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이 새끼가 노망이 들었나.’
위스는 대화의 흐름이 점점 아찔했다.
그가 이를 악물었다.
“그놈도 살아 있느냐?”
“……아아. 지금까지 살아 계시냐고요?”
사무엘은 얼빠지게 대답했다.
“그럴 리가요. 그분은 자살하셨는걸요.”
“뭐?”
사무엘은 기억을 더듬는 듯했다.
“폐하께서 돌아가시고, 테오 경은 팔라틴에서 단신으로 달려와 폐하의 장례식에 참석했어요. 네, 정확히 기억해요. 제가 그때 부탁드렸으니까요.”
위스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폐하께서 환생하실 테니까, 따라서 환생해 주시겠냐고. 환생한 폐하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까……. 테오 경의 영혼이 사후에도 영면을 취하지 못해도 되냐고 여쭤봤어요.”
“……뭘 막겠다는 거냐?”
“폐하께서 일으킬 전쟁이요.”
사무엘은 뭐 그런 당연한 말을 하냐는 듯 대답했다.
“폐하께서 깨어나시면 페라와 팔라틴에 복수하실 텐데, 그러면 이 대륙은 다시 전화에 휩싸일 거잖아요……. 아무리 생각해도 폐하를 막을 만한 분은 테오 경밖에 안 계신 거예요. 폐하께서는 대륙에서 가장 마법사이시지만, 테오 경은 이 대륙에서 가장 강한 기사시니까. 마법사를 죽이는 건 기사잖아요. 가장 먼저 마법사부터 제거하라고, 교전 지침을 수립하신 분도 폐하시잖아요?”
“날 죽이려고, 그놈이 환생했다고?”
위스는 이따위 황당한 말은 처음 들었다.
‘말이 되는 일인가.’
테오가 그런 부탁을 수락하는 모습은 상상되지 않았다.
그러나 위스는 테오가 자신을 배신하는 상황도 상상하지 못했다.
“아……. 그게 난처한 점이에요.”
사무엘이 목을 긁적였다.
“폐하께서 누가 말을 한다고 듣는 분은 아니시잖아요. 테오 경이 진작 폐하의 팔다리라도 부러뜨려 억류했다면, 끝도 없이 전쟁이 이어지는 일은 없었을 텐데. 그분은 또 그럴 수 없는 분이었으니까요……. 테오 경에게 마법을 걸면서 저도 궁금하긴 했어요. 다시 살아난 테오 경은 폐하를 죽일 수 있을지.”
“…….”
“역시 테오 경은 테오 경이시더라고요.”
사무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또 폐하께 반해 버리시지 뭐예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니까요.”
‘뭐라는 거야.’
위스는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다행이죠? 제가 방심하지 않아서요. 그럴 줄 알고 테오 경을 주시하고 있길 잘했죠. 이렇게 폐하를 발견했잖아요.”
사무엘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놈을 주시하는 게 어떻게 날 찾는 방법이 됐느냐?”
“그야, 테오 경이 환생했다면 반드시 폐하를 따라서일 테니까요.”
“…….”
‘아니, 마법 때문이다.’
위스는 생각하려고 했다.
“테오 경의 환생체가 눈에 띄기도 했고요. 테오 경의 핏줄도 잇지 않은 팔라틴 왕가에서 갑자기 테오 경을 꼭 닮았다는 왕자가 명성을 얻었는데, 제가 못 알아볼 수가 없죠.”
“핏줄을 잇지 않아?”
“그럼요. 언제였더라? 팔라틴 왕가에서 우기기 시작해서, 후대는 진짜인 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럴 수가 없거든요. 그분 일찍 자살하셔서.”
“…….”
“폐하 장례식 치르고 바로 돌아가셨으니까 애 만들 시간도 없지 않겠어요? 그분이 결혼도 않고 무책임하게 누구랑 잘 만한 분도 아니고요.”
사무엘이 뭐라고 더 떠드는데 들리지 않았다.
‘맞잖아.’
테오도어의 후손이라고는 해도 너무 그놈을 닮은 놈이다.
기억이 존재할 때부터 위스는 테오와 붙어 지냈다.
위스가 그를 착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놈이 날 따라서 죽었다고.’
위스를 배신하고 팔라틴에 왕국을 세운 것이 아니라, 위스를 따라갔다고.
-내가 죽으면…….
-그때 저는 이미 죽은 뒤일 테니 생각할 것이 없군요.
-내 곁에서 한시도 안 떨어질 자신 있어? 뭐 그렇게 자신만만해.
-자신 있습니다. 맹세라도 할까요.
그 말이 전부 진심이라고.
‘배신한 놈이 왜?’
거기까지 하고 위스는 생각을 멈췄다. 적을 앞에 두고 다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사무엘이 시무룩하게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테오 경이 팔라틴 밖으로 나가질 않으시는 거예요. 팔라틴에서 폐하가 눈 뜨실 리가 없는데. 폐하를 죽인 그런 불길한 곳에서. 그래서 팔라틴 왕에게 부탁해서, 테오 경을 밖으로 보내 달라고 했어요…….”
“밖으로?”
“예. 먼 곳을 돌아다니게 해 달라고. 폐하를 찾을 수 있게요. 팔라틴 왕은 말이 잘 통하는 분이더라고요.”
상황을 파악한 위스는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그거였나.’
마침 전쟁을 일으키고 싶어 안달이 나 있던 팔라틴 왕은 핑계 좋게 테오도어를 출전시킨 것이다.
“그러니까 서머가 침략당한 게 네 짓이 맞았군.”
“제가 부탁드린 게 전쟁은 아니었는데.”
사무엘은 풀이 죽어서 대꾸했다.
“네 부탁을 들어준 대가로 왕에게 인형은 안 빌려줬느냐?”
“빌려 드렸죠. 서머 왕성은 폐하께서 깨어나실 유력 후보지라, 심어 놓은 골렘도 많아서 인형 성능을 시험하기 좋았어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가관이었다.
“……그 골렘이 날 잡으려고 심어 놓은 것들이라고?”
“아무리 폐하시라도, 막 깨어나서 정신이 없을 때라면 골렘으로도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어. 죽겠더군.”
“아무래도 폐하 시대보다 골렘도 발전했으니까요.”
“대단하구나.”
“인형술의 발전은 말할 것도 없고요.”
“훌륭하다.”
“아하하…….”
사무엘이 웃었다.
‘미친놈이 좋다고 웃는군.’
위스는 배신자를 용서해 본 적이 없었다.
사무엘을 죽이게 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위스의 눈이 밝게 빛났다. 바람이 그를 휘감았다.
“그래서 날 죽이려고 또 무슨 짓거리를 했느냐?”
“음, 으으음. 역시 폐하께서 그러시면 무섭다니까요.”
사무엘이 한숨을 쉬었다.
“이런 거를 준비해 봤는데요.”
사무엘의 붉은 눈이 밝아지더니 그의 머리 위로 가볍게 바람이 불었다.
위스를 포위한 인형들이 두 손을 치켜들고, 왕홀을 들고, 모자를 허공으로 들어 올렸다.
인형이 모은 마력이 주인에게 합류했다.
허공을 돌던 바람은 소용돌이가 되더니 그 규모를 키웠다.
위스는 한낮의 하늘이 갈라지고 먹구름이 끼고, 빗방울이 떨어지며 그 구름에 낀 번개가 한 사람에게 떨어질 듯 모여드는 꼴을 지켜봤다.
인형을 보는 마음이 섬세한 예술품에 감탄하는 마음이었다면 대마법의 위용에서는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이대로 죽나.’
위스의 시대에도 본 적 없는 규모의 대마법이었다.
사무엘과 같은 수준의 마법사는 지극히 드문 데다, 마법사가 이렇게 대규모로 뭉치는 경우도 드물었다.
위스는 다른 의미로 심장이 뛰었다.
‘이 미친놈이 천재이긴 하군…….’
그대로 죽을 수는 없어서 위스는 마력을 운용했다.
한 줄기 바람이 불더니 먹구름 낀 하늘이 검에 베인 듯 갈라졌다. 갈라진 틈으로 다시 한낮의 햇살이 세상을 비췄다.
폭풍우 치는 밤과 한낮이 공존하는 듯했다.
위스가 입을 벌렸다. 피가 벌린 입으로 넘쳐흘렀다.
집중한 눈과 코에서 피가 툭툭 떨어지고, 시야는 검붉기만 했다.
눈을 깜빡여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무언가를 식별할 정신이 있다면 마력을 운용하는 데 쏟아야 했다. 흐린 시야로 하늘이 오락가락하는 것만 느껴졌다.
그러나 머리 한편으로는 생각하고 있었다.
‘이건 못 이긴다.’
적수가 없이 살아온 지가 몇 년인데, 후손 몸에 떨어져서 비참한 꼴을 얼마나 보는지 모를 일이다.
사무엘이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말이 드디어 현실감이 들었다.
“날 이토록 죽이고 싶어서…… 지금까지 어떻게 참았느냐?”
“폐하를 죽이고 싶다니, 그런 적은 없어요.”
“이 짓이나 멈추고 헛소리를 해라…….”
피가 역류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폐하를 막을 방법이 이것뿐인걸요. 폐하께서는 살아 계시는 동안 모든 것과 전쟁을 벌이실 분이니까.”
사무엘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위스라고 좋아서 전장에서 살았던 건 아니다.
노예와 마법사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들이 차지한 땅을 인정받아야 했다.
어떤 나라도 노예의 자치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마법사는 괴물이었고 노예는 가축이었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사무엘이 말했다.
“폐하의 전쟁에 모두 명분이 있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폐하, 폐하께서는 너무 많이 죽이셨는걸요. 저는 그런 게 싫어요. 폐하가 두렵고, 폐하의 뜻을 따르고 싶지 않은지 오래됐어요.”
‘페라 원정을 막지 않은 것도 그래서인가.’
예언자가 모시는 주인의 병사를 막지 못한 것도 우스운 일이긴 했다.
원래도 개 같은 인생이다 싶었는데, 알고 싶지 않은 비밀이 더 숨겨져 있던 모양이다.
위스는 전쟁광에 폭군이었다.
스스로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넌 날 죽이려고 하는군.’
위스의 눈이 샛노랗게 물들었다. 고양이의 것처럼 동공이 커져서, 멍하니 허공을 쳐다봤다.
죽음의 비밀이야 어쨌든 이 새끼에게 죽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런데 사무엘이 물었다.
“폐하, 왜 테오 경을 안 죽이셨어요?”
위스는 어지러워서 대답할 정신이 없었다.
‘이 새끼는 왜 자꾸 테오 놈에게 집착이냐.’
머리로 생각만 했을 뿐이다.
사무엘은 대꾸가 없어도 혼자 잘만 떠들었다.
원래 말 많은 성격이긴 했다.
“제가 아는 폐하는 서머를 침략한 기사를 보자마자 죽여 버릴 분이신데. 아, 테오 경이 강해서라고는 말씀하지 마세요. 폐하께서는 본인보다 훨씬 강하고, 수도 많은 상대를 계속 물리쳐 오신 분이잖아요. 테오 경은 폐하께 첫눈에 반해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으니, 기회는 많았을 텐데. 하다못해 침대에서라도 죽이실 수는 있었을 거잖아요.”
‘이 개X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