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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35)화 (3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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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공방은 무사했다.

‘왜 멀쩡하냐.’

위스가 하루나 기절해 있었는데도 이 공방을 발견 못 했단 말인가? 마법사들이 무능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마법이 아직 현역 수준인 건지 모를 일이었다.

위스는 가장 먼저 인형부터 살폈다. 목이 부서지고 피부 겉면을 따라 무수한 실금이 가 있었다.

위스는 들고 있던 단검으로 인형의 이마를 찔러 봤다.

깡!

들어가지도 않았다.

‘어떻게 부쉈냐.’

그게 사람 힘인가? 맨손으로 인형을 조각내던 테오도어가 떠올라 위스는 오싹해졌다. 이 시대 기사들이 다 그 수준이라면 마법사들은 숨도 못 쉴 것이다.

“후.”

위스는 인형을 던져 놓고 공방을 살폈다. 테오도어가 부순 벽면은 마법 폭발이라도 맞은 듯 깊게 패어 있었다.

그 외에는 상한 곳이 없었다.

정말 이놈은 어떻게 들어왔단 말인가?

억지로 경계 마법을 부쉈다면 흔적이 남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공방의 출입구는 위스가 만들었을 때와 변화가 없었다.

마법사들은 선천적으로 탐구욕이 강했는데, 그건 마법계에서는 이단에 가까운 위스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궁금증은 자신의 필요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 조금 달랐다.

‘다른 놈을 통과시켜 보자.’

위스는 결정했다.

안 그래도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너 누구 좀 불러와라.”

“예에. 제가 심부름꾼입죠.”

공방 밖에 서 있던 호위가 투덜거리며 명령에 따랐다.

⚜ ⚜ ⚜

피넥 남작은 위스미아 왕자의 호출을 받았다.

‘긴장하지 말자…….’

그는 침을 삼켰다. 그러나 어떻게 긴장하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왕자의 기사가 ‘전하’라는 호칭을 꺼낼 때부터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는 애초에 왕실이나 수도 같은 곳이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연인이 ‘가서 투자자를 물어와라’ 하고 보내지 않았다면 영지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을 터였다.

“전하. 남작을 불러왔습니다.”

왕자의 기사가 남작에게 고갯짓했다.

“들어가시죠.”

“그, 그러지.”

남작은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벽에 갇힌 듯이…….

“……?”

“들어와.”

“예, 옛, 전하!”

‘뭐였지?’

남작은 긴장해서 방으로 들어갔다가 어리둥절해졌다.

‘응?’

왕자는 파티에서 봤을 때와 똑같이 무서울 정도의 미인이었다.

부드러운 금갈색 머리카락이 바람을 맞은 듯 흐트러져 있고, 어째서인지 몸에 담요를 둘둘 두르고 있다는 점이 그날과 달랐지만.

가장 다른 점은 왕자가 있는 장소였다.

예술을 잘 모르는 피넥 남작도 위스미아 왕자를 보고 ‘작품 같구나’ 감탄했었다. 파티장에 어설프게 놓여 있던 남작과 달리 왕자는 그곳이 잘 어울렸다.

저런 분이니 왕족이지 않겠는가?

왕자에 대해 여러 말이 있었으나, 그가 왕족이며 특별한 존재라는 데는 누구에게도 이견이 있을 수 없었다. ‘왕족이든 뭐든 목 위에 달린 건 다 비슷하겠지’ 생각하던 남작도 그에게 압도당했다.

사실 위스미아 왕자는 소문과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도대체 누가 저런 분을 한심하다고 소문냈단 말인가? 남작은 왕자의 말에 얼어붙어서 파티에 참석한 목적이었던 ‘투자자 찾기’도 못 하고 나오지 않았나…….

어쨌든 이곳은 왕자가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었다.

톱밥과 각종 공구가 놓인 작업대나 알 수 없는 유약이 담긴 선반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남작에겐 익숙한 환경이었다.

‘작업실이잖아?’

“앉지. 목 아픈데.”

“예, 옙.”

피넥 남작은 냉큼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등받이가 없는 것까지 완벽하게 작업실용 의자였다.

“한동안 손님맞이로 바빠 그대 얼굴을 볼 시간이 없었군.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나?”

“그…….”

남작은 합자 준비가 전혀 안 되어 가고 있다는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눈치가 빨라서는 아니었고, 왕자의 눈을 본 순간 간이 쪼그라들어서였다.

“……예.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그,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 기대가 많아. 호위는 이쪽에서 붙일 테니 그대는 장거리 이동 준비를 잘해 줬으면 좋겠군. 문제가 생기면 곤란해.”

“예, 옙. 사실 제가 하는 것은 아닌데, 잘 말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흠?”

왕자가 팔짱을 꼈다.

“준비를 그대가 하는 게 아니다? 동행 안 하나?”

“제, 제가 동행할까요? 하겠습니다!”

“아니. 원래 안 했냐고 묻고 있는 거야.”

“예, 예. 저는 원래 상단 일에는 관여를 안 하고 사업 구상에만 조금 쓸모가 있습니다.”

혼나는가 싶었던 남작은 왕자가 흥미를 보이는 눈치이자 조금 안도했다.

“상단 실무 책임자는 따로 있다는 소리군. 보통 그렇겠지. 하지만 겸손한데. 그대가 구상에만 쓸모 있을 리가 없지 않나?”

“아, 아닙니다. 정말로 전 상업에는 소질이 없어서요. 부모님을 닮았나 봅니다. 계산이 안 서는 게…….”

남작은 머리를 긁적였다.

자꾸 왕자가 그와 대화를 하려는 게 아무래도 상단 때문인 듯했다. 그런데 남작은 상단일은 거의 몰랐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아시면 분노하시지 않겠는가?

‘매도 빨리 맞는 게 낫지.’

“사업을 맡고 있는 사람은 제 애…… 애인입니다. 그게, 원래는 소꿉친구였는데, 제가 고백을 안 하니까 그 친구가 답답해서…….”

“연애사는 됐고.”

“아! 옙. 은광이 말라붙어 수입이 생길 곳이 요원하던 차에, 엘레노어가 의견을 냈습니다. 영지를 개방하자고요. 원래도 위치가 괜찮아 상인들이 교역로로 이용하고 싶어 했다는데, 부모님은 ‘영지에 도둑을 들일 생각이냐’고 막으셨거든요. 옛날에는 은광이 있었으니, 그 걱정도 일리가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만……. 은이 안 난지도 한참 되지 않았습니까?”

“애인을 잘 뒀군.”

“그렇지요?”

“그래서.”

남작은 헤벌쭉 웃다가 정신을 차렸다.

“아! 영지에 장인들을 들이고 영지 상단을 운용하자는 생각도 엘레노어가 했습니다. 제가 구상한 잡다한 물건들도 한번 팔아 보겠다고…….”

“잠깐만. 피넥 상단에서 팔던 참빗 같은 것들이 그대가 만든 거였나?”

“사용해 보셨습니까? 괜찮지요? 머리에 달라붙은 이만 제거해도 삶의 질이 올라가지 않나……. 헉, 전하께 이가 있다는 뜻은 아니었습니다!”

왕자는 분노한 눈치가 아니었다.

“정밀 부품이 들어간 꼭두각시 인형도?”

“엘레노어가 장난감치고는 너무 노역이 들어간다고 뭐라고 했는데…….”

“그대 장인이었군?”

“헤헤헤……. 자, 장인이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과분한 말씀을…….”

왕자는 듣고 있지 않았다. 흰 피부 때문에 더 불그스름하게 보이는 뺨을 손으로 문대며 눈을 빛내더니, 이내 남작에게 물었다.

“내 일 도와볼 생각 없나?”

“예? 지금도 전하와 합자 상단을…….”

“아니. 비서 말이야.”

“예?”

왕자가 뒤를 보며 턱짓했다.

‘헉.’

남작은 깜짝 놀랐다. 왕자의 존재감 때문에 알아채지 못했는데, 거기 사람이 구겨져 있었다.

목과 몸이 분리된 사람이었다.

‘헉!’

남작은 심장을 움켜쥐고 다시 살폈다. 사람이 아니라 사람 크기의 인형이었다!

“저런 것도 복제할 수 있나?”

“한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남작은 침을 삼키며 물었다. 장인의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물론이지. 조심해서 다뤄 주게. 저건 내게 소중한 물건이야. 그대가 어디 가서 저 물건을 봤다는 얘기도 안 할 거라고 믿네.”

왕자의 눈이 어쩐지 밝은 빛을 내는 것 같았다.

“예…… 옛, 전하. 당연한 말씀을요!”

남작은 약속했다. 그리고 인형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꿇고 인형을 살피던 그가 탄식했다.

“대단하군요! 이렇게나 정교한 인형을 만들 수 있다니……. 아, 이런 작품을 부수다니…….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무식한 놈이지. 힘만 세고 남의 말을 안 들어.”

“예, 정말입니다. 이런 작품을 가치를 몰라보다니……. 온전한 부품이 남아 있어야 복원이 쉬울 텐데요. 정확한 복제를 원하시는 거죠? 소중한 물건이라고 하셨으니. 거의 복원에 가까운…….”

“바로 맞혔네.”

“원본을 알지 못하면 시일이 많이 걸릴 겁니다. 정말 정교하고, 최신 기술이 집약된 인형이어서요. 쉽지 않을 겁니다. 이 인형은…… 이 구조대로라면, 사람처럼 움직일 수도 있겠는데요!”

“내가 원하는 게 바로 그거야.”

왕자가 웃으며 남작과 눈을 마주쳤다. 왕자의 눈이 정말 밝았다. 아름다운 금빛이었다.

남작은 멍하니 왕자를 쳐다봤다. 이 인형에 대한 비밀을 죽어도 지켜야겠다는 결심이 피어올랐다…….

순간 왕자가 기침했다.

“콜록.”

왕자의 손가락 사이로 핏덩어리가 툭 떨어졌다.

“……?”

쾅!

뒤이어 문이 부서질 듯 열리고 잘생긴 장신의 기사가 뛰어 들어왔다.

‘으억.’

표정이 흉흉한 아카젤 대공이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대공.”

“제가 전하께 단 하나를 부탁드렸을 텐데요. 그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으리라 믿습니다.”

“…….”

“그런데 전하께서 왜 이곳에 계신 겁니까?”

피넥 남작은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화난 대공은 자신이 삼 일 밤낮을 새우고 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엘레노어만큼이나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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