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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46)화 (4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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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뭐라냐.’

가뜩이나 신경이 날카로운데 테오도어는 헛소리나 하고 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들립니다…….”

테오도어는 웃고 있었다. 위스의 어깨에 처박은 머리가 가볍게 떨렸다.

고개를 든 그는 여행의 피로라고는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표정이 밝았다.

위스는 그에게 경고해 둬야겠다고 판단했다.

“대공께서 뭘 하든 상관없지만 법적 배우자는 저입니다. 본부인이 있는 곳에 정부를 들이지 않는 건 상식 아닙니까?”

“전하, 치라 공작은 예센의 어머니입니다.”

“…….”

쏘아붙이던 위스는 입을 다물었다.

테오도어의 부관 예센 말인가?

“저 같은 애인을 두기에 그분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분도 아닌 데다, 본인의 남편을 사랑하고 계십니다. 이미 결혼한 분처럼 보이지 않았습니까? 반지도 하고 계셨는데요.”

‘너 결혼한 사람이 취향 아니냐?’

위스는 생각했으나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못 봤습니다. ……예센이 공작의 아들이었습니까?”

“예. 남편을 꼭 닮았다고 애지중지하는 아들이니 걱정 마십시오.”

테오도어가 위스는 꼭 끌어안았다. 그러더니 귓가에 대고 쿡쿡 웃었다.

위스는 그의 배를 쳤다.

“……아픕니다.”

‘웃음이나 멈춰라.’

위스는 수치심을 참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여기는 왜 오셨다고 합니까? 아들 안부를 물어보러 오시진 않았을 텐데요.”

“제게 불만이 좀 있으십니다. 전하께 걱정을 끼칠 일은 아니니, 너무 염려 마십시오.”

“막 돌아온 사람 붙잡고 떠들 정도의 불만입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건 다른 법이니까요.”

위스는 사람 좋게 대답하는 테오도어를 싫은 눈으로 쳐다봤다. 이 호구는 자기 형에게만 편한 동생이 아니었던 듯했다.

위스에게도 이용해 먹기 좋은 상대이니 누구에겐들 안 그렇겠는가?

‘다른 놈들이 뜯어먹게 둘 바에는 내가 삼키는 게 맞지 않나.’

이놈에게도 그편이 좋지 않을까?

위스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테오도어는 다시 웃었다. 허파에 바람 들어간 것처럼 피식거리는 꼴이 아까 일이 어지간히 재미있었던 듯했다.

‘X발.’

“그만 웃으시죠.”

“좋아서요.”

테오도어가 위스의 목덜미에 머리카락을 비볐다. 자꾸 목에 고개를 처박는데 위스는 무겁고 짜증스러웠다.

“사람 꼴사납게 만들고 조롱하는 취미가 있으십니까?”

“꼴사납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테오도어가 정색했다. 눈가의 웃음이나 지우고 말했다면 위스는 믿었을 것이다.

‘X발!’

“자러 갈 겁니다. 놓으시죠.”

“예.”

말하고서 테오도어는 두 팔을 떼어 냈다. 위스가 등 돌리고 가자, 그는 뒷짐을 지고 위스를 따라갔다.

“왜 따라오십니까?”

“……저랑 같은 침실에서 주무시지 않습니까?”

그야 부부에게 따로 침실을 내줄 리가 없으니, 둘은 같은 침대에서 자야 했다.

위스는 이를 악물고 침실로 돌아갔다. 그리고 침대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 나서야 의문이 들었다.

‘근데 왜 이놈이 여기서 머무냐.’

그는 이불을 내리고 눈만 내밀었다.

“수도에 저택이 없으십니까?”

보통 왕족들은 성년이 되면 작위를 받고 성을 떠난다.

“성년이 지났는데 왜 왕성에서 머무느냐는 말씀이시군요.”

테오도어가 쓴웃음을 지었다.

“폐하께서 왕자궁에 계속 머물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가까이 두고 감시하려고요?”

위스가 속뜻을 짚었다.

“그렇게도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테오도어는 부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의 궁인들은 충직하고 강인하니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팔라틴 왕의 수작이 닿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그래 보인다.’

공작은 자기 아들을 보내 테오도어의 부관을 시키고 있고, 왕자궁의 궁인들은 왕의 심기 따위는 걱정하지 않고 주인을 모시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걱정 안 합니다.”

‘네 걱정이나 해라.’

위스는 속마음을 숨긴 채 눈을 감았다.

그리고 이불을 걷어찰 뻔했다.

치라 공작은 유부녀였다. 왜 테오도어가 유부녀 취향일 거라고 확신했단 말인가?

⚜ ⚜ ⚜

위스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 테오도어는 침실을 나섰다.

시종 위릭이 대기하고 있었다.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대공 전하.”

“내가 도망갈 것도 아닌데 마음들이 조급하군.”

“귀족원의 의원입니다. ……다음에 찾아오시라고 할까요?”

테오도어는 잔에 와인을 채우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중히 돌려보내. 폐하께서 크게 환영연을 열어 주실 모양이니, 그때 뵈면 좋겠다고 말씀드리는 게 좋겠군.”

사적인 자리를 만들지 않겠다는 소리다. 의원도 알아들을 것이다.

위스에게는 간단히 말했으나 치라 공작은 물론 단순한 불만 표현을 하러 온 것은 아니었다.

공작은 귀족원의 수장으로 리엔델 왕과 대립하고 있었다.

대립의 이유야 여럿 있었으나, 가장 큰 원인은 그녀의 남편이 리엔델 왕에 의해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름 있는 문인이던 그는 왕의 정책에 반대하는 글을 써서 탑에 유폐됐다. 그는 그곳에서 폐병을 얻어 나왔고,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원한을 샀지.’

리엔델은 무언가 착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테오도어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리엔델을 미워하는 것이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치라 공작은 자신의 아들을 테오도어에게 부탁했다.

-그 아이를 지켜 주세요. 대공께서는 하실 수 있잖아요.

공작은 리엔델이 예센마저 죽이리라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다. 테오도어는 그녀의 부탁을 외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같은 어조로 테오도어에게 말했다.

-저희를 지지해 주실 거잖아요. 옳지 않은 일을 반대하는 편에 서실 거예요, 대공께서는. 그러려고 돌아오신 거잖아요? 대공께서 서머의 왕자와 급하게 결혼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 믿지 않았어요. 대공께서는 언제나 신중하게 행동해 오셨으니까. 하지만 결심하신 거예요, 그렇죠? 아니라면 서머와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왕을 도발하셨을 리 없어요.

치라 공작은 신념을 가진 사람 특유의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그 눈이 너무 반짝여서 미친 사람의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제가 결혼한 건 폐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곳에 돌아온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고요.

테오도어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치라 공작의 들뜬 표정에서 힘이 빠졌다. 그러나 목소리는 여전히 열기를 띠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새 성을 건축하고 계세요. 이곳이 마음에 안 드시는 모양이죠. 늙은 귀족들이 노망이 들어 헛소리를 한다고 떠들어 대실 정도니까요.

-건축 비용을 어떻게 충당하시려고?

테오도어는 의아해졌다. 그가 투입된 전쟁도 팔라틴 금고가 텅 비어서 일어난 일이 아니던가?

-세금이요. 영특하기도 하시지, ‘창문세’라는 것을 신설하셨답니다. 창이 많은 집을 가진 자들은 폐하의 은총 아래 부를 누리고 있으니, 마땅히 세금으로 충성심을 보여야 한다는 거예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가난한 자들도 어디선가는 살아야 하는걸요. 창문이 없는 집이 있겠어요? 그분은 팔라틴 국민 전체에게 막대한 세금을 물리신 거예요. 모두가 화를 내고 있답니다.

테오도어는 리엔델이 귀환을 명령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는 두려워진 것이다.

리엔델은 자신이 하려는 일을 누군가 반대하면 처음에는 화를 냈고 그 다음에는 두려워했다.

-나를 지켜라. 저자들이 나에 대해 멋대로 떠들지 못하게 해!

왕이 명령하면, 테오도어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가 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테오도어를 죽이려고 했으면서, 세금을 거두는 일이 반대에 부딪히자 리엔델은 또 테오도어를 떠올린 것이다.

다른 사람이 테오도어를 신뢰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그 자신은 테오도어에게 안심을 구하고 있다.

테오도어는 궁금했다. 리엔델은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자각이나 하는 걸까?

-팔라틴을 떠나 있던 제게 폐하를 제어하라 요구하시는군요. 귀족원에서 하는 일이 그것 아니었습니까?

-아시잖아요. 폐하께선 저희의 말은 듣지 않으신답니다. 아예 들리지 않는 곳에 가려고 성을 옮기시는걸요.

치라 공작이 코웃음 쳤다.

-이런 시기에 돌아오셨으면서, 아무 말씀도 않으시려고요? 불가능해요, 대공 전하. 전하께서 서머의 왕자를 데리고 오셨잖아요.

-그만하십시오. 공작에게 제 배우자에 대한 말을 듣고 싶지 않군요.

테오도어의 태도가 싸늘해지자, 공작은 한 걸음 물러섰다.

-무례를 범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아시잖아요.

-형을 위해 출병한 동생에게 형을 공격하라는 말씀 말입니까?

-아니요! 그 결합이 사람들에게 옛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는 거예요. 서머와 팔라틴의 결합이라니, 모두가 대공께서 그 일을 해낼 줄 알았다고 떠들어 대고 있어요…….

-이제 폐하의 명령으로 벌어진 일이라는 사실을 아셨을 테니, 폐하께서 염원하던 일을 이뤄 내셨다고 소문을 내시면 되겠군요.

-제가 말한다고 누가 그렇게 생각하겠어요?

공작이 신경질적으로 웃었다.

-대륙을 정복하고 서머를 차지한 분은 대공 전하신데요! 애초에 선왕 폐하께서는 대공을 왕위에 올리고 싶어 하셨잖아요!

위스가 나타난 건 그때였다.

‘이래서 오고 싶지 않았는데.’

테오도어는 와인을 마셨다.

잔을 비우고 다시 따르자, 몸에 서서히 취기가 돌았다.

잠들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게 좋은 버릇이 아니라는 건 안다.

하지만 취하지 않으면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그는 긴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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