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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18)화 (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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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테오도어는 부관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든 뒤 복도로 나갔다. 그는 상식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결혼의 절차를 인식하고 있었다.

결혼 상대에게 제대로 된 프러포즈를 하고 허락받는 것은 당연한 수순 아닌가. 그는 정석적으로 꽃과 반지를 준비해 위스를 만나러 갔다.

위스는 늘 그렇듯 본인의 궁에 있었다.

테오도어는 궁인에게서 그가 침실에서 식사중이라는 정보를 얻었다. 궁인은 꽃다발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곧이어 볼을 붉혔다.

“대공께서 방문하셨다고 제가 알릴까요?”

“괜찮아. 직접 만나러 가고 싶군.”

눈을 빛내는 궁인을 뒤로하고 테오도어는 침실로 향했다. 꽃다발에 코를 묻으니 향에 취할 듯했다.

그는 들떠 있었다. 최근 계속 그랬다. 취한 것처럼 기분이 이상하고, 현실의 어떤 일도 그를 괴롭게 만들지 않았다.

형이 그의 죽음을 원한다. 그건 괴로운 일이다. 그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그를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해도 가슴 아팠다.

그러나 위스는 그를 지켰다. 앞으로도 그를 지켜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약한 사람이.

그 생각을 하면 웃음이 나왔다.

테오도어가 계단을 올랐을 때였다.

“……왕국 살리기는 잘 되어 가세요?”

그는 걸음을 멈췄다. 위스와 그의 호위가 침실에 함께 있었다.

기사인 테오도어야 신분에 관계없이 병사들과 어울리는 데 익숙했으나, 귀하게 자란 위스가 호위와 저렇게 친밀하다는 것은 이상한 데가 있었다. 침실 같은 곳은 특히나 사적인 공간이 아니던가.

무슨 관계인지 물어보는 게 좋을까?

그렇게 흘러가던 테오도어의 고민을 막은 건 이어지는 말이었다.

“……전하의 계획 실행력이 훌륭하셨다, 그분 전하께 넘어간 것 같다고 말씀드리는데……”

“나도 알아.”

위스가 대답했다.

‘계획을 세워서, 넘어갔다.’

그게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지는 명백했다.

“…….”

테오도어는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갔다. 정신을 차려 보니 자신이 침실로 쓰는 방이었다.

무슨 정신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들은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위스가 나라를 위해 자신에게 청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그랬지.’

위스가 그에게 만남을 청했을 때, 그의 분위기는 차 한잔 마시자는 듯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제레미아 왕이 계속해서 ‘위스미아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떠들어 대지 않았다면, 테오도어는 그를 보며 결혼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위스는 오히려 협상을 하러 온 실무자에 가까웠다.

그가 제안한 건 역시 결혼이었지만.

위스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그 말이 그의 입에서 나왔을 때, 테오도어는 그곳에 서 있을 수 없었다.

그가 위스에게 너무 끌렸기 때문에, 위스도 자신에게 그러리라 믿었던 것이다.

아니, 그러길 바랐던 게 아닌가.

테오도어는 실내가 어두워지고 창밖이 희미하게 밝아 올 때까지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깍지를 낀 손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테오도어가 이 결혼을 거부한다면.

위스는 다른 사람을 골라 왕국을 살리려 할 것이다.

‘다른 남자가 그에게 이용당하도록 둘 수 있는가?’

아니, 위스가 다른 남자에게 ‘당신을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그가 두고 볼 수 있는가?

그 주술에 걸릴 것 같은 호박색 눈으로 다른 남자를 응시하는 모습을.

테오도어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아니.’

불가능하다.

“대공 전하. 일어나셨습니까? 어제 보고를 듣겠다고 하셨는데 집무실에 안 들어오셔서……. 전하?”

예센이 들어왔다. 그는 테오도어를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안 주무셨습니까? 무슨 일 있으십니까? 혹시, 수도에서 연락이…….”

“아니야.”

테오도어는 턱을 매만졌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가 현재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세안 물을 가져다줘. 새 옷을 준비하고.”

“예, 물론입니다.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나가 봐.”

“정말 괜찮으십니까, 전하?”

테오도어는 손을 저어 예센을 내보냈다.

저 충성스러운 부관도 처음부터 저랬던 것은 아니다.

테오도어의 십 대 시절은 여러 의미로 왕자다웠다. 그에게 접근했던 사람이 모두 그를 이용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그랬다.

테오도어는 그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게 바로 테오도어가 잘하는 일이었다.

세숫물이 들어왔다.

테오도어는 얼굴을 씻고 거울을 보며 밤을 새워서 흐트러진 머리를 다듬었다. 새 옷을 갈아입고 협탁에 던져 놓은 꽃다발을 다시 들었다.

난데없는 새벽 방문에 위스의 궁은 비상이 걸렸다.

“이 시간에 방문은 조금……. 전하께서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십니다.”

“그렇군.”

테오도어의 선선한 대답에 궁인은 안도한 듯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 사색이 됐다.

“내가 기다리도록 하지. 전하께서는 몸이 약한 분이니 굳이 깨우지는 말게. 그분은 좀 더 주무시는 게 좋으니까.”

“예? 하지만 언제 일어나실 줄 알고…….”

대답은 문 너머에서 들렸다.

“일어났어. 들어오시라고 해. 잠옷 차림이라도 괜찮으시다면.”

잠긴 목소리였다.

테오도어는 망설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멈췄다.

천개 너머로 보이는 위스는 잠이 덜 깨 멍한 표정이었다. 잠옷을 걸친 채 무릎을 가슴 쪽에 모으고 있어, 무릎 아래의 살결이 무방비하게 그대로 드러났다.

발목으로 이어지는 종아리는 가늘었고 발도 마찬가지였다. 발가락은 특히나 작았는데, 그 작은 발에 약간 힘이 들어가 움츠러들어 있는 게 보였다.

긴장한 걸까.

어째서인지 봐서는 안 될 것을 본 것 같아서 테오도어는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눈을 깜빡이는 위스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 작은 행동만으로 위스의 얼굴에선 잠기운이 빠져나갔다. 냉담하리만치 이성적인 얼굴로 위스는 테오도어를 빤히 봤다.

그 모습이 아름다웠다.

“잠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데요.”

“그러실 거면 오후에 찾아오셨어야죠.”

위스가 미간을 찡그렸다.

귀족들이 대개 오후에나 늦게 눈을 뜨는 것을 빗대 하는 말이었다.

“예.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었습니다.”

테오도어는 침대에 기대앉은 위스에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위스의 눈이 커지는 모습이 기꺼웠다.

사랑스러웠다.

처음 봤을 때부터 위스에게서 눈을 떼기 힘들었다. 누군가 그를 강제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지.’

테오도어는 무릎 꿇었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정말 저를 사랑하십니까?”

위스가 아니라고 말하면, 테오도어는 놓아줄 생각이었다.

위스는 눈을 깜빡였다. 스스로 빛을 내는 듯한 호박색 눈동자가 테오도어를 응시했다.

“예.”

테오도어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도 그렇습니다. 저희는 서로 사랑하고 있군요.”

위스는 떨떠름한 듯했다.

“이 새벽에 그걸 확인하러 오셨습니까?”

“제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까요.”

‘당신에겐 아니겠지만.’

테오도어는 속내를 내색하지 않고 품에서 반지를 꺼냈다. 위스에게 손을 내밀자, 그는 여전히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손을 건넸다.

“생이 허락하는 한, 당신의 모든 낮과 밤을 저와 함께하겠다고 맹세해 주시겠습니까?”

청혼이었다.

테오도어는 대답을 듣지 않고 위스의 손에 반지를 끼웠다. 손가락에 꼭 맞았다.

위스의 대답은 그 뒤에 나왔다.

“……예.”

누군가에게 등 떠밀린 듯한 얼떨떨한 대답이었다.

떠민 사람은 테오도어일 것이다.

“저도 그렇습니다. 맹세합니다. 평생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그는 웃으며 위스의 손을 자신에게로 끌어갔다. 반지를 낀 손가락에 입 맞추자, 가슴 한쪽이 욱신거리며 아픈 기분이 들었다.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중요한 사실은, 위스가 관에 들어갈 때까지 이 반지의 주인일 거라는 점이었다.

아니, 그 이후에도.

팔라틴에서 왕족의 이혼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위스가 그 사실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 ⚜ ⚜

“왜 넌 결혼을 안 하지?”

서머의 왕 위스는 부관 테오에게 물었다. 위스의 다섯 번째 결혼식이 진행된 다음 날이었다.

“……왜 이 시간에 이곳에 계십니까?”

“연무장에 수련하러 나왔지. 다른 이유가 있겠어?”

위스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검을 차올렸다. 무게 중심을 이용해 발로 누르자, 검은 튀어 오르듯 허공에 솟구쳤다. 위스는 검을 잡아 테오에게 내밀었다.

애초에 그건 테오의 검이었다. 위스가 연무장에 들어서자마자, 테오가 들고 있던 검을 바닥에 내팽개쳤던 것이다.

왕성의 법도 때문이었다.

위스가 왕위에 오르자 귀족들은 입을 모아 요청했다. 왕 앞에서 기사들이 감히 검을 차고 다니지 못하게 막으라는 거였다.

그 때문에 위스가 거처하는 본궁에서는 원칙적으로 검을 지닐 수 없었다.

테오는 멋쩍은 듯 자신의 검을 받았다.

“이 새벽에도 수련하는 성실성에 작위는 공작이고, 왕국 제일검이라는 명성까지 지니고 있는데. 네게 혼담이 안 들어왔을 리 없어.”

“혼자 다섯 번이나 결혼하셔서 억울하십니까?”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지.”

위스는 테오의 옆구리를 찌르던 팔을 거둬들였다. 위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자, 테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 옆에 나란히 앉았다.

“바닥이 찹니다.”

위스가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봐. 내가 죽으면…….”

“그때 저는 이미 죽은 뒤일 테니 생각할 것이 없군요.”

“내 곁에서 한시도 안 떨어질 자신 있어? 뭐 그렇게 자신만만해.”

“자신 있습니다. 맹세라도 할까요.”

위스는 코웃음 쳤다.

“어제도 결혼식에 얼굴 한번 비치고 털끝도 안 보이더니, 말은 잘하는군.”

“결혼을 하셨으면 왕비님과 함께 계셔야죠……. 제가 곁에 있으면 되겠습니까?”

“어차피 형식뿐인 결혼인데.”

위스는 시큰둥하게 말하며 테오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테오는 몸에 힘을 빼 그가 기대기 쉽게 해 주었다.

“네가 결혼을 해서 후사를 봐야 나도 안심을 할 텐데 말이야. 내가 죽으면 제레미가 정신은 차리고 살지 의문이군.”

테오가 쓴웃음을 지었다.

“태어나지도 않은 제 후손을 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전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고 싶어서요.”

“뭐야,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어? 누구야? 널 사로잡은 사람이.”

위스는 흥분해서 고개를 들었다. 테오는 나이가 들면서 더 과묵해져서 자기 얘기를 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런데 왜 결혼을 안 했어? 신부 집안에서 반대하나? 문제될 거 없잖아. 신분이 왕녀라도 상대가 너라면 환영할 텐데.”

“이미 결혼한 분이어서요.”

“저런.”

위스가 혀를 찼다. 그리고 씩 웃었다.

“안됐군. 너를 부군으로 맞이할 기회를 놓치다니.”

“하하.”

테오도 웃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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