

주완은 아무 말 없이 권수혁을 빤히 응시했다. 그러다 의자에서 내려와 다짜고짜 냉장고를 열었다. 곧 그가 꺼내 든 건 생수였다. 손수 뚜껑을 열며 다가오더니, 그것을 불쑥 권수혁에게 내민다.

“물, 마실래요?”

“…….”

“속이 좀 진정될지도 몰라요.”

권수혁의 낯빛만 보고도 그가 악몽에 시달렸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권수혁은 주완의 어깨너머로 식탁을 봤다. 그 위에는 반쯤 마시다가 만 생수 한 병이 놓여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그 역시 잠을 설친 듯했다.

권수혁은 주완에게서 생수를 낚아채듯 받아들고 시원스레 들이켰다. 싸한 냉기가 온몸을 훑고 내려간다. 주완의 말마따나 머릿속이 한결 차분해졌다. 하지만 마음에 얹힌 불쾌감은 쉽게 가시질 않았다.

빈 생수병을 식탁 위에 내려놓곤 욕실로 향했다. 그런 권수혁의 등 뒤에서 주완의 목소리가 망설이듯 새어 나왔다.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잠시 걸음을 멈추고 주완을 돌아봤다. 주완은 권수혁의 시선을 피하지 않고 덤덤하게 마주했다. 가까운 사이여도 그렇게 빤히 보면 부담스럽기 마련이었다. 하물며 삭막한 관계의 남남이었다. 그런데도 그에겐 그런 민망함이나 수치심이 없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마음이 놓였어요. 악몽에서 깼는데… 넓은 등이 보여서… 숨소리가 들려서요.”

대뜸 당사자에게 그런 말을 서슴지 않는 걸 봐도.

“…기분 좋으라고 하는 말인가?”

권수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주완의 얘기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커먼 사내놈의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면 안심하긴커녕 오히려 불쾌하지 않나? 적어도 권수혁에겐 그랬다.

그런데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니. 주완의 얼굴은 여전히 담담했다. 악몽을 꾼 사람에게 장난치는 것 같진 않았다. 딱히 아첨하려는 의도도 아닌 듯했다. 빈말을 자주 하는 족속들이 얄팍한 속내를 들켰을 때처럼 주절주절 변명하거나 민망한 웃음을 짓지 않았으니까.

저 생명체는 정말 가늠이 안 된다.

권수혁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욕실로 향했다. 주완은 간밤에 자신에게 깊은 안도감을 선사했던 그의 넓은 등을 감상하듯 바라봤을 뿐이었다.

이내 욕실 문이 닫히고,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주완도 몸을 돌려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우선 식탁 위에 놓인 생수병들을 정리하고 시계를 봤다. 불과 며칠 사이에 습관처럼 몸에 밴 변화였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덧없기만 했는데.

평소라면 전미남이 재규어와 주완에게 아침을 챙겨 주고, 권수혁의 채비를 도왔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그는 아직도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현관문 쪽으로 귀를 기울여 봤지만, 그의 기척은 전혀 감지되지 않았다. 뭔가 바쁜 일이라도 생긴 걸까?

그즈음 재규어가 침실에서 나왔다. 놈은 익숙하게 거실로 가다가 생각에 잠긴 주완을 발견하곤 잠시 걸음을 멈췄다. 곧 주완의 시선도 놈을 향했다.

주완은 자신을 빤히 보는 놈에게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러곤 마치 강아지라도 부르듯 손끝을 살랑살랑 움직였다.

“수남아.”

뭐가 불만인지, 재규어는 작게 으르렁거리며 콧잔등을 일그러뜨렸다. 이어 주완에게서 홱 고개를 돌려 버리기도 했다.

놈은 거실 소파 위로 뛰어올라 느긋하게 배를 깔고 엎드렸다. 주완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저를 보는 놈에게 재차 수남아, 했다. 그러자 놈이 또다시 거친 숨소리를 내며 싫은 기색을 보였다. 어떻게 봐도 ‘수남’이라는 제 이름이 탐탁잖은 듯했다. 무슨 뜻인지 알고 그러는 건 아닐 테니, 녀석이 못마땅해하는 건 아마 발음일 거였다.

주완은 이따금 꼬리로 소파를 내리치는 재규어를 관망하다가 아, 하며 얼른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바깥쪽 냉장고에서 전미남과 함께 사 왔던 고깃덩어리를 꺼냈다. 분명히 하나당 한 끼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포장된 고기는 두 팔로 감싸 들어야 할 정도로 육중했다. 몸집이 큰 만큼 먹어 치우는 양도 어마어마한 듯했다.

주완은 힘겹게 고깃덩어리를 거실로 옮겼다. 그러자 소파에 늘어져 있던 재규어의 두 눈이 그에게 붙박였다. 고깃덩어리를 바닥에 내려놓는데, 절로 몸이 휘청거렸다. 어느새 가빠진 숨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크게 심호흡하고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고깃덩어리를 헤집었다. 혹시라도 전처럼 잔뼈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재규어는 한참 제 먹이를 뒤적이는 주완을 관찰하며 동그란 귀를 파드닥 털 뿐이었다. 샛노란 눈동자 가득 사뭇 신중한 주완의 모습이 담겼다.

다행히 이번 고깃덩어리에는 굵직한 정강이뼈 외엔 재규어가 잘못 삼킬 만한 잔뼈가 없었다.

“먹어.”

이제 됐다는데 재규어는 소파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낮게 숙이고 눈을 치떠 주완을 노려볼 따름이었다. 주완은 그런 놈을 의아하게 바라보다가 뒤늦게 뭔가를 깨닫고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재규어가 소파를 박차고 내려와 식사를 시작했다. 생고기를 한 입 찢어 물곤 아직 그 자리 그대로 선 주완을 돌아본다. 방해될까, 얼른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등 뒤에서 일정하게 고기를 찢고, 씹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을 깨끗이 씻은 후, 안쪽 냉장고를 열었다. 그 안에서 얼마 전 사 온 요리 키트를 꺼냈다. 간편하게 조리해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모든 재료가 손질된 상품들이었다. 그중에서 된장찌개를 선택했다. 아침 식사는 되도록 따뜻하고 속이 편한 음식으로 하는 게 좋을 듯해서였다.

냄비에 적당히 물을 붓고, 포장된 재료들을 모두 넣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냄비 속 음식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했다. 제법 그럴싸한 모양새가 갖춰지면서 구수한 냄새가 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냄비만 들여다보다가 일회용 숟가락으로 조심스레 찌개를 떴다. 그러곤 후후 불어 간을 봤다. 조미료의 맛이 강하긴 했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았다. 불을 줄여 놓고 식탁에 김치와 도시락 김을 꺼내 놨다. 즉석 밥도 두 개 데웠다.

권수혁이 욕실에서 나왔을 때, 재규어는 이미 식사를 마치고 느긋하게 늘어져 있었다. 평소라면 권수혁에게 다가와 그의 다리 주위를 어슬렁거렸을 텐데, 다른 곳에 정신을 쏙 뺀 듯했다. 권수혁은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면서 놈의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곤 놈의 눈길이 붙박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곧 그의 시선이 주완에게 닿았다.

주완은 뜨거운 냄비를 조심조심 식탁으로 옮기고 있었다. 이상했던 건 마주 보는 자리 양쪽에 각각 하나씩의 즉석 밥과 수저가 놓였단 점이었다.

“아….”

식탁 정중앙에 무사히 된장찌개를 내려놓은 주완이 권수혁을 발견했다. 눈이 마주치자 머뭇거리며 권한다.

“앉으세요.”

다시금 권수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잘못 들었나 싶은 듯했다.

하지만 주완은 대놓고 바깥쪽 의자를 꺼내 놓더니, 자신은 그 맞은편으로 가서 앉았다. 반대편 자리에는 딱 한 벌뿐인 숟가락을 정갈하게 놔두곤, 정작 자신은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과 나무젓가락을 뜯었다.

“난 나무젓가락으로도 잘 먹어요.”

그러니까 같이 식사하자는 것 같았다.

***

장진우의 차가 본가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제동을 걸고 완전히 멈춰 선 뒤에야 덜그럭거리는 소음이 멎었다. 오는 내내 시끄럽더니, 범퍼 한쪽이 떨어져서 바닥에 끌리고 있었다. 정신없이 차에서 내렸다. 차 키를 챙기는 것도 잊은 채였다.

아직 동도 트지 않은 새벽녘이었다. 때맞춰 고급 저택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던 신문 배달원이 찌그러진 차를 유심히 봤다. 그러다 장진우와 눈이 마주치자 서둘러 고개를 돌리며 멀어져 갔다. 신경을 거슬리던 스쿠터 소리도 아득히 멀어졌다.

조용히 집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안에서 먼저 문이 열렸다. 잠옷 위로 두툼한 숄을 걸친 장진우의 어머니가 차 들어오는 소리에 나와 본 참이었다. 지방 정신 병원으로 내려간 이후, 본가에는 잘 들르지 않던 아들이 느닷없이 방문한 탓인지 그녀의 얼굴에는 짙은 우려가 서려 있었다.

“진우야? 어떻게 된 거니. 온다는 연락도 없이.”

“안 주무셨어요?”

“올 사람이 없는데, 주차장 센서가 울리길래 깼다. 무슨 일이냐니까.”

“일단 들어가서 얘기해요.”

장진우는 근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았다. 그의 어머니는 못내 미심쩍은 표정이었지만, 일단 그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밝은 곳에서 보니 장진우의 꼴이 말도 아니었다. 어디에 부딪힌 건지 이마는 붉게 부어올랐고, 얼굴엔 핏기가 없었다. 눈도 떼꾼한 게, 며칠은 못 잔 사람 같았다.

“아니, 너! 얼굴이 왜….”

“오는 길에 가벼운 접촉 사고가 났어요.”

“그럼 곧장 병원으로 가지 않고!”

아들 걱정에 잔소리하던 장진우의 어머니가 어떤 불길한 예감에 멈칫했다. 철렁했는지 낯빛이 희게 질렸다.

“…혹시 사람이라도 친 거야?”

“아니에요, 그런 거. 목마르다. 저 물 좀 주세요.”

거실 소파에 앉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 보였다. 장진우의 어머니는 영 찜찜해하면서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금세 컵에 물을 따라 왔다. 장진우는 그것으로 가볍게 목을 축이고 고요한 집 안을 둘러봤다.

“아버지는요?”

“어젯밤 늦게까지 술 드시고 조금 전에 들어오셨다. 피곤하지도 않은지 바로 서재에 들어가셨어. 안색이 많이 안 좋던데, 왜 자꾸 무리하는 건지… 이제 쉴 때도 되지 않으셨니?”

장진우의 어머니가 마뜩잖게 혀를 찼다. 그러다 다시 장진우에게 정말 아픈 곳은 없는지, 어쩌다 사고가 났는지 따위를 소상히 묻기 시작했다.

장진우를 대하는 부모의 태도는 늘 극과 극이었다. 아버지인 장철민은 유일하게 자신의 피를 이어받은 아들이 누구보다 강하고, 우수하며, 존경받는 인재로 크길 바랐다. 어머니는 외동인 그를 금이야, 옥이야 감싸고돌려고만 했다. 만약 간밤의 교통사고가 사람을 친 거였다면 어머닌 자신의 모든 것을 동원해 진실을 감추고, 아들을 보호하려 했을 터였다. 장진우의 이중적인 성격이 형성되는 데는 그런 부모의 영향이 가장 컸다.

장진우가 한창 자신의 어머니를 달래고 있을 때, 서재 문이 열렸다. 문틈으로 거실을 내려다보는 장철민은 확실히 얼굴빛이 어두웠다. 장진우는 대화를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했다.

“아버지.”

“진우, 잠깐 들어와라.”

“시간이 늦었어요, 여보. 좀 쉬시고, 얘도 눈 좀 붙이고 나서….”

“괜찮습니다. 어머니, 피곤하실 텐데 들어가서 쉬세요.”

장진우는 제 어머니에게 선하고 성실한 아들을 가장하며 그녀를 침실까지 에스코트했다. 나중에 보자며 친히 문까지 닫아 줬다. 그러곤 바로 돌아서서 장철민의 서재로 향했다.

서재에 발을 들이자마자 오래된 책 냄새가 풍겼다. 넓은 방의 세 면을 둘러싼 책장에는 빼곡한 서적들과 상패들이 진열돼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그것들을 하나씩 꺼내 닦는 게 장철민의 취미였다. 무수한 상패와 훈장들은 그의 역사, 그의 이력, 그의 삶 그 자체였다.

그토록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김제국의 만행을 알게 되면 가만히 손 놓고 있지는 않을 거였다. 장진우가 곧장 제 아버지에게 달려온 건 그런 확신 때문이었다.

“박주완이 누구냐?”

그러나 장진우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뜻밖의 질문이 날아들었다. 대체 장철민이 뭘 어떻게 알고 그리 묻는지 파악할 시간이 필요했다.

장철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묵묵부답인 제 아들에게 짜증스레 부연했다.

“그 환자가 대체 누구길래 그 동생이란 작자가 나를 찾아와? 아주 막돼먹은 조폭 놈이던데. 아는 게 있으면 숨기지 말고 다 말해라. 감춘다고 될 일이 아니야.”

“그자가 아버지께도 찾아갔습니까? 그러잖아도 그 일을 상의드리러 왔습니다.”

장진우는 짐짓 심각하게 표정을 굳혔다. 장철민이 주완과 자신의 관계에 관해선 잘 모르는 눈치인 것에 안도하면서. 그런 얘기를 꺼내는 상황이 죄스럽고 고통스럽다는 듯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몇 년 전부터 병원에서 환자들이 사라졌습니다. 실종된 사람들은 대부분 김제국 선배가 담당하던 환자들이었고요. 처음 제가 의문을 제기했을 때, 선배는 그저 보호자들이 찾아와서 갑작스럽게 퇴원을 요구했고, 병원 지침에 따라 조치했을 뿐이라고 소명했습니다. 미심쩍었지만, 심증만 있을 뿐 별다른 물증이 없어서 지켜봤는데… 그게 실수였던 것 같습니다. 선배가 환자들을 몰래 팔아넘겼단 걸 최근에야 알게 됐습니다. 몇 번이나 그만두라고 경고했지만, 도리어 병원과 아버지의 책임을 운운하면서 협박하더라고요. 고작 그런 일 때문에 아버지와 집안의 명예가 실추되면 안 되니까… 그렇게 끌려오다가 오늘에 이른 겁니다.”

“그럼 닥터 김이 그 조폭의 형이란 사람까지 처리했단 거야?”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박주완 환자는 10년 전에 친모의 신고로 입원했고, 그동안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선배도 그 환자가 퇴원할 가능성이 없을 거라 판단해서 일을 저지른 모양이고요. 그런데 얼마 전, 박주완 환자의 동생이라는 조폭이 그의 퇴원을 요구하면서 병원에 찾아왔고, 얼마 후에 선배가 갑자기 사라졌습니다. 며칠째 병원에도 나오지 않고, 듣자니까 집에도 안 들어갔나 봅니다. 아무래도 그 조폭이 선배한테 손을 댄 것 같은데, 섣불리 경찰에 신고했다간 선배가 저지른 만행들이 밝혀질 거라서요. 병원도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려우리란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그 지경이 되도록 왜 말을 안 했어!”

“제 선에서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께 심려를 끼치고 싶지도 않았고요.”

“좌우지간 너란 놈은! 꼭 그렇게 일을 키워야 직성이 풀리냐? 답답해서 원.”

장철민이 맹렬히 혀를 찼다. 장진우를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영 탐탁잖아 보였다.

이내 장철민은 끙 소리를 내며 깊은 상념에 잠겼다. 장진우는 바삐 눈동자를 굴려 그런 제 아버지를 샅샅이 살펴봤다. 우형석을 직접 만난 것치고 특별히 다친 곳은 없는 듯했다. 그렇다는 건 우형석이 장진우 자신에게 원하는 게 보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저를 제치고 바로 아버지인 장철민을 찾아갔다는 것 자체가. 김제국의 일을 비밀에 부쳐 주는 대가로 금전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커 보였다.

그 추론대로라면 지금 장철민이 고민하는 건 우형석이 제시한 대가를 줄지 말지가 아니라, 그것만으로 조폭의 입을 틀어막을 수 있을지인 듯했다. 본디 명예 앞에 아까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장진우는 은근히 제 아버지를 부추겼다.

“오는 길에 그 조폭들로 추정되는 자들한테 미행을 당했습니다. 그쪽에서 일부러 제 차를 들이받아 접촉 사고까지 냈고요. 오늘은 그 정도로 경고하고 돌아가긴 했지만, 단순히 겁주려고 뒤를 밟은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이미 그쪽에서 선배가 저지른 짓을 알고 있다면 순순히 떨어져 나가 주진 않을 겁니다.”

“그것뿐이냐?”

“네? 무슨 말씀이신지….”

“그 조폭 놈한테 덜미 잡힐 일이 닥터 김 개인의 일탈뿐인지 묻는 게다.”

“아니면 또 뭐가 있겠어요?”

제법 예리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고의적인 접촉 사고를 당했다는 아들에게, 어디 다친 곳은 없는지보다 더 구린 구석이 없는지를 먼저 묻는다. 그런 아버지에게 새삼 실망한 건 아니었다. 그런 기대는 접은 지 오래였다.

장철민은 이제 볼일이 다 끝났다는 듯 손을 저었다.

“그 조폭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까, 넌 그만 올라가서 자라.”

“괜찮으시겠어요? 제가 도와드릴 일은….”

“내가 너한테 뭘 맡기겠니. 됐으니까 나가 봐.”

“…그럼 주무세요.”

장진우는 깍듯이 인사하고 서재를 나왔다. 그러곤 바로 2층으로 이어지는 층계를 올라갔다.

샤워할 여력도 없어 제 방 침대에 쓰러지듯 누웠다. 까마득한 날숨이 터져 나왔다. 당장은 무사하다. 그런 안도와 함께 난데없는 오한이 밀려들었다. 전신을 잔뜩 웅크리고 두 팔로 제 어깨를 꼭 부둥켜안았다.

마음이 놓여야 할 텐데, 정체를 알 수 없는 막막한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장진우가 눈을 뜬 건 아침 10시가 지나서였다. 자는 동안 아무런 꿈도 꾸지 않아서 제대로 잠들었던 건지, 아닌지 헷갈렸다. 문득 의식이 돌아왔던 건 집안에 울려 퍼지는 인터폰 소리 때문이었다. 누가 찾아온 건가.

몸을 일으켜 1층으로 내려갔다. 목이라도 축일 요량이었다. 현관에서 어머니가 한 남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뜻언뜻 들리는 얘기가 우체국 집배원인 듯했다.

“장철민 씨 앞으로 등기가 와서요. 실례지만, 관계가?”

“아내 되는 사람인데요.”

“그러면 여기에 서명 좀 해 주시겠습니까?”

“아, 여기다 쓰면 되나요?”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를 들으면서 정수기에 컵을 가져다 댔다. 쪼르륵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를 보며 뒷덜미를 주물렀다.

하룻밤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오간 기분이었다. 김제국의 서랍을 열어 문제의 메모리 카드를 모조리 찾아 없앴을 땐 속이 시원하더니, 의문의 사내들에게 쫓기고 나니 다시 또 속이 꽉 막혔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주완에게 손대지 않았다면, 그의 염원대로 진작 그를 병원에서 꺼내 줬다면 상황이 좀 달라졌을까? 아니, 문제는 복합적으로 엉켜 있었다. 그 시작이 어디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실타래처럼 조금씩, 조금씩 완전히 꼬여 버렸다. 장진우 자신만 의롭게 행동했다고 한들 달라졌을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렇게, 합리화했다.

기어이 컵을 채우고 넘친 물이 손을 적셨다. 그제야 퍼뜩 정신을 다잡았다. 왜 자꾸 넋이 나가는지 모르겠다. 단숨에 물을 들이켜 바짝바짝 마른 속부터 해갈했다.

그러는 사이, 장진우의 어머니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왜, 더 자지 않고.”

“많이 잤어요.”

“밥 차려 줄까?”

“천천히 먹을게요.”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장진우의 어머니는 새벽녘 갑작스럽게 들이닥친 아들을 걱정스럽게 들여다봤다. 장진우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웃으며 제 어머니의 신경을 애써 다른 데로 돌렸다.

“그런데 방금, 누구였어요?”

“아, 우체국에서 다녀갔어. 네 아버지한테 등기가 왔더라고.”

사실 아버지에게 어떤 우편물이 도착하든 관심 없었다. 그저 어머니가 간밤의 일을 캐물을 게 분명해서 꺼내 본 질문이었다.

하지만 곧 이어진 어머니의 부연 때문에 그냥 넘길 수가 없어졌다.

“중앙 정신 병원 김제국이란 사람이 보냈던데. 아는 사이니?”

순간 장진우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어딨어요?”

“응? 뭐가?”

“그 등기, 어디 있냐고.”

“어디 있긴. 아버지 서재에 가져다드렸지. 왜 그러는데?”

넋이 나간 장진우의 모습에 어머니가 걱정 어린 눈길을 보내왔다. 초조함에 혀가 말리는 느낌이었다.

장진우는 겨우 입을 떼서 다시 물었다. 목소리가 두서없이 떨리는 것까진 숨길 수 없었다.

“그 안에… 그 안에 든 거, 보셨어요?”

“응. 네 아버지가 바로 뜯으셔서 언뜻 보긴 했다만….”

“뭐였어요?”

장진우가 덜컥 제 어머니의 팔을 움켜쥐었다. 어머니는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얘가 왜 이래?”

“뭐였냐고!”

장진우는 거듭 제 어머니를 재우쳤다. 불길한 예감에 머릿속에서 쉼 없이 경광등이 울렸다. 장진우의 어머니는 놀라 굳었다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글쎄다… 무슨 USB 같아 보이던데?”

속에서 뭔가가 쿵 떨어져 내렸다. 동시에 울컥 욕지기가 치솟았다. 머릿속이 터질 것처럼 시끄러워졌다. 막아야 했다.

장진우는 바로 아버지의 서재로 달려갔다. 황급히 문손잡이를 잡아챘지만, 안에서 잠긴 문은 꼼짝하지 않았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다급해졌다.

등기의 발신자는 김제국이라고 했다. 그렇다는 건 그가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일까? 물론 본인이 아니더라도 등기를 보낼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다. 평소에도 의심이 많은 인물이었으니, 만일을 대비해 누군가에게 자신이 실종되면 대신 그 등기를 보내 달라고 부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지금은 김제국의 이름으로 발송된 등기 속에 정체 모를 USB가 들어 있었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그 안에 대체 뭐가 담긴 걸까? 설마 장진우 자신의 영상을 따로 복사라도 해 둔 거라면.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가슴이 철렁했다.

장진우는 다시 거실로 뛰어 내려갔다. 그리곤 곳곳에 놓인 장식장의 서랍들을 죄 뒤지기 시작했다. 황급히 서재 열쇠를 찾는 그의 모습에 그의 어머니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전화해서 통사정해야 겨우 얼굴에 비치던 아들이 새벽에 자발적으로 찾아온 것부터 내내 뭔가에 쫓기는 듯한 행동까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진우야, 대체 무슨 일이야?”

“어머니, 서재 열쇠 어디 있어요?”

“무슨 일인지 얘기 좀 해 줘. 엄마 걱정되잖아.”

장진우는 제 어머니의 애원에도 열쇠 찾기에만 혈안이었다. 곧 서랍 하나를 통째로 꺼내 거실 바닥에 뒤집었다. 안쪽의 내용물이 우르르 쏟아졌다. 그 안에서 열쇠 꾸러미를 건져 냈다.

“아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장진우의 어머니는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시 서재로 달려가는 장진우를 서둘러 뒤쫓았다. 뭔가가 터질 것 같은 불안감에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조마조마해졌다.

문 앞에 선 장진우의 등줄기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머리는 빙빙 돌고, 숨은 턱 막히고, 입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열쇠를 쥔 손끝은 볼품없이 덜덜 떨렸다. 아버지가 아직 USB를 확인하지 않았을 거라고 믿고 싶었다. 아니, 어쩌면 그 안에 담긴 건 제 영상 자체가 아닐 수도 있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낙관하며 열쇠를 구멍 안에 꽂아 넣었다.

때마침 서재의 문이 열렸다. 서서히 벌어지는 문틈 새로 굳은 장철민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들리지 않던 소음도 미약하게 새어 나왔다. 뭔가가 거듭 거칠게 부대끼고, 짐승이 거친 숨을 몰아쉬는 듯한. 장철민의 노트북에서 비롯된 소리는 필시 장진우 자신의 신음이었다.

장진우는 할 말을 잃고 멍하니 섰다가 자신을 노려보는 제 아버지를 바라봤다. 장철민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했다. 폭발할 듯한 분기를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것처럼 이마엔 굵은 핏대가 일어섰다.

“아버지….”

입을 떼자마자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갔다. 따귀를 맞은 뺨에 불꽃이 이는 듯한 통증이 번졌다.

“여보!”

소스라치게 놀란 장진우의 어머니가 두 부자를 갈라놓았다. 장철민은 잔뜩 노해 있는 대로 고함을 쳤다.

“이 고얀 놈… 그 더러운 입 다물어!”

“아버지… 제 말 좀 들어 보세요. 제가 다 설명하겠습니다. 오해하신 거예요. 저건 어디까지나 저 환자가, 박주완 씨가 절 먼저 유혹해서… 아버지도 잘 아시다시피 저 시기엔 제가 너무 정신적으로 몰려 있어서, 그래서 판단력이 흐려져서 잠깐 실수한 겁니다. 저 때 딱 한 번뿐이었어요. 믿어 주세요.”

두서없이 변명했다. 하지만 어떤 말로 설득해도 장철민의 분기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너 같은 게 내 아들이라니! 너 따위가 이 장철민이의 핏줄이라니!”

“여보, 대체 왜 이래요! 말로 하세요!”

“모르시겠어요? 김 선배가 그 환자하고 짜고 절 물 먹이려고 꾸민 일이라고요. 왜 한 번도 제 말은 안 믿어 주시는 겁니까!”

“항상 일만 벌이고, 세 치 혀로 무마하려고 들지! 네 말보다 더 정확한 증거가 저기 있잖아!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는데, 무슨 해명이 더 필요해! 어째서 너란 놈은 사사건건 내 발목을 잡는 거냐?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장철민은 극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사위를 두리번거리며 뭔가를 찾던 그는 이내 자신의 골프채를 꺼내 들었다. 장진우의 어머니가 희게 질려서 그를 말렸다.

“당신, 뭐 하는 거예요? 내려놔요! 말로 하라고, 제발 말로!”

당장이라도 금쪽같은 아들에게 달려들 듯한 남편을 붙잡는다. 옥신각신 실랑이하던 그녀는 무심코 노트북을 봤다. 그러다 그곳에서 연신 터져 나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시선이 붙들렸다. 누군가를 침상에 묶어 놓고 겁탈하면서 좋아서 까무러치는 인물의 얼굴이나 몸집이 너무 눈에 익었다. 그럴 리가. 그 아래 깔려 숨죽이고 있는 건 어떻게 봐도 남자인데. 더구나 반쯤 벗겨진 옷은 환자복인 게 분명했다.

강압적으로 같은 남자를 강간하며 짐승처럼 포효하는 파렴치한이 그녀에게 낯익은 사람일 리 없었다. 그래선 안 됐다.

장진우의 어머니는 현실을 부정하듯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사실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절실하게 아들을 바라봤다. 곧 흘러나온 목소리는 불안감에 덜덜 떨렸다.

“저게 대체… 대체 무슨… 진우야? 아니지? 저 사람, 네가 아닌 거지? 응? 아니지, 아들?”

“…….”

“아니잖아? 아닌 거지? 그럴 리가 없잖니! 우리 아들이 그럴 리가…!”

장진우의 어머니는 눈물이 가득한 눈으로 대답 없는 아들을 다그쳤다. 숫제 아니라고 말해 달라는 애원 같았다. 곧 그녀의 볼을 타고 미끄러진 눈물이 뚝, 뚝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진우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푹 숙일 따름이었다.

아득한 절망감에 그의 어머니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두 눈은 멀거니 뜨고 있어도 넋이 완전히 나가서, 거의 혼절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어머니!”

장진우는 얼른 제 어머니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그러자 장철민의 골프채가 그의 손등을 후려쳤다. 뺨을 맞았을 때보다 더 묵직한 통증이 작렬했다.

“…윽!”

“그 더러운 손으로 건드리지 마! 아무것도 손대지 마라! 아무것도!”

“아버지!”

“역겨우니까 그렇게 부르지도 말고, 내 집에서 썩 나가! 다신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라!”

장철민의 눈빛에선 제 핏줄을 향한 일말의 동정심이나 애틋함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더 몸을 낮추고 애원해 봤자, 들은 척도 하지 않을 거였다. 본디 맺고 끊는 재주가 남다른 사람이었다. 그의 아들이라고 예외가 될 순 없었다.

그렇게 판단한 장진우는 잠자코 굽혔던 몸을 바로 했다.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믿어 달라고 절절히 호소하던 그의 낯이 그새 차게 굳어 있었다. 욱신거리는 손등을 매만지며 중얼거리는 혼잣말은 사뭇 비릿하게 들렸다.

“…하여간, 매번 이런 식이라니까.”

“뭐야, 이 자식아?”

그 뻔뻔한 변화에 장철민이 빠득빠득 이를 갈았다. 부릅뜬 두 눈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장진우는 그런 제 아버지를 보며 픽 웃었다.

“이런 날 낳은 것도, 이렇게 키운 것도 당신이잖아. 지금 날 내쳐도 내가 당신의 하나뿐인 아들이란 사실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요, 안타깝게도.”

“너, 너…!”

“화, 가라앉히세요. 혈관에 안 좋은 거 뻔히 아시면서. 오래 사셔야죠. 안 그러면 아버지가 이뤄 온 것들, 금방 다 내 차지가 될 텐데.”

장진우는 재차 날아드는 골프채를 잡아챘다. 뜻밖의 저항에 장철민의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아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온 힘을 쏟아붓는다. 장진우는 어렵지 않게 골프채를 떠밀었다. 그로 인해 장철민이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장진우는 분해서 씨근덕거리는 제 아버지를 까마득하게 내려다보다가 인사도 없이 집을 나갔다.

“저, 저… 버르장머리 없는 놈이!”

신경질적으로 골프채를 내던졌다. 뒷골이 당겨 왔다.

아무리 기대를 줄여도 번번이 그에 미치지 못했던, 낙오자나 다름없는 아들이었다. 그런 자식 하나 잃는 것쯤이야 제 공든 탑이 무너지는 것에 비하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장철민은 기절한 아내를 내버려 두고 핸드폰부터 집어 들었다. 누군가의 연락처를 찾아 통화 버튼을 터치했다. 머지않아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아, 박 비서? 급히 처리해 줄 일이 하나 있어. 아니, 사람을 좀 썼으면 해서. 손 빠르고 깔끔한 쪽으로, 기왕이면 실력도 좋았으면 하는데. 실수 없이, 깨끗하게 처리해 주면 원하는 대로 사례하겠다고 전해.”

김제국의 만행을 함구하겠다는 조건만으로 거액을 요구해 온 우형석이었다. 만일 그가 장진우의 성폭행 사실까지 알게 된다면 더는 수습할 수 없게 될 터였다.

병마는 깊어지기 전에 깨끗이 도려낸다. 그건 장철민의 의사로서의 소신이기도 했다.

***

주완은 연신 목덜미를 만지작거렸다. 그곳이 자꾸 근질거리는 건 비단 재규어의 꼬리가 찰싹찰싹 와 닿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직접적인 접촉 외에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빤한 주시가 느껴졌다.

낱말 퍼즐 맞추기를 멈추고 뒤를 돌아봤다. 곧장 권수혁과 눈이 마주쳤다. 권수혁은 일찌감치 나갈 채비를 마치고 소파에 앉아서 주완의 일거수일투족을 대놓고 관망 중이었다. 주완이 뭘 하려는지 궁금하기도 했을 터였다.

주완은 권수혁이 다 보고 던져둔 일간지를 슬그머니 끌고 가더니, 거기 실린 기사들을 꼼꼼히 봤다.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을 발견할 때면 나지막이 소리 내 읽어 보기도 했다. 그러다 특정 페이지에 이르자, 볼펜을 챙겨 들고 아예 그곳에 코를 박았다. 이따금 뭔가를 떠올리듯 허공을 보다가도 이내 손을 움직여 빈칸을 채워 나갔다. 재규어도 고개를 빼고 그런 주완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 둘의 지긋한 주시에 곤란한 기분이 들었다. 몰랐다면 모를까, 한번 인식하고 나니 못내 신경이 쓰였다.

그때, 고요하던 현관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도어 록의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전미남이 온 건가. 주완의 얼굴에 내심 반가운 기색이 어렸다.

“누가 왔나 본데….”

“…….”

그러나 권수혁은 미동이 없었다. 집주인이면서, 제집에 온 손님을 적극적으로 맞이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는 수 없이 주완이 대신 현관으로 나갔다. 그때까지도 소파에 늘어져 있던 재규어가 어기적거리며 몸을 일으키더니, 훌쩍 바닥으로 뛰어 내려왔다. 휘적휘적 주완을 따라가려던 놈은 제게 꽂히는 권수혁의 시선을 인식하곤 잠시 서서 그를 돌아봤다. 둘 사이에 묘한 눈빛이 오갔다.

이내 재규어는 모르는 척 권수혁의 눈빛을 피해 현관으로 향했다. 머지않아 주완이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수남아, 하며 재규어를 살갑게 부르는 목소리가 귀에 익었다. 백도운이 도착한 모양이었다.

권수혁은 주완이 들여다보던 일간지를 집어 들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하나 했는데, 가로세로 낱말 퍼즐이었다. 빈칸에 꾹꾹 눌러쓴 글씨들이 공들여 그린 것처럼 올망졸망했다. 채워진 단어들을 쭉 훑어 내리던 눈길은 어느 칸에 이르러 멈칫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아래쪽 도움말을 확인했다.

그곳에선 해당 단어를 ‘성품이 막되어 예의와 염치를 모르며, 일정한 소속이나 직업이 없이 불량한 짓을 하며 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권수혁은 다시 주완이 채워 놓은 세 개의 빈칸을 봤다. ‘놈팡이?’라고 적어 놓았다. 확신 없는 물음표는 주어진 세 칸을 넘어 그 옆쪽 여백에 그려진 상태였다. 그뿐 아니라 아주 작고 연한 글씨로 날건달, 후레자식, 개새끼, 깡패 등의 예비 답변을 썼다가 지운 자국도 보였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고심한 흔적이 역력했다. 그게 뭐라고, 피식 웃음이 났다. 속이 돌연 간질간질해져서 저도 모르게 그렇게 됐다.

“뭘 보길래 실실 쪼개?”

옅던 미소는 백도운의 개입으로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췄다. 제 뒤를 졸졸 따라오는 재규어를 신기하게 돌아보며 거실에 다다른 주완은 어, 하곤 권수혁의 손에 들린 일간지와 권수혁의 얼굴을 느리게 번갈아 봤다.

권수혁은 그 일간지를 주완에게 떠넘기듯 건네곤 말없이 현관으로 향했다. 백도운에게 왔냐는 인사를 건네긴커녕 이제 나가 보겠다는 통보조차 하지 않은 채였다. 주완은 재규어와 마찬가지로 그를 따라갔다.

곧바로 구두를 신고 나가려던 권수혁의 등 뒤에서 주완의 목소리가 불거졌다.

“다녀…오세요.”

거짓말처럼 권수혁의 걸음이 우뚝 멎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주완을 돌아보거나, 인사에 응하거나, 하다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의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멈칫했던 게 착각이었던 것처럼 문을 열고 나갔을 뿐이었다. 곧 쿵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도어 록도 잇따라 잠겼다. 동시에 주완에게서 긴 날숨이 새어 나왔다. 실망보다는 안도에 가까웠다. 권수혁과 함께 있으면 이상하게 긴장된다.

돌아서려다 저를 뚫어지게 올려다보던 재규어와 눈이 마주쳤다.

“수남아.”

정겹게 이름을 부르며 손을 뻗자, 놈이 냉랭히 몸을 돌리더니 먼저 거실로 뛰어가 버렸다. 역시 제 이름에 불만이 있는 게 분명했다.

“주완 씨, 밥 먹었어요?”

백도운이 고개를 빼고 뒤늦게 돌아오는 주완을 내다봤다. 아니라면 뭐라도 시켜 주려는지, 핸드폰을 꺼내 든 채였다.

“네. 미남 씨가 사다 놓은 게 있어서… 설명서대로 끓였더니 금방 된장찌개가 되던데요.”

“아, 그랬구나? 근데 여기 변변찮은 조리 도구도 없을 텐데?”

“찾아보니까 다행히 냄비랑 수저 한 세트는 있더라고요.”

“거기 곰팡이는 안 피었고?”

“…네? 네.”

“그동안 이 집에서 음식 냄새 나는 꼴을 못 봤거든요. 아니, 권수혁이 뭘 먹는 걸 본 기억이 없어.”

백도운이 넌더리 난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잠자코 듣던 주완은 제 뒷덜미를 만지작거렸다.

“오늘은 볼 수 있었을 텐데.”

혼잣말에 가까운 중얼거림이었다. 백도운이 제대로 못 들었다는 듯 “응?”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네?”

“오늘은 볼 수 있었다니, 뭘요?”

“아, 지금보다 일찍 왔으면요.”

“일찍 왔으면? 설마 수혁이랑 같이 아침 먹었어요?”

“네.”

“걔도 밥이란 걸 먹긴 먹어요?”

“네….”

“신기하네.”

백도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픽 웃었다. 안경 너머의 눈매가 제법 깊었다. 전체적으로 샤프하면서 섬세한 이목구비와 티 없이 깨끗한 피부, 턱 아래쪽에 난 작은 점 따위가 그만의 분위기를 완성했다.

속이 깊은 것 같으면서도 유들유들 가벼워 보이고, 따뜻하고 부드러운 성품인 듯한데도 어딘가 모르게 냉한 기운이 풍겼다.

“왜요, 주완 씨?”

“뭐가요?”

“엄청 빤히 봤잖아요. 나한테 뭐 묻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대놓고 본 걸까. 어쩌면 백도운이 독심술에도 능한 건지 몰랐다.

확실히 궁금한 게 하나 생기긴 했다. 그런데 당사자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물어도 되는 건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당사자는 제 얘기가 알려지는 것 자체를 꺼릴 수도 있는데. 계속 망설였던 건 그 때문이었다.

“뭔데요?”

“…함부로 물어도 괜찮을까요?”

“일단 들어 보고 판단하죠, 뭐.”

백도운이 대수롭지 않게 마음속 부담을 덜어 주었다. 그제야 주완은 홀로 품었던 궁금증, 혹은 우려를 풀어놓았다.

“매일 악몽을 꾸는 것 같은데… 한 번도 편히 못 자고 힘들어해서요. 안 좋은 꿈을 꾸는 건 보통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거니까….”

“수혁이가 어떤 악몽을, 왜 꾸는지 알고 싶어요?”

백도운이 어렵지 않게 주완의 의중을 꿰뚫었다. 주완의 고개가 열심히 끄덕여졌다. 백도운은 옅게 웃고 잠시 기억을 더듬듯 허공을 헤아렸다.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이야기를 시작해야 할지 가늠해 보는 듯했다.

“음, 아마 10년쯤 된 것 같아요. 한창 인턴인가 레지던트 할 때라 정신이 반쯤 나가 있었던 시기니까 대충 맞을 거예요. 며칠씩 집에도 못 가고 병원에 묶여 지내다 겨우 하루 외출한 날이었거든요. 뭐, 당연히 찌들 대로 찌들어서 이성도 흐릿해진 상태였죠. 아니었으면 쓰레기더미에 버려진 피투성이를 어떻게 주워 갔겠어요?”

주완은 설마 하며 백도운을 봤다. 백도운이 씁쓸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게 수혁이였어요.”

그 지경이 돼서도 숨이 붙어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어요. 처음엔 누가 시체를 거기에 유기한 줄 알고 신고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손가락이 움직이잖아요. 대충 봐도 범상한 구석이 없어서 일단 우리 집으로 데려갔죠. 어떻게 나 혼자 그 커다란 놈을 끌고 간 건지, 지금 생각해도 놀랍다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치료해 주고 얼마간 방치해 놨더니, 금방 의식을 찾더라고요. 회복력도 무시무시했어요. 눈에 독기가 가득했던 걸 보면 반드시 일어나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건지도 모르죠.

엄청난 울분 같은 게 엿보이더라고요. 무슨 사연인지 궁금했는데, 권수혁은 실어증이라도 걸린 것처럼 입을 딱 다물고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고맙다는 인사도 못 들었네. 나쁜 새끼.

이쯤에서 하나 밝혀 둘 게 있는데… 실은 수혁이가 지금 하는 일, 원래는 내가 물려받아야 할 자리였어요. 우습지만, 일종의 가업이라고 할까요? 회사 대표자가 나로 돼 있는 것도 그래서예요. 반쯤은 위장용이기도 하지만요.

누군가는 아버지 돈으로 호의호식했으면서 위선이라고 손가락질하겠지만, 가난하게 살았으면 살았지 그 일은 하기 싫더라고요. 인생이란 거, 생각보다 짧고 딱 한 번뿐이잖아요. 내 삶, 존경받으면서 의미 있게 꾸리진 못해도 죽을 때까지 조금이나마 갚고 싶더라고요. 죄가 점점 더 커져서 깨진 독에 물 붓는 격이지만.

아들이 의대에 합격했다는데, 못마땅해한 부모는 세상천지에 우리 아버지밖에 없을 거예요. 돌아가실 때까지 어찌나 닦달하시던지… 하나뿐인 자식은 곧 죽어도 사업 물려받기 싫다고 하지, 남 주자니 아깝지. 수혁이가 그런 아버지 눈에 들었던 거죠. 맹목적이고 충성스러운 사냥개로 키우면 좋겠다, 싶었나 봐요. 그때 수혁인 자기를 죽이려고 한 사람한테 복수할 생각밖에 없었거든요. 그러려면 그 사람한테 밀리지 않을 만한 힘이 필요했고요. 두 사람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거죠.

수혁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아버지한테 들었어요. 자기 혈육도 못 믿던 양반이라 뒷조사를 철저히 했나 보더라고요.

내가 그래도 면역력이 강한 편인데… 수혁이가 살아왔던 삶은 정말 참혹하더라고요. 미치지 않고 멀쩡히 살아 있는 게 신기할 만큼 끔찍했어요.

수혁이 부모님은 걔가 열여섯 살일 때 돌아가셨어요. 음독자살로 판명 났다는데, 이상한 점이 많았죠. 부부 사이에 어떤 불화도 없었고, 사업도 잘 풀리던 시기여서 금전적인 문제도 전혀 없었으니까요. 그렇다고 우울증을 앓거나 남한테 원한을 산 것도 아니고요. 부부가 어린 자식들만 남겨 놓고 동반 자살할 이유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도 경찰 조사는 그렇게 어영부영 결론 났나 봐요. 당시 수혁이네 가족이 특별히 왕래하던 친인척도 없었고, 형제는 너무 어려서 마땅히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했죠.

수혁이 아래론 남동생이 하나 있었대요. 열 살 터울이었다고, 들었던 것 같아요. 부모님 사후에 두 형제는 꼼짝없이 보육원으로 보내질 운명이었어요. 수혁이야 나이가 많아 입양될 가능성이 작지만, 남동생은 달랐죠. 시설에 갔다간 언제, 어떻게 생이별하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한 남자가 찾아왔다더라고요. 돌아가신 부모님의 동업자라면서요. 남자는 오갈 데 없던 형제를 거둬 줬고, 부모님의 사업체도 도맡아 운영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사업의 범위도, 영역도 음지쪽으로 변경됐다더라고요.

수혁인 성인이 되기도 전부터 그 밑에서 개처럼 일했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을 많이 믿고 의지했는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모두가 등 돌렸던 형제한테 유일하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었으니까요. 어쩌면 수혁이의 희생을 대가로 동생만큼은 잘 키워 주겠단 약속을 받았을 수도 있고요.

그렇다고 해도 그 사람 죄까지 대신 뒤집어쓸 필욘 없었는데, 4년이나 복역했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을 폭행해서 식물인간으로 만들었다는 이유였어요. 사실 피해자는 수혁이랑 일면식도 없었어요. 피해자한테 원한을 가질 사람은 오히려 그 남자였죠. 제대로 조사했다면 수혁이의 진술이 허점투성이란 걸 알았을 텐데, 그냥 넘어갔나 봐요. 범인이 자수도 했겠다, 일찌감치 수사를 종결한 거죠. 지역 유명 인사였던 그 남자한테 이래저래 받아먹은 것도 있을 테고요.

수감 생활 중에도 수혁이, 그 자식은 제 고생으로 동생은 편히 지낼 거라고 믿었을 거예요.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겠죠. 죽은 부모님과의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그 남자가 어린 동생만은 잘 보살펴 주리라고요.

그런데 그 동생은 수혁이가 퇴소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죽어 버렸어요. 병원에 도착했을 땐 이미 손 쓸 수가 없는 상태였대요.

그제야 알게 된 거예요. 어쩌면 내내 의심했지만, 애써 무시해 왔던 진실을 비로소 제대로 보기 시작한 거죠. 자신이 의지했던 사람한테 배신당했다는 걸요. 그 남자가 잘 돌봐 주겠다던 동생은 창고로도 쓰지 않을 지하 방에 방치돼서 오랜 기간 학대를 받았던 모양이에요. 수혁이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가장 큰 이익을 본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작자였죠. 그동안 원수일지도 모를 남자 밑에서 충성을 다 바쳤으니, 얼마나 억장이 무너졌겠어요.

사과할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그런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겠죠. 그런데도 수혁인 분을 못 이겨 그 남자를 찾아갔고, 빈사 상태로 버려졌어요.

그 뒤로 며칠간 의식 없었어요. 그래서 동생 시신도 미처 수습하지 못했고요. 아마 동생은 무연고자로 처리돼서 어딘가에 묻혔을 거예요. 그게 그렇게 후회스러운지, 그때부터 계속 악몽에 시달리는 것 같아요. 몸은 다 나았어도 속은 다 문드러져서 계속 곪아 갈 뿐인 거죠.

***

“아직 그쪽에선 연락 없고?”

이틀의 시한 중 절반이 지났다. 슬슬 장철민 쪽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 시기였다.

“네, 아직입니다.”

“늙은 개가 태평한 건지, 멍청한 건지….”

시간을 끌어서 좋을 게 없을 텐데. 불은 내버려 두면 알아서 꺼지기보다 더 크게 번지기 마련이었다. 잔뼈 굵은 장철민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경찰에 신고했으리란 걱정은 하지 않았다. 설마 빈대 잡자고 집을 다 태울까.

우형석은 소파에 진득이 기대앉으며 손을 내밀었다. 그의 수하가 눈치껏 미리 말아 둔 대마를 건네고 불까지 붙여 주었다. 두 볼이 패도록 깊이 한 모금 빨아들였다. 금세 머릿속이 몽롱해졌다. 특유의 향이 나는 연기를 내뿜으며 테이블 위를 턱짓했다.

“저건 뭐야?”

등기나 택배 같은 우편물이 달가웠던 적은 없다. 대부분 법원에서 보내오는 것들이고, 더러 경쟁 세력이 영역 확장을 목적으로 사람의 신체 부위나 짐승의 사체, 피 묻은 연장 따위를 보내 협박하는 일이 적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전에 도착했습니다. 발송인이 김제국인데, 형님께서 잡아 오라고 하셨던 그 정신 병원 의사와 이름이 일치합니다.”

의아하게 눈썹을 들치던 우형석은 바로 등기를 집어 들었다. 봉투를 찢어내자 작은 USB가 나왔다. 외향만 봐선 그 안에 뭐가 담겼는지 추측하기 어려웠다.

봉투 안을 다시 봤지만, 동봉된 메모 한 장이 없었다. 의문의 USB를 앞뒤로 돌려 살펴보다가 수하에게 넘겼다. 수하는 알아서 노트북을 꺼내 와 부팅시키고, USB를 연결했다. 안에는 웬 영상들이 저장돼 있었다.

“…뭐야, 몰카야?”

“어떻게 할까요, 형님.”

“뭘 어떻게 해. 틀어.”

첫 번째 파일부터 재생됐다. 화면은 어느 병실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다 환자복을 입은 누군가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나며 서서히 앵글 안으로 들어왔다. 곧이어 한 사내가 그에게 달려들어 덥석 팔을 붙잡았다. 사내는 하얀 가운을 입고 있었다. 의사인 것 같았다.

의사를 밀어 내려던 환자가 오래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 의사는 어렵지 않게 환자를 제압하고 그의 몸 위로 올라갔다. 의사가 조금씩 몸을 움직일 때마다 언뜻언뜻 환자의 얼굴이 보였다. 워낙 찰나였지만, 우형석은 단박에 그를 알아봤다. 주완이었다. 그렇게 찾아 헤맸던 박주완이 거기에 있었다.

우형석의 두 눈이 크게 벌어졌다. 사고 회로가 정지되면서 몸까지 굳어,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입에 물린 대마초만 속절없이 타들어 갔다.

작은 철제 침상이 끼익 끼익 소리를 내며 마구 흔들렸다. 주완의 머리를 짓누르고, 팔을 꺾어 잡은 의사는 흘레붙은 개처럼 하반신을 재게 붙여 댔다. 헐떡이는 숨소리가 왕왕 울려 퍼진다. 그 아래 깔린 주완은 잠잠하기만 했다. 그래서 마치 의사가 시신에 몹쓸 짓을 하는 듯한 인상마저 들었다.

우형석의 입술이 설핏 가느다란 호선을 그린다. 두 눈은 그새 형형하게 빛났다.

“저 새끼… 어디서 봤더라?”

“저 의사 놈 말입니까?”

“응. 분명히 봤는데….”

“장진우인 것 같습니다. 장철민의 외동아들이요. 형님께서 애들한테 인사나 한번 해 주고 오라고 하셨잖습니까.”

“아하?”

우형석의 입꼬리가 한결 비틀려 올라갔다. 상체마저 앞으로 기울인 채 영상을 노려보던 그는 불쑥 고개를 숙이고 소리 내 웃었다. 그를 지켜보던 수하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아, 저 새끼도 안 되겠네? 잡아 와.”

다시 몸을 뒤로 젖히며 명령한다. 얼굴에는 여전한 웃음기가 고여 있었지만, 목소리는 비릿하기 짝이 없었다.

“네, 형님.”

우형석의 수하는 서둘러 꾸벅하곤 집을 나섰다. 현관문이 열렸다가 도로 닫히는 기척이 났다.

그러도록 우형석은 재생 중인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화면 속 주완은 고요히 숨죽인 채 그 순간이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듯했다. 비명을 지르거나 신음을 흘리지도 않았다. 들리는 거라곤 잔뜩 흥분한 장진우의 음성과 거친 숨소리뿐이었다.

언제나 그랬다. 아무리 괴롭힌들 눈물을 보이지도, 그만두라며 구질구질하게 매달리지도 않았다. 더한 고통을 받게 될까 봐 몸을 사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태도가 상대를 더 자극한다는 걸 모르는 건지, 항상 초연한 것 같았다. 죽은 아버지에게도, 우형석 자신에게도, 그리고 화면 속 장진우를 상대로도.

계속 보고 있자니 기이하게도 불쾌해졌다. 그다지 애착을 둔 물건이 아니었는데, 제 분실물을 남이 멋대로 취해 사용하는 걸 본 듯한 기분이었다. 망가뜨리는 것도, 버리는 것도 제 몫이어야 했다. 화면을 쏘아보는 우형석의 두 눈에 살기가 등등해졌다.

그즈음 때아닌 인터폰이 울렸다. 하지만 화면에는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특별히 집에 찾아올 사람은 없었다. 수하들이라면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올 테고, 음식이나 택배 따위는 일절 시키지 않는다. 누가 잘못 찾아온 건가.

조금 더 지켜보는데, 재차 인터폰이 울렸다. 안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자 대놓고 현관문을 쾅쾅 두드려 댔다. 심히 거슬렸다.

수발을 위해 남아 있던 사내와 눈이 마주쳤다.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형님.”

사내는 우형석에게 꾸벅하곤 자못 험악한 낯빛을 한 채 성큼성큼 현관으로 향했다. 문밖의 불청객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누구야, 한다. 특별한 대꾸는 들려오지 않았다. 불청객은 거듭 현관문을 부술 것처럼 두드리기만 할 뿐이었다.

짜증이 극에 달한 사내가 벌컥 문을 연 듯했다. 이어서 잠깐 욕설이 오가더니, 도로 문이 닫혔다. 그 뒤로는 이상하리만치 잠잠했다.

낌새가 수상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친히 현관 쪽으로 나가 봤다.

“무슨 일….”

그러나 말을 다 잇지 못했다. 복면을 뒤집어쓴, 정체 모를 괴한들이 현관문 앞에 우뚝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누가 왔는지 확인해 보겠다던 수하는 이미 피범벅이 돼서 쓰러진 상태였다. 괴한들의 손에 들린 칼에서 뚝, 뚝 붉은 선혈이 떨어졌다.

“이, 씨발…!”

아차 하는 생각이 든 순간, 시야가 급격히 차단됐다.

***

병원으로 들어서자, 따가운 시선이 꽂혀 들었다. 그도 그럴 게, 전미남은 거의 2m에 달하는 장신이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오늘은 셔츠부터 구두까지 올 블랙으로 장착한 데다 선글라스마저 껴서 도무지 범상치 않아 보였다.

권수혁의 지시로 우형석에 관해 알아보는 중이었다. 표면적인 정보들은 이미 확인을 마쳤다. 이를테면 그가 주완의 이부형제이며, 스물일곱 살이고, 고등학교에서 퇴학당하고 조폭 생활을 시작해 적잖은 폭력 전과를 쌓았다는 것. 현재는 인천의 유흥가에서 주로 활동하며 지역 유지나 정치인, 건설 시공사 등의 청부를 받아 일하기도 한다는 것까지.

그런 우형석이 연도 없는 권수혁의 뒤를 캐는 건 순전히 주완 때문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추론대로라면 그도 이곳에 다녀갔을 게 분명했다.

“실례합니다.”

스테이션으로 다가가 말을 걸자, 내내 그를 곁눈질하던 간호조무사가 어깨를 움찔했다. 자신을 완전히 뒤덮는 거대한 그림자에 기가 눌린 듯했다. 순간이나마 완전히 굳어서 입까지 헤벌렸다.

“좀 여쭤볼 게 있는데요.”

“…아, 네. 무슨 일이시죠?”

“얼마 전까지 여기에 입원해 있던 박주완 씨에 대해섭니다.”

그즈음 다른 간호조무사가 다가와 무슨 일이야, 속삭여 물었다. 두 사람 사이에 몇 마디 긴한 대화가 오갔다. 언뜻 “또 그 사람이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전미남 본인 외에도 주완을 찾아왔던 사람이 더 있었던 게 분명했다.

“10년 가까이 입원했던 환잔데, 그땐 저희도 여기서 일하질 않아서 자세한 사정은 잘 모릅니다. 얼마 전에 퇴원하신 거로 알아요.”

간호조무사는 다소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암암리에 사람을 팔아넘기는 병원이라도 비밀 유지 원칙은 지키겠다는 건지. 물론 환자가 아닌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박주완 씨 동생이란 사람이 다녀가지 않았습니까?”

“네, 뭐….”

확실한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졌다. 우형석이 지난 10년간 거들떠보지도 않았던 주완을 갑자기 찾아 나선 이유가. 왜인지 결코 순수한 목적 때문은 아닐 거란 확신이 들었다.

“박주완 씨가 머물던 병실은 좀 둘러봐도 되겠습니까?”

느닷없는 요청에 두 간호조무사가 서로를 바라봤다. 이내 그중 하나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확인해 물었다.

“경찰이신가요?”

“아니요.”

“아니시면 곤란한데….”

간호조무사가 차마 강경하게 거절하진 못하고 말을 흐렸다. 역시 가족이나 경찰이 아니면 안 되는 건가.

그냥 돌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돌연 입구 쪽이 시끌시끌했다.

“장진우 어딨어? 장진우, 그 새끼 어디 있냐고!”

전미남과 두 간호조무사는 일제히 소음이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선 한 무리의 덩치들이 경비의 멱살을 쥔 채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조폭인 것 같았다. 나무 배트로 애꿎은 벽과 유리창을 두드려 가며 유세를 떨었다.

“아….”

간호조무사들에게서 탄식이 터졌다. 그중 한 명은 얼른 안으로 도망쳐 버리기도 했다. 곧 스테이션에 다다른 덩치들은 의외의 인물인 전미남을 맞닥뜨리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봐도 그는 의료진으로도, 환자로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뭐야, 이 덩어리는. 나와.”

덩치 중 하나가 전미남을 떠밀고 스테이션에 바짝 다가섰다. 간호조무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덩치가 배트로 단상을 내리쳤을 땐 나직한 비명까지 터트렸다.

“장진우 만나러 왔는데.”

“자, 장 선생님은 아직 출근 전이십니다.”

“김제국은?”

“김 선생님도요….”

“하, 뭐 이딴 병원이 다 있어? 빨리 전화해서 나오라고 해. 걔들 볼 때까지 안 갈 거니까.”

간호조무사는 고분고분 시키는 대로 수화기를 들었다. 다이얼을 누르는 손이 애처로울 정도로 덜덜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던 전미남이 대뜸 치워 드릴까요, 했다. 간호사가 멍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네?”

“치워? 치우긴 뭘 치워. 처맞기 싫으면 찌그러져 있어.”

빨리 전화하라고 닦달하던 덩치가 험악한 표정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전미남은 동요 없이 덜컥 그의 배트를 잡았다. 그러자 덩치의 몸이 반쯤 훅 딸려 왔다. 덩치가 뒤늦게 움찔하며 버텼다.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게, 전미남은 한 손으로 배트를 잡고 있는데, 본인은 두 손으로 매달려 당겨도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놔! 안 놔?”

전미남은 순간적으로 확 힘을 줘서 배트를 내던졌다. 끝까지 그걸 붙잡고 있던 덩치가 덩달아 나동그라졌다.

무리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그중 하나가 냅다 달려들며 주먹을 휘둘렀다.

“으아아아아악!”

전미남은 보지도 않고 날아오던 주먹을 턱 잡았다. 그러곤 순간적으로 잡은 손을 뒤로 확 젖혀 버렸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두툼한 손목이 어이없을 만큼 간단히 틀어졌다. 사내는 덜렁거리는 제 손을 보곤 죽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이, 이 새끼가!”

남은 덩치들이 동시에 공격해 왔다. 전미남은 그중 하나의 멱살을 잡아서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중심을 잃은 덩치가 크게 휘청거리며 복도 바닥에 고꾸라졌다. 밀쳐진 힘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로 바닥을 죽 쓸며 한참이나 미끄러졌다.

곧이어 달려든 덩치의 공격도 한 걸음 물러나는 것만으로 간단히 피했다. 그러곤 그의 뒤통수를 잡아 그대로 스테이션에 내리찍었다. 바르작거리던 덩치의 몸이 축 늘어졌다.

병원 사람들의 어안이 벙벙해졌다. 미남은 약간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고치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청했다.

“이제 박주완 씨 병실 좀 보여 주시죠.”

“…이쪽입니다.”

전화 수화기를 내려놓은 간호조무사가 얼른 앞장섰다. 그를 따라 금세 411호실 앞에 다다랐다. 간호조무사는 손수 문까지 열어주고 멀찌감치 물러났다.

“천천히 보세요.”

“감사합니다.”

뚜벅뚜벅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3평 남짓한 공간에는 낡은 침상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창문이라곤 없었고, 온 벽과 바닥이 새하얬다. 천천히 사위를 둘러보던 전미남은 뭔가를 발견하고 멈칫했다. 미간에도 살짝 주름이 잡혔다. 벽 한쪽에 미처 다 지우지 못한 얼룩이 보였기 때문이다. 오랜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그것은 필시 혈흔이었다.

전미남은 그 벽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주저 없이 손을 뻗어 얼룩을 따라 움직여 본다. 박, 주, 완. 혈흔의 정체는 틀림없이 주완의 이름이었다. 획이 고르진 않지만, 필체도 대략 주완의 것과 비슷했다.

“…….”

다시 고개를 돌려 좁은 병실을 둘러봤다. 그곳은 도저히 사람이 10년이라는 오랜 시간을 보낼 만한 공간이 아니었다. 아니, 어떤 생명체도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그런 곳에서 정상적으로 살아남긴 어려워 보였다.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는데, 천장에서 뭔가가 반짝거렸다. 나사인가 싶었지만, 특히 한 곳만 유독 그랬다. 병실의 불을 끄고, 핸드폰을 꺼내 그쪽에 불빛을 비춰 봤다. 착각이 아니라는 듯 그것은 분명하게 빛을 반사해 냈다.

병실 내부를 감시하는 CCTV라면 버젓이 문 앞에 설치돼 있었다. 각도상 사각지대가 생길 가능성이 크고, 워낙 낡아서 제대로 작동하긴 할지 의문이었지만. 그렇더라도 그리 교묘하게 제2의 카메라를 숨겨 둘 필요가 있을까.

자리에서 일어나 천장으로 손을 뻗었다. 뒤꿈치를 떼고, 팔을 드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물건에 손이 닿았다.

“이건….”

크기는 무척 작았지만, 분명 카메라였다.

***

권수혁은 오전 내내 집무실에서 서류 업무를 보고 있었다. 매일 식사 대신 마셨던 커피도 거른 채였다. 모처럼 아침을 먹어서 그런지, 카페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지않아 노크 소리가 울렸다. 서류에 눈을 고정한 채 들어와, 했다. 곧 문을 열고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섰다. 권수혁은 꾸벅하는 그를 일별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꼬박 1년 만의 복귀인데도 사사롭게 안부를 묻지 않는다.

그에겐 과거 태국 업체와의 거래를 중계했던 브로커를 잡아 오라고 지시했었다. 중간에서 거래 대금을 갈취하고, 물건까지 빼돌린 후 잠적한 자였다. 어디로 숨은 건지, 아직 태국 쪽에서도 놈을 잡지 못했다고 했다. 국내에도 자취가 전혀 없어, 중국으로 넘어간 게 아닌가 짐작했던 참이었다.

권수혁은 곧 의자에 몸을 깊이 기대고 대기 중인 사내를 응시했다. 그러자 사내가 보고를 시작했다.

“드디어 그자를 찾았습니다.”

“어디에서?”

“홍콩의 암시장을 기웃거린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현지 브로커들한테 직접 확인도 마쳤습니다. 계속 주거지를 옮겨 다니는 모양인데, 가장 최근에는 마카오 호텔 카지노에서도 목격됐다고 합니다.”

“판로를 못 찾았나 보네.”

잠자코 듣다가 픽 웃었다. 아침에, 주완의 낱말 퍼즐을 보며 지었던 미소와는 온도부터가 다른 웃음이었다. 긴 손가락으로 톡, 톡 책상을 두드리며 잠시 생각에 잠긴다.

배신자에겐 합당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 마땅했다. 관용은 또 다른 배신을 초래할 뿐이었다.

“당장 잡아 올까요?”

“아니, 내버려 둬.”

사내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의아하게 바라본 권수혁의 낯에는 전과 다를 바 없는, 서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홍콩이라… 일생의 마지막을 즐기기에 나쁘지 않지. 처분은 내가 직접 한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

사내는 다시 꾸벅 인사하고 돌아섰다.

때마침 누군가 집무실 문을 노크했다. 밖으로 나가던 사내는 그곳에서 대기하던 전미남에게도 정중히 묵례했다. 전미남은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곤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권수혁은 전미남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보고해, 했다. 전미남이 우형석의 신상 정보가 적힌 서류부터 건넸다.

“요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형석이 박주완 씨와 같이 살게 된 건 20년 전입니다. 어머니만 같은 이부형제였다는데, 형제 사이는 썩 좋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우형석의 친부인 우정만은 폭력 전과 14범으로 7년 전 사망했고, 그를 살해한 죄로 형제의 어머니는 현재 청주 교도소에 수감 중입니다. 10년 전, 고등학생이었던 박주완 씨를 중앙 정신 병원에 입원시킨 것도 그 어머닙니다. 우형석이 박주완 씨를 찾기 시작한 건 최근부터인 걸로 추측됩니다. 오늘도 병원에 사람을 보내서 박주완 씨의 행방을 캐고 있었습니다.”

“이유는?”

“죄송합니다. 아직 거기까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몇 년 전부터 관리 중인 가게들이 줄도산해, 우형석의 조직 운영에 차질이 생겼다는 얘기를 접했습니다. 인천에 개발 예정이라는 테마파크에 투자하고 싶어 한다는 소문도 돌고 있고요. 단지 그게 박주완 씨를 찾는 이유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건강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도 의심해 봤습니다만, 특별히 그런 징후는 없었습니다.”

“10년 만에 갑자기 핏줄이 당길 리도 없고….”

권수혁은 나직이 조소했다.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작자를 동생으로, 멀쩡한 친자식을 병원에 집어넣고 남편까지 살해한 여자를 어머니로, 폭력을 일삼던 남자를 의붓아비로 뒀던 박주완의 삶은 대체 어땠다는 건지. 온갖 추잡한 단상들이 뇌리를 꽉 채웠다. 괜스레 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어쩌면 주완이 그렇게나 초탈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 일찍부터 마모되고 마모돼서, 감정의 기복이 적어진 탓인지도 모른다. 그가 매일 악몽에 시달리는 권수혁 자신에게 은근한 동질감을 표시한 것도 새삼 이해가 갔다.

“일단 알았고. 조만간 홍콩에 갈 테니까, 준비해 둬.”

전미남은 이어진 지시에 다소 어리둥절했다. 지금처럼 권수혁이 출장을 예고하며 미리 준비하라고 일렀던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출국 관련 업무는 그가 아닌, 다른 조직원의 몫이었다.

그런데도 굳이 귀띔하는 건 이번 출장이 이제까지와는 다르리란 걸 전제하고 있었다. 가령 새로운 동행이 붙는다거나 하는. 따로 준비가 필요한 사람이라면 딱 한 명뿐이었다. 바로 주완이었다.

***

우형석의 집 안은 한바탕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엉망이었다. 소파는 밑바닥을 훤히 드러낸 채 옆으로 넘어갔고, 온갖 집기들이 바닥에 떨어져 굴러다녔다. 벽의 액자는 금방이라도 비스듬하게 기울어져서 덜렁거렸다. 소파 테이블이 산산이 조각났을 정도니, 멀쩡한 물건이 있을 리 만무했다.

우형석은 그 난장판 속에서 유유히 대마초나 피우고 있었다. 머리가 깨졌는지, 얼굴 옆면을 타고 흐른 피가 어깨를 흠뻑 적셨다. 소란의 원인이었을 괴한들은 바닥에 쓰러져 사경을 헤맸다. 복면은 진작 벗겨졌지만, 완전히 곤죽이 돼서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었다. 대리석 벽면과 바닥이 선혈로 낭자했다.

“혀, 형님!”

막 도착한 수하들이 한달음에 우형석에게 달려갔다. 그러곤 그 앞에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마치 우형석이 습격을 받은 게 저희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그랬다. 이내 그들의 시선은 바닥의 작은 피 웅덩이에 고정됐다. 계속해서 떨어지는 피는 우형석의 복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형님! 많이 다치셨습니다. 치료부터 해야 합니다!”

귀청을 왕왕 울리는 소리에 우형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쯧, 하고 혀를 차기도 했다.

“너넨 면상이 왜 그 모양이야?”

“…작은 마찰이 있었습니다.”

“저건 또 뭐고?”

수하들에게 잡혀 온 이를 눈짓한다. 툭 건드리기만 해도 기절할 듯한 남자는 병원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낯설었다. 잡아 오라던 장진우가 아니었다. 가슴께에는 ‘이상엽’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복부의 상처에서 피가 더 줄줄 흘렀다. 우형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터벅터벅 이상엽에게 다가가 그를 고요히 들여다봤다. 과다 출혈 때문인지 핏기라곤 없는 얼굴이 도무지 산 사람 같지가 않았다.

“사, 살려 주세요.”

이상엽의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이내 그는 다른 수하들처럼 얼른 무릎 꿇고 앉아서 두 손을 싹싹 비볐다. 우형석은 제 발치에 납작 엎드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공포에 벌벌거리는 그를 까마득하게 내려다봤다.

“중앙 정신 병원에서 근무하는 놈입니다. 찾는 장진우는 없고, 이 새끼가 저희를 보자마자 냅다 달아나지 뭡니까? 구린 게 있구나 싶어서 잡아 왔습니다. 오는 내내 자기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니까 살려 달라더라고요.”

“시키는 대로 뭘 했는데?”

우형석은 당장 숨이 넘어갈 듯한 이상엽을 관망하면서 히죽 웃었다. 그의 수하가 직접 말하라는 듯 이상엽을 압박했다. 이상엽은 부들부들 떨리는 고개를 들어 가까스로 우형석과 눈을 맞췄다. 머리에서도, 배에서도 피를 쏟으면서 실실거리는 모습이 어떻게 봐도 정상 같지 않았다. 가느다래진 이성이 그를 거슬러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고 있었다.

이상엽은 눈을 질끈 감고 모든 걸 실토했다.

“시, 실은 김 선생님이 부탁하셔서… 제가 돈이 좀 급하게 필요했는데, 김 선생님이 그것만 도와주면 된다고… 그래도 꺼림칙해서요. 싫다고, 거절했었는데요. 그 병원에서 일하게 된 것도 김 선생님 덕분이었고… 마, 만약 선생님이 연락 없이 결근하게 되면 그 봉투를 등기로 보내기만 하면 된다고 하셔서… 그때 분명히 내용물을 보지만 않으면 저한테 아무런 피해도 없을 거라고. 김 선생님 이름으로 보내 주기만 하라고… 맹세코 전 정말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릅니다. 안 열어 봤어요! 믿어 주세요.”

“이 병신이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통 못 알아듣겠는데?”

“아아….”

이상엽에게서 절망 어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극한의 상황에 자꾸 머리가 굳고 혀가 말려서 조리 있게 말하기가 어려운 듯했다. 우형석의 수하가 그를 대신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했다.

“김제국이 사라지기 전에 봉투 두 개를 이놈한테 맡긴 것 같습니다. 자기 신변에 무슨 일이 생기거나, 며칠 동안 연락이 끊기면 등기로 보내 달라고 하면서요. 그중 하나가 형님께 온 거고, 남은 하나는 장철민한테 보내진 것 같습니다.”

우형석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장진우의 강간 영상이 담긴 USB는 우형석 자신과 장철민에게 각각 보내졌다. 그건 무슨 의미일까.

어쩌면 김제국이 해당 영상을 빌미로 장진우를 협박했을지 모른다. 이상엽에게 맡겼다는 두 개의 USB는 그게 먹히지 않아 자신이 해를 입게 될 때를 대비했던 거겠고. 적이 많은 작자라서, 나름대로 주도면밀하게 보험을 들어 놓은 듯했다. 혹은 죽어도 혼자 죽지는 않겠다는, 괴상한 고집일지도 몰랐다. 자신을 치는 게 장진우든, 장철민이든, 우형석 자신이든 그 영상으로 인해 대립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물론 그런 계산에는 우형석이 주완에게 형제지간의 우애 정도는 품고 있으리란 전제가 필요했다. 거기에서 완전히 빗나간 셈이지만, 결과는 비슷하게 도출됐으니 완전히 헛물을 켠 것만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장철민, 그 노인네도 저 영상을 봤단 말이지….”

우형석은 이미 두 동강 난 노트북을 노려봤다. 청부업자를 보냈기에 돈 몇 푼이 아까워서 자충수를 뒀나 했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장철민은 그저 김제국의 장기 매매와 더불어 제 친아들의 성범죄가 탄로 날까, 그로 인해 우형석 자신이 더 큰 대가를 요구할까 우려해 아예 묻어 버리기로 작정한 것뿐이었다. 헛웃음이 터졌다.

우형석이 대뜸 이상엽을 후려갈긴 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빡 소리와 함께 이상엽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몸도 버티지 못하고 처참히 나동그라졌다. 골 전체가 멍하게 울리는 통증에 이상엽이 맞은 부위를 감싼 채 부들부들 경련했다.

“아… 아아… 아….”

“치워.”

“네, 형님.”

우형석의 수하들이 힘으로 이상엽을 일으켜 끌고 나갔다. 멀어지면서도 살려 달라고 애원하던 목소리는 현관문이 닫히면서 잦아들었다.

우형석은 뻐근한 손목을 천천히 돌리면서 물었다.

“다른 애들은?”

“장진우의 자택과 본가 쪽을 뒤지고 있을 겁니다.”

“연락해. 장진우, 그 새끼. 잡아 올 거 없다고.”

“네? 그럼….”

우형석은 반절 정도 남은 대마초를 다시 입에 물었다. 한숨 깊숙이 빨아들였다가 내뱉자 복부의 상처에서 울컥울컥 피가 쏟아졌다. 감흥 없이 그 광경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불놀이나 좀 해 볼까.”

이내 그의 입술에 가느다란 호선이 번졌다.

권수혁이 돌아온 건 밤 10시가 지나서였다. 그래 봬도 평소보다 한참은 이른 귀가였다. 전미남도 그와 함께 잠시 그의 집에 들렀다. 명분은 권수혁을 수행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주완이 잘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 같았다.

보통 때라면 인기척 없이 고요했을 집 안에 라디오가 틀어진 상태였다. 그런 시사 방송을 청취할 사람이라면 딱 한 명, 백도운밖에 없었다. 예상대로 그는 소파에 길게 엎드려서 의학 저널을 보고 있었다.

“어, 왔냐?”

백도운이 짧은 인사를 건네곤 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라디오를 끄면서 시간을 확인한 그는 곧 묘한 웃음을 지었다.

“어쩐 일이래? 빨리 왔네.”

유난히 이른 귀가를 놀리는 것 같았다. 권수혁은 그런 백도운을 탐탁잖게 바라볼 뿐이었다.

전미남은 백도운에게 꾸벅 인사하더니, 집 곳곳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싱크대는 물기 없이 깨끗했다. 혹시나 해서 사다 둔 냉장고의 간편 요리들도 상당수 사라졌다. 재활용품 상자와 쓰레기통을 대강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재규어가 먹이를 제때 먹었는지, 주완과 백도운이 어떤 식사를 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닫힌 침실 문을 조용히 열어 봤다. 느닷없이 불빛이 새어 들자, 재규어가 홱 고개를 들고 전미남을 노려봤다. 잠을 방해받아 짜증이 났는지 이까지 내보이며 작게 으르렁거린다. 그 곁에 주완이 문 쪽으로 등을 보인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재규어와 그렇게 몸을 딱 붙이고, 놈의 꼬리까지 감고서 불편하지도 않은지 잘도 잤다.

도로 문을 닫고 거실로 돌아왔다. 백도운은 그런 전미남을 향해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가 손댈 곳 없이 말끔하게 치워 놓은 게 못내 뿌듯한 모양이었다. 확실히, 백도운의 집과 비교하자면 이곳의 상태는 기적에 가깝긴 했다.

권수혁은 셔츠 단추를 풀면서 명령했다.

“둘 다 그만 돌아가.”

“맨날 지가 아쉬워서 불러 놓고 쫓아낼 생각밖에 없지? 언제쯤 이 새끼 입에서 고맙단 소리가 나올까.”

백도운이 대놓고 입술을 삐죽였다. 권수혁은 우뚝 손을 멈추고 성가신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특별히 위험한 기류는 흐르지 않았지만, 전미남의 몸이 본능적으로 긴장됐다.

“노려보기는. 연애 좀 해. 어떻게 인간이 가면 갈수록 퍼석퍼석해지기만 하냐. 숨 막혀 돌아가시겠네.”

“그만 종알거리고 꺼져.”

“네, 네. 써먹을 데도 없는 시커먼 사내새끼는 얌전히 사라져 드리겠습니다.”

백도운은 과장되게 고개를 조아리며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그러자 권수혁이 여전히 멀뚱히 서 있던 전미남을 바라봤다.

“그럼 쉬십시오.”

전미남은 꾸벅 인사하곤 성큼성큼 백도운을 따라 나갔다. 굳이 그를 집까지 데려다줄 필요는 없었지만, 그게 권수혁 나름의 보답이었다.

“선생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진짜요? 그럼 사양 안 할게요. 종일 안 하던 짓을 했더니 피곤해서 운전하기 싫었어.”

백도운이 순순히 차 키를 넘겼다. 뒷좌석 문을 열어 그를 태우곤 차체를 빙 둘러 운전석 쪽으로 가면서 재킷 주머니를 쓸어내렸다. 그곳에 넣어둔 소형 카메라가 만져졌다. 권수혁에게는 아직 그것의 존재를 알리지 않았다. 특별히 그가 주완에 관해서 알아보라고 지시한 것도 아니었고, 그 안에 무엇이 찍혔건 엄연히 사생활이었기 때문이다.

운전석에 앉은 전미남은 룸미러로 백도운을 살폈다. 그는 자신의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 틈에 백도운이 불쑥 눈을 들었다. 그러면서 룸미러를 통해 시선이 딱 마주쳐 버렸다.

“혹시 나한테 할 말 있어요?”

백도운은 지레 흠칫하는 전미남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그새 주저하는 기색을 읽은 듯했다. 느긋하고 헐렁한 것 같아도 감이 예민한 사람이었다.

뭐든 들어줄 것처럼 너그러운 그의 얼굴을 보니, 절로 빗장이 풀렸다. 전미남은 즉시 문제의 카메라를 꺼내 내밀었다. 백도운이 지레 표정을 구겼다.

“뭐야, 몰카?”

“박주완 씨 병실에서 찾은 겁니다.”

“그 병원에선 환자 감시할 때 이런 걸 썼대요?”

“아뇨. 그런 용도의 CCTV는 따로 있었습니다.”

“그럼 누가 일부러 주완 씨 병실에 그걸 설치했다는 거예요?”

“그런 것 같습니다. 잘 눈에 띄지 않도록 교묘히 숨겨 뒀던 걸 보면요.”

“대체 누가?”

“짐작 가는 게 없으십니까?”

“글쎄요. 그걸 내가 어떻게….”

백도운은 고개를 갸웃거리다 멈칫했다. 순간 머릿속에 주완과 처음 만났던 날이 떠올랐다. 좀 더 정확하게는 욕실에서 그의 벗은 몸을 봤을 때가.

주완의 몸에는 성폭행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했다. 수년간이나 반복된 악몽이었다고.

만약 전미남이 가져온 카메라가 아주 오래전부터 그 병실에 있었다면, 그걸 설치했을 사람은 두 부류였다. 주완에게 몹쓸 짓을 한 당사자나, 주완이 지속해서 그런 일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묵인한 내부인.

“오늘 거기에 갔던 건 박주완 씨의 이부형제에 대해서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아서였습니다. 누구든 박주완 씨를 찾는다면 가장 먼저 그 병원부터 들렀을 것 같아서요. 간 김에 박주완 씨가 머물렀던 병실도 둘러봤는데, 거기서 이걸 발견한 겁니다. 혹시 몰라서 일단 가지고 오긴 했습니다만….”

주완이 권수혁에게 이제껏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털어놓지 않았다면 권수혁은 그가 병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까맣게 모를 거였다. 전미남 역시 그 카메라 안에 어떤 장면이 찍힌 건지 모르는 눈치였다.

“그래서, 그걸 수혁이한테 보여 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돼요?”

전미남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가만 보면 미남 씨도 참 마음이 약하다니까.”

남은 진지한데, 백도운은 피식 웃기나 했다. 그러곤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뜻대로 하세요.”

“…네?”

“어떤 진실은 밝혀지는 순간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고, 또 어떤 진실은 예기치 못한 재난을 몰고 오기도 하잖아요. 우리가 그걸 다 어떻게 예견하겠어요. 분명한 건 진실은 언제라도 반드시 밝혀진다는 거예요. 미남 씨가 그걸 수혁이한테 보여 주지 않는다고 해도 수혁인 언제든, 어떤 루트로든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알게 될 거란 거죠. 그래도 마음이 영 그러면 당분간 묻어 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키지 않는 일을 억지로 하면 꼭 탈이 나더라고.”

“…….”

“이러나저러나 너무 걱정할 필요, 없지 않아요? 그 안에 뭐가 찍혔든, 그로 인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든 최소한 미남 씨가 걱정하는 상대한테 해가 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

백도운의 충고는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덕분에 어떻게 처신할지 확신이 섰다. 전미남은 손에 든 카메라를 물끄러미 보다가 도로 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차에 시동을 걸고 서서히 주차장을 벗어났다. 백도운은 길게 하품하며 창밖을 내다보더니 불현듯 그런데요, 했다. 전미남의 시선이 룸미러를 향했다.

“수혁이 놈, 툭하면 사내새낀 못 재워 준다 어쩐다 그러잖아? 주완 씨도 엄밀히 따지면 그 ‘사내새끼’에 들어가는데. 아침엔 글쎄, 주완 씨가 만들어 준 밥까지 먹었대요. 사람 차별하는 거야, 뭐야?”

전미남은 백도운이 투덜거리는 소리를 잠자코 듣기만 했다. 특별히 동조하거나 말을 보태진 않았지만, 그가 보기에도 의외로웠다. ‘사내새끼’라고 대상을 단정 지었을 뿐이지, 사실 권수혁은 본인이 의식이 없을 땐 누구에게도 곁을 허락하지 않았다.

게다가 주완에게는 도주할 의지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런 그와 여전히 동침할 필요는 아무래도 없어 보였다.

불현듯 눈을 떴다. 몸에 감기는 부드러운 침구의 감촉으로 침대에 누워 있음을 인지했다. 불이 꺼진 탓에 사위가 어두컴컴했다. 귓가에 들리는 소리라곤 지척에서 잠든 재규어의 숨소리뿐이었다. 놈이 숨을 한껏 들이마셨다가 내쉴 때마다 침대까지 덩달아 너울거렸다.

잠깐 눈을 붙이려던 게 꽤 오래 잠들어 버린 듯했다. 몇 시나 됐을까. 상체를 일으키려던 주완은 제 허리에 은근슬쩍 감긴 재규어의 꼬리를 보곤 멈칫했다. 놈은 여전히 곤하게 잠들어 있었다. 놈이 깰까, 한없이 조심스럽게 꼬리를 풀었다.

그러자 재규어가 잠결에도 푸르르 동그란 귀를 파닥거리더니 이내 잠잠해졌다. 천천히 손을 뻗어 놈의 이마를 살짝살짝 쓰다듬어 보다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권수혁이 돌아왔을지 궁금했다. 조용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거실은 아직 훤했다. 하지만 백도운이 듣던 라디오 소리는 잦아든 상태였다. 그 역시 깜빡 선잠이 들었을지 모른다는 추측은 금세 사라졌다. 권수혁 특유의 향기가 물씬 풍겨 왔기 때문이다.

권수혁은 1인용 소파에 풀어져 앉아 있었다. 다른 사람의 기척을 확인했지만, 집 안엔 그밖에 없는 것 같았다. 시계를 보니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밖이 어두우니 낮이 아닌 새벽일 테고, 백도운이든 권수혁의 다른 수하들이든 모두 돌아간 모양이었다.

물끄러미 권수혁의 뒷모습을 보다가 가까이 다가갔다. 아무리 발소리가 작아도 그 인기척을 전혀 모를 리 없는데, 수혁은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와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서서 입을 뗐다.

“다녀오셨어요?”

느릿한 어조로 인사를 전했다. 전처럼 무시당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

예상대로 권수혁에게선 별반 대꾸가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슬쩍 고개를 돌려 주완을 응시해 왔다.

권수혁과 눈이 마주침에 고개만 꾸벅했다. 그러자 권수혁도 그에 응하듯 가볍게 고개를 까딱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만큼 미미한 움직임이었다. 그럼에도 알게 모르게 긴장됐던 마음이 누그러졌다. 저도 모르게 입꼬리도 움찔거렸다.

그나저나 자지도 않고 뭐 하는 걸까. 눈동자를 굴려 권수혁의 모습을 살폈다. 샤워한 지 오래됐는지 머리카락의 물기는 거의 다 말라 있었다. 홀로 마셨을 테이블의 양주도 바닥을 드러냈다.

주완은 곧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냉장고에서 뭔가를 꺼내 두 개의 컵에 따르고, 그것들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데웠다. 금세 따뜻해진 컵들을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그러곤 여전히 움직임이 없는 수혁에게 불쑥 내밀었다.

권수혁은 의아한 눈빛으로 코앞에 내밀어진 컵과 주완을 번갈아 봤다.

“…이게 뭐지?”

“마셔 두는 게 좋아요.”

주완이 컵을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그 안에는 흰 우유가 담겨 있었다. 반대편 손에 든 컵의 내용물 역시 제 몫의 흰 우유였다.

권수혁은 미간을 찌푸린 채 컵을 받아 들었다. 그러지 않으면 주완이 언제까지고 그렇게 버티고 서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 건네받은 우유를 마시지는 않았다.

주완은 먼저 우유를 들이켜며 권수혁을 빤히 내려다봤다. 그 눈초리가 꼭 은근히 독촉하는 것 같았다. 권수혁이 컵을 비울 때까지 그렇게 뚫어지게 볼 기세였다. 적나라한 시선에 권수혁도 고개를 들고 주완을 마주 봤다.

그런데도 눈길을 물리지 않던 주완은 금세 제 몫의 우유를 다 마셨다. 입술에 묻은 건 혀로 말끔히 핥았다.

“잠이 잘 안 올 땐 따뜻한 우유가 좋다고 했거든요.”

여전히 자신을 미심쩍게 보는 권수혁에게 확신한다.

권수혁은 다시금 제 손에 들린 컵을 바라봤다. 주완도 그곳에 눈을 고정했다. 목에 칼을 대고 협박하는 것도 아닌데, 그것 이상으로 거절하기 곤란한 기분이 들었다.

공연히 우유를 노려보다가 불시에 벌컥벌컥 들이켰다. 도드라진 울대뼈가 시원스럽게 너울거렸다. 머지않아 손등으로 입을 닦으며 빈 컵을 내려놓았다.

“방법을 바꾼 건가?”

“…네?”

“이런다고 네 처지가 좀 달라질 것 같아? 내가 널 왜 여기로 데려왔는지, 그새 잊었나 보지?”

“알아요. 내 피가 필요하다고 그랬잖아요.”

주완은 지극히 덤덤하게 대꾸했다. 조금도 수그러드는 기색이 없어서 당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낯선 곳에 혈액 공급원으로 끌려와 놓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입원을 너무 오래 한 나머지, 억압받는 데 익숙해진 걸까? 자신의 처지나 미래 따위가 전혀 걱정되지 않는 듯했다. 그렇게나 태평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이어진 한마디에는 멍청하게 되묻고 말았다.

“…고맙다고?”

“네. 어떤 식으로든, 또 목적이 뭐든 거기서 꺼내 줬으니까요.”

어처구니가 없다. 멍하니 주완을 보던 권수혁은 깊은 날숨을 뱉으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곤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로 들어갔다.

그런 권수혁을 잠자코 지켜보던 주완은 빈 컵 두 개를 싱크대로 가져가 깨끗하게 닦았다. 짧은 설거지를 끝낸 후에는 욕실로 가서 금세 양치까지 마쳤다.

거실 불을 끄자, 집 안 전체가 컴컴해졌다. 손끝으로 더듬더듬 벽을 짚으며 침실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나는 호박색 눈동자가 보였다. 권수혁으로 인해 잠에서 깬 건지 재규어가 고개를 들고 주완을 지켜봤다.

슬금슬금 침대로 들어가 누우면서 재규어의 등을 길게 쓰다듬어 주었다. 재규어는 싫은 기색 없이 주완을 빤히 보기만 했다. 지난밤 권수혁이 했던 것처럼 놈의 턱 밑 부분을 슬슬 긁어 줬을 땐 어김없이 두 눈을 가늘게 뜨고 골골거렸다.

“잘 자, 수남아.”

이어진 인사에는 대번에 고개를 홱 돌려 버렸지만. 어지간히 제 이름이 싫은 것 같았다. 그 와중에도 꼬리만은 착실하게 주완의 허리를 감아 왔다. 이제 좀 친해졌다고 생각해도 되는 걸까. 무심한 재규어의 뒤통수를 보다가 옅게 웃었다.

그러다 권수혁 쪽도 한 번 살펴봤다. 암순응으로 그의 실루엣이 어렴풋하게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전처럼 등 돌리지 않고 주완 쪽을, 정확하게는 재규어를 향해 누워 있었다. 두 눈도 아직 감지 않은 상태였다. 누가 그 주인에 그 반려동물 아니랄까 봐, 조금 전 재규어가 그랬듯이 고요히 숨죽인 채 주완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듯했다.

“잘 자요.”

스스럼없이 인사를 건넸다. 오늘도 권수혁에게선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저 그는 주완의 인사에 응하듯 스르륵 눈을 감았을 따름이었다.

모처럼 평화로운 밤이 깊어 갔다.

***

“으읍! 으으음!”

장철민은 결박된 몸을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얼굴에는 온통 청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그로 인해 목이 터지라고 도움을 청해도 그 소리는 멀리 퍼지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이미 그 곁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 상태였다.

우형석은 소파에 앉아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장철민을 흥미롭게 구경했다. 장철민은 지치지도 않는지 끊임없이 소리를 지르며 발악했다.

“노인네가, 기력도 좋네. 뭐 좋은 거 많이 먹었나 봐?”

빈정대는 소리에 장철민의 움직임이 우뚝 멎었다. 불쑥 몸을 일으켜 그에게 다가갔다. 그것만으로도 장철민이 바짝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맹렬하게 머리 굴리는 소리가 귓전에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스산하게 속삭였다.

“그러니까, 내가 허튼짓할 거면 목숨은 내놓고 하라고 그랬잖아요. 사람이 친절하게 경고해 주면 잘 새겨들어야지.”

“으으읍!”

장철민이 발칵 머리를 들치고 반발했다. 욕설이라도 뱉는지, 테이프 틈새로 타액 따위가 스며 나왔다.

그사이 우형석의 수하들은 집 곳곳에 기름을 붓고 있었다. 작은 불티에라도 집 전체가 숯 더미가 될 판이었다.

장철민은 체념하지 않고 끊임없이 뭔가를 말하려 했다. 꼼짝없이 죽게 생기니 뒤늦게라도 협상을 시도하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형석은 장철민의 얘기를 들어 주지 않았다. 이미 입맛이 떨어졌는데, 어떤 진수성찬을 가져온들 구미가 당길 리 없었다.

“우움! 으우움! 으음!”

그나저나 그렇게 나이를 먹고도, 그만큼이나 누리며 살고도 죽기가 싫을까. 우형석은 신기하다는 듯이 있는 대로 발악하는 장철민을 내려다봤다. 역시 인간은 최후가 다가오면 하나같이 추잡해진다. 남의 목숨은 우습게 여기면서, 저는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꼴이 우스울 따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며 대기 중이던 수하들에게 고갯짓했다. 그러자 사내들이 다가와 장철민과 그 아내에게 기름을 들이부었다. 기름을 흠뻑 뒤집어쓴 장철민은 오줌을 지리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쳤다.

“우우웁!”

“아들을 원망할 필욘 없어요. 가만 보니까 애들 잘못되는 건 거의 다 부모 탓이더라고. 게다가 이건 솔직히 당신이 자초한 거잖아. 함부로 사람 뒤통수치면 안 되지. 안 그래요?”

짐짓 누그러진 어조에 장철민이 연방 고개를 끄덕였다.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라도 잡아 보려는 듯이. 지금의 그에겐 전 재산을 내놓으라고 요구해도 그처럼 고개를 끄덕일 것 같았다.

우형석의 입가에 기이한 웃음이 번졌다.

“잘못한 걸 알았으면 벌도 달게 받아야지?”

“우우우움! 으으으으음!”

최후를 예감한 장철민이 이제 막 물 밖으로 꺼내진 생선처럼 펄떡거렸다. 우형석은 그 덧없는 저항을 지켜보다가 집 밖으로 나갔다. 그의 수하들이 남은 기름을 장철민에게 모두 쏟아부었다. 장철민은 코와 귀로 울컥울컥 쏟아져 들어오는 기름에 정신을 못 차리고 바르작거리더니 서서히 힘을 잃어 갔다.

우형석은 밖에서 잠시 후면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질 거대한 저택을 굽어봤다. 건조한 바람이 불었다. 불놀이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즈음 한 수하가 다가와 장철민의 비서도 깨끗이 처리했다고 귀띔했다. 모든 준비가 끝난 셈이었다.

수하들은 정원에도 기름을 부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러곤 대기 중인 차량에 올라 일사불란하게 현장을 떠났다. 우형석은 달리는 차 밖으로 불붙인 담배를 집어 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꽁초가 바람을 타고 데굴데굴 구르다 대문까지 날아갔다.

순간 들불처럼 불길이 확 번지면서 정원이 붉게 타기 시작했다. 화마가 집 전체를 집어삼키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위가 낮보다 더 환해진 것 같았다. 우형석은 짙은 환희에 젖어 큰소리로 웃어 젖혔다. 아직 모두가 잠든 깊은 새벽, 그의 차는 고요를 틈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

이른 아침인데도 출국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라운지에도 빈자리가 별로 없었다. 사위를 둘러보던 장진우는 가장 구석진 곳에 가서 앉았다. 그런 데서 아는 이를 만날 가능성은 작지만, 심리적으로 타인의 시선을 피하게 됐다.

빈속에 커피를 마시면서 텔레비전을 시청했다. 특별히 흥미로운 내용이어서가 아니라, 그냥 틀어진 걸 볼 뿐이었다. 워낙 이른 시간이라 아침 뉴스가 송출되고 있었다.

해당 뉴스를 줄곧 무감하게 감상하던 장진우가 돌연 눈을 홉떴다. 화면에 참혹한 화재 현장이 비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너무 눈에 익은 풍경이었다. 마땅히 그곳에 있어야 할 저택은 보이지 않았지만. 가슴이 쿵쿵 격렬하게 요동쳤다. 그동안 웬만한 뉴스는 그냥 흘려보냈던 두 귀가 극도로 예민해지더니, 기자의 보도를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빨아들였다.

“오늘 새벽 3시경, 서울 용산구 장 모 씨의 집에서 불이 나 잠을 자던 장 모 씨 부부가 참변을 당했습니다. 이 불로 장 모 씨의 집과 승용차가 전소됐고, 이웃 세 명이 연기를 들이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습니다. 화재는 2시간 만에 진화됐으며, 소방 당국과 경찰은 방화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확한 경위를 조사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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