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상극(相剋) (2)
서른둘.
차이준 나이의 보통 남자라면 기본적으로 운전 면허증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
꼭 남자가 아니더라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준에게는 운전대를 잡을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고, 그것은 무슨 수를 써서도 고쳐지지 않았다.
“아…….”
의문을 풀어준 동시에 이상의 대답은 하지 않겠다는 듯, 생긋 웃는 이준을 보며 태경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야 한다.]
‘……!’
그때였다.
[준아. 알았……지? 반드시, 하아, 동생들을――.]
‘제길.’
어디선가 또다시 들려오는 환청에 이준의 미간이 좁아졌다.
차갑게 식은 이준의 얼굴을 발견한 태경이 멈칫하다 다시 운전하는 게 느껴졌지만, 이준은 반응하지 않았다.
「50M 앞에서 우회전, 그리고 전방 100M 앞에 목적지가 있습니다.」
삽시간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차 안에는 내비게이션 안내만이 울려 퍼졌다.
이준은 흠칫 놀라 주위를 방향지시등을 켜는 태경의 뒷머리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집 앞에까지 갈 필요 없이 여기서 세워 줘. 바래다줘서 고맙다, 태경아.”
* * *
“하아.”
축객령 아닌 축객령을 날린 이준은 밴에서 내려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어두컴컴한 골목 사이로 들어갔다.
어찌나 재빠른지, 운전석에 있던 태경이 인사할 틈이라고는 없었다.
뒤늦게 이준의 흔적을 시선으로 좇기 위해 눈을 돌린 태경은 조금 당황했다.
‘어디…… 가셨지?’
이상한 일이다.
분명 이준은 태경이 멍한 표정을 짓는 사이 밴에서 내려 우회전을 했고, 사라졌다.
이준이 집으로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기 위해 태경이 밴을 50M 정도 앞으로 몰았으니 골목 안의 모습이 보여야 하는데, 기이하게도 이준의 뒷모습은커녕 그의 ‘본가’라는 곳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너무 어둡지 않나?’
물론 이미 해가 넘어간 지 오래인 시간이기는 했다.
그러나 출입도 쉽지 않은 이런 고급 동네의 커다란 골목길에 가로등 하나 존재하지 않다니.
태경은 의문을 감추지 못한 채 한참이나 컴컴하다 못해 칠흑처럼 어두운 골목길을 응시했다.
‘어떡하지.’
의문을 감추지 못한 태경은 이준을 걱정했다.
이준이 사는 동네가 아무리 치안이 좋다 하더라도 한계가 있었다.
‘배우님이 혹시 극성팬을 만나기라도 한다면…….’
고등학교 때 데뷔하여 서른이 넘는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준에게는 여러 종류의 팬이 존재했는데, 개중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벌이는 극성팬도 존재했다.
불과 2년 전, 집착이 강한 스토커에 시달려 재판까지 갔던 이준이 아니었던가.
태경은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게다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태경이 이렇게 매니저 일을 할 수 있는 건 전부 이준 덕분이었다.
[신입이면 뭐 어때. 경험이야 시간이 흐르면 결국 쌓이는 거고, 내 매니저는 운전만 잘하면 돼. 그런 의미에서 난 쟤 마음에 들어. 저 녀석으로 할래.]
태경은 이준의 말 한마디로 ‘클레몽’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할 수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이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안 돼.’
고민하던 태경이 밖으로 나가기 위해 운전석 문을 열려고 할 때였다.
―Rrrr. Rrrr.
태경이 막 문고리를 잡으려는 순간,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대표님?”
누군가 싶었더니 놀랍게도 ‘클레몽’ 엔터테인먼트의 이정후 대표였다.
고개를 갸웃거리던 태경이 전화를 받자 이 대표가 물었다.
―한 사원. 너 어디야? 설마 아직도 차휘네 동네냐?
마치 태경이 차에서 내리려는 것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한 질문이었다. 태경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런데 대표님. 방금 배우님이 하차하시고 골목으로 들어가셨는데, 어떻게 된 셈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뭐?
“아무래도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이 돼요. 들어올 때와는 다르게 여기는 가로등이 없는 것도 신경 쓰이고.”
―…….
“제가 한번 차에서 내려서 배우님이 집으로 들어가시는 걸 확인해 보고 싶…….”
―안 돼!
이준이 무사히 귀가하는 모습을 제 눈으로 지켜봐야지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아 말을 이어 가던 태경은 버럭 소리치는 이 대표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 대표는 하아아,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했다.
―골목에 세워 줬다고 했었지? 아주 어두컴컴한 골목이고? 혹시 그 골목 근처에 나무나 덤불같이 생긴 게 보이냐?
나무? 덤불?
뜬금없는 이 대표의 말이 의아하게 느껴지기는 했으나 태경은 말없이 전조등을 켰다.
“아…… 네. 노란 열매가 보이기는 하네요. 저게 탱자나무입니까?”
전조등에 의해 비친 골목길 입구에는 커다란 나무가 존재했다.
높이가 적어도 3M는 될 법한 커다란 나무여서 태경은 조금 놀랐다.
‘저렇게 큰데, 어떻게 저 나무를 이제야 발견한 거지?’
청명함이 느껴질 만큼 푸른 데다, 예리하고 날카로워 보이는 가시를 지닌 나무 사이사이에는 샛노란 열매들이 가득했다.
‘보통 지금 시기에 열매가 맺히나?’
나무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대부분의 열매는 보통 가을에 익지 않았던가.
막 겨울을 지났던 터라 아직은 쌀쌀한 초봄에 보기에는 힘든 풍경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거기면 돼. 이준이 혼자 내버려 둬도 아무 문제 없을 거야. 만약 그 경계를 넘으면 너도 위험…….
“네?”
―하, 하여간, 이준이 놈은 걱정 안 해도 돼.
“…….”
―……그래, 뭐. 납득을 못 하는 것 같으니 설명해 줄게.
이 대표는 대답 없는 태경에게 말했다.
―한 사원 너, 이준이네 본가 동네 입구에 왜 차량 출입 바가 있는지 알고 있냐?
그러고 보니 내내 위화감이 들었는데, 바로 큰길에서 동네로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된 ‘차량 출입 바’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이 동네가 외부인들은 들어오지 못하는 고급 동네인 줄 알았는데.’
‘차휘’의 전담이 된 지 3개월이 흘렀지만 그의 본가까지 온 것은 처음이었다.
직진하려는 자신을 막아 세우는 검은 정장의 선글라스 남자들을 발견한 태경은 안절부절못했었다.
[나예요. 비켜요.]
얼른 차를 빼라며, 쾅쾅 문을 두드릴 기세였던 검은 정장의 남자들은 뒷좌석에서 드르륵 문을 열고선 여섯 글자를 뱉어 낸 이준을 발견하고 사색이 됐었다.
‘설마.’
태경은 미간을 좁혔다. 그 순간, 이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거기 그 동네, 큰 도로에서부터 시작해서 산 정상까지. 전부 이준이네 집안 소유야.
“……예?”
―그러니까 네가 걱정하지 않아도 그 녀석은 안전해. 오히려 위험한 건 한 사원, 너니까 빨리 그 동네에서 나와.
“예? 제가 위험하다고요?”
이해할 수 없는 이 대표의 발언에 태경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이 대표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 위험해. 지체하다간…….
“…….”
-먹혀 버린다?
* * *
툭.
성큼성큼 앞으로 발을 내딛던 이준은 걸음을 멈추었다.
‘잘 갔으려나?’
이미 훨씬 전에 밴에서 내려 걸어가고 있었지만 혹시 아직도 태경이 동네를 벗어나지 않았을까, 걱정됐다.
이제 막 그의 매니저 일에 적응하기 시작한 신참 매니저인데, 하필 이상한 일에 끌어들인 것 같아 왠지 마음이 찝찝했다.
‘노망난 노인네 같으니.’
이게 다 그 할아범 때문이다.
이준은 바드득 이를 갈며 그제야 시야로 들어온 불빛을 발견했다.
반딧불이처럼 작게 반짝이던 빛은 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커져 갔다.
어느덧 눈이 따가울 정도로 환한 빛을 내는 거대한 저택이 이준의 앞에 나타났다.
‘이 빌어먹을 집구석.’
몇 번을 봐도 느끼는 거지만―.
“으리으리하네.”
“오셨습니까.”
“……!”
낮게 중얼거리던 이준은 곁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홱 고개를 돌렸다.
예나 지금이나, 인기척 하나 없는 것은 변함이 없다.
‘인간이 맞기는 한 거냐고.’
이준은 10년 전에도, 그리고 10년 후인 지금에도 표정 변화라고는 보이지 않는 검은 한복 차림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을 느낀 무표정한 얼굴의 여자가 입술을 움직였다.
“가주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리로 오시지요.”
이준은 말없이 그녀의 뒤를 따랐다.
끼이익.
그녀의 손짓 한 번에 굳게 잠겨 있던 대저택의 문이 열렸다.
경복궁만큼은 아니더라도, 조선 시대에 살았다면 웬만한 사대부 집안은 뺨칠 법한 한옥의 대문이 열리자 환한 빛이 쏟아진다.
이준은 저를 보자마자 움찔거리는 사람들이나, 일렁이는 빛들, 그리고 수군대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우와, 진짜네? 진짜 차기 녀석이 왔네?》
《차기는 무슨. 도망쳐서 다른 녀석한테로 넘어갔잖아. 이 녀석 이거, 아주 비겁한 놈이라고!》
《완전 겁쟁이인 거지. 자기가 짊어지기에는 너무 무겁다나 뭐라나.》
《가주 녀석이 불렀나 보다. 이 녀석이랑 또 무슨 일을 벌이려나 봐!》
일을 벌이기는.
‘아무 일도 안 하니까 그 입들 좀 닥쳐.’
《흐익, 차기가 화났다!》
《저 녀석은 쓸데없이 영기만 강하다니까? 우리를 볼 수도 없으면서!》
《그렇네. 어차피 볼 수도 없잖아!》
《웃기는 일이야. 영기는 강하면서 그것을 다룰 수가 없다니. 그러니 온전한 차기로 인정받지 못……!》
‘<함(喊)>.’
《꽥!》
‘영기만 쓸데없이 강해서 언령(言靈)만큼은 그 누구보다 잘 쓰니 이렇게 너희를 닥치게 할 수도 있는 거야.’
이준은 흥 코웃음 치며 순식간에 조용해진 주위를 살폈다.
‘윽.’
그러다 앞서 걸어가던 검은 한복의 여자가 우뚝 멈춰 선 것이 보였다.
이준이 불만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