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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37)화 (3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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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다음 날 다시 침실로 불려간 예센은 뭐라 말 얹기 힘든 광경을 보게 되었다.

‘왜 저러고 계시는 거지.’

상관 부부는 전날처럼 침대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위스미아 왕자가 상관의 어깨에 기대고 있었으니 전날보다 친밀한 자세였다. 거리상으로는 그랬다.

문제는 왕자의 표정이었다.

그는 온 세상의 불만을 끌어안은 듯했다. 팔짱을 끼고 입은 꾹 닫고 있었다. 저런 표정으로 기대 있을 거면 차라리 떨어져 있는 것이 낫지 않나 싶을 정도였다.

그 원인이 상관이라는 것도 명백했다.

예센이 보는 앞에서 꼴사납게 달라붙어 있던 어제와 달리 오늘은 둘 사이에 찬바람이 불었던 것이다.

“계속 말해.”

테오도어가 보고서를 쥔 채 말했다. 그러더니 그는 팔을 위로 들었다.

보고서가 허공에서 팔랑거렸다. 보고서를 넘기려던 왕자는 말없이 테오도어를 쳐다봤다. 둘의 팔 길이 차이가 있으니 왕자는 뻗어 봤자 닿지 않는다.

“…….”

‘숨이 막힌다.’

왕자가 몸을 기대고 있었던 건 자의가 아닌 모양이었다.

보고서를 읽기 위해 저러고 있었던 건가?

왕자가 손을 이불 속으로 숨기자, 테오도어는 보고서를 다시 아래로 내리고 친절하게 한 장 넘겨줬다.

예센은 왕자가 이를 악물었다고 확신했다.

“……보고하겠습니다. 위스미아 전하의 관대한 요청에도 응하지 않은 귀족들이 있습니다. 약간의 성의만 보이면 서머에 대한 충성심과 대공 전하에 대한 환영의 마음을 증명할 수 있음에도, 그조차 하지 않겠다고 뻗대는 것은 불충한 의도가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들을 어쩌면 좋을까요?”

예센이 대강 보기에도 서머의 자금 사정은 파멸적인 수준이었다.

여기에 대해 위스미아 왕자가 내놓은 대책은 ‘귀족들에게 돈을 걷자’는 것으로…….

명목은 ‘반역자가 아님을 증명하라’였다.

일부 귀족들이 팔라틴 왕에게 부역한 정황이 있지 않은가? 전쟁 중에 왕국을 배신했다면 반역이다.

한 명의 반역자가 발견됐다면, 두 명은 또 없겠는가?

다시 말해 반역자로 몰리기 싫다면 알아서 숙이고 들어오라는 건데, 물론 이런 짓을 평소에 했다간 왕자의 목이 성벽에 내걸렸을 터였다.

그러나 왕자는 아카젤 대공이라는 무패의 기사와 결혼한 직후였고, 대공은 이 나라 귀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게다가 대공은 바로 얼마 전 이 나라에서 습격당했다.

습격을 감행한 자는 역시 서머의 귀족이다. 엮고자 하면 얼마든 엮을 수 있었다.

귀족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주머니를 열었다.

‘이게 되네.’

예센은 이 호쾌한 조세 방식에 감명받았다.

어차피 세금을 거두면 원성을 산다.

백성 만 명에게 원한을 사는 것보다 귀족 한 명의 원한이 더 가볍지 않겠는가? 그 귀족에게 동원할 병력이 없다면 더욱 그렇다.

게다가 백성 만 명에게 거둘 세금보다 귀족 한 명을 털어 거둘 세금이 더 크다는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목숨보다 돈을 더 소중히 여기는 부류는 어디에나 있는 법이었다.

“가둬.”

“내가 만나 보지.”

왕자와 테오도어는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서로를 쳐다봤다.

먼저 입을 연 쪽은 테오도어였다.

“……틀림없이 불온한 의도가 있을 테니 제가 대화를 나눠 보겠습니다.”

“북쪽 탑으로 거처나 옮겨 주고 며칠 두죠. 만나 줄 필요 없습니다.”

“이미 부당한 취급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요. 더 원한을 키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돈 뺏으면서 그럼 원한을 안 사길 바랍니까?”

예센은 두 사람이 자신의 존재를 잊어버린 걸까 궁금했다.

테오도어가 머리를 쓸어 올렸다. 예센은 자신의 상관이 저렇게 성을 내는 모습을 오랜만에 봤다.

“원한에도 정도가 있지 않습니까. 지금 버티고 있는 자들은 전하께서 자신의 것을 강탈해간다 여길 겁니다. 전하를 폭군이라 여기고 앞으로 결코 마음 깊이 충성하지 않을 텐데요.”

“그러라고 하십시오.”

“전하.”

“대공이 그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뭐가 달라집니까?”

왕자가 성질을 냈다.

“일단 이 부당한 강탈이 전하가 아닌 제 짓이라고 여기지 않겠습니까?”

“…….”

“전하보다는 제가 더 대화 상대로 적합하기도 할 겁니다. 전하께서는 회유할 생각이 없으시지 않습니까.”

왕자가 눈을 치떴다.

“……저항 한번 없이 전쟁에서 항복한 놈들을 그럼 제가 예뻐해야 합니까?”

“그런 이유셨군요. 역시 제가 상대이겠습니다.”

살벌했다.

예센은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그러나 불똥이 엉뚱한 곳에 튀었다.

“네 주인은 본래가 저런 성품이냐? 남을 멋대로 휘두르지 않고는 직성이 안 풀리시는 모양이구나.”

“부인께서 하실 말씀이십니까?”

테오도어가 쓴웃음을 지었다.

“봐라. 사람을 가둬 놓고 아무 데도 손 못 대게 해 놓고는, 이제 일처리도 마음대로 하지 않느냐.”

“부인께서 영 내키지 않으시면 안 만나겠습니다.”

‘가둬?’

이 방에서 업무를 보는 게 두 사람의 취미가 아니라 실용적인 목적에서였단 말인가?

그러니까 테오도어가 위스미아 왕자를 방에서 못 나가게 해 놓고, 왕자가 정말 밖에 안 나가나 감시하기 위해 붙어 있는 거라는 소리였다.

예센은 놀라서 변명했다.

“전혀 아니십니다. 오히려 지금 모습이 제겐 생소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고 흘러가는 대로 살자는 식의 태평한 분이신데, 전하께는…… 그, 남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계시는 듯합니다. 아무래도 전하를 사랑하셔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왕자가 코웃음을 쳤다.

예센은 발끈해서 덧붙였다.

“정말입니다. 원래라면 이런 결혼을 하셨을 리도 없습니다. 대공 전하께서는 리엔델 폐하의 명령을 성심을 다해 따르시지만, 결혼하라는 명령만큼은 거부해 오셨으니까요.”

“아, 그래.”

“정말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이토록 빼어난 분이 지금껏 혼담이 없었겠습니까? 수도에서만 수많은 연서를 매일 쌓일 만큼 받았지만, 답장 한번 하신 적 없으시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그만해.”

테오도어가 얼굴을 찡그렸다.

왕자는 그를 무시했다.

“왜 그러십니까? 재미있게 듣고 있는데. 더 해 봐.”

“어…….”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예센은 그만 사라지고 싶었다.

아까까지 그의 존재조차 잊고 잘만 싸우시더니 왜 갑자기 그를 끌고 들어가는 건가. 슬프고 괴로웠다.

그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담요가 내려가 위스의 목덜미가 드러나 있었다. 도화지처럼 흰 피부가 하루 사이 울긋불긋해져 있다.

“…….”

테오도어가 담요를 끌어올려 자국을 덮어 버렸다. 그가 경고하듯 예센을 쳐다봤다.

예센은 기가 막혔는데, 그보다 어안이 벙벙한 심정이 컸다. 그는 그딴 자국을 보고 싶어서 본 게 아니었다!

누가 씹어 먹힌 꼴로 있으면 시선이 가는 게 사람 아니겠는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해 놓으신 거야…….’

저러니까 위스미아 왕자가 당연히 화를 내지!

사랑싸움은 그가 없는 데서 해 줬으면 했다.

그때 밖에서 궁인이 말했다.

“전하, 팔라틴에서 손님이 왔습니다. 만남을 요청하고 있는데요.”

“제가! 나가 보겠습니다.”

예센이 자원했다.

“그래.”

왕자의 허락이 떨어졌다.

예센은 화색이 되어 나가며 무심코 방 안을 돌아봤다.

‘정말인가.’

테오도어는 왕자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시선에 담긴 의미는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예센은 상관은 욕심이 없었다. 외모도 뛰어나고 인망도 있다. 능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리엔델 왕이 하고 있는 꼴을 그냥 놔두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테오도어가 무엇을 원해서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모습을 예센은 상상할 수 없었다.

왕자에게는 잘 안다는 듯 말했으나, 실은 예센도 놀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상관은 정말로 사랑에 빠진 모양이었다.

테오도어의 어깨에 기대 있는 왕자도 마찬가지였다.

무표정한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으나, 보고서를 툭 치며 무언가를 묻고 있는 입은 활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 입을 물끄러미 보던 테오도어가 입술을 가져다 붙였다.

‘으억…….’

예센은 재빨리 방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문제의 손님을 만났다.

⚜ ⚜ ⚜

위스는 자신이 또 기절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잠자리 중에 기절…….’

이게 말이 되는 단어 조합인가?

말할 수 없는 곳이 욱신거리고 몸은 아직도 녹진하게 늘어져 있었다. 허리가 세워지지 않아 남에게 기대지 않으면 앉아 있을 수조차 없었다.

‘괴물.’

위스는 테오도어를 쳐다봤다.

아니, 문제는 저놈이 아니라 이 몸의 심각한 체력이다.

근데 저놈도 문제 맞지 않나?

가장 심각한 건 페로몬에 절어 있는 몸이었다. 아직도 품 안에 안겨 있는 것 같다.

전날 무슨 짓을 했는지 광고하고 다니는 것 같아서, 수치심에 평정을 유지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테오도어의 부관이 베타라 다행이다.

이제 위스는 자신에게서 나는 페로몬을 감지할 수준이 됐다.

그는 배움이 빠른 편이었다.

덕분에 외출이 불가능해졌다. 이 꼴을 남들 앞에 내보일 수는 없게 되지 않았는가?

테오도어의 뜻대로 된 셈이다.

“전하께서는 숫자를 읽는 데 익숙하지 않으시군요.”

그런데 테오도어가 시비를 걸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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