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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52)화 (5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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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너, 무슨 소리를……!”

왕은 너무 당황해서 표정을 숨길 생각도 하지 못했다.

“네가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지 아느냐?”

“폐하께서 제게 하신 말과 같은 맥락인 듯합니다.”

더 이상 맞춰 줄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위스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

왕이 덤벼들었다.

‘한 대 맞아 줄까.’

상대가 먼저 쳐야 저놈의 사지를 부러뜨려 놓아도 명분이 서지 않겠는가?

위스는 멱살을 내줬다.

듣던 대로 팔라틴 왕은 기사가 아니었다. 단련되지 않은 팔로 흔들어 봐야 토할 것 같지도 않았다.

왕이 위스의 멱살을 잡고 흔들며 윽박질렀다.

“누구냐? 누가 너에게 허튼소리를 지껄였어?”

‘이성을 잃었군.’

왕이 숨을 들이켰다. 그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설마 테오도어 놈이냐?”

“……대공께서도 아십니까?”

“내가 묻잖아! 그놈에게 들었냐고! 그놈이 알고 있었어?”

“너는 코가 없느냐?”

대답 듣기는 글렀다.

위스는 왕의 손을 떼어 냈다. 작고 마른 위스의 손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손을 떼어 내자, 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쳐다봤다.

“아니, 팔라틴의 귀족들이 눈이 없는 게 분명하구나. 알파라고 주장하고 싶었으면 페로몬을 흘리는 무례한 짓 그만하라고 윽박질렀어야지. 되도 않게 힘자랑할 게 아니라.”

“너!”

왕이 주먹을 치켜들었다. 위스는 목에 힘을 빼고 턱을 슬쩍 돌렸다. 맞는 데는 요령이 있다. 힘을 주고 맞아 봐야 더럽게 아프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왕의 손은 위스의 뺨을 치지 않았다. 그가 위스의 목을 졸랐다.

“닥쳐!”

“…….”

“또 누가 아느냐? 아니, 네가 하는 소리를 누가 믿겠느냐? 닥쳐, 입 밖으로 말하지 마라…….”

위스의 눈앞이 검게 변했다가 하얗게 번졌다.

‘이만하면 됐다.’

충분히 맞아 주지 않았는가?

위스는 무릎으로 왕의 배를 올려 찼다.

“헉…….”

왕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나 그가 위스에게서 떨어지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위스미아!”

테오도어가 서 있었다. 그의 눈이 잠시 상황을 살피듯 방을 쳐다봤다. 위스는 왕을 걷어차려던 발을 내렸다.

“이건, 대공 전하.”

그는 설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멱살이 잡힌 목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얼굴로 피가 몰리며 기침이 튀어나왔다. 위스는 온몸을 들썩이며 기침을 토해 내면서도 테오도어를 보려고 했다.

‘저 새끼 오해하는 거 아니겠지.’

형제를 끔찍하게 아끼는 놈이 아닌가?

테오도어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그러나 그가 추궁한 대상은 위스가 아니었다.

“리엔델.”

“테오도어……!”

테오도어는 왕에게 다가가더니 아무렇지 않게 멱살을 잡았다. 왕의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컥, 헉…….”

왕의 발이 허공에서 버둥거렸다.

“내 부인에게 무슨 짓을 했지?”

“아무, 아무것도……!”

“무슨 짓을 하려고 했어?”

왕은 대답하지 못하고 꺽꺽거리며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얼굴은 피가 몰려 터질듯했고, 버둥거리는 몸짓은 필사적이었다.

갑자기 발버둥이 멈추더니 그가 축 늘어졌다.

그래도 테오도어는 왕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는 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테오도어.”

위스가 불렀다. 테오도어는 그제야 소리가 들리는 사람처럼 위스를 돌아봤다.

위스는 눈을 깜빡였다. 눈에 글썽하던 눈물이 아래로 뚝 떨어졌다. 슬퍼서 나온 눈물은 물론 아니었고, 목이 졸린 탓에 몸이 멋대로 끌어모은 눈물이었다.

테오도어의 얼굴에 표정이 돌아오더니, 그는 왕을 던져 버리고 위스 앞에 무릎 꿇었다.

“괜찮으십니까, 전하?”

“예…….”

위스는 기침을 참았다.

“리엔델이 당신께 무슨 짓을 했습니까?”

테오도어의 손이 떨렸다. 위스는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고 대답하려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테오도어의 눈이 붉었다.

‘뭐냐.’

위스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런 자신이 의아했다.

“왕이 당신에게 말할 수 없는 짓을 하려 했습니까?”

테오도어의 두 손이 위스의 얼굴을 감싸려다가, 차마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 것처럼 근처에 멈췄다.

위스는 방 안에 가득한 페로몬을 인지했다.

“아니요!”

이놈이 무슨 생각을 하는 건가?

그러나 입이 열리지 않았다.

‘왜 네가 우냐.’

무슨 짓을 당했든 위스가 당한 건데.

테오도어의 속눈썹이 젖어 있었다. 기사의 것이라기에 너무 섬세한 속눈썹은 길고 빽빽하게 자라 있어서, 눈을 약간 찡그릴 때마다 눈동자에 긴 그늘을 만들곤 했다.

방 안의 페로몬은 테오도어의 것과 뒤섞여 무엇이 누구의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위스는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뛴다고 느꼈다. 테오도어의 분노에 동조하고 있는 것인가?

그것과 달랐다. 입이 마르고 몸이 홧홧했다. 초조하고 이상하다.

분명한 건 테오도어가 젖은 눈을 깜빡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미쳐 버렸나.’

위스는 겁먹은 것처럼 허공에 멈춘 테오도어의 손을 잡아채 자신의 뺨에 댔다. 그리고 듬직하게 말했다.

“아니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목에, 상처가……. 제가 무슨 짓을 할까 걱정되어 그러시는 거라면.”

“팔라틴 왕을 죽여 주세요. 지금은 이곳을 떠나 주시고요.”

“…….”

테오도어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위스의 말은 고분고분 들었다.

그의 품에 안겨서 방을 빠져나가며 위스는 눈을 감아 버렸다.

제정신이었다면 테오도어가 자신을 어린애처럼 대하도록 놔두지 않았겠지만.

‘그래. 내가 발이 없다.’

어디가 부러지지 않은 바에야 성인 남자가 다른 놈에게 안겨서 이동당할 일이 있겠는가?

위스는 팔다리 모두 멀쩡했으나, 테오도어가 하고 싶어 하는 대로 두었다.

복도에 소란이 일었다. 왕의 심처로 대공이 쳐들어갔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리 없다.

“대공 전하! 이게 무슨 짓…….”

“비켜라.”

“대공! 대공께서 나오신 곳은 폐하의 사실입니다.”

용감한 근위 기사가 말했다. 그러나 용기도 별거 없어서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비켜.”

“폐하께 해를 끼치셨다면, 아무리 대공 전하라도…….”

“세 번 말하게 하지 마라. 폐하께선 무사하시다. 내가 그대라면 나와 실랑이할 시간에 폐하의 용태를 확인하겠어.”

“…….”

근위 기사들은 테오도어가 세 번 말하게 하지 않았다. 목숨 아까운 줄 아는 놈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시선이 위스의 뒤통수에 박히는 건 막을 수 없었다.

위스는 테오도어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이 자리에 없는 사람처럼 있었다.

수치심으로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그런데도 테오도어에게 내려 달라는 말을 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떨고 있는 놈한테 무슨 말을 하냐.’

살을 맞댄 곳으로 테오도어의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놀란 사람처럼 뛰고 있었다.

위스는 한숨이 나왔다.

그가 이놈을 좋아하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미친 게 아닌가. 감정에 휘둘려 멍청한 선택을 하는 놈들을 경멸했는데, 스스로 그 꼴이 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제 형보다 나를 선택했단 말이지.’

그 와중에 이딴 생각에 마음이 뿌듯해져서 웃기지도 않다 싶었다.

왕자궁에 도착하자 궁인들은 사색이 됐다.

시종 위릭이 뛰어나왔다.

“대공 전하! 왜 마차를 부르지 않으시고……! 위스미아 전하께서 왜 이러십니까?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신관을 부르겠습니다.”

“서둘러 오라고 해.”

꾹 닫혀 있던 테오도어의 입이 그제야 열렸다. 오는 내내 테오도어는 말 한마디 없었다.

위스가 품 안에 있나 확인하듯 꾹 안아 보기만 했을 뿐이다.

‘됐나.’

위스는 몸을 뒤틀다가 쑥 빠져나갔다. 그의 발이 바닥을 딛자, 테오도어가 물었다.

“불편하셨습니까?”

‘이놈은 참…….’

파랗게 질려서 남 걱정부터 하고 있다.

너나 챙기라는 생각이 들어서 위스는 테오도어의 손을 잡았다.

그런데 그의 손바닥이 흠뻑 젖어 있었다. 식은땀이다.

“대화 중에 끼어든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리엔델이 전하께 좋은 뜻을 가지고 접근할 것 같지 않아…….”

“변명 안 하셔도 됩니다.”

멱살 잡힌 놈이 구해 줬다고 은인을 박대하겠나.

자신을 뭘로 보는 건가?

‘독은 씻었겠지.’

위스는 까치발을 들어 테오도어의 입에 가볍게 입 맞췄다.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테오도어의 눈이 커졌다. 위스가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더니, 그는 자신의 손을 빼내 위스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

위스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복도 벽에 반쯤 눕다시피 머리를 댄 채, 위스는 퍼붓는 입맞춤을 받았다.

궁인들이 재빨리 자리를 피하는 소리가 들렸다. 위스는 그들이 발걸음을 서두르기 전까지 그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머리가 어찔했다.

눈이 돌아 버렸나. 왜 누가 있는 줄도 못 알아챈단 말인가?

“…….”

그런데도 테오도어를 밀쳐 낼 생각이 들지 않는 걸 보니 단단히 정신이 나가긴 한 듯했다.

⚜ ⚜ ⚜

팔라틴 왕 리엔델은 몸을 떨고 있었다. 수치심과 공포감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왕자를 죽여야 해.’

테오도어를 향한 것보다 더 큰 증오가, 그의 몸을 불사를 듯했다.

왕가의 첫 아이가 베타임이 확실해졌을 때, 주변의 반응을 기억하고 있다.

리엔델은 어린 테오도어에게 모든 기대가 옮겨 가는 것을 보아야 했다.

날 때부터 검은 머리카락과 검은 눈을 타고 태어나 자신이 기사 테오의 후예임을 증명했던 테오도어는, 역시 처음부터 부정할 수 없는 알파였다.

그는 잔병치레 하나 없이 건강하고 활달하게 자라났고, 이내 스스로의 영리함을 뽐냈다.

재주 많은 동생을 리엔델도 처음부터 미워했던 것은 아니다.

자신의 것이었던 모든 것을 하나씩 빼앗기면서, 리엔델의 빈 품 안에 증오만이 찾아왔던 것이다. 그것은 빈자리를 먹으며 스스로의 크기를 키웠다.

‘죽인다.’

그 둘을 죽여 버릴 것이다. 리엔델은 자신이 제대로 중심을 잡고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천장과 바닥이 뒤바뀐 듯했다. 다른 세계에 와 있는 것 같다. 감정으로 이루어진 검고 알 수 없는 세계에…….

그는 현기증에서 벗어나 앞을 봤다.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음에도, 어느샌가 그곳에 누군가 서 있었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남자가 미소 짓고 있었다.

“사무엘 마탑주!”

리엔델은 비명처럼 남자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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