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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62)화 (6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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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가족을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을 내가 왜 모르겠느냐?”

제레미는 위스를 죽이려 들지는 않았지만.

위스는 테오도어의 얼굴을 잡고 말을 이었다.

“네가 원하는 대로 해. 네 가족을 보호해라. 그러나 지금 그놈이 너의 가족으로 존재하느냐? 너를 무슨 수를 써서든 죽이려 드는 놈을 가족이라 하더냐? 지금 그놈은 너의 적이겠지. 왕좌에 앉혀 놓아선 계속 그럴 것이다.”

‘몇 번째 설득인지 알 수도 없군.’

그러나 이번에는 위스의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팔라틴의 내전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테오도어를 위해 말하고 있었다.

테오도어는 조금 놀란 듯 위스를 보고만 있었다.

‘잠깐…….’

그 동요하는 표정을 보고 위스는 무언가가 떠올랐다.

사무엘이 던지고 간 말이었다.

-폐하께서 경과 결혼한 이유를 궁금해하지 않으셨어요? 폐하는 팔라틴에 내전을 일으키기 위해 경께 청혼한 거예요. 폐하께서, 경을 사랑해서 결혼한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아시잖아요.

위스가 변명하기도 전에 테오도어의 입이 열렸다.

“예. 전하의 말이 옳습니다.”

“…….”

“리엔델은 선을 넘었습니다.”

그가 고개를 기울여 위스에게 다가왔다. 위스는 눈을 감았다.

테오도어를 끌어안고 입맞춤을 받으면서 위스는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변명 같은 건 듣지도 않나…….’

위스가 마법을 쓰는 꼴을 봤을 텐데도 마법사냐는 질문조차 없었다.

테오도 그랬다.

위스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행동을 변명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건 가장 가까이에 있던 테오가 위스의 행동에 아무 의문 없이 동참했기 때문이었다.

위스가 노예 농장에서 주인을 죽이고 달려왔을 때, 테오도어는 ‘무슨 일을 당했느냐’ 따위의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라고도 묻지 않았다.

그는 노예 농장과 주인집 저택에 불을 질렀다.

“리엔델을 끌어내리겠습니다.”

테오도어는 위스의 입술을 닦아 주며 말했다.

‘드디어.’

위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전하께선 위릭을 따라 대피해 주십시오.”

“뭐라?”

“안전해지면 모시러 가겠습니다.”

“계속 헛소리해라.”

테오도어는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전하께서는 환자이십니다.”

“웃기지 말고.”

위스의 언성이 높아졌다.

“몸도 약한 전하께서 저를 걱정해 고난을 함께하고자 하시는 마음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혹여라도 전하의 몸에 생채기라도 난다면 저는 스스로를 용서치 못할 듯합니다.”

위스는 테오도어를 노려봤다.

“너 봤지?”

“무엇을 말입니까?”

‘봤군.’

위스는 확신했다.

테오도어의 얼굴은 성실하기 짝이 없어서 누구에게나 신뢰감을 줄 만했으나, 그가 눈이 없는 것이 아닌 이상 그 요란한 광경을 못 볼 수가 없었다.

“난 마법사다.”

위스가 갑자기 허공을 보더니 손등을 올렸다. 그의 눈이 밝아지고 머리카락이 멋대로 바람에 휘날리더니, 손끝에서 빛으로 만든 새가 형성됐다.

위스는 새를 날려 보내고 테오도어를 돌아봤다.

“성안의 병사들이 전부 덤빈대도 내게 생채기 하나 낼 성싶으냐? 헛소리 말고 앞장서.”

⚜ ⚜ ⚜

아카젤 대공의 시종 위릭은 치라 공작의 수도 저택으로 말을 달렸다.

대공의 부관 예센 치라는 본래 왕자궁에서 함께 머물러야 했으나, 공작의 요청으로 저택으로 가 있는 상태였다.

부모가 전쟁이 끝나고 돌아온 아들을 만나겠다는데 누가 막겠는가?

그러나 위릭은 그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어머니 치마폭에서 사는 놈.’

예센 치라는 치라 공작을 만나고 오면 예민해졌는데, 공작이 아들의 복수심을 충동질해 놓기 때문이었다.

예센 치라가 대공에 대한 충성심과 왕에 대한 복수심 사이에서 갈등하는 꼴이 위릭은 전부터 거슬렸다.

그것을 어떻게 충성이라고 말하겠는가?

대공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왕에게 죽거나 그가 왕을 죽이지 않기 위해.

그러나 그 노력도 이제 끝인 듯했다.

대공의 인내심을 끊어 낸 건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들도, 대공을 시험하던 왕도 아니었다.

‘위스미아 왕자.’

예센은 기뻐할 것이다.

-드디어!

위릭은 그 모습이 그려지는 듯했다. 자신마저 그 수준으로 내려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의 주인은 왕자를 사랑하고 있다.

두 사람을 보는 순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왕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대공은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위릭도 부모를 잃었다. 그의 경우 양친이 모두 죽었다.

사인은 전염병이었다. 수도에 유행하던 병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 뒤였으므로 이상한 일도 아니었으나, 위릭은 믿지 않았다.

당시 위릭의 양친은 귀족원의 일원으로, 선왕에게 후계 구도를 명확히 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었다.

테오도어에게 기사 작위를 수여하며 동시에 실권이 있는 관직을 함께 내리길 바랐다.

리엔델은 폭력적이고 성마르며 병약한 왕자였다. 왕위는 테오도어가 잇는 것이 옳다고 모두가 생각했다.

-테오도어 전하의 영민함은 온 수도에 이름 나 있으니, 폐하께서는 전하가 그 빛나는 지성을 왕국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셔야 합니다. 저와 같은 늙은이들이 언제까지 일을 계속할 수 있겠습니까?

-그대의 일을 내 왕자에게 대신 하라 하는 것인가? 왕자를 부려 먹는 기분이 좋기도 하겠군.

-이를 말씀이십니까?

-하하!

총애하는 아들의 칭찬을 들은 선왕은 기분이 좋아져 수락했다.

이후 위릭의 양친은 왕성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죽었다.

선왕 부부 역시 세상을 떠났으므로 장례식은 크게 치러지지 않았다.

병을 진단한 수도 신전의 신관이 위릭에게 알렸다.

병의 진행 세가 너무도 빨라 조치를 취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리엔델이 왕위에 올랐다.

‘시기가 좋다.’

위릭은 부모님이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믿지 않았다. 너무도 참담한 일이라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으나, 자신과 같은 의심을 가진 사람이 혼자만은 아니리라 확신했다.

⚜ ⚜ ⚜

예센 치라는 치라 공작과 차를 마시고 있었다.

대공 부부의 환영연에 다녀온 이후 치라 공작은 위스미아 왕자에 대해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그 왕자는 대공이 결단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위스미아 전하는 어떤 분이니? 소문과는 다른 분인 듯한데.”

“전혀 다른 분이 맞습니다. 누가 낸 건지 악의적인 소문이긴 합니다.”

대답이 쉽게 나온다. 예센은 그 소문이 불쾌하다는 표정이었다. 왕자에게 호의를 가지고 있다.

‘서머에서 무슨 일이 있었군.’

예센은 전형적인 기사였다. 생각이 굳은 면이 있었으나,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면 고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서머에서, 예센이 왕자를 보며 판단을 재고할 만한 일이 있었던 것이다.

“네가 왕자 전하를 좋게 보는구나.”

“서머의 마법사들이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이를 말이니? 그 일로 폐하께서 길길이 날뛰신 게 언제인데.”

“왕자 전하께서는 마법사들의 호의를 얻어 내 서머를 복원하셨습니다. 용감하고 영리한 분입니다.”

“설마.”

공작은 놀랐다.

마탑의 마법사는 세상과 교류하지 않는다.

“제가 어머니께 왜 거짓을 보고드리겠습니까?”

예센이 미소 지었다. 뛰어난 주인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가진 바 매력이 재능인가 했는데.’

그만으로도 발군의 능력이긴 했다. 연회장에서 왕자를 목격한 사람들은 서머에서 온 시선을 뗄 수 없는 왕자에 대해 어디서든 말하고 다녔으니까.

미모도 종류가 있는 법이었는데, 왕자는 그런 면에서 독특한 데가 있었다.

외모는 여린데 눈빛이 강하고 표정은 싸늘했다. 위압감을 주는 왕족이었다. 그 부조화가 왕자에게 집중하게 만들었다.

명령에 익숙하고, 그가 말을 하면 일단 듣게 되는 사람이었다.

그가 왕의 앞에서 순진한 듯 대공을 내세웠을 때, 연회장이 조용해진 것은 모두가 그의 말에 주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공께서 왕자 전하의 미모에 반해 청혼하셨다는 것도 헛소문이니?”

“그건……. 그렇지 않지만.”

예센이 쩔쩔매며 변명했다.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도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고 계셨고…….”

“내게 대공께서 결혼하려 하셨단 소리는 마라. 내가 너보다 팔라틴 사교계를 모를까?”

예센은 한숨을 쉬었다.

“사실 충동적인 결정이긴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럴 만도 했던 게……. 아시지 않습니까? 서머 왕성에서 습격을 당하셨던 일을요. 그때 대공 전하 곁에 위스미아 전하가 계속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때 두 분 사이에 감정이 싹텄던 듯합니다.”

“그분은 어딜 가든 음유시인들이 좋아할 만한 일을 해내시는구나. 미인을 호위하며 습격에 대처하다니. 위스미아 전하께서 옛 연인을 잊고 사랑에 빠질 만도 해.”

치라 공작이 감탄했다. 기사로서 대공은 동경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예. 아마 그러셨겠지요? 대공 전하께서는 또 위스미아 전하의 지모에 반하시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습격해 온 골렘을 무찌를 방도를 위스미아 전하께서 알려 주셨다고 하니…….”

예센은 상사의 연애담을 신나게 이야기했다.

치라 공작은 찻잔을 든 손을 멈췄다.

“골렘?”

“예. 팔라틴 왕이 마탑을 이용해 대공 전하를 해치려 한 듯합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예센은 놀란 듯했다.

“서머 왕성에 나타났다는 괴물이 그럼 대공 전하가 아니셨다는 말이니?”

“대공께서 괴물을 물리치신 겁니다!”

“그 얘기를 가장 먼저 했어야지!”

공작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서머와 팔라틴은 멀었다. 정보가 전해지는 속도로 늦고 그 내용도 부실했다.

‘마탑이 팔라틴 왕에게 힘을 빌려주고 또 서머 왕가에 도움을 줬다.’

말이 도움이지 두 왕국에 개입한 것이 아닌가.

마탑이 세상에 개입하는 시기는 하나뿐이었다.

‘예언!’

마탑의 목표가 누구인가?

치라 공작은 위기감을 느꼈다.

그때 대공의 시종이 도착했다.

“치라 경. 대공의 명령입니다. 지금 즉시 병사들을 이끌고 대기해 주십시오. 대공과…… 위스미아 전하께서 위험하십니다.”

명령을 전하는 시종 위릭의 위로 그늘이 졌다.

한낮의 하늘이 어두워지고 검은 먹구름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들렸다.

중심지는 팔라틴 왕성이었다.

세 사람은 말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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