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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30)화 (30/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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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맛을 못 보셨습니까?”

“예, 뭐.”

“아쉽군요. 줄 서서 기다릴 정도로 기대하시던 디저트인데.”

테오도어가 갑자기 웃었다.

“……제가 서운해할까 봐 말씀해 주신 겁니까?”

“아닙니다.”

위스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러고 보니 왜 그가 변명을 하고 앉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일로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그 디저트가 뭐였습니까?”

“알아서 뭐 하시게요.”

“부인께서 염원하는 간식도 못 구해다 드리는 남편이 되긴 싫어서요.”

‘염원한 적 없다.’

“안 먹고 싶어졌습니다.”

“음……. 시간은 걸리겠지만 탐문을 좀 해 볼까요. 수상한 로브를 뒤집어쓴 미인이 줄 서 있던 가게가 어디냐고 물으면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플레 팬케이크입니다. 위에 생크림과 딸기가 얹어진.”

위스는 냉큼 말했다. 정말 탐문에 들어가면 곤란하다.

그런 걸 한정 판매 하던 카페가 있었으니 알리바이가 들통나진 않을 것이다. 거리에서 광고 전단을 봤던 기억이 났다.

테오도어는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예. 딸기 수플레 팬케이크요. 꼭 구해 오겠습니다.”

그가 위스의 눈을 들여다봤다.

위스는 어쩐지 체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시선을 피했다.

⚜ ⚜ ⚜

‘저놈 뭔가 착각하는 거 아닌가.’

-제겐 가족이 소중합니다.

위스는 찜찜해졌다. 테오도어가 그를 대하는 태도가 동맹의 그것을 넘었다는 느낌은 계속 받고 있었다.

‘부인’이라고 부르다 보니 그런 기분이 들었나 본데…….

사실 그들은 동맹 계약 관계가 아닌가. 위스 쪽에 신뢰도 문제가 있는.

이래서 사람이 말을 조심해야 한다.

위스는 혀를 차며 왕자궁에 만들어 놓은 공방으로 들어갔다.

평범한 서재를 개조한 공간이었다.

이곳엔 호위도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다. 비밀스럽게 해야 할 작업이 있다.

마법적인 조치를 취해, 외부에서는 공방의 존재를 감지할 수 없었다. 허락받지 못한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건 물론이었다.

공방의 연구대 위에는 마법사들이 찾아 헤매던 인형이 놓여 있었다.

테오도어가 목을 날린 탓에 인형은 머리와 몸체가 분리되어 있었다.

위스는 잘린 단면을 살폈다.

‘깔끔하군.’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져 있던 것처럼 매끄럽게 잘려 있었다.

위스는 머리와 몸을 붙잡고 그대로 붙였다. 그의 눈이 밝은 빛으로 빛났다.

목의 단면이 부드럽게 녹아내리더니 서로에게 달라붙었다. 인형은 한결 덜 처참한 꼴이 됐다.

‘모양 변형은 가능하다.’

마법 저항이 없다.

위스는 목을 좌우로 꺾었다. 그리고 신관에게 받아 온 진통제를 단번에 삼켰다.

‘하자.’

그는 인형에 마력을 주입했다. 그의 눈이 빛나고 머리카락이 부드럽게 떠올랐다. 바람이 없는 곳에서 바람이 생성되며, 주변에 물결을 그리듯 파동이 일었다.

인형은 반응하지 않았다.

위스의 주변 공기가 부르르 떨렸다. 그의 머리카락이 격렬한 바람을 맞은 듯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눈과 코와 입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위스는 눈앞이 붉어졌다는 것만 인식했다.

연구대가 피로 더러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 다음에 깨달았다.

인형에 주입한 마력이 멋대로 흩어지고 있었다. 작동시킬 회로를 찾지 못하고 각기 다른 방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열쇠가 없는 문을 여는 것과 같았다. 열쇠가 아닌 무엇을 열쇠구멍에 쑤셔 넣어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꼭 문을 열어야겠다면, 문을 부수는 수밖에 없다.

위스는 마력을 강제로 더 주입했다.

쾅!

그 소리가 어디에서 들렸는지 위스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신의 안에서 들려온 것 같다고도 느꼈다.

“……위스미아!”

멍하던 머리에 소리가 돌아왔다.

위스는 붉게 젖은 얼굴을 들어올렸다.

부서진 문으로 테오도어가 뛰어 들어왔다. 그가 인형을 발견했다.

“……이건.”

위스는 변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테오도어가 더 빨랐다.

그가 인형을 벽에 던져 버렸다.

“……!”

⚜ ⚜ ⚜

수정구가 빛을 내고 있었다.

“……안 받으셔도 될까요?”

예센이 물었다. 테오도어는 의자에 걸터앉은 채 몸을 뒤로 쭉 기댔다.

“받아야지.”

“언제요? 열흘 내내 저러고 있는데요.”

“지금.”

테오도어는 수정구 앞에 섰다. 손을 올리자 수정구의 빛이 사그라들며 젊고 예민한 남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리엔델 왕이다.

“너!”

“폐하. 건강한 모습을 뵙게 되어 기쁩니다.”

“누가 네 인사나 듣자고 연락한 줄 알아? 뭐 하는 짓이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수정구 너머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리엔델 왕의 모습이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애썼으나 빈정거리는 태도를 버리지 못했다.

“돌아오라는 명령서를 받지 못했나?”

“받았습니다.”

“군대를 이끌고 외지로 나간 기사가 항명하고 있다고 받아들여도 되는 건가?”

“폐하.”

테오도어는 무표정하게 리엔델 왕을 응시했다. 그리고 픽 웃었다.

“결혼식을 막 마친 신랑이 부인의 곁을 비우는 법이 어디에 있습니까?”

“……누가 네 부인 곁을 비우라더냐? 애초에 결혼식을 왜 서머에서 올렸지? 신의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팔라틴에서 올리는 것이 옳았다! 네 그릇된 판단으로 귀족원에 균열을 일으켜 놓고 귀환을 거부해?”

‘치라 공작이 무어라 했군.’

테오도어는 내심 한숨을 쉬었다.

리엔델 왕은 테오도어가 자신의 명령을 무시한 모양새가 되는 것도, 귀족원의 반을 제 편에 세울 정도로 영향력을 갖는 것도 견디기 힘든 것이다.

“제가 정말 돌아가길 원하십니까?”

“너는 눈이 멀었느냐, 귀가 막혔느냐? 네게 돌아오라 수십 번을 말했다!”

리엔델은 한번 명령을 내렸을 뿐이었으나 쓸데없이 과장했다.

“제가 국경 너머에 머물길 원하시는 줄 알았는데요. 제가 있어야 국방이 안심된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테오도어를 늘 외지로 돌렸던 것을 언급하자, 리엔델은 입을 다물었다.

오래가진 못했다.

“……결혼한 동생을 내가 보아야지.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느냐? 너와 결혼한 서머의 왕자가 어떤 자인지도 궁금하구나. 듣자하니 상당한 추문을 일으킨 인물이라던데, 충직하고 고지식한 네가 감당할 수 있겠더냐?”

듣고 있던 예센이 발끈했다. 위스미아 왕자와의 결혼을 종용한 건 리엔델 왕이 아니던가?

그래 놓고 모르는 척 왕자를 모욕하고 있다. ‘네 부인이 다른 남자와 도망치려 했다던데 네 꼴이 우습게 되었구나.’ 하고 대놓고 비웃는 게 아닌가.

테오도어는 화내지 않았다.

“제 부인은 고결하고 지적인 분입니다. 세간의 소문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폐하께서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폐하의 곁에 남의 근거 없는 소문을 옮기는 자들이 많은 듯하여 걱정이 됩니다.”

“허? 그래, 네가 그리도 자랑하니 내가 꼭 너의 부인을 보아야겠구나. 지혜로운 사람이라니 내가 품고 있는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모르겠어.”

“제 부인의 영민함이야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부인께서는 몸이 약하십니다. 긴 여독을 견디지 못하시니, 몸이 건강해지면 생각해 보겠습니다.”

먼 타국 왕자의 건강 상태가 좋은지 나쁜지 리엔델 왕이 어떻게 확인하겠는가? 테오도어가 내키지 않으면 무한정 연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리엔델 왕의 눈빛이 일순간 잔인한 빛으로 번뜩였다.

“……마탑의 마법사가 머물고 있다지?”

본론이 나왔다.

테오도어는 리엔델 왕이 수정구까지 동원해 애타게 연락을 취하려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왕은 마탑을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의 협조를 받고 싶어 했다. 마탑에 대량의 ‘연구 기금’을 바쳐 얻을 수 있는 호의 이상으로, 무언가 증표를 얻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팔라틴의 왕으로서 정통성이 있다는 증표를. 그가 뛰어난 군주이며, 자격이 있다는 증명을 받고 싶어 했다.

“예. 마탑에서 연구하던 마법 물품을 누군가 훔쳐 갔다더군요. 회수하러 오셨습니다.”

“뭘 회수하는데 시간이 그리도 오래 걸린단 말이냐?”

리엔델 왕이 보낸 골렘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할 순 없었다.

“제가 마법에 무지해 무엇을 찾으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테오도어는 늘 그랬듯 리엔델 왕의 허물을 덮었다.

왕은 얼굴을 쓸었다. 그의 눈이 붉었다.

“……세간에 도는 풍문을 아느냐?”

“무슨 풍문을 말씀하십니까?”

“네가 마탑의 마법사들을 부린다더구나.”

“그런 말도 안 되는…….”

테오도어는 헛웃음을 지었다.

결국 돌아서 이 자리다.

-세간에 떠도는 말을 알아? 다들 네가 이 자리에 올랐어야 했다고 생각해.

젊은 리엔델 왕이 울면서 하던 말이 떠올랐다.

테오도어는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무엇이든 해서 충성을 증명하겠다고 했다.

그 자리는 리엔델의 것이며, 자신은 결코 넘보지 않을 거라고.

“네가 위스 대왕의 정통성을 잇는 자이기 때문에 마법사들이 네게 호의를 보인다고 말해. 너는 위스 대왕이 정복한 땅을 다시 정복하고 그들의 충성을 얻어 내지 않았느냐? 네가 대륙 제일의 기사다. 그런 네게 마법사들이 모여들다니 공교롭지 않으냐?”

리엔델 왕은 흥분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더니, 이내 차분해졌다.

“돌아와. 명령이다.”

수정구가 빛을 잃었다.

테오도어는 한숨을 내쉬었다. 리엔델과의 대화는 피로하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예센이 물었다. 테오도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하를 뵈어야겠어.”

리엔델 왕에 대해 경고를 해 두어야 할 것이다. 왕은 그가 원하는 대로 일이 관철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다.

사실 그건 핑계였고 위스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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