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손각시(孫閣氏) (1)
헉. 헉.
“안 돼. 오지 마.”
헉. 헉.
“저리 가. 꺼, 꺼지란 말이야!”
온몸을 바들바들 떨며 소리치던 남자는 홱 몸을 돌렸다.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그의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고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은 흘러내리기 바빴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계속해서 숨을 몰아쉬던 남자는 주위를 살폈다.
오늘따라 지하 주차장이 유독 어두웠다.
불이라고는 저 멀리 지상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 겨우 존재할 뿐.
‘저기야.’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자신이 살 수 있는 방법은 저곳, 엘리베이터 쪽으로 달려가는 것밖엔 없었다.
스스슥.
끄득. 끄득.
덜덜덜덜―.
한번 시작된 기분 나쁜 소리는 점점 더 가까웠다.
‘젠장!’
더는 주저할 시간이 없다. 남자는 제게 남은 마지막 힘을 다하기로 했다.
저기로 가야 해.
저곳으로 가야지만 살 수 있어.
그래야 이 지긋지긋한 것한테서 벗어날 수……!
“악!”
하지만 서둘러 움직였던 까닭일까.
그는 제 발에 걸려 그만 앞으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드득. 드득. 드득. 드득.
대체 무슨 소리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기분 나쁜 진동 소리가 이어졌다.
쿵쿵쿵쿵.
동시에 그의 귀를 울릴 만큼 가쁘게 뛰는 심장 소리 역시.
그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소리를 내선 안 돼.’
무언가가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정확히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지만, 숨도 멈추고 죽은 척해야 살 수 있다는 것 정도는 확신했다.
끼이익.
기분 나쁜 소리는 이어지고 있었다.
끽. 끼득. 끼익. 끼이익.
입술이 파르르 떨려 왔기에 얼른 윗니로 아랫입술을 짓눌렀다.
‘견뎌 내야 해. 견뎌야―!’
남자는 소리가 들려오든 말든, 어떻게든 몸을 웅크린 채 고개를 들지 않으려 했다. 그래야 살 수 있을 것 같았고, 살아남을 거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의 의지와는 다르게 갑자기 몸이 부웅 들렸다.
누군가, 아니 무언가가 그의 목을 세게 감싸는 게 느껴졌다.
“커헉, 꺽!”
살려…… 살려 줘. 살려―!
빠드득.
스륵. 툭.
점점 흐려지는 시야를 어떻게든 밝히려던 남자의 의지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허공에서 발버둥 치던 남자의 몸이 차가운 지하실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 ――.”
비명 한번 제대로 지르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이 된 남자를 내려다보던 검은 형체가 무어라 중얼거렸다.
스슥.
곧 칠흑처럼 어둡기만 하던 지하 주차장의 불이 켜졌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다섯 시간쯤 지났을 때.
“꺄아악!”
“사, 사람이 죽었어!”
“119…… 아, 아니, 112에 누가 시, 신고 좀 해요! 어서요!”
* * *
이 세상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영기’를 지니고 있다.
영기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르며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따라 견자로서 각성할지를 가늠하게 된다.
그러나 자신에게 신비로운 힘이 있고, 그것을 사용하여 인간이 아닌 것들, 즉 ‘비생’을 물리칠 수 있다는 걸 자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하여 ‘견자’를 하늘에서 선택한 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네가 비생들을 볼 수 있는 건 축복이다.]
차이준의 할아버지이자 고현 차씨 가문의 가주인 차태모 회장은 이준에게 말했었다.
이준은 대한민국 5대 퇴마 가문의 종손으로 태어났고 현재 존재하는 가문의 일원 중 가장 많고 강한 영기를 지니고 있었다.
하니 할 수 있는 말이겠지.
‘그렇지만 그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이준은 퇴마고 비생이고, 그저 평범한 삶을 살고 싶었다.
물론 현재 그의 직업이 평범과는 거리가 있기는 하나, 적어도 끔찍한 존재들을 보면서 사는 삶과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게다가, 이번 혼인을 떨떠름해하는 이준의 모습에 강주는 자신이 대신할 수 있다고 말을 전해 왔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을 동생들이 지게 할 수는 없지.’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직접 혼인을 물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 상대가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
“너, 나랑 키스할 수 있겠어?”
본디 견자끼리 영기를 주고받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자칫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한 견자로부터 다른 견자에게 영기를 건네는 방법들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그중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입에서 입으로, 영기를 불어넣는 방법이다.
‘여우 비생을 보면서 알아냈다나 뭐라나.’
고전 설화일 뿐이지만, 여우 비생들이 구슬을 주고받는 방식과 유사하다.
영기를 보내려는 자가 자신의 영기를 응축시켜 다른 견자의 입안으로 그것을 불어넣는다면, 보다 쉽게 영기를 흡수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걸 시도한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어느 시대에나 그렇듯, 견자들은 소수로 존재한다.
그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길 원하지 않았고 이준 역시 견자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비생이라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보다 강력한 힘을 소유하는 방법에 대해 알고 있더라도, 아마 쉽게 발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하튼, 견자끼리 영기를 주고받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특히나 동성 간에는 더욱이.
‘당연히 쉽지 않지.’
이준이 빙긋 웃으며 그런 도발적인 멘트를 던진 것은 구승효로 하여금 이 이상한 혼담에서 스스로 물러나게끔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흐응.’
이준은 제 말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구승효의 옅은 갈색 눈동자를 올려다봤다.
저보다 조금 더 높은 눈높이를 지니고 있었기에 살짝 고개를 들어야 했으나, 굳어 있는 승효와는 달리 이준의 얼굴은 여유로웠다.
이준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는 승효를 보고 쿡 실소를 삼켰다.
‘그럴 테지.’
연기라 치면 눈 딱 감고 할 수도 있기는 할 테지만…… 이건 연기가 아니라 실제잖아?
‘아무래도 이 녀석도 영감한테 속은 게 틀림없군.’
그 유명한 현월 구씨 가문의 가주라는 녀석이 고현 차씨 가주의 입김에 휘둘린 게 분명하다.
이준은 괜히 구승효가 안쓰러워졌다.
‘어린 나이에 가문을 짊어지게 됐으니 윗사람이 하는 말이면 무조건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겠지.’
쯧쯧.
이럴 때일수록 연장자로서, 그리고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선배’로서 구승효를 바른길로 인도해 줘야겠다고 여겼다.
이준은 길게 숨을 몰아쉰 뒤 입을 열었다.
“승효 씨. 어렵게 생각할 거 없습니다. 충분히 이해해요.”
입을 다물고 있던 승효와는 달리 그런 그를 살피며 내내 미소 짓던 이준이 입꼬리를 올리자 승효의 갈색 눈이 그에게 꽂혔다.
이준은 손을 들어 승효의 어깨 위를 톡톡 두드리려 했다.
이준은 팔을 뻗으며 말을 이었다.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라고는 해도 남자랑 하는 건 쉽지 않겠죠. 후우. 알아요, 우리 가주님이 제멋대로인 거. 고현 차씨 일가를 대표해서 이상한 일에 휘말리게 한 걸 미안하게 생…….”
어어?
실로 안타깝다는 표정과 함께 구승효에게 말을 흘려 대던 이준의 몸이 순간 휘청였다.
구승효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는 이준의 손목을 구승효가 덥석 잡았기 때문이다.
“헉!”
이준은 순식간에 승효의 품으로 뛰어들게 됐다. 놀란 그가 고개를 들려는 순간, 기다란 무언가가 이준의 턱 끝으로 다가왔다.
‘으응?’
이준은 쭉 뻗은 손가락으로 제 턱을 부여잡고선 제 쪽으로 들어 올리는 승효의 행동에 멍하니 끌려갔다.
“구, 구승효 씨, 뭐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포즈에 이준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승효가 살짝 고개를 숙였다.
콰콰쾅!
아마 지금이 비 오는 하늘 아래였다면 벼락이 내리쳤을 거다.
‘어…… 어?’
이준은 다 뱉어 내지 못한 제 입술 위로 자신의 입술을 덮어 버린 구승효의 행동에 눈을 끔뻑였다.
말랑하고 보드라운 무언가가 이준의 벌어진 입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으…… 음.”
뜨거운 혀와 함께 밀려오는 기운은 다정했다. 상냥했고, 마치 잠자기 직전의 나른함처럼 따뜻했다.
이준은 꼭 홀린 사람처럼 그것을 받아들였다.
‘더…….’
이준은 언제나 리드하는 쪽이었다.
촬영할 때건, 하지 않을 때건.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의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지 않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
상대의 입 안에서 건너온 강력한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 나가자 멈출 수가 없다.
한번 받아들이니 그것을 전부 갖지 않으면 참지 못하겠다.
정신이 휘발되어 버린 이준이 팔을 뻗어 구승효의 목을 감자, 그가 눈을 크게 뜨는 것이 보였다.
이준은 당황하는 승효의 몸짓을 느꼈으나 그의 영기를 가져가는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시작은 승효였지만, 어느새 이준이 승효의 입 안을 휘저으며 그의 영기를 빼앗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더……. 더, 달라고.’
강렬한 영기에 잔뜩 취해 버린 이준의 눈이 붉디붉어졌다. 그는 점점 미간을 찌푸리는 승효를 개의치 않고 그의 숨을 모두 제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주인. 그러다 이 녀석, 죽어 버리겠어.》
‘헉!’
이준은 코앞에서 들려오는 동굴과 같은 목소리에 슬쩍 내렸던 눈꺼풀을 올리다 화들짝 놀랐다.
구승효의 어깨 뒤로 보이는 커다란 무언가와 시선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쿵!
“으윽…….”
승효에게서 떨어져 나와 그만 엉덩방아를 찧어 버린 이준이 인상을 썼다.
《왜 그래, 주인?》
―하고, 구승효의 뒤편에서 검은 털의 호랑이 비생이 그를 향해 물었다.
‘보, 보, 보…….’
《보? 가위, 바위, 보? 그 보?》
아니, 그거 말고!
구승효의 뒤를 바라보는 이준의 입술이 덜덜 떨려 왔다.
예의 호랑이 비생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으로 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무려, 양랑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