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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56)화 (5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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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위스는 사무엘을 노려봤다. 저 어린아이처럼 순진한 표정은 그가 아는 마법사가 맞았다.

“네가 사무엘이라고.”

“예, 폐하.”

“어떻게 아직도 살아 있지?”

그러나 사람은 300년 동안 살 수 없다.

상식이 아닌가? 하물며 위스는 30년도 살지 못했다.

“폐하를 기다렸어요.”

“300년간?”

“예. 300년 동안.”

사무엘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노려보지 마세요. 검 쓸 때만 마력을 운용하는 기사도 잘 늙지 않는데, 하루 종일 마력을 운용하는 마법사가 왜 늙어 죽겠어요? 저희 때도 마법사가 죽는 건 살해당해서였잖아요.”

기사들의 외모가 늙지 않는 건 흔히 보이는 일이다. 강맹한 기사들은 나이 들어서도 전장에 서지 않던가?

그러나 위스는 사무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네가 내 마법사라면 왜 다른 사람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있었느냐?”

“그야 마법사는 마탑 밖으로 나갈 수 없는걸요. 제가 만든 규칙을 제가 어길 수는 없잖아요.”

“또 헛소리하면 죽겠다는 걸로 알겠다. 언제부터 너였어?”

“처음부터요. 폐하께서 눈을 뜨시는 그 순간부터, 계속 폐하 곁에 있던 사람은 저였어요. 이번 생에서는 폐하께서 탄생하신 순간부터 제가 함께한 거네요. 테오 경보다 제가 폐하를 더 일찍 만났어요.”

마법사 사무엘이 기뻐했다.

‘눈치 없는 건 연기가 아니었군.’

사무엘은 본래 눈치가 없었다. 머리에 부품 하나가 빠져 있어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고 진작에 포기한 적 있다.

상황이 납득되자 위스는 분노가 치밀었다.

난데없이 이곳에서 깨어나 보인 추태가 떠오른 까닭이다.

“네 주인이 곤경에 처한 꼴을 즐겨?”

“하지만 ‘위스미아 전하’는 제 주인이 아닌걸요.”

사무엘이 순진하게 말했다.

“제 주인은 위스 대왕이세요. 그리고 그분은 돌아가셨잖아요.”

‘이 새끼가 다 알고서도.’

위스가 이를 악물었다.

“계속 그렇게 불러 봐라.”

“대왕이라고 불리는 게 왜 싫으세요? 전 사람들이 폐하의 위대함을 인정하는 게 좋던데.”

“닥쳐.”

“원하시면 그럴게요. 저도 폐하께서 싫어하는 건 싫어요.”

사무엘이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제가 언제부터 곁에 있었는지가 궁금하세요? 저라면 왜 팔라틴 왕이 저를 이곳에 불렀는지 궁금해할 텐데.”

여기서 ‘팔라틴 왕이 널 불렀냐’는 질문은 아무 쓸모도 없다.

불길한 느낌이 들어서 위스는 잠시 사무엘을 봤다.

“너 왜 왔느냐?”

사무엘이 웃으며 말했다.

“팔라틴 왕이 테오 경을 죽이는 걸 도우려고요.”

‘그 새끼를 왜 찾아.’

위스는 주먹을 쥐었다.

“……테오는 여기 없어.”

“아니요, 왜 그러세요. 이미 알고 계시면서. 테오도어 경은 항상 전하 곁에 계시잖아요.”

사무엘은 그러더니 ‘읏차’ 하고 협탁 아래 쓰러져 있던 거대한 가방을 두 손으로 들었다.

그가 서머에서부터 가져온 짐 가방이었다.

“팔라틴 왕이 파 놓은 함정이 궁금하면 따라오세요. 알려 드릴게요.”

사무엘의 가방이 허공에 멋대로 떠오르더니 빠른 속도로 복도를 휙 빠져나갔다. 위스는 사무엘이 볼품없는 꼴로 그 가방에 매달려 있는 모습을 봤다.

‘저 멍청한 놈이.’

왜 마법을 저따위로 사용해서 항상 위스를 짜증나게 한단 말인가?

적의 편으로 등장해서는 멍청한 짓만 하고 있다.

좌우지간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든 속도였다. 위스의 두 눈이 밝아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마력을 담은 피가 온몸을 돌고 있다.

‘운동한 보람이 있군.’

위스는 단숨에 사무엘을 따라잡았다.

“너 거기 서.”

“무서워요, 폐하.”

사무엘이 창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창밖으로 가방과 함께 쿵 떨어졌다.

성은 3층이었다. 위스는 사무엘의 머리가 깨지지 않았나 내려다봤으나 비리비리하게 일어나는 꼴만 목격할 수 있었다.

‘이 새끼가.’

두 발로 착지해 따라가자, 사무엘은 저 멀리 달아나 있었다.

위스는 이를 악물고 쫒아갔다.

“서라고 했다.”

“싫어요, 폐하. 서면 때리실 거잖아요.”

“거기 서면 반으로 줄여 주마.”

“안 때린다고 하셔야지 제가 설 거 아니에요. 폐하께서는 협상을 모르세요.”

“300년간 주둥아리 놀리는 법만 익혔느냐?”

“폐하께선 손이 너무 매워요. 그 몸은 수저 말고 들어 본 적도 없던데 손에 무슨 마법을 거신 거예요?”

“네가 나약한 걸 누구 탓으로 돌리느냐? 아침저녁으로 운동하라고 천 번은 말했다!”

“백 번만 말씀하셨으면 들었을 텐데.”

“닥쳐.”

세월이 흘렀는데 이놈은 왜 변화가 없단 말인가?

서머처럼 극단적인 변화는 필요 없으나, 사람이 왕국보다 일관성이 있는 게 말이 되는가?

위스가 높아진 혈압을 억누르는데 사무엘의 가방이 멈췄다.

쿵!

가방에 끌려가던 사무엘도 비틀거리며 주저앉았다.

“아, 폐하. 여긴가 봐요.”

그는 머리를 다듬었다. 새털 같던 머리카락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더니 사무엘이 가방을 열었다.

그 안에서 수십 개의 작은 인형들이 기어 나왔다.

‘이놈 거였군.’

서머 수도 내의 인형 창고와, 마법사들이 반드시 회수하려 들던 문제의 인형이 떠올랐다.

마법사들은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마탑의 주인이 내린 명령이었을 테니까.

“…….”

모자를 쓰고, 드레스를 입고, 군화를 신고, 또 왕홀을 든 여러 인형들이 위스의 주위를 빙 둘러 포위했다.

크기는 위스의 팔뚝만 했으나 위스는 저것들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 물건인지 알고 있었다.

지금 위스는 수십 명의 마법사에게 포위되어 있었다.

‘아니, 수백 명인가.’

두렵다기보다…….

황당했다.

“날 죽이려고 데려왔느냐?”

위스의 앞에 있는 건 그의 마법사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웃으며 수긍했다.

“그럼요. 아니면 전쟁 인형 같은 걸 제가 왜 만들었겠어요. 전 폭력적인 건 질색인데요. ……휴우.”

그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뭐냐?”

“뛰었더니 옆구리가 아파요.”

“…….”

위스는 생각했다.

‘사무엘이 배신을?’

……그럴 수 없다.

사무엘의 마법사 집단은 위스가 노예들과 막 영지를 빼앗았을 때 합류한 세력이었다.

다시 말해 건국 공신이다.

-우리는 당신에게 목숨을 걸었어요.

마법사 무리에서 튀어나온 어린 사무엘이 위스의 손을 잡았다.

-저희를 지켜 주세요. 그러면, 저희도 전하를 지켜 드릴게요. 저희의 삶이 다할 때까지. 약속드려요.

그 시절 위스를 도와 싸우던 노예들은 대부분 죽었고 마법사도 여럿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몇 명은 위스를 팔아넘겼다.

위스가 왕국을 만들었을 때, 그는 살아남은 데다 자신을 배신하지도 않은 사무엘에게 작위를 수여했다.

얼굴에서 앳된 티가 가신 사무엘은 위스에게 신신당부했다.

-제게 좋은 이름을 주셔야 해요. 아니면 폐하께선 불행해지실 테니까요.

-그 소리 말고 다른 협박은 없느냐?

-제가 폐하를 평생 원망할 테니 얼마나 불행하시겠어요!

위스가 작위와 함께 수여한 성을 사무엘은 기뻐하며 자신의 이름으로 삼았다.

오래전 일이었다.

그의 옛날 이름은 이제 위스도 기억하지 못했다.

실수로 옛 이름을 부르는 사람에게 사무엘은 대꾸도 하지 않았으니까.

‘……사무엘은 배신할 수 없다.’

위스가 물었다.

“넌 날 죽일 수 없어. 네 맹세를 잊었느냐?”

“기억해요, 폐하. 제 목숨이 다할 때까지 폐하를 보필하겠다고 약속드렸죠.”

사무엘은 선선히 대답했다.

위스는 할 말이 없었다. 이놈이 왜 이렇게 태연한지 모를 일이었다.

“……네 마법이 네 목숨을 가져갈 거다.”

그가 죽음을 각오하고 위스를 죽일 거라고?

그래야 할 이유를 위스는 떠올릴 수 없었다.

위스가 죽을 때까지 사무엘은 충성스러운 마법사였다. 그의 죽음을 슬퍼하던 눈물은 거짓이 아니었다.

“아니에요, 폐하. 제 마법은 절 가만둘 거예요. 제가 충성을 맹세한 폐하는 돌아가셨는걸요.”

위스는 자신의 마법사가 주인이 죽었다고 말하는 꼴을 봤다.

그렇다면 지금 이놈이 폐하라고 부르고 있는 사람은 누구란 말인가?

“너 네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느냐?”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요?”

사무엘은 시무룩해 보였다.

그가 지금도 슬퍼하는 것 같아서 위스는 위화감이 들었다.

“너 나를 뭐라고 부르고 있느냐?”

“폐하?”

사무엘이 우울하게 미소 지었다.

“다시 이렇게 부를 수 있어서 기뻐요, 폐하.”

‘말이 안 통한다.’

위스는 자신을 포위한 인형을 둘러봤다.

그의 눈동자가 밝아지더니 앞머리가 바람을 맞은 듯 흐트러졌다.

사무엘은 연구와 교육이 천직이었다.

예언자였으나 예언 능력은 쓸데없는 데만 사용하곤 했다.

그가 뛰어난 마법사였던 이유는 마법의 파괴력에 있지 않았다.

그의 발상에 있었다.

그는 누구도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누구를 반드시 죽이고자 한다면 스스로의 힘만으로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 상대가 위스라면 더욱 그랬다.

이 시대에는 인형술이 고도로 발달했다.

‘이유가 그거였나.’

인형은 마법 병기다.

위스를 상대하려면 한 명의 마법사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여러 명의 마법사가 힘을 합치면 된다.

……사무엘이 할 만한 발상이었다.

그는 예전부터 협력 따위의 단어를 좋아했다.

‘날 죽이기 위해 인형술을 연구했다고.’

300년 뒤에 깨어났더니 별꼴을 다 겪는다.

“들어보기나 하자. 배신한 이유가 뭐라고?”

“배신이라뇨. 자꾸 그러시면 전 마음이 아파요. 폐하께서 배신자를 얼마나 엄혹하게 대하시는지 알고 있는데요.”

사무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위스도 울지 않는데 이 새끼가 왜 눈물 바람이란 말인가?

“그런데 왜 그러셨어요?”

“뭐가.”

“왜 테오 경은 용서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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