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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38)화 (3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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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제가 좀 무식합니다.”

행정이나 상식, 예법을 모른다고 무시받던 일이야 흔했다. 비웃던 놈들이 전부 입을 닥치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배우지 않으신 듯하여.”

“숫자 읽는 것도 누가 가르쳐 줍니까?”

“배우고 싶으시다면, 제가 알려 드리겠습니다.”

시비로 맞받아쳐도 부드러운 대꾸가 돌아온다.

위스는 테오도어가 자신의 능력 없음을 지적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상한 놈.’

어제 위스가 멋대로 외출한 것에는 그토록 화를 내놓고, 또 멀쩡해져서 인격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것치고는 찬바람이 돌지만. 위스에게 이 정도는 분노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물론 위스는 화가 났다.

자길 죽이려는 놈에게는 실망도 내비치지 않더니, 위스에게 화를 냈다는 점이 황당하지 않은가.

도대체 어디서 화가 났단 말인가?

“대공께선 누구한테 배우셨는데요.”

위스는 쳐다보지도 않고 물었다.

“어릴 적 부모님의 집무실이 제 놀이터였습니다.”

“……일하는 데 애를 들여보내 주셨습니까?”

테오도어가 어깨를 들썩였다.

“제가 너무 사고를 치고 다녀서, 시선이 닿는 데 두고 감시하실 요량이셨을 겁니다. 중요한 서류에 낙서를 하는 바람에 그 안에서도 또 혼이 났지만요.”

위스는 이놈이 사고를 치는 모습이 상상이 안 됐다. 처음부터 이성의 화신으로 태어났을 것 같은 놈이 아닌가.

“상상이 안 가는데요.”

“어릴 적에는 활달했습니다. 형과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갖고 싶은 건 가져야 직성이 풀려서, 형을 자주 때려눕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놈이 왜 이 꼴이 됐냐.’

“인생사에 굴곡이 많으셨던 모양입니다.”

성격 많이 변했다는 소리를 해 주자 테오도어는 몸을 느슨하게 뒤로 기댔다.

“어릴 적에는 형이 그러는 이유를 몰랐으니까요. 제 것을 빼앗고 싶어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제가 형의 것을 빼앗고 있는 줄은 몰랐지요.”

“뭘 뺏으셨는데요?”

“기대.”

“…….”

“부모님의 기대, 대신들과 궁인들, 다른 모든 사람들의 기대를 제가 빼앗고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서류에 낙서하자 부모님은 꾸중을 하시고는, 거기에 쓰여 있던 숫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해 주셨습니다.”

‘후계자 교육을 받았군.’

팔라틴 왕이 괜한 열등감에 발악하는 게 아니었다.

테오도어는 어릴 적부터 형보다 낫다고 낙점되어 있었던 것이다. 팔라틴의 전 국왕 부부로부터.

‘가만.’

위스는 테오도어의 옷자락을 잡았다.

“부모님이 어릴 적에 돌아가셨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 질문을 눈을 빛내며 하시는군요…….”

테오도어가 위스의 뺨을 문질렀다. 위스는 눈을 깜빡여 관심 가득한 표정을 고쳤다.

“어릴 적에 돌아가셨습니다. 수도에 유행병이 돌아, 하루에도 백 명이 넘게 죽어나가던 시기였습니다. 갑자기 두 분이 급사하시고 리엔델이 왕위에 올랐지요. 누구도 준비가 안 되어 있던 때였습니다.”

‘유행병이었군.’

위스는 관심이 식었다.

흥미진진한 뒷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었으나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기야 음모와 모략이 판치던 예전에 비해 300년 후 인간들은 영 미적지근한 것이, 시대가 평화로워진 느낌이었다.

“유감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예, 뭐.”

“그럼 위로해 주십시오.”

테오도어가 위스를 끌어안았다. 위스는 기겁해서 팔꿈치를 세웠다.

“그렇게 하고 부족하십니까? 이 짐승 같은…….”

“간지럽습니다, 전하. 아……. 혹시나 해서 드리는 말씀이지만, 제 정력을 칭찬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위스가 이를 갈았다.

“……아니시겠지요.”

테오도어가 어깨를 떨며 웃었다. 위스는 얼굴이 홧홧하고 짜증스러웠다.

“전하는 정말 이상한 분이십니다.”

‘네가 할 말이냐?’

도대체가 이해할 수 없는 놈이다.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다루기가 어렵다.

위스라면 땅과 돈을 손에 넣은 즉시 팔라틴 왕의 모가지를 딸 생각부터 할 텐데, 이놈은 뭘 하고 싶은 놈인지도 알 수 없었다.

최근 하는 일이라고는 위스를 따라다니며 부관처럼 구는 것밖에 없지 않은가.

남의 부관이 되는 게 최종 목표인 사람이 있을 리도 없으니, 이놈도 뭔가 목적이 있기는 하다는 건데…….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과로하셨던 것 같습니다. 책임감 있는 분들이셨으니까요.”

테오도어가 위스의 어깨에 머리를 묻고 말했다.

위스는 무슨 소린가 하다가 팔라틴 전 국왕부부에 대한 이야기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테오도어는 어린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하는 어조로, 본인이 어린아이처럼 안긴 채 중얼거렸다.

“누군가가 갑자기 제 곁을 떠나는 건 싫습니다. 그러니 아프지 말아 주십시오.”

“…….”

누군가를 잃을 때의 무력감이라면 위스도 익숙했다.

위스는 무심결에 테오도어의 뒤통수에 손을 얹었다. 개처럼 쓰다듬다가 정신이 들었다.

‘뭐 하고 있는 거지.’

테오도어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그가 소리 없이 몸이 타고 올라와서, 위스는 다시 눈을 감을 뻔했다.

그때 나갔던 예센이 돌아왔다.

“…….”

“…….”

“……크흠, 흠, 대공 전하. 팔라틴에서 사자가 찾아왔습니다.”

“……결혼 축하 사절인가?”

테오도어는 위스의 몸에 담요를 두르고 리본을 묶었다. 위스는 거대한 선물 꾸러미 같은 꼴이 됐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스스로에게 기가 막혔기 때문이다.

‘미친놈. 동정이라도 하나.’

누가 누굴 동정한단 말인가?

위스는 테오도어의 손으로 자기 형을 처단하게 만들 계획이었다.

별로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테오도어가 야심이라곤 없는 데다가 외로움도 타는 불쌍한 놈이라는 걸 알게 되기 전까지는.

그래서 자꾸 달라붙는 건가?

이름이라도 가족이라는 명칭이 붙은 위스미아에게 정을 붙였나.

자길 죽이려 드는 형에게 충성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역시 불쌍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위스는 인상을 썼다.

“비슷하긴 합니다만, 그게…….”

예센은 한숨을 쉬고 위스를 힐끗 쳐다봤다.

‘뭐냐.’

“대공 전하께서 나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기다리라고 해. 팔라틴 왕의 사절이라면 나도 만나 봐야지. 왕성에 오신 손님 아닌가.”

“예? 물론 그러시면 좋겠지만, 팔라틴의 사절이 그렇게 경우 없지는 않습니다. 아프신 분을 굳이 만나 뵙겠다고 소란을 피우지는…….”

예센이 어색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위스가 수상함을 느끼고 인상을 쓰는데, 밖에서 큰소리가 들렸다.

“서머는 사절 대접을 이렇게 하는가? 제레미아 폐하께서는 어디에 계시나. 팔라틴의 사절을 이리도 푸대접하는 걸 알고 계시는가? 위스미아 전하는 손님맞이를 안 하시려는 모양이군!”

위스는 리본을 풀었다. 담요가 발치로 떨어졌다.

그는 담요를 발로 밟고 명령했다.

“시종 불러.”

“예?”

“궁인들 들여보내라고. 옷 갈아입을 테니까.”

“사절은 제가 만나겠습니다. 무례함을 꾸짖을 테니 전하께서는 노여움을 푸십시오.”

테오도어가 위스의 어깨를 잡았다.

“웃기지 말고.”

“…….”

“저를 손님맞이도 할 줄 모르는 반편이로 만드실 작정이십니까? 저리도 대접을 원하는데 제가 나가야지요.”

테오도어는 한숨을 쉬었다.

⚜ ⚜ ⚜

팔라틴의 사절단을 이끌고 온 남자는 덩치가 크고 자신만만한 느낌의 귀족이었다.

“대공 전하. 결혼을 축하드립니다.”

“시저 남작.”

테오도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스는 조금 놀랐다. 다른 귀족을 상대할 때의 테오도어는 고압적이고 차가운 느낌이었다.

무례함을 자랑하던 시저 남작은 움찔했다. 그러나 곧 느물느물 웃으며 위스를 위아래로 훑었다.

“아! 이분이 위스미아 전하시군요. 듣던 대로 사랑스러운 분입니다.”

‘이 새끼가.’

위스는 남작과 눈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까딱했다.

테오도어와 같은 동작이었으나, 그는 비슷한 행동을 해도 상대를 자극하는 이상한 특색이 있었다.

그 때문에 노예 시절에는 개처럼 맞았고 이후에는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을 샀다.

한 마디만 해도 궁인들이 사색이 되는 데에는 위스도 별수 없었다. 그가 뭘 했다고 몇 대 맞은 사람처럼 군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기사들은 편했다. 한두 대 맞는 걸로 기가 죽지 않았던 것이다.

위스는 마법사 집단보다 기사들 속에서 편안함을 느꼈다. 본인의 정체성을 마법사로 생각하는 것과는 별개였다.

“뭐 소문에 따르면…… 크게 방황을 하셨던 듯하지만. 결국 좋은 땅에 정착하셨으니 축하할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대륙 제일의 기사를 무너뜨렸으니, 역시 아름다움은 무기인 듯합니다. 하하!”

그런데 시저 남작이 위스를 건드렸다. 위스미아의 외모를 칭찬하고 있으나 저게 과연 찬사인가?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툭툭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위스는 테오도어를 쳐다봤다.

“팔라틴의 예법은 어렵군요. 혹시 저분이 대공의 스승이십니까?”

“아닙니다.”

테오도어는 뭘 하나 보자는 듯 장단을 맞췄다.

“부친은 물론 아니겠고, 후원자입니까?”

“그럴 리가요.”

“숙부이십니까?”

“5대를 위로 올라가도 피가 섞이지 않았을 겁니다.”

시저 남작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까?”

“축하하러 온 객이 주인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평가하는 것이 팔라틴의 예의라면 이해해야겠지요. 하지만 저분이 대공까지 어린아이 어르듯 하고 있으니 듣는 저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위스가 테오도어의 소매를 꾹 잡아당기며 말했다.

“대공께서는 저런 모욕을 참아 넘기지 않는, 명예로운 기사이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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