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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24)화 (2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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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대공이 몸을 기울여 왕자에게 입을 맞췄다.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제 부인이 저를 지켜 주신다니 든든하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흉악한 마음을 품은 자들이 이 파티장에 저들뿐일까요? 저자들이 아무런 제지 없이 입장한 것을 보니 걱정이 됩니다. 또다시 습격을 당하면 어떡하지요?”

“그런 걱정을 하고 계셨습니까? 진작 말씀해 주셨다면 좋았을 것을요. 대공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더 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었을 텐데요.”

왕자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대공을 듬직하게 달랬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서머의 귀족들은 거짓을 모르는 고결한 성품을 지니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대공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결백을 증명할 겁니다. 무슨 수를 써서든요. ……그렇지 않은가?”

마지막 질문은 귀족들에게 향했다.

“……예?”

파티에 참석한 귀족들은 압도되어 있었다. 이런 무도한 처사는 겪어 본 적 없다. 서머 왕성은 평화롭고 따분했으며, 제레미아 왕은 우유부단한 성품이었으니까.

온실에서 자란 귀족들은 위협받는 상황에 익숙지 않았다. 그러나 대공의 냉랭한 표정을 보는 순간 그들이 위험에 처해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목숨의 위협이 피부로 느껴졌다.

“물론입니다, 전하.”

“저희는 언제나 저희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대공께서 안심하고 이 나라에 머무시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귀족들이 한입을 모아 말했다.

왕자는 싱긋 웃었다.

“그대들의 충성에 감사하네. 마음이 든든하군.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왕성을 벗어나지 않으리라 믿네.”

“……예. 물론입니다!”

“그럼 파티를 즐기게.”

악사들이 연주를 재개했으나, 물론 파티를 즐길 수 있는 귀족은 아무도 없었다…….

⚜ ⚜ ⚜

위스는 테오도어를 힐끗 봤다.

‘왜 잘하냐.’

목석같은 성격인줄 알았더니 맞장구도 곧잘 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아는 놈이다.

위스는 다들 얼빠져 있는 통에 눈여겨보아 두었던 상대에게 다가갔다. 피넥 남작은 학자 같은 인상이었다. 세상에 난데없이 떨어진 인물처럼 적응 못 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런 것치고 사업 수완이 대단한 인물이었다.

“저, 전하?”

“그대가 피넥 남작인가? 작고하신 양당의 일은 안되었군.”

‘내 차례인가!’ 하고 바짝 얼어붙어 있던 피넥 남작은 당황해서 대답했다.

“가, 감사합니다. 전하께서 생각해 주시다니 두 분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는 말해 놓고 이 대답이 올바른 답이었나 아리송해하는 표정이었다.

“나보다는 그대로 인해 그렇겠지. 광산이 마른 뒤에도 아들이 오히려 영지를 번영시키고 있으니 얼마나 자랑스러우시겠나? 비결이 뭔지 묻고 싶군.”

피넥 영지는 본래 부유했는데, 영지에 은광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선대에 광산이 말라붙고 영지는 파산 직전에 내몰렸다.

망하기 일보 직전인 영지를 살린 게 현 피넥 남작이었다. 젊은 나이에 부모를 잃고 가문을 이어받은 그는, 도로세와 상업 허가세 따위를 없애 영지로 상단과 공방을 끌어들였다.

피넥 남작이 침을 삼켰다.

“전하, 제 충성을 의심하시는 거라면…….”

“무슨 말을 하는가? 그대의 뛰어난 수완을 배우고 싶어 가르침을 청했는데 알려 주기 싫은가보군. 그래, 누구나 알고 있으면 비법이 아니겠지.”

“예?”

“그대의 친구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는가? 나는 그대와 오래 친밀하게 지내고 싶어. 친구에게도 비밀을 만들진 않겠지.”

위스는 웃으며 잔을 내밀었다. 피넥 남작은 얼결에 자신의 잔을 부딪혔다.

“초대장을 보내겠네. 또 보지.”

“여, 영광입니다.”

‘이건 잡았고.’

위스는 테오도어를 대동하고 몇 개 테이블을 더 돌았다. ‘위스미아 왕자’는 서머의 귀족들에게 믿음직하지도 두렵지도 않은 인물이었으나, 아카젤 대공은 이야기가 달랐다.

“……서머의 여름은 견디기 힘들 지경입니다! 특히나 볕 아래서 일하는 자들에겐 더욱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생각한 것이 남부에서 그늘을 막는 용도로 쓰이는 광목이온데, 이게 정말 쓸 만합니다…….”

“흥미롭군. 왕실 상단과 합자하지.”

떠들던 귀족이 당황했다.

“예? 아니, 투자를 바라고 드린 말씀은 아니었는데……. 저, 그런데 전하께서 상단 일을 맡아 보고 계셨습니까? 의심하는 건 아니지만, 전하께 결정권이 있으신지…….”

위스는 못 들은 척하고 테오도어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서머의 여름이 몹시 덥습니다, 대공. 대공의 병사들이 대단한 정예라도 무더위에는 면역이 없겠지요? 대공께서 심려하실까 저도 걱정이 됩니다.”

“……제 일을 이리도 자신의 일처럼 걱정해 주시니 기쁩니다, 부인. 예. 저도 걱정이 되는군요.”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제가 걱정을 덜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 몹시 기쁩니다. ……그대, 뭐라고 했나?”

“예? 아닙니다, 전하. 전하께서 관심을 보여 주시니 너무도 영광입니다.”

위스미아가 하겠다면 열 마디 의심이 되돌아오는 일이 테오도어가 말을 얹으면 말끔히 정리됐다.

“후.”

‘됐다.’

이 권력 관계는 바뀌어야 했으나, 지금은 테오도어의 위세를 빌리는 것이 편했다.

지금 이 상태라면 왕실의 권위를 세우는 데 한 세월 걸릴 게 뻔했기 때문이다.

돈 없는 왕족이 대접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충성을 바란다면 기사에게 줄 봉록이 있어야 한다.

서머 왕실은 수입원이랄 게 없었다. 가장 큰 수입원은 직할령에서 거둬들이는 세금인데, 그마저 이런저런 이유로 다른 귀족들에게 조세 징수권이 넘어가 있었다.

또 다른 수입원인 서머 왕실 상단은 어떤가?

그곳에도 놀라운 문제가 있었다. 이윤이 나올 만한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거였다.

‘말이 되냐.’

위스는 그놈들이 횡령과 뇌물로 재미 좀 보고 있으리라 확신했다.

그런 놈들이 무슨 배짱으로 봉급은 받아먹고 있단 말인가? 최종 관리자인 제레미아 왕이 신경도 안 쓰니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유명무실한 왕실 상단에 일을 끌어오기 위해 위스는 파티 내내 돌아다녔다. 의욕 있는 상인을 붙여 놓았으니 왕실 상단 놈들도 일하지 않고는 못 버틸 것이다.

“훌륭하십니다, 전하.”

테오도어의 부관 예센이 눈을 빛내며 다가왔다.

파티가 시작되기 전, 그는 위스에게 따로 조사한 내용을 보고했다.

그가 세 귀족이 팔라틴 왕과 공모했다고 판단한 이유는 위스와 달랐다. 위스는 정황 증거로 찍은 것에 불과했으나, 예센은 이미 세 귀족이 팔라틴에서 외교 관리로 일한 적이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습격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짧은 시간 내 팔라틴 왕이 손 뻗을 만한 자들을 추려낼 수 있었다는 건, 예센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뜻했다.

맹하니 있는 위스의 호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저런 놈이 밑에 있어야 고생을 덜 하는데.’

“훌륭한 건 그대지. 저들이 어떻게 연계되었는지 파악하고 대비하고 있던 덕에 추궁이 편했어. 도움을 받았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대가를 토해 내게 해야지. 재물 좋아하는 자들이니 모아 놓은 재산이 있겠지. 얼마에 자기 목숨을 살지 두고 보자고.”

예센은 두 손을 모으고 기쁨에 찬 한숨을 내쉬었다.

“암요, 전하. 일단 보복을 한 뒤에 용서를 해 줄지 말지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용서?”

위스는 픽 웃었다.

“용서를 왜 해.”

“……그렇죠! 그렇고말고요!”

예센은 흠모하는 시선을 숨기지 못했다.

말도 잘 통하는 놈이었다.

“정말 훌륭한 부관을 두셨군요.”

위스가 테오도어에게 말했다. 저런 놈이 자신의 부하가 아니라니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

띄워 주는 말을 들었는데도 테오도어의 표정은 무뚝뚝했다.

“예. 예센은 유능하고 충성스러운 부관입니다.”

‘……?’

그렇다고 칭찬하지 않았는가?

“그래 보입니다.”

“저는 어떻습니까?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까?”

테오도어가 물었다.

위스는 할 말이 없어서 그를 쳐다봤다. 그야 오늘 누가 가장 공을 세웠냐면 테오도어이긴 했다.

그가 없으면 애초에 시작도 못 했을 테니까.

“질투가 납니다. 예센만 다정히 대하시지 말고 저도 칭찬해 주십시오.”

“……예?”

위스가 다시 눈을 깜빡인 순간 테오도어가 그의 손을 잡았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위스는 단단한 품에 갇혔다.

입술이 닿았다.

귀족들 앞에서 연기할 때처럼 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맞춤이 아니었다. 테오도어는 위스가 입을 열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미친 건가.’

위스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이런 건 남들 앞에서 할 수 있는 행위가 아니다. 적어도 30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거절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테오도어의 입맞춤이 깊어졌다. 테오도어는 부드럽게 안을 쓸며 위스의 정신을 빼놓았다.

위스는 어쩔 줄 모르고 테오도어의 가슴팍을 쥐었다. 그는 잠시 멈칫하는 듯했다.

‘이 미친놈이 그만 두나?’

위스는 생각했으나, 이내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테오도어는 느긋하게 입술을 맞대나 싶더니 각도를 바꿔 깊게 파고들었다.

위스는 이런 일에 익숙하지 않았다. 혼을 빼놓을 정도로 입맞춤을 받고, 애정을 형태로 확인받는 일에.

예민한 곳을 건드리는 부드러운 감촉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이곳이 어디인지 잠시 잊었다가, 다리에 힘이 풀렸다.

테오도어가 끌어안고 있어서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출한 정신이 돌아오기엔 충분한 충격이었다. 테오도어가 웃는 게 맞닿은 입술로 느껴졌다.

“다리가 무거우십니까? 제가 안고 있을까요.”

“입 좀 다물어……! 그대는 부끄러움을 모르나?”

위스는 목까지 빨갛게 달아올라서 테오도어를 밀쳐 냈다. 그가 씨근거리자 테오도어는 크게 웃으며 그를 품에 꽉 안았다.

“하하!”

위스는 졸지에 품 안에 짓눌려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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