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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27)화 (2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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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열받는 것과 별개로 기분이 묘해지긴 했다.

‘그놈이 성공하긴 했군.’

사무엘은 특이한 인간이었는데, 처음 만났을 때는 지독하게 말이 없었다.

알고 보니 그의 예언을 두려워한 마을 사람들이 어린 사무엘의 혀를 잘라 버려서였다.

사무엘은 산으로 도망친 뒤 혀를 재생시켰으나, 의식적으로 말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몇 년이었고, 위스를 만나고서부터는 말이 점점 많아져서 나중에는 위스가 인상을 써도 조잘거릴 지경이 됐다.

위스의 죽음을 예언한 것도 사무엘이었다.

-이 병은 안 나아요. 폐하께서는 돌아가실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사무엘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제가 페라 원정에 나서지 마시라고 경고했잖아요.

위스는 합법적으로 ‘내가 그랬잖아’ 같은 소리를 할 수 있는 예언자들이 짜증 난다고 생각했다.

-가면 죽는다고 얘기했어야지.

-그랬어요. 불행이 닥친다고 말씀드렸다고요.

-넌 맨날 그러잖아.

위스가 성질을 내자 사무엘은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봤다.

-전 매일 사실만 말해요. 폐하께서 안 믿으시잖아요.

그리고 그는 서럽다는 듯 울었는데, 위스는 머리만 아팠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사무엘이 예언을 남발하지만 않았다면 위스도 믿었을 것이다. 적어도 페라 원정은 다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무엘이 평소에 하는 예언이라는 게 ‘지금 먹고 계신 사탕을 제 입에 넣어 주지 않으시면 불행이 닥칠 거예요. 10년…… 20년…… 30년…… 하여간 먼 훗날에…….’ 따위니 진지하게 듣고 싶어도 들을 수가 없었다.

‘생각해 보니 그 소리 듣고 10년도 못 살았잖아.’

10년 뒤의 불행 같은 소리 하고 있다.

위스가 죽기 전까지도 개뻥을 쳤던 사무엘은, 어쨌든 충성스러운 마법사였다.

위스 시대에 마법사는 박해받았다. 발견되면 바로 화형이었다. 마법이 ‘악마의 힘’이라는 이유에서였다.

위스가 노예 해방 물결을 일으키며 영지를 세 개째 점령했을 때, 위스가 마법사라는 사실은 유명해져 있었다.

소문 속 위스의 이름 앞에 붙는 말은 ‘사악한 악마 종자’ 따위였다.

숨어 살던 마법사들은 소문을 듣고 사악한 악마 종자인 위스를 찾아왔다. 그들이 있을 곳을 만들어 주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아, 이렇게 어린 분일 줄은…….

그러나 사무엘이 나서지 않았다면 위스는 마법사들의 조력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위스는 마법사들에게 신뢰를 주기에는 너무 어렸다.

마법사들과 위스가 대치하고 있는데, 마법사 무리에서 어린 사무엘이 툭 튀어나왔다.

그는 냉큼 위스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는 당신에게 목숨을 걸었어요.

마법사들은 인간의 폭력과 살의에서 도망쳐, 언제든 산짐승에게 죽을 수 있는 산으로 들어가 살던 자들이었다.

사무엘은 그들을 보호하고 싶어 했다.

-저희를 지켜 주세요. 그러면, 저희도 전하를 지켜 드릴게요. 저희의 삶이 다할 때까지. 약속드려요.

‘그러더니 별 이상한 걸 만들어 놓고 죽었군.’

마법사를 발견했다 하면 마탑으로 데려가서 안 내보내는 게 저다웠다.

사무엘은 인간 불신이 뼈에 사무친 종자였다. 그걸 보호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위스가 살아 있을 땐 그 수준은 아니었는데, 다시 폐쇄적이 되었던 모양이다.

‘그놈이 만든 조직이라 이거지.’

그렇다면 외부에 파견 나온 마법사들의 성격을 짐작할 만했다.

위스는 결정했다.

‘곡물 창고 좀 채워 볼까.’

⚜ ⚜ ⚜

“전하, 마탑에서 온 분들이 폐궁을 조사해 봐야겠다고 하시는데…….”

“들여보내.”

“그분들이 연무장 지하 창고를 살펴보시겠다는데요. 몇 년이나 안 썼다고 해도…….”

“열어 줘.”

일주일간 마법사들은 안 쑤시는 데 없이 돌아다녔다. 왕성은 물론이고 수도 곳곳을 누비는 듯했다. 여차하면 왕성 보물 창고도 열어 달라고 할 기세였다.

위스는 관대하게 허락하고 기다렸다. 마법사들이 지칠 때까지.

“왕성에서 좀 더 체류하고 싶습니다.”

마법사들의 책임자가 와서 요청했다.

위스는 놀란 척했다.

“더요? 얼마나 더 말입니까?”

마법사들을 서로를 돌아보더니 대답했다.

“장기 체류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신경 쓰이지 않게 처신할 테니, 저희가 하는 일을 막지 않고 두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못 찾았군.’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으나, 위스는 그들이 난처해하는 기색을 읽었다.

골렘을 찾으러 왔다면 더 머물 필요가 없다. 골렘처럼 거대한 물건이 숨긴다고 숨겨질 리도 없었다. 그걸 굳이 옮기고 싶어 하는 사람도 없어서, 골렘들은 쓰러졌던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사라진 건 인형뿐이다.

위스는 골렘 술사 인형을 빼돌려 숨겨 두었다. 마법사들이 회수하러 올 걸 염두에 둔 행동은 아니었고, 연구를 좀 해 볼 생각에서였다.

마법적인 조치를 취해 뒀으니 마법사들이 우연히라도 찾을 확률은 없을 것이다.

위스가 자신의 실력을 겸손하게 평가해도, 평범한 마법사들이 범접할 수준은 아니었다.

“곤란한데요.”

“예?”

우리한테 곤란하다고 말한 거냐는 눈으로 책임자가 쳐다봤다.

위스는 모르는 척 말했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예?”

테오도어가 위스의 어깨를 잡았다. 마법사의 위험성을 다시 경고하기 위해서일 터였다.

위스는 까치발을 들어 그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테오도어가 고개를 낮췄다.

“뭘 하는 건지 모르겠으면 입 닫고 보기나 해.”

“…….”

테오도어는 오묘한 표정으로 떨어졌다.

위스는 입술을 깨물며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말씀드리기 부끄럽지만…… 서머는 가난합니다. 최근 큰일을 겪어, 농사를 제대로 짓지도 못한 상황입니다. 거리를 나서면 굶주리는 백성들이 구걸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처지가 비참하고 마음이 아픕니다. 마법사님들을 대접하느라 그간 말씀드리지 못했지만, 사실 저희는 겨울을 제대로 나지도 못할 지경입니다.”

길게 말했으나, ‘눈치 없는 놈들이 식량을 축내고 있어서 처지가 더 힘들다’는 말이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겁니까? 저희가 숙박비라도 낼까요? 여관처럼?”

책임자가 성가시다는 듯 말했다.

‘걸려들었다.’

“좋네요.”

“……예?”

“흔쾌히 도와주신다니 기쁩니다. 이 겨울을 어찌 나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훌륭하신 마법사님들이 저희를 살려 주신다니 이런 복이 있겠습니까? 들으셨지요?”

위스는 테오도어를 끌어들였다.

“대공께서는 안 될 거라고 하셨지만, 마법사님들은 이리도 다정하시지 않습니까? 저는 마법사님들을 믿었습니다. 저희의 처지를 알면 틀림없이 도움을 주실 거라고요. 마탑의 마법사님들인걸요.”

“저도 마법사님들이 훌륭하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아닙니다. 공사가 다망하셔서 저희를 도울 시간을 내지 못하실 거라 생각했습니다……. 제가 잘못 생각했군요, 부인.”

테오도어가 맞장구 쳤다.

위스가 나무랐다.

“마법사님들은 뭐든 하실 수 있는 분들인걸요. 마법은 축복 같은 힘이잖습니까? 그렇지요, 마법사님?”

“예? 마법이 대단한 힘이기는 합니다.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지요.”

책임자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약간 기분 좋은 기색이 표정에 섞였다.

위스는 신난다는 듯 테오도어의 옷자락을 쥐었다.

“보세요. 마법사님들이 논밭을 갈아 주실 겁니다!”

“……?”

“아니, 그런 일을 한다고는 한 마디도 한 적…….”

“아……. 어려우시군요.”

위스가 한숨을 쉬었다.

“마법사님들은 모든 일을 하실 수 있는 줄 알았습니다. 농부들이 일 년 내내 볕에서 일해야만 얻을 수 있는 수확을, 마법사님들께 며칠 만에 뚝딱 얻어 내 달라고 하는 게 염치없는 일이었겠죠. 그런 일을 해내는 게 가능할 리 없는데.”

“……제가 언제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까?”

책임자가 발끈했다.

“그런 쉬운 일을 우리에게 가져온 게 어이가 없다는 겁니다.”

“어느 밭을 말하는 겁니까? 그런데 지금이 수확 시기인가?”

“허, 참, 우리를 뭘로 보고…….”

마법사들이 퍼드덕거렸다.

‘자존심 상할 줄 알았다.’

사무엘은 마법사들을 모아 두고 보호했다. 위스 밑에서도, 그가 가장 열의 있게 한 일은 다른 마법사를 찾아 위스의 밑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그런 다음 그는 마법사들의 교육을 도맡아 했는데, 위스는 그의 교육 방식을 보고 어처구니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사무엘이 제자를 대하는 방식은 이런 식이었다.

-천재적이군요. 완벽합니다.

-이렇게 해 볼까요?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주일 만에 성공해 냈군요! 이런 뛰어난 학생을 제가 가르쳐도 되는 걸까요?

깃털 하나 띄우는 데 일주일 걸린 놈도 칭찬하고 앉았는데, 마법사들의 자아가 비대해지다 못해 터지는 게 당연했다.

마법사들은 대개 사회에서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사무엘은 밖에서 학대받던 마법사들이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어차피 전하께서 날뛰실 거니까 저는 칭찬을 해 줘야죠.

그가 주장했다.

위스는 알아서 하라고 놔뒀다…….

그 때문에 위스 휘하의 마법 병단 인간들은 죄다 사무엘의 추종자였다.

‘그놈들이 죄다 몰려가서 마탑을 세웠다는 거잖아.’

그 제자들 성격이야 짐작을 벗어나지 않았다.

위스가 작황을 설명했다.

“수확 시기는 지났고 작물 다 썩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보고 뭘 어쩌라는 겁니까?”

“아, 썩은 작물은 못 살리시는군요…….”

위스가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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