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위스 메리드 트러블 (29)화 (29/70)

16673017770868.jpg

#29

“하하. 참 사이가 좋으시군요.”

“저도 결혼을 하면 두 분처럼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싶습니다.”

마법사들이 묻지도 않은 인생 계획을 털어놓았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들어와서 진수성찬을 맛본 놈들은 주위 상황에 관대해졌다.

테오도어가 위스의 손을 잡으며 대답했다.

“화목한 가정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랑하는 부인 덕에 하루하루가 두근거리고 매일이 새롭습니다. 항상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 없는 분이어서요. 제가 이런 사람이라곤 생각하지 않았는데, 매일 새로운 저를 깨닫게 되더군요.”

‘이제껏 남을 의심하며 살아오지 않았는데, 매일 감시하고 경계하려니 하루하루가 긴장된단 소린가.’

말뜻은 위스만 알아들었다. 그가 어디 다녀왔는지 궁금하단 소리다.

마법사들이 맞장구 쳤다.

“사랑은 마법 같은 거라고 하지 않습니까? 당연한 일인 줄 압니다.”

“저희도 연구를 하면 할수록 새로운 저를 알게 된답니다. 미지의 마법은 또 얼마나 매혹적이고 신비에 싸여 있는지 모릅니다.”

“그 점이 매력인 것이지요. 더 알아 가고 싶어지는 것이…….”

“저희는 공통점이 많군요.”

테오도어가 부드럽게 대꾸했다.

졸지에 위스는 신비에 싸인 매혹적인 인간이 됐다.

“…….”

어쨌든 식사 분위기는 아주 좋아졌다.

테오도어는 사교에도 재주가 있었다. 위스에겐 없는 재주였다.

원래 이런 자리는 위스의 부관이 수습했는데, 그 부관은 말하지 않아도 위스가 원하는 방향으로 분위기를 끌어갈 줄 알았다.

‘……닮았나.’

위스는 궁인들에게 눈짓했다. 술을 더 따르라는 신호였다.

궁인들의 마법사들의 빈 잔을 채웠다.

“으음, 이렇게나 마셔도 될지…….”

“저희도 일을 해야 하는데요.”

입으로는 사양하면서도 마법사들은 과실주를 홀짝거렸다.

‘취했군.’

과일이 들어가 단맛을 내는 술은 서머가 자랑하는 독주였다. 달다고 경계 없이 마시다보면 취하는 건 순식간이다.

“두 분은 첫 만남에 서로에게 반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역시 사랑의 힘이었을까요? 골렘의 앞을 막아서고 그걸 부수기까지 하다니.”

취한 마법사가 순진하게 물었다.

위스는 사랑이 무슨 마력 증폭 물질도 아니고 그런 일이 가능하겠냐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다.

저 헛소문은 또 어디서 들었단 말인가? 마법사들 귀에 들어갔을 정도면 온 수도에 퍼졌다는 소리다.

“골렘이 그렇게나 튼튼합니까?”

“그러면요. 강철보다 단단한 것을요. 그만한 크기의 바위에 검을 부딪히면 검 쪽이 상하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정말 검으로 부순 겁니까? 그게 가능하다니.”

“그보다 무슨 수로 인형을 부순 건지가 정말 의문인데…….”

마법사들은 멋대로 떠들다가 깜짝 놀랐다. 자기 말에 자기가 놀란 모양새였다.

“아! 정말, 그 인형은 흉악하던데요. 하지만 대공께선 저를 보호하시려고 용감하게 뛰어드셨답니다. 인형을 단칼에 베어 버리셨죠.”

위스는 그날을 떠올리는 것처럼 가슴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법사들이 침을 삼켰다.

“……인형을 단칼에.”

“예. 단번에 이렇게.”

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테오도어를 쳐다봤다.

‘아무 말 하지 마라.’

자세한 정황이 나오면 곤란했다. 골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기사와 달리 마법사들은 위화감을 눈치챌지도 모른다.

마법사들은 긴장한 채 위스와 테오도어를 번갈아 보더니, 조심스레 물었다.

“……그 인형을 혹시 어디에 옮기셨습니까?”

“옮기다니요?”

마법사들은 저들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인형에 대해 언급해도 될까? 인형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정보만 주는 게 아닌가?’

위스는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 있을 듯했다.

정보를 숨겨 봤자 고생하는 기간만 늘겠다고 판단을 내렸는지, 책임자가 나서서 말했다.

“사실 전투가 일어났다고 말씀하신 자리를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인형이 없었습니다. 곤란한 일입니다. 저희는 탑주님께 이 골렘 사태에 연관된 모든 걸 회수해 오라는 명령을 받아서요.”

책임자는 ‘인형이 중요한 게 아니라 모든 걸 다 회수하는 게 중요하다.’고 밑밥을 깔았다.

‘인형을 반드시 회수해 오라고 명령받았군.’

그 인형은 이 시대에도 최신 마법 기술이 집약된 물건이 틀림없었다.

위스는 흥분을 억눌렀다.

“자리에 없었다고요? 그럼 큰일 난 거 아닙니까?”

“예. 큰일이지요.”

첵임자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인형이 수십 명의 골렘을 조종하는 모습을 봤는데, 꿈에 다시 나올까 두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인형이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겁니까? 생명체도 아닌데,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판단하고 사고까지 하다니. 인간에 가깝지 않습니까? 마탑에서는 인간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위스는 모르는 척 인형을 칭찬했다. 그러다보니 진심이 섞였다.

사실 흥분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인형술이 인간 마법사를 뛰어넘을 정도로 발전했다. 이게 흥분을 억누를 수 있는 일이던가?

위스는 인형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수백 가지도 넘게 떠올릴 수 있었다.

‘확실히 마법사들을 모아 놓고 돈 부어 가며 연구시키니 성과가 나오는군.’

마탑의 존재 목적이 피부로 와닿는다.

위스가 조금만 더 오래 살았다면 그의 왕성 마법사들에게 돈 부어 가며 실전 교육시킨 성과도 톡톡히 봤을 텐데.

그러나 위스는 죽었고 사무엘이 성과만 깔끔하게 먹었다. 저 마탑의 근간을 이룬 자들이 죄다 위스 휘하의 궁정 마법사가 아니었던가.

‘후.’

위스가 열받든 말든 마법사들은 기뻐했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아시는군요!”

“원로들 사이에서도 말이 많았던 연구인데, 그도 그럴 게 저 인형이라는 걸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드는지 상상도 못 하실 겁니다!”

“회수를 못 해 가면 저희 목이 남아나지 않을 텐데…….”

“오오…….”

호위도 괜히 감탄했다.

‘이 새끼는 내가 연기할 때마다 옆에서 도발하는데.’

위스는 호위를 걷어차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대단한 인형이 사라졌다는 거 아닙니까? 누가 발견해서 또 골렘을 조종하면 어떻게 합니까?”

위스가 걱정하는 척하자 책임자는 열심히 안심시켰다.

“하하. 그런 일은 불가능합니다. 인형은 술사의 마력 패턴에 반응해 움직이니까요.”

“……?”

위스는 멈칫했다.

‘지금 자기들이 범인이라고 고백하는 건가?’

술사의 마력 패턴에 반응한다는 건, 인형을 만든 주인만 그 인형을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법사의 마력 패턴은 고유하기 때문이다.

저놈은 습격의 배후가 마탑이라고 고백한 셈이다.

그런데 테오도어를 비롯해 주변 누구도 동요하는 사람이 없었다.

위스는 이놈들이 마력 패턴의 법칙조차 모를 정도로 마법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마법사들은 뒤늦게 자기들이 한 말을 자각하고 얼굴이 파래졌다.

위스는 그들을 추궁하지 않았다. 마탑을 당장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다.

‘원하던 정보는 얻었고.’

위스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니까…… 누가 몰래 인형을 가져갔대도 위험하지 않다는 거군요.”

“예에. 대충 그렇습니다.”

“다행이군요. 그 무서운 습격을 두 번 겪지 않아도 된다니.”

위스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확신한 책임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만일 그런 일이 일어난대도 전하께는 대공이 계시지 않습니까? 전하를 보호해 주실 텐데요.”

‘그 반대다.’

위스는 그렇게 생각했으나 고개만 끄덕였다.

시킨 대로 입 다물고 있던 테오도어가 위스의 뺨에 입을 맞췄다.

“걱정되신다면,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전하를 지키겠습니다.”

“…….”

위스는 멈칫하고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후손이긴 후손이군.’

-곁에서 떨어지지 않고 폐하를 수호하겠습니다.

위스의 부관 테오는 거짓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말이 거짓이 되었을 때, 위스는 자신의 절반이 죽은 기분이었다.

절대 거짓말은 안 할 것 같은 얼굴로 입 발린 말을 잘하는 게 둘이 꼭 닮았다.

위스는 기분이 가라앉았다.

마법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위스도 궁으로 돌아갔다.

테오도어는 위스를 바래다주러 일어났다.

“매번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귀찮으실 텐데요.”

“귀찮지 않습니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입니다.”

“제가 어디 다른 곳으로 샐까 봐 이러십니까?”

위스는 날카롭게 반응했다.

‘감시하고 싶으면 차라리 사람을 붙이든가.’

이 새끼가 쫓아다니니 쓸데없는 감상이 들지 않는가.

어차피 쓸모없는 호위도 하나 달고 다니는데, 짐이 하나 더 는다고 곤란할 것도 없었다.

테오도어가 한숨을 쉬었다.

“전하께서 어디를 가시는지는 전하의 자유입니다.”

“그 자유 대공께서 침해하고 계신데요.”

“그곳까지 안전하게 바래다 드리고 싶은 마음은 제 자유지요. 지금은 마법사들이 돌아다니고 있지 않습니까.”

위스는 얼굴을 찡그렸다.

‘또 저러는군.’

마치 위스를 걱정해서 저런다는 듯 구는데, 그 말이 그럴 듯하게 들려서 문제였다.

‘저 얼굴 때문인가.’

아니다.

테오도어의 분위기가 문제였다.

위스는 저런 성실한 기사에게 약했다. 사실 테오도어가 그를 쫓아다니는 것도 본인의 성실한 성격 때문이 아닌가.

위스는 하는 수 없이 앞장섰다.

“디저트를 사 오려고 했는데 사실 못 구했습니다. 제 앞에서 떨어져서요.”

그는 문득 생각나서 변명했다. 놀러 나갔다가 혼자만 뭐 먹고 온 놈이 되긴 그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