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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19)화 (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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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위스는 언짢은 기분으로 잠에서 깼다. 아침부터 찝찝한 꿈을 꿨다.

‘오늘 일정 때문인가.’

결혼식이라면 익숙했다. 이전에 지긋지긋하게 하지 않았는가?

식도 치르지 않은 결혼까지 합하면 몇 번의 결혼을 했는지 세기도 어려웠다.

기분이 다를 게 뭐가 있다고 꿈까지 꿨는지 모를 일이다.

전날에도 쉬지 않은 운동 때문에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위스는 기지개를 켜고 목을 꺾었다. 이 몸이 쓸모 있어지기는 멀었다. 그러나 이 궁에서 느긋한 사람은 위스뿐이었다.

궁인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전하, 일어나셨군요! 이러실 때가 아니에요!”

“어서요! 준비하셔야죠!”

“……?”

궁인들이 위스를 욕실로 끌고 갔다. 그러더니 향이 나는 물에 넣고 박박 씻겼다.

피부가 벗겨질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사지를 받고, 이후에는 얼굴이 매만져졌다. 위스는 방금 일어났는데도 피곤했다.

‘잘까.’

그러고 잠깐 눈을 감았다 깼더니 피부에 윤이 나고 있었다.

“…….”

그 다음은 머리였다. 위스가 또다시 조는 사이에 궁인들은 그의 머리를 황금빛으로 만들어놓았다.

위스의 본래 머리색은 밝은 담갈색이었다. 그러나 전장에서 씻지도 못하고 있다 보면 바랜 밀짚색이 되기 마련이었다.

위스는 자신의 머리가 이렇게 쓸모없이 눈에 띄는 색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너무너무 아름다우세요, 전하!”

“전하께서는 이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분이실 거예요!”

“정말로요! 전하께서 말씀만 안 하시면 다들 전하께 마음을 빼앗길걸요!”

궁인들이 호들갑을 떨었다.

“너희도 입만 알 열면 주인에게 예쁨 받을 것 같다.”

위스는 무엄한 궁인들의 엉덩이를 차 주었으나 “아야” 하는 반응만 돌아올 뿐이었다.

“괴롭히지 마세요, 전하. 옷 갈아입혀 드려야 한다고요.”

“저희 일하는 중이에요.”

궁인들은 위스에게 훈계하기까지 했다.

‘뭐, 됐나.’

위스가 거칠게 굴어도 궁인들은 그다지 겁먹지 않았다. 호위가 약간 군기를 찾은 것과는 달랐는데, 이들은 본래의 위스미아에게 더 익숙했기 때문인 듯했다.

위스는 날을 잡아 궁인들을 손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애초에 이 궁에는 인력이 부족했다. 그따위로 잡아 대면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사람들도 다 도망칠 것이다.

과거 위스의 궁중 시종들은 그에게 과하게 겁을 먹는 경향이 있었다. 위스가 한 마디만 하면 파랗게 질려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혼절하거나 했다. 그 꼴을 보느니 이쪽이 나았다.

위스는 위엄 없는 주인이 되는 색다른 체험을 하며 거울 앞에 앉았다.

그리고 팔뚝을 들기 힘든 옷을 입었다.

‘이런 걸 입고 검을 쓸 수나 있나?’

300년이 긴 시간이기는 했다. 위스의 시대보다 복식은 더 화려해지고 귀찮아져서, 결혼식에서 입을 옷은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식장에서 습격이라도 일어나면 일이 재미있어지겠다고 생각하며 위스는 일어났다.

그러나 위스를 기다리는 사건은 그보다 더 심각했다.

⚜ ⚜ ⚜

“위스! 정말이지 아름답구나. 나는 네가 너무도 자랑스럽다…….”

‘아들이 미인계에 성공해서 기뻐 죽겠나 보군.’

위스가 밖으로 나가자 제레미아 왕이 달려왔다. 궁인들이 그를 가로막았다.

“폐하, 전하를 포옹하시면 안 돼요.”

“머리가 흐트러진다고요! 지금이 완벽하세요. 이 모습을 대공에게 보여 드려야죠!”

“틀림없이 깜짝 놀랄 거예요. 팔라틴 촌사람들이 정신을 못 차리게 만들어 주자고요!”

이 난데없는 졸속 결혼은 온 서머를 당황시켰다. 서머의 귀족들은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수도로 올라오면서도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몰랐다.

그러나 망국의 왕자와 그 나라를 무너뜨린 대공의 조합에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가?

‘대공이 왕국을 먹었군’이라고 생각하는 게 보통 아닌가?

놀랍게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소문에 따르면 그들에게는 대단히 낭만적인 사연이 있는 모양이었다.

-위스미아 전하의 외모는 서머의 자랑이지. 보석 같은 분이 아닌가? 팔라틴은 척박한 땅이야. 그런 곳에서 전하 같은 미인을 볼 수나 있었겠나?

-대공이 첫눈에 반했다는 소리인가?

-이를 말인가? 틀림없네.

왕성에 도착한 귀족들은 그따위 소리를 주고받고 있었다.

‘아니라면 사랑을 도피 따위를 저지른 왕자를 짝으로 맞이할 리가 없다’는 게 귀족들의 중론이었다.

“네가 해낼 줄 알았단다.”

제레미아 왕은 눈이 촉촉해져서 위스의 손을 잡았다.

‘진짜 대공이 외모에 넘어갔다고 생각하는 건가.’

새삼스레 놀라운 판단력이었다. 테오도어를 상대했음에도 그가 미인계에 넘어갈 위인이라고 생각하다니.

위스는 제레미아 왕의 뇌가 로맨스로 절어 있든 말든 관심 없었으나, 그가 테오도어를 경시하는 건 막아야 했다.

“그건 아니고요. 그분이 신의 있는 분이라 다행이었습니다.”

고지식한 기사니 잘 이용하라는 말을 왕은 물론 못 알아들었다.

“내 아들은 겸손하기도 하지! 부인이 이 모습을 봤다면 자랑스러워했을 텐데…….”

제레미아 왕이 눈물을 찍었다.

“맞아요, 전하. 수줍어하실 필요 없어요.”

“아는 사람은 다 아는걸요. 대공 전하께서 푹 빠지셨다는 걸요.”

궁인들이 맞장구쳤다.

위스는 대화를 포기했다.

‘어차피 결혼하면 실권은 이쪽에 넘어온다.’

위스는 ‘위스미아’가 효도하게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

아버지를 일찍 은퇴시켜 평안한 노후를 보내게 해 드리다니, 그만한 효도가 어디 있겠는가?

⚜ ⚜ ⚜

결혼식장 안에는 팔라틴의 기사들도 하객으로 앉아 있었다. 그들은 반감을 숨기고 싶었으나, 귀족들만큼 능숙하지 않아 소화 불량에 걸린 것 같은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결혼식이 준비될 때만 해도 설마설마했다.

“그게 뭐야. 결국 폐하의 명령을 따르신다는 말인가?”

“그럴 리가. 습격을 당한 게 백 년 전도 아니고 엊그제잖아?”

그들이 믿든 믿지 않든 결혼 준비가 중단되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대공이 또다시 왕의 명령을 충성스레 수행 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분노에 찼다.

리엔델 왕이 왜 대공의 결혼 상대로 위스미아 왕자를 지목했겠는가?

대공을 모욕하기 위해서가 틀림없지 않은가.

기사들은 왕이 왜 또 억지를 부리는지 추측하다가 그런 결론에 도달했다. 모시는 주인의 치욕은 따르는 자들의 치욕이기도 했다. 그들은 이 결혼만큼은 막고 싶었다.

그러나 존경하는 대공께 따지러 갈 순 없었다. 그들은 부관 예센에게 몰려가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고 항의했다.

예센의 대답은 이랬다.

“그럼 폐하께 싫다고 할까? 누가 말할래? 자원하면 보내 줄게.”

지원자는 없었고 결국 기사들은 전원 상관의 결혼식에 끌려나왔다.

그들은 의자에 착석한 채 상관을 믿으려고 노력했다.

“대공께서도 무슨 생각이 있으시겠지.”

“맞아. 틀림없어.”

대공은 어리석은 분이 아니다. 이 결혼을 하는 게 낫다고 판단하셨다면, 그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상대는 추문이 붙어 있는 왕자지만.

대공 전하께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지만…….

그들의 상관 테오도어는 훤칠한 몸에 예복을 입고 있어 몹시 귀태가 났다. 기사들은 어쩔 수 없이 흐뭇해져서 어깨를 폈다.

유약한 서머 놈들이 저렇게 멋진 기사를 언제 보기라도 했겠는가?

그때 식장 문으로 제레미아 왕과 위스미아 왕자가 들어왔다. 몸에 꼭 맞는 흰 예복을 입은 위스미아는 말문이 막힐 정도의 미인이었다.

크고 유순한 눈 때문에 그에겐 청초한 분위기가 있었다. 피부는 유독 희어서, 밝은 색의 옷이 꼭 그를 위해 만든 듯 잘 어울렸다. 물론 위스가 입은 예복은 그만을 위해 만들어진 옷이 맞았지만.

그러나 기사들에게 그런 판단은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들은 소문 자자한 위스미아 왕자에게 잠시 정신이 팔렸다가, 경각심을 느끼고 퍼뜩 고개를 돌렸다.

‘설마.’

테오도어는 위스미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대부분 기혼이었다. 저게 어떤 표정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의문이 떠올랐다.

정말 대공 전하께 생각이 있으실까?

⚜ ⚜ ⚜

테오도어는 손을 내밀었다.

“이쪽으로.”

위스는 그의 옆에 섰다.

‘분위기 뭐냐.’

테오도어는 입장할 때부터 위스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새삼스레 놀란 표정이었다. 며칠 만에 사람 얼굴이 달라져 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러나 위스가 테오도어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은 순간, 그의 표정은 흐려졌다.

‘이제 와서 후회하는 건 아니겠지.’

뒤늦게 메리지 블루가 왔다고 해도 상관없다. 이 판국에 결혼을 깰 수도 없으니까.

위스는 주례가 뭐라고 떠드는 소리를 한 귀로 듣고 흘렸다.

그리고 식의 마지막 순서가 왔다.

“서로에게 영원을 바칠 것을 약속하며, 두 분, 맹세의 키스를.”

위스는 테오도어와 마주 보고 섰다. 이 요식 행위도 다 끝나 간다고 생각할 때였다.

테오도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위스는 그에게 끌어안겼다.

하객들 사이로 가벼운 탄성이 일었다.

결혼식 내내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던 놈치고는 적극적인 태도였다. 위스는 의아함을 느끼며 그를 올려다봤다.

테오도어의 얼굴이 가까웠다. 금방이라도 입을 맞출 듯이 그는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위스는 눈을 감았다.

“당신의 속셈을 알고 있습니다.”

테오도어가 속삭였다.

“……!”

위스가 멈칫한 사이, 테오도어는 입술을 붙였다.

도장을 찍는 듯한 입맞춤이었다.

그들에게 축복의 말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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