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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54)화 (5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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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몸이 이상했다.

테오도어가 위스의 몸을 이상하게 만드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으나, 이번에는 뭔가가 달랐다.

‘이상해져.’

뭔가가 변하고 있다.

눈이 짓무르도록 울다가 위스는 정신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는데도 테오도어는 그를 안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품 안에 갇힌 채 부드러운 애무를 받고 있다.

열이 오른 등줄기를 테오도어의 입술이 더듬었다. 시원하고 간지럽고, 역시 이상했다.

‘열이…….’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점점 오르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상대가 뭘 하고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위스는 다시 기절했다.

열이 계속 오르고 있었다.

아니. 열이 아니라 열기였다.

‘불이다.’

위스는 불이 번진 노예 농장을 돌아보고 있었다.

그는 그 불이 태우고 있는 게 뭔지도 알고 있었다.

주인의 시체였다.

마력을 깨닫자마자 위스는 주인의 목을 날려 버렸다.

그건 손쉬운 일이었다. 주인이 한밤중에 위스를 불러내, 침실에는 두 사람밖에 없었으니까.

-얌전히 말을 들어.

주인이 위스의 얼굴을 만지며 말했다.

그러던 입이 다물리고 시체가 된 손이 떨어졌다. 잘린 목의 단면에서 피가 튀어 위스의 얼굴에 흩뿌려졌다.

위스는 피투성이가 된 채 테오에게로 달려갔다.

-주인을 죽였어. 시체가 발견될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테오는 농장에 불을 질렀다.

모든 것을 삼킬 듯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소년 테오가 위스의 손을 잡아챘다.

“도망쳐!”

테오가 깨운 노예들이 불타는 농장을 탈출하고 있었다.

달려가는 그림자들이 보였다. 그 안에는 통통하고 얼빠진 제레미도 있었다.

위스도 따라 달렸다.

그들은 언덕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누군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노예들은 선택하는 삶을 살아 본 적이 없었다. 그들은 지시받는 데 익숙했다.

“집을 갖자. 우리들의 집.”

테오가 말했다.

“어떻게?”

누가 다시 물었다.

“내가 만들어 줄게.”

위스가 약속했다.

“그러니까 닥치고 따라와.”

추격자가 붙었다. 그들이 든 횃불이 언덕을 올라오는 게 보였다.

“하하.”

테오가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그러래. 위스 말 잘 듣자.”

“쟨 맨날 욕해.”

“성격 더러워.”

노예들이 투덜거렸다.

위스가 짜증 냈다.

“조용히 하라니까?”

그들은 다시 달렸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지 않기 위해 서로의 손을 잡고서.

위스는 테오의 손을 놓지 않았다.

테오는 위스 곁에 있었다…….

성장한 테오는 가면을 쓰고 있다.

“반란군의 규모는?”

위스가 물었다.

“……얼마 되지 않습니다. 마을 셋이 연합한 것뿐이라…….”

“어떻게 모였지? 마을에 남은 남자가 없을 텐데.”

“예. 남자들은 이미 이전의 반란 때 죽었으니 남아 있는 자들은 여자와 노인 그리고 아이들뿐입니다. 힘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을 설득하게 해 주십시오.”

약자라고 누군가를 해칠 힘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도 노예가 주인을 죽이고 왕국을 건설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약속을 저버린 자들이다.”

“그들이 저버린 것이 아닙니다. 반란을 일으킨 자들은 이미 다 죽었습니다.”

“감싸려 들지 마라. 그때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 아니냐? 여자와 아이들은 날붙이를 들지 못하느냐? 그자들이 역관을 죽였다!”

“제가 대화를 해 보겠습니다.”

테오가 간청했다.

그의 얼굴은 반가면으로 가려져 있고, 보이는 곳에도 흉터가 졌다. 그럼에도 남자답고 신뢰가 가는 얼굴이다. 그의 거절에도 개의치 않고 청혼서가 저택에 쌓일 만큼.

‘견딜 수가 없다.’

위스는 벽을 쳤다. 주먹을 학대해도 분노가 풀리지 않는다.

“네가 가. 그들이 더 이상 서머의 누구도 해할 수 없게 만들어 줘라.”

“폐하.”

“너는 알잖아!”

위스가 고함을 쳤다. 벽을 주먹으로 치고 테오를 노려봤으나, 시선을 오래 마주할 수는 없었다.

“보아 넘기면 그놈들은 언제고 다시 배반한다! 동맹이라고 우리를 둘러싼 자들은 또 다르겠느냐? 한 명의 배반을 보아 넘기면 두 명, 세 명이 우리에게 창을 돌릴 것이다. 우리가 전쟁을 치러야 했던 이유는 약자이기 때문이었어! 감히 왕국을 자처해서는 안 되는 노예 놈들이었기 때문에! 다시 그 전쟁을 반복해야겠느냐?”

위스는 더 이상 누구도 잃을 수 없었다.

그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을 잃었다.

그와 시작을 함께한 노예들은 전부 죽거나 그의 곁을 떠났다. 남아 있는 사람은 테오와 제레미뿐이다.

그 둘마저 공왕의 배반으로 잃을 뻔하지 않았는가?

“너는 내 생각을 이해해야지.”

테오는 고개를 숙이고 듣고 있었다. 그가 바닥에 꿇은 무릎을 일으켰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테오가 떠났다. 위스는 주먹을 으스러져라 쥐고 있었다…….

“풍토병입니다. 폐하 곧 돌아가셔요.”

마법사 사무엘이 말했다.

위스는 천막에 누워 있었다.

“그러게 제가 출전하지 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쓸데없는 소리 계속 하든가 울든가 둘 중에 하나만 해라.”

“폐하께서는 어차피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든 안 들으시잖아요. 테오 경이 말렸어야 했는데.”

“너 하는 소리가 괴상하구나. 그놈이 말을 하면 내가 듣느냐?”

사무엘을 침대를 정리해 주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우리 폐하께서는 충신 말도 안 들으시고 폭군이 따로 없으신데. 테오 경까지 안 계시면 누가 모시지?”

“폐하. 팔라틴에서 온 전령입니다.”

밖에서 급보를 알렸다. 위스는 사무엘이 우는 꼴을 더 보기 싫었다.

“들여보내.”

“폐하. 팔라틴에 도착한 테오 경이…… 반란군에 합세해 치라 성을 차지했습니다.”

전령이 무릎을 꿇었다.

“그러게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사무엘이 눈물을 떨궜다.

“이젠 테오 경도 계시지 않는데. 불쌍한 우리 폐하.”

그리고 일주일 만에 위스는 죽었다.

⚜ ⚜ ⚜

위스는 현실로 돌아왔다.

현실의 몸은 불덩이 같았다. 무겁고 뜨거워서 침대 아래로 가라앉을 것 같다.

‘살아는 있군.’

누군가 위스에게 입 맞추고 있었다.

감은 눈꺼풀과 뺨에, 입술에.

끝없는 입맞춤이 이어졌다.

눈꺼풀을 올릴 힘조차 없는데, 위스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위스에게 이럴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다.

테오 외의 누구의 접촉도 위스는 허락하지 않았다.

‘계속 그랬어야 했는데…….’

위스를 만지는 손길이 너무 익숙하다.

마치 오랫동안 아는 사람의 것 같다.

노예 농장에 불을 지르고 도망친 위스는 언덕을 내려오다 쓰러졌다.

추격자가 쏜 화살이 위스의 등에 박혔다. 그 전부터 몸은 유리 같았다. 마법을 처음 사용한 충격에 기혈이 뒤틀려, 간신히 정신만 붙잡고 있었다.

그러던 게 활을 맞는 순간 의식이 끊어졌다.

쓰러진 그를 업고 뛴 사람은 테오였다.

-정신 잃으면 안 돼. 눈 떠. 잠들지 마. 죽으면 안 돼. 약속했잖아…….

테오가 초조하게 중얼거리는 말이 깜빡거리는 의식 사이로 들렸다.

‘죽기는 누가 죽냐.’

목소리는 나오지 않아서, 위스는 테오의 말을 듣기만 했다.

주술처럼 그가 하는 말을 붙잡고 있었다.

기절하지 않기 위해 계속 눈을 뜨고, 찬 바람에 눈물이 나는 눈을 멍하니 열어 둔 채 테오에게 매달려 있었다.

테오는 추격을 뿌리치는 밤새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기절하지 마.

자신의 곁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아프지 마십시오. 제가 죄송합니다.”

현실의 테오도어가 말했다.

그가 위스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

입술이 시원해서 기분 좋았다.

“……신소리 마라. 네가 날 아프게 했느냐?”

위스는 마른 입을 달싹였다.

테오도어의 입술이 피부 위에서 멈칫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 같습니다…….”

“이 몸이 그 짓만 해도 앓아눕는 게 네 탓이냐……. 짜증 나게 하지 마…….”

“그런 것이 아니라……. 하하…….”

테오도어가 마른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머리카락이 위스의 손등에 비비어졌다.

“예. 어서 일어나서 때려 주십시오. ……전하께서 화를 내 주시니 좋습니다.”

“너는 취향이 이상해……. 곁에 유능한 신관도 있지 않으냐. 꼭 검사를 받아 봐라……. 욕먹고 맞는 것을 좋아하는데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전하께서 주시는 거라면 뭐든 좋습니다. 전하께서 저를 예뻐만 해 주시면 제가 이상한 사람이 될 일도 없지 않았겠습니까.”

한 마디도 지지 않는 게 평소의 테오도어였다.

‘살을 문대면 정이 생긴다고…….’

위스는 내심 혀를 찼으나 의식이 몽롱했다.

애초에 테오도어에게는 그렇게 되지가 않았다. 평소에 잘 하던 소리가 테오도어에겐 나오지 않았다.

-결혼과 첫날밤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제껏 했던 결혼 상대에게 공평하게 했던 말을 테오도어에게는 못 하지 않았는가.

‘처음부터 글러 먹었어…….’

심신 미약 상태로 침대에 끌려 들어갔을 때부터 문제였다.

위스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었다.

“……전하께서 늘 이렇게 제 심장을 졸이시니, 저는 이제 전하를 걱정하는 것조차 기쁘게 받아들이게 된 듯합니다.”

테오도어와 눈이 마주쳤다.

속눈썹이 약간 젖은 채, 보기 좋은 얼굴 가득 미소가 떠올라 있다.

‘닮았어.’

그 모습이 너무도 테오를 연상시켰다.

‘이놈이 나를 살리고 죽이는구나.’

이제 위스는 테오도어가 그 테오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데도 지쳤다.

위스는 물끄러미 테오도어를 응시했다.

“신관을 불러오겠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하십니까?”

“아니. 신관도 필요 없다……. 뭐 하느라 앓았다고 하겠느냐?”

“예……. 제겐 필요하니 불러오겠습니다. 그 부분은 잘 얼버무리는 것으로 하지요.”

“네 마음대로 할 거 묻기는 왜 물어?”

“하하.”

그러더니 테오도어는 위스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댔다.

“이제야 전하께서 깨어나셨다는 실감이 납니다.”

그러고 웃는 모습이 역시 보기 좋았다.

‘돌아 버렸나.’

현기증이 나서 위스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다시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었다.

가물가물한 머리로 위스는 다시 생각했다.

죽기 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문이었다.

‘왜지?’

테오는 왜 위스를 배신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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