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안녕? 내가 네 주인이야 ~
“자, 들어오시죠.”
“아, 네에.”
주인은 가게 직원의 안내에 따라 어두컴컴한 지하실로 통하는 입구를 따라 내려갔다. 친구 녀석에게 물어 물어 찾아온 가게인데, 막상 주변이 컴컴한 것을 보니 괜히 불안했다.
‘아씨, 괜히 온 거 아니야? 그렇지만 나와 평생을 함께할 수 있는 반려 생물을 만나고 싶은걸.’
그래, 주인은 어릴 때부터 평생을 함께할 반려 생물을 만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중학교 때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다행히도 집에 본래 가지고 있던 자산이 워낙 많았던 데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친구인 변호사님 덕에 부족함은 없이 자랐지만 주인은 항상, 항상 외로웠다.
언제나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 같은 허전함 때문에 연애도 엄청나게 했지만, 끝이 항상 좋지 않았다. 사람은 항상 주인에게 상처만 남기고 떠났다. 연애에 잔뜩 상처받고 나서 주인은 동물과 식물들에게로 눈을 돌렸다.
강아지? 주인만을 바라본다는 강아지는 주인의 마음을 떨리게 했다. 그 촉촉한 코와 동그란 눈! 하지만 강아지의 수명이 평균적으로 15년 정도라는 것을 알고 나자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랑스러운 작은 생물과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주인은, 그래, 자신과 오래오래, 어쩌면 평생을 함께해 줄 존재를 원했다.
고양이의 평균 수명도 강아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새의 수명은 더 짧았다.
주인은 그래서 다음으로는 식물로 눈을 돌렸다. 확실히 식물은 수명이 동물보다는 압도적으로 길기는 했다. 커다란 나무 같은 경우에는 가볍게 백 년을 넘기기도 했으니. 인간의 수명이 백 년을 넘기기 힘든 것과 주인의 나이가 서른에 가깝다는 것을 생각하면 식물은 주인보다는 오래 살 확률이 컸다.
하지만 역시 자신과 교감을 할 수 없다는 점이 주인을 망설이게 했다. 주인은 자신이 집에 오면 반겨 주고, 이왕이면 자신과 눈을 맞출 수 있는 존재가 좋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게다가 자신이 죽고 나면 그 식물은 어떻게 할지 그것도 걱정됐다.
‘그런데, 내가 고른 아이가 나를 좋아해 줄까?’
주인은 성격이 밝은 편이었고 그에 걸맞게 대학 생활 내내 친구가 없었던 적도 밥을 혼자 먹었던 적도 없었다. 연애도 끊이지 않고 해 왔고. 거의 백구십 센티에 가까운 키, 좋은 몸매, 거기에 얼굴도 훈훈한 편이었으니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좋았다. 하지만 주인이 고른 반려 생물이 주인을 좋아해 줄지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중, 주인은 자신보다 더 돈이 많은 집안의 자제인 대학 친구와 술을 마시던 중 귀가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야, 요즘은 특이한 애완동물이 인기라던데. 요즘 나 꾸준히 나가는 그 모임 있잖아. 거기에서 늑대개나 호랑이 같은 맹수들도 애완동물로 구할 수 있다고 소문났어.”
주인은 솔깃했다. 펫샵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가면 왠지, 왠지 특별한 생물을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전혀 근거는 없는 기분이었다.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은 그냥 술을 많이 마셔서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왠지, 꼭 한 번 그 가게에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가 어딘데?”
“뭐야, 너 관심 있어?”
“뭐어… 궁금하잖아.”
“어, 잠시만. 동현이가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연락 한번 해 볼게.”
그렇게 주인은, 그 펫샵의 위치를 받아 왔다. 주인은 펫샵의 위치를 받아 와 놓고도 한참을 고민했다. 그냥, 꼭 한 번 가 봐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주소를 받아 오기는 했지만 운명적인 반려 생물을 만나고 싶다면서 반려 생물을 돈을 주고 사 오는 펫샵에 가도 괜찮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펫샵에 대한 생각에 일단 한 번 찾아가 보기로 결심했다.
위치를 확인하고 찾아간 펫샵은, 운전해서 찾아가야 할 정도로 도심에서는 꽤나 떨어진 곳에 덩그러니 위치해 있었다. 논밭만 보이는 주변 풍경 사이로 세워진 이 층 건물을 올려다보며, 주인은 침을 꿀꺽 삼켰다.
결국 주인은 넓은 등을 빳빳하게 펴고 제법 비장하게 유리문을 열었다. 그리고 마주한 펫샵의 내부는 대학 동기에게 들은 것이 무색하게도 정말로 그냥 평범한 가게처럼 보였다.
주인은 알록달록한 열대어들이 헤엄치는 작은 수족관과, 짹짹 우는 작은 이름 모를 새들이 앉아 있는 새장, 그리고 주인의 손바닥만은 할지 의문스러운 끼웅 뺙뺙거리는 작은 강아지와 새끼 고양이들까지.
‘과연 여기에서, 내 반려 생물을 만날 수 있을까?’
주인은 두근거리는 심장 위에 손을 얹었다. 주인의 커다란 손이 안쪽에서 심장이 박동하는 중인 커다란 가슴 위에 얹어졌다. 주인의 손은 키와 덩치에 맞게 꽤나 커다란 편이었는데도, 진정하기 위해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움직이는 가슴은 주인의 손에 한쪽도 다 가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숨을 몇 차례 들이쉬고 내쉬며 진정한 주인은 대학 동기에게서 들은 주의 사항을 떠올렸다. 펫샵에 가서, 그냥 나와 있는 동물들을 구경하지 말고 직원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했었다.
“저어, 저만의 특별한 인연을 만나러 왔는데요.”
주인은 커다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쭈뼛거리며 어느새 앞에 와서 서 있는 작은 직원에게 말을 건넸다.
“그럼요, 손님께 특별한 인연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저희의 일이죠. 따라오십시오.”
주인의 말을 들은 직원은 눈을 반달로 접어 의미심장한 웃음을 얼굴에 띠더니, 주인에게 따라오라고 말하며 뒤돌아 앞장섰다.
그리고 그게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 내려가기의 시작이었다.
주인은 어두컴컴해 보이는 입구로 들어온 뒤부터, 눈앞의 작은 직원을 따라서 지하로 내려가는 중이었다. 글쎄 대학 동기에게 소개를 받고 온 곳이기도 하고 눈앞의 작은 직원보다야 자신의 힘이 세겠지만 계단을 내려가도 내려가도 끝이 나오지 않자 괜히 불안했다.
‘뭐, 뭐야. 이상한 곳은 아니겠지?’
“이제 조금만 더 내려가시면 됩니다. 아무래도 특별한 인연을 만나는 것을 질투하는 분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이렇게 꽁꽁 숨겨 놓을 수밖에 없답니다.”
“ㄴ… 네!”
주인은 마치 자신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마침 딱 자신에게 말을 거는 직원에 화들짝 놀랐다. 어두운 계단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직원의 작은 얼굴에서 반달로 접힌 눈만이 형형하게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주인은 직원의 왠지 기분 나쁜 눈을 피하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래, 주인은 덩치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딱히 용감한 편은 아니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연애를 끊은 적이 없었다.
혼자 이 삶을 헤쳐나가는 것이 싫었고, 매일 밤 혼자 잠드는 것이 싫었으니까. 혼자는 언제나 외로웠다. 노력해 봤지만, 주인은 도저히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갈 수가 없었다. 하지만, 주인만의 특별한 반려 생물을 만난다면…
지금까지와는 무언가 달라질 것만 같았다.
“자, 고객님의 특별한 인연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계단의 끝에서 직원이 문을 열자 펼쳐진 것은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지하에 이렇게 넓은 공간이 숨겨져 있을 수가 있었나?
“와아…”
문을 열자 펼쳐진 넓고 밝은 공간에 감탄사를 내뱉으며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봤다. 화려한 천장에는 태양을 연상하게 하는 조명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천장을 올려다보던 고개를 내린 주인은 굉장히 커다랗고 금색으로 반짝반짝 칠해진 새장들과, 한쪽 벽면을 전부 채우고 있는 유리로 된 수조들을 입을 벌리고 구경했다.
“그럼, 천천히 둘러보십시오. 특별한 인연을 알아보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는 법이니까요.”
“네에…”
주인은 이미 주변의 화려한 새장이며 처음 보는 것 같은 다양한 종류의 동물이며 화려한 깃털을 가진 새들이 들어 있는 금색의 우리들, 그리고 비늘이 무지개로 이루어지기라도 한 것처럼 반짝거리는 수중 생물들이 헤엄치는 수조를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런 주인에게서, 조금 전까지 계단에서 겁을 먹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주인은 이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이 전부, 전부 신기했다.
유독 털에 윤기가 흐르는 새카만 색의 개과로 보이는 동물도, 저 구석에 얌전히 앉아 있는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는 중인 고양이를 닮은 동물도, 그리고 무지개색의 깃털을 거의 바닥까지 늘어뜨리고 도도하게 금색 횟대에 앉아 있는 이름 모를 새도.
하지만 주인은 한쪽 벽면을 유독 가득 채운 커다란 수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 하나 평범하지 않아 평소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외향의 동물들 사이에서도, 수조 안에서 마치 다른 공간에 있는 듯 유려하게 물속을 움직이는 알록달록한 수중 생물들은 주인의 눈을 사로잡았다.
물론 주인이 원했던 것은 교감이 가능한 반려 생물이었다. 그렇다면 분명히 수조 속에서 키워야 하는 아이들보다는 반대쪽의 우리 안에 있는 동물들이 나을 터였다.
‘하지만 그냥 구경만 하는 건데 뭐 어때.’
주인은 생각하며 수조가 모여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작은 직원은 일단 주인을 이곳으로 안내한 다음부터는, 입가에 그린 듯 단정한 미소를 띠고 가만히 입구 쪽에 서 있을 뿐이었다.
작은 직원은 주인이 선택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애초에 이곳을 소개받아서 왔다는 것 자체가, 위층에 있는 동물들 몇십 마리를 팔아도 올릴 수 없는 매출을 한 번에 올려 줄 수 있는 존재라는 의미였다. 일종의 VIP인 셈이었다.
하지만 직원의 시선이 어떻든 주인은 입을 헤 벌리고 수조를 차례로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커다란 까만 눈동자가 알록달록한 색의 지느러미들을 따라 정신없이 움직였다. 그러던 중, 촘촘히 어항들로 채워진 벽면에서 위아래, 양옆의 수조와는 달리 비어 있는 커다란 수조가 주인의 눈에 들어왔다. 주인은 뭔가에 이끌린 듯 그 텅 비어 있는 수조 앞에 멈춰 섰다.
‘이 수조는 왜 혼자서 비어 있는 거지?’
수조에는 깨끗한 물이 가득 차 있었고, 공기 방울이 몽글몽글 구석의 기계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공기 방울이 새어 나오는 방향을 따라 바닥에 깔린 예쁜 돌들 사이에 심어져 있는 수중식물들이 하늘하늘 흔들리고 있었다.
“…이건 비어 있는 수조인가요?”
“어떤… 아, 그 수조 말씀이시군요.”
직원이 알겠다는 표정을 하더니 주인의 옆으로 걸어왔다. 직원을 눈을 굴려 수조를 몇 차례 훑더니 손가락으로 수조의 구석 부분을 가리켰다.
“여기 있군요. 이 세상에서 단 한 마리만 발견된 개체라고 합니다.”
주인은 직원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 직원의 손가락 끝이 가리키는 수조의 구석에 주황색의, 아니, 붉은빛 도는 갈색의 무언가가 있기는 했다. 조금 더 눈을 가늘게 뜨고 무언가를 더 자세히 본 주인이 입을 열었다.
“그렇지만… 저건 비엔나소시지잖아요?”
“아닙니다. 분명히 세상에 단 한 마리만 남은, 아마도 문어와 같은 두족류의 먼 친척일 것으로 추정되는 개체입니다. 이곳이 공식적인 연구소는 아니라, 아쉽게도 학명은 없군요.”
직원의 설명을 들은 주인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주인의 눈에는, 아무리 봐도 동그란 덩어리가 둥둥 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인은 다시 한번 수조 안을 집중해서 들여다봤다. 적갈색의 동그랗고 통통한 덩어리는, 여전히 미동도 없이 구석에 둥둥 떠 있을 뿐이었다.
문어의 친척이라더니, 그냥 칼집을 내기 전의 비엔나소시지 같았다. 아무리 봐도 귀해 보이지도 않았고 누가 데려갈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도 안 데려가면 그냥 여기서 저대로 죽는 거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니 작게 웅크린 동그란 모습이 영 안되어 보였다. 보다 보니까, 나름대로 귀여운 것 같기도 했다. 동글동글, 귀엽지 않은가?
“…문어는 수명이 얼마나 되죠?”
“글쎄요, 일반적인 문어가 아니니 정확한 수명은 저희도 알 수가 없군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직원이 난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저 수조 안의 생물은 이 가게가 처음 생길 무렵 들어온 이래로 항상 씨앗처럼 웅크린 상태로 잠만 잤기 때문에 단 한 번도 고객에게서 관심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직원이 주인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알고 있을 리 만무했다.
“고객님, 특별한 인연을 찾기 위해서는 조금 더 다양하게 둘러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이왕이면 이 손님에게 더 크고 화려한, 희귀 생물을 팔고 싶었던 직원이 주인에게 웃으며 물었다. 저 수조 안의 생물은 다른 알록달록 화려한 생물들에 비하면 비싸지도 않았고, 조만간 폐기될 예정인 애물단지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수조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적갈색의 동그란 덩어리가 꿈질거리며, 조금씩 갈라지는 것을 보고 있던 주인은 직원의 말은 전혀 듣고 있지 않았다.
적갈색의 동그란 덩어리가 꿈질 움직이며 칼집을 낸 것 같은 모양새로 조금씩 갈라졌다. 그리고 갈라진 부분은 동글동글한 모양으로 바깥쪽을 향해 말리며 꿈틀 움직였다. 아주 작고 짧은 다리에 달린 아주 작은 빨판들이 보였다.
주인은 손가락보다도 작은 적갈색의 덩어리가 꾸물거리며 다리를 펴는 것을 전부 지켜보았다. 왠지, 이 소시지를 닮은 조그만 생명체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은 덩어리가 한 번 부르르 떨더니 마침내 눈을 떴다.
주인은 홀린 듯 입을 열었다.
“저, 이 아이로 할게요.”
까만 깨를 닮은 아주 작고 세로로 긴 눈이었다. 까만 깨를 닮은 눈이 몇 차례 깜박이며 점차 초점이 돌아오더니 수조를 들여다보고 있던 주인의 커다란 까만 눈과 까만 깨를 닮은 작은 눈이 마주쳤다. 주인의 커다란 까만 눈이 수조 안의 작은 생물을 보며 휘어졌다.
주인이 자신만의 특별한 반려 생물에게 첫인사를 건넸다.
“안녕? 내가 네 주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