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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49)화 (4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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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너 내 말 듣고 있느냐?”

위스가 성질을 냈다.

“예. 잘 듣고 있습니다. 가족에게 걱정을 받는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군요.”

‘누가 네 가족이냐’고 하려던 위스는 입을 다물었다.

법률상 그는 테오도어의 가족이 맞지 않는가?

“형도 저를 걱정했던 때가 있습니다.”

“뭐? 언제?”

“어릴 적에요. 저는 악몽을 자주 꾸는 아이여서요.”

“울고 있는 널 위로라도 해 주더냐? 참 큰일이구나.”

빈정거리는 말에도 테오도어는 웃기만 했다.

“좀 더 심각한 일이긴 했습니다. 전 악몽 투정을 사납게 하는 편이었다더군요. 리엔델이 다치기도 했는데…….”

“그래. 그놈이 네 잠버릇을 참아 줬으니 너도 그놈이 널 죽이든 말든 참거라.”

“하하!”

테오도어가 위스를 번쩍 안아 들었다. 위스는 테오도어보다 더 높은 곳까지 들어 올려졌다가 심장 떨어지는 느낌을 받으며 테라스 난간에 걸터앉게 됐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이놈이 누굴 죽이려고.’

그러나 테오도어가 고개를 기울이며 다가오고 있었다. 위스는 눈을 감았다.

뒤로 넘어지지 않기 위해 한 손은 테오도어의 소매를, 다른 손은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테오도어의 접근이 갑자기 멈췄다.

“……?”

고개를 꺾은 테오도어가 가까운 거리에서 위스를 쳐다보고 있었다. 푸른 눈이 망설이듯 움직였다.

시선이 얼굴을 훑고 있다.

위스는 미간을 좁혔다.

뭐 하는 짓인가. 틈만 나면 입술부터 맞대면서 갑자기 내외하고 있다.

테오도어가 입을 달싹였다.

“……돌아가시기 전, 부모님께선 제게 리엔델을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반대가 아니라?”

“리엔델에게도 말씀하셨겠죠. 저는 그냥…… 유언을 지키고 싶습니다.”

“누가 뭐라더냐?”

위스가 테오도어를 밀어냈다. 난간에서 내려오며 그는 옷을 정돈했다.

단둘이 테라스까지 들어왔는데 옷이 흐트러져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유언을 지켜. 하지만 내게까지 강요하진 마라. 내게도 중요한 것들이 있어. 리엔델 왕이 그보다 중요하진 않다.”

팔라틴 왕에 대한 테오도어의 애정을 듣는 게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그게 불편하다는 사실이 또 불쾌했다.

위스에게도 가족이 있었다.

제레미는 피를 통한 가족이었고 부관 테오는 생사를 함께해 왔다. 그가 결혼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이유는, 그에게 그 외의 가족이 필요 없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위스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실은 둘 다 이미 위스를 배신했지만.

제레미의 무능과 방종은 위스의 기대를 배반했고, 부관은 곁을 떠나 그에게로 창끝을 돌렸다.

그러나 위스는 두 사람에게 보복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부관 놈이야 배신하자마자 내가 앓아누웠으니 수도 없었고…….’

하지만 위스가 원했다면 사무엘을 보내 팔라틴을 폭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위스는 그러지 않았다.

심정이 복잡해지는데, 테오도어가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또 뭐냐?”

“예. 제가 팔라틴의 왕보다 소중하시군요.”

“뭐라는 거냐. 그런 말 한 적 없다.”

귀가 어디로 뚫린 건가? 말을 멋대로 알아먹고 있다.

“리엔델 왕의 호의를 사는 것보다 제가 소중하시지 않습니까.”

“그야 당연한 소리를…….”

위스는 멈칫했다. 테오도어가 또 달려들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하.”

하지만 테오도어는 위스를 안고 테라스를 몇 바퀴 돌면서도 입을 맞추진 않았다.

‘뭐냐.’

“이거 놔라……. 어지러워……. 내가 네 인형인 줄 아느냐?”

위스는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러지 않으면 어떻게 제 기분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아시겠습니까?”

테오도어는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물었다.

‘입 뒀다 뭐 하냐…….’

툭하면 입술부터 들이미는 놈이.

위스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가 자신의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미쳐 버린 건가. 이놈에게 물든 게 아닌가?

“꺼져……. 멀쩡하면 나가기나 해라…….”

“예, 전하. 이만 나갈까요. 그런데 계속 반말하실 겁니까?”

“……!”

테오도어는 난처한 듯 말했다.

“저는 기쁘지만 귀족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될 것 같긴 합니다. 전하께서 의식하고 하시는 게 아닌 듯하여…….”

왜 이놈 앞에서는 말이 짧아진단 말인가?

“……실수했습니다. 제 무례를 참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례라고 느끼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말씀드리지 말 걸 그랬군요…….”

테오도어가 웃으며 위스의 목에 이마를 비볐다.

간지럽고 질척이기는 평소와 마찬가지였으나, 역시 입맞춤은 없었다.

‘뭐냐.’

위스는 미심쩍어졌다.

어쨌거나 자리를 비우는 시간이 길어져도 문제였기 때문에, 둘은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왕은 떠나고 없었다. 대공 부부를 환영하는 연회에 오래 남아 있을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가셨군요.”

테오도어가 말했다. 그러며 확인하듯 연회장을 둘러봤다.

위스는 여전히 의혹에 차 있었다.

본래 테오도어는 둘만 남으면 달라붙지 못해 죽은 귀신이 들린 것처럼 굴지 않던가. 사실 옆에 누가 있어도 마찬가지였다.

의심의 불씨가 위스 안에서 되살아났다.

‘옛 연인이 여기 참석한 거 아닌가.’

위스도 테오도어를 따라 연회장을 둘러봤다. 테오도어와 눈이 마주칠 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내는 사람은 없었다.

한 명이 있긴 했는데 그 사람은 위스도 아는 사람이었다.

‘치라 공작.’

기사처럼 차려입은 공작은 여러 귀족들 사이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테오도어가 입을 열었다.

“’대륙을 정복한 기사를 환영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

“보여 드릴 수 있겠군요.”

그 말대로였다.

눈치 싸움 틈바구니에서 콧수염을 단 귀족 하나가 다가왔다.

“오오, 테오도어 대공 전하……. 이런 자리에서 뵙게 되다니.”

‘넌 또 무슨 소리야.’

대공을 위한 연회 아닌가? 이 자리에 대공이 참석하지 않으면 누가 참석한단 말인가?

콧수염의 정체를 바로 알아볼 수 없어서 위스는 미간을 찡그렸다. 오는 길에 팔라틴의 작위 귀족들을 대충 살펴보긴 했으나, 얼굴만 보고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테오도어가 낮은 소리로 알려 줬다.

“모티어 백작. 치라 공작의 방계입니다.”

“폐하께서도 너무하시는군요. 영웅을 이리 대우하니, 앞으로 누가 나서서 폐하를 위해 공을 세우려 하겠습니까?”

“이곳이 연회장 꼴이나 갖추고 있는 게 대단하지 않습니까? 얼마나 급히 준비하셨는지 모른답니다. 변경에는 초청장도 도착하지 않았을 걸요.”

“마리아 틸렌. 틸렌 자작의 상속녀입니다.”

위스는 테오도어의 설명을 듣다가 깨달았다.

지금 모여들고 있는 건 팔라틴의 유력 귀족들이다.

여기서 유력 귀족이라는 건 현 리엔델 왕 치하의 실세라는 뜻이 아니다.

‘전대 팔라틴 왕을 모시던 자들이다.’

리엔델 왕을 마음에 차지 않게 생각하는 자들이 테오도어를 위시해 파벌을 형성한 것이다.

“저번에 이 말씀을 못 드렸네요. 제 마음이 급해 정무적인 일들만 말씀드리고 말았어요. 제가 무심한 사람이라고 여기셔도 할 말이 없겠네요.”

파벌을 이끌고 다가온 치라 공작이 말했다.

“무사히 돌아오셔서 기뻐요. 영웅이 되어 오셨군요. 제게는 그 전에도 영웅이셨지만요.”

“감사합니다.”

테오도어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위스에게만 보이게 슬쩍 눈짓했다.

‘보셨지요’라고 말하듯이.

위스는 웃을 수 없어서 미간을 찡그렸다.

테오도어는 생김새와 달리 애교가 있다.

‘귀엽지 않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인간이 이 연회장에 또 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위스는 다시 웃을 기분이 아니게 됐다.

그가 주위를 살피는데 테오도어가 어깨를 감쌌다.

“팔라틴의 귀족들을 살피고 계십니까?”

위스는 테오도어의 품에 갇힌 채 떫게 대답했다.

“그런데요.”

“귀족들을 이용하고 싶으시면 제게 과일을 먹여 주십시오.”

“예?”

“과즙 때문에 장갑이 젖을지도 모르겠군요. 벗고 먹여 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위스는 귀를 의심했으나 테오도어는 태연한 표정이었다.

‘보통 연인이 있는 자리에서 이런 요구를 하나.’

위스의 상식으로는 아니다.

경고인가?

옛 연인에게 관계를 끝내겠다는 신호를 보내고 싶은지도 모른다.

배우자가 있는 사람으로서 훌륭한 태도였다.

위스는 동참해 주기로 했다.

장갑을 벗고 포도알을 집어 입에 넣어 주니 테오도어는 웃으며 받아먹었다.

“달군요.”

“예.”

‘이 날씨에 잘도 과일을 공수했군.’

팔라틴이 강국이긴 했다.

그 강국의 대공이 헛소리를 했다.

“전하께서 먹여 주셔서 더 단 듯합니다.”

“포도는 원래 답니다.”

“말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한 마디를 받아 주질 않으시는군요.”

테오도어가 웃으며 나무랐다. 위스는 포도알을 처넣어서 그가 입을 다물게 했다.

그런데 멋대로 떠들고 있던 귀족들이 조용했다.

테오도어가 손가락을 빨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면 위스도 금방 눈치챘을 터였다.

그가 눈치챘을 때는 이미 주변에서 웃으며 그들을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귀족이 웃으며 변명했다.

“죄송합니다. 두 분이 너무도 다정하셔서 그만…… 흐뭇하게 바라보고 말았습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니 소문이 전부 헛되었음을 알겠습니다. 이렇게 애틋한 분들을 두고 무슨 말들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부부의 모습이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팔라틴과 서머는 오랜 시간을 떨어져 있었는데, 두 분이 이렇게 애정으로 맺어진 모습을 보여 주시니 저희 마음이 벅차오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위스는 테오도어의 손을 던져 버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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