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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25)화 (2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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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테오도어는 그의 눈을 들여다보다 말했다.

“이런 일을 하고 싶으셨던 겁니까? 그런데도 하지 못했던 건, 그대가 오메가이기 때문이었습니까?”

‘이 새끼가 무슨 오해를 하는 거지.’

위스미아가 아무것도 못한 건 그의 무능 탓이었다.

그러나 입을 열진 않았다. 동정을 사 두는 편이 협력을 얻기엔 편할 것이다.

과연 테오도어는 말했다.

“이제 제가 돕겠습니다. ……사실 제 힘이 필요한 분 같지는 않지만, 핑계로는 쓸 만하지 않겠습니까?”

본인이 지닌 가치에 비해 너무 겸손한 말이다. 거의 비하라고 봐도 좋았다.

‘얜 뭐가 문제일까?’

위스는 문득 궁금해졌다. 뭘 먹고 자라면 인간이 저토록 겸손하고 비공격적인 성품을 가지게 되는지 모르겠다.

고민하느라 위스는 자신이 어린애처럼 안긴 채 도닥임을 받고 있다는 사실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위스가 눈치채지 못한다고 그 꼴이 남들 눈에 안 뜨일 리가 없었다.

‘우리가 뭘 보고 있는 거지?’

귀족들이 힐끔거렸다.

두렵기 짝이 없던 위스미아 왕자와 아카젤 대공이 파티장 구석에서 염병을 떨고 있었다. 저럴 거면 아예 방을 잡지 왜 파티장에 남아 있단 말인가?

왕궁에 도착했을 때 소문을 듣기는 했다. 아카젤 대공이 왕자에게 첫눈에 반했다던가 뭐라던가 하는 소문이었다.

저 꼴을 보니 근거 없는 말이 아니었다.

정말 둘이 사랑에 빠졌단 말인가?

위스미아 왕자도 영 부끄러워하며 새침한 태도를 보이는 게, 싫은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그럼 모어 백작은?’

연인을 되찾겠다고 습격까지 감행한 그 불쌍한 기사는 어떻게 되는 걸까?

귀족들은 갑자기 흥미진진해졌다.

⚜ ⚜ ⚜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은 조사에 성실히 응했다. 충성을 증명하기 위해 아낌없이 선물을 내놓은 건 물론이었다.

귀족들을 뜯어먹는 데 성공한 위스는 북쪽 탑에 올랐다.

정리해야 할 일이 하나 더 있다.

“이곳입니다, 전하.”

호위가 안내했다. 300년 전에도 이 자리에 서 있던 탑은 세월을 맞아 상당한 외양 변화를 보였다.

‘흉흉해졌군.’

제레미를 이 모양이 된 탑에 가뒀다면 아마 하루도 못 버티고 실신했을 텐데. 위스는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다.

“……전하? 위스미아 전하! 저를 찾아와 주신 겁니까? 이런 곳까지?”

문을 따고 들어가자 모어 백작이 일어났다.

귀족용 감옥은 침대 하나에 창 하나가 달려 있는 독방이었다. 책상에 의자도 갖춰 있어서, 위스가 보기엔 감옥 같지도 않았다.

“너희는 나가 있어.”

“괜찮으시겠습니까?”

탑을 지키는 병사들이 명령을 받고 나갔다. 위스는 호위만 안에 남겨 두고 문을 닫았다.

모어 백작은 수염도 못 깎은 초췌한 얼굴이었다. 그는 위스에게 다가오려다가, 자신의 꼴을 깨닫고 주춤했다.

위스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왕성에 남아 있던 팔라틴의 끄나풀이 색출됐다. 아직도 팔라틴 왕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느냐?”

모어 백작의 눈이 커졌다.

“……아닙니다! 전하께서도 저를 오해하고 계십니까? 팔라틴 왕이 전하를 구하도록 돕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전 그자의 말을 듣지도 않았을 겁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그럼 아는 대로 말해.”

“무엇을 말입니까? 그렇게 했습니다. 전하께서 애정 어린 충고를 해 주셔서…… 팔라틴군에게 아는 대로 다 털어놓았습니다.”

“아니. 말 안 한 게 있을 텐데.”

위스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괸 거만한 자세로 모어 백작을 내려다봤다.

“마법사는 어디로 갔느냐?”

“마법사요?”

“골렘을 조종한 마법사가 있었을 거 아니야. 만났을 텐데?”

골렘을 조종하던 인형은 마법의 정수였다. 인형에 마력을 불어넣은 마법사가 존재했을 것이다.

“저는…… 그런 사람은 보지 못했습니다.”

모어 백작은 눈을 동그래져서 말했다. 거짓말하는 기색은 없었다.

“아니. 넌 만났어. 골렘을 작동시키는 법을 누가 알려줬느냐?”

백작은 멋대로 습격 시기를 앞당겼다. 그 말은 백작이 골렘의 시동 구호를 알았다는 뜻이다.

백작의 눈이 더 커졌다.

“팔라틴 왕입니다.”

“뭐?”

“팔라틴 왕이 마법사였다니!”

백작이 깜짝 놀랐다. 반면 위스는 열이 식었다.

‘그럴 리가 있냐.’

상대는 남의 왕성에 골렘을 수십 기 가져다 놓을 정도의 수완가다.

그 마법 능력도 특출했다.

평범한 마법사 한 명이 골렘 한 두 기를 다룬다. 그런데 현장에 있던 인형은 골렘 수십 기를 혼자 다뤘다.

그런 인형을 만든 마법사가 범상할 리 없다.

‘그런 놈이 동생 하나 못 죽이고 쩔쩔맬 리 있나.’

팔라틴 왕은 아니다.

그러나 팔라틴 왕의 휘하에 대단한 마법사가 있긴 한 모양이었다. 왕의 밑에 들어가서 일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다. 테오도어는 마법 습격이 낯선 듯했으니까.

‘포섭해 볼까.’

위스가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손이 잡혔다.

“그래서 저를 찾아와 주신 겁니까, 전하? 마법사를 적으로 돌린 제가 걱정되어…….”

모어 백작이 눈시울을 붉혔다.

“마음은 감사하지만…… 이곳에 오시면 안 됩니다, 전하. 아카젤 대공이 알게 되면 전하께서도 고통받으실 겁니다. 그 악독한 대공은 제가 이곳에서 죽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

“그자가 바라는 대로 모든 일을 털어놓고, 굴욕을 삼키며 ‘팔라틴 왕에게 속아 어리석은 일을 저질렀다’고 용서를 구했음에도…… 그자는 저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아카젤 대공이면 그래도 이름 높은 기사인데, 어찌 자신의 명예를 걸고 한 약속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자가 왜 이러는 것일까 고민을 거듭하다가 저는 깨달았습니다.”

“뭐를?”

“대공은 전하의 사랑을 받는 저를 질시하고 있는 겁니다.”

“…….”

‘널 안 풀어 준 건 제레미아 왕이다.’

위스는 침묵했다.

서머 왕실 대신 대공을 미워해 준다는데, 오해를 풀어 줄 필요가 없지 않은가?

모어 백작은 고통을 감내하는 듯했다.

“그러니 전하께서는 저를 다시 보러 오시면 안 됩니다. 그자가 저를 학대하고 모욕하는 것은 감내할 수 있지만, 전하께서 고통받으신다면 전 참지 못할 것입니다. 그때는 제 목이 날아간대도, 그자를 베어 버리고 말겠지요.”

‘무슨 수로?’

모어 백작과 테오도어 사이에는 갓난아이와 성인 남성 수준의 격차가 있다.

위스미아도 못 이기는 놈이 무슨 수로 테오도어를 벤다는 건지 궁금했으나, 위스는 묻지 않았다. 들을 얘기는 다 들었다.

“아, 그래. 다시 만나지 말지.”

“벌써 가십니까?”

“더 할 말 있나?”

숨긴 정보 있으면 다 털어놓으라는 말에, 모어 백작은 침을 삼켰다.

“이번이 저희의 마지막 만남입니까……?”

“그렇겠지.”

“저, 저를 다시 안 보고, 전하께서는 살아가실 수 있으십니까?”

위스는 이 새끼가 뭐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지가 방금 전 다시 보지 말자고 하지 않았나?

“뭐 어쩌라고?”

“여린 전하를 세상에 혼자 두고 전 살아갈 수 없을 듯합니다. 저는, 아니 전하께서는 왕이 되실 수 있었는데. 이대로 서머와 전하를 저 간악한 대공에게 빼앗기고, 제가 어찌 살아가겠습니까?”

모어 백작은 무릎걸음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전하께서 전처럼 한번만 용기를 내주신다면, 저희에게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더 들을 가치도 없었다.

이놈이 멍청한 위스미아를 꼬드겨 사랑의 도피를 했든 말든 위스가 무슨 상관인가? 또 뭘 시키려 드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문 열어.”

위스는 호위에게 명령했다. 그런데 모어 백작이 덧붙여 말했다.

“그래. 자네는 나가 있게.”

“전하?”

호위가 미심쩍은 듯 물었다. ‘저놈이랑 단둘이 뭐하시게요?’라는 표정이었다.

위스는 기가 막혀서 모어 백작을 돌아봤다. 그가 위스의 손을 잡았다.

“전하처럼 순수한 분께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이는 저희의 사랑을 위한 것이니 전하의 명예에 누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전하께서는 그저…… 제 아이를 임신했다고 사람들에게 말씀해 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거짓말을 하실 필요도 없습니다. 저희가 지금 첫날밤을 보낸다면…… 사랑의 결실이 저희를 찾아와 줄지 누가 알겠습니까?”

‘미친놈이.’

쾅!

위스는 문을 닫았다.

“전하, 전하! 잠시만요! 죽이시면 안 됩니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위스는 호위의 애원을 무시하고 백작의 정강이를 찼다.

“악!”

한 번으로는 쓰러지지 않아서 한 대 더 찼다. 견디지 못한 백작이 다리를 감싸며 주저앉으려고 하자, 위스는 발을 걸어 그를 넘어뜨렸다.

“악! 아픕니다! 전하?”

“네 잘못이 뭔지 아느냐?”

“죄, 죄송합니다. 전하께서 원망하시는 것도 당연합니다. 못난 연인이 밉기도 하시겠지요. 저도 이곳이 전하께 어울리는 장소가 아님을 압니다. 달빛 아래서 첫날밤을 갖자고 하셨지요. 저도 전하께 약속드린 모든 걸 지키고 싶었습니다!”

“닥쳐.”

위스는 백작을 걷어차 입 다물게 만든 뒤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들이댔다.

“이놈 신분이 뭐냐?”

“억, 누구를 말씀하시는……. 전하 말씀이십니까?”

“그래. 네가 전하라고 부르는 이 새끼 책임이 뭐냐고. 세금으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살다가, 여차하면 지 살길이나 찾아가라고 이 나라 백성들은 충성을 바쳤느냐?”

“무슨 말씀을…… 전하…….”

“너는 또 이 어리광을 받아 줬느냐? 그래도 된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 알량한 말로 이 멍청한 놈을 부추겼느냐? 그런데도 네 잘못이 뭔지를 몰라?”

뇌에 지푸라기만 든 새끼들이 연애를 한답시고 이 사달을 냈다. 누군 수습한답시고 피를 한 사발 토했는데, 뭐가 어쩌고 어째?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저는…… 전하께서 너무도 슬퍼하셔서, 여린 분이 슬픔에 짓눌려 돌아가시면 어쩌나 싶어…….”

“죽게 뒀어야지! 이놈이 죽는다고 나라가 망했겠느냐? 네가 대공을 죽이는 데 성공했다면 망했을 테지. 전쟁이 나면 너 같은 기사가 먼저 죽겠느냐? 먼저 죽는 건 어제까지 농사짓다 끌려나온 병사들이다!”

위스는 차분하게 말하려고 노력했으나,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백작을 갈겼다.

당연히 백작은 피를 토하진 않았다. 위스의 손만 아팠다.

그때 문이 거친 소리를 내며 열렸다.

“전하!”

테오도어가 뒤에서 위스를 끌어안았다. 위스는 팔목이 잡혔다.

“놓으시죠.”

“아니오. 더 하시면 손목이 다칩니다.”

“……?”

예상했던 대답이 아니다.

위스가 멈칫하자, 테오도어는 위스를 휙 들어 문가에 내려놓았다.

“당신을 모욕한 자는 제가 처벌하겠습니다. 나가 계십시오.”

얻어맞고 있던 모어 백작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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