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대공 전하!”
거대한 조각상이 검을 치켜들었다. 골렘은 튼튼하고 살상력이 높지만 딱 하나 단점이 있었는데, 멍청하다는 거였다.
골렘은 명확한 목표를 식별하지 못하고 테오도어의 부관을 노렸다.
테오도어는 바로 검을 들고 막아 냈다. 그의 검이 골렘의 검과 부딪히며 크게 흔들렸다.
몸이 무게를 이겨 내지 못하고 뒤로 쭉 밀려났다.
“이게 무슨…….”
부관의 아연한 말이 들렸다.
위스는 테오도어가 밀쳐 낸 손을 노려봤다. 힘이라곤 없어서 치는 대로 날아가고 난리다.
“당장 나가서 다른 사람들을 불러와. 여긴 내가 막고 있을 테니까.”
“안 됩니다! 전하께서 나가셔야죠! 제가 여기를 막고요.”
“저거 막을 수 있어?”
“해 보겠습니다.”
테오도어와 부관이 비장한 대화를 나눴다. 골렘이 방망이처럼 검을 휘둘러서 바닥을 쾅쾅 내리쳤다.
저걸 안 얻어맞고 피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있다는 점이 대단했으나,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위스가 경고했다.
“하나 더 온다.”
방패를 든 골렘이 쿵쿵 달려와서 방패째로 바닥을 쓸었다. 근처에서 미친 듯이 비명이 울렸다. 의자와 테이블이 부서지고 날아가는 데다 땅이 지진 난 것처럼 흔들렸다. 테오도어는 그의 발을 노리는 방패를 훌쩍 뛰어넘고, 머리로 날아오는 검을 고개를 숙여 피했다.
“하나 더.”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어린아이 조각상이 화살을 날렸다. 테오도어가 튕겨 냈다. 동시에 찔러 들어오는 검을 피하느라 테오도어의 균형이 약간 틀어졌다.
부관이 비명을 질렀다.
“전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위스는 테오도어를 휙 잡아당겼다.
“달려!”
위스가 윽박질렀다.
“무슨……. 안에 사람들이 남아 있지 않습니까?”
‘지금 사람들이 문제냐?’
위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테오도어를 돌아봤다. 진심인가?
테오도어는 진지한 표정이었다. 놀랍게도 진심이었다.
위스는 이를 악물었다.
“네가 나가야 저것들이 따라올 거 아냐!”
“……!”
테오도어는 눈이 커지더니 제 발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서 손이 연결되어 있던 위스는 발이 꼬였다.
테오도어는 비틀대는 위스를 힐끗 보더니 “실례.” 하고 팔을 움직였다.
위스의 두 발이 허공에 떴다. 테오도어는 그를 공주처럼 안아 들고 있었다!
“……!”
“대공이 도망친다! 이것들아, 저기 가잖아! 막아!”
“……잠깐, 위스미아 전하? 잡아! 못 가게 해!”
아우성이 들렸다.
위스는 테오도어에게 안긴 채 뒤편을 봤다. 자신이 얼마나 쪽팔리는 자세로 안겨 있는지는 머릿속에서 지웠다. 상황 판단에 도움이 안 된다.
십수 기의 골렘이 따라 나오고 있었다. 크기가 3미터가 넘는 골렘이 달려오는데도 테오도어는 따라잡히지 않았다.
‘인간인가?’
경악스러운 신체 능력이었다.
마주치는 사람마다 비명을 지르고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뜨렸다. 테오도어가 소리쳤다.
“인적 드문 곳이 어딥니까?”
“저쪽으로.”
위스가 방향을 가리켰다. 테오도어는 군말 없이 방향을 틀었다.
확연히 인적이 드물어졌다. 위스는 골렘에게 소리 지르던 인간들이 나가떨어졌음을 확인했다.
그런데도 골렘은 테오도어를 쫓고 있었다.
‘그놈이 명령을 내린 게 아니야.’
따로 술사가 있다.
테오도어는 건물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좁은 길로 빠졌다. 판단력이 떨어지는 골렘들이 건물을 지나쳐 쿵쿵 달려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테오도어는 몸을 굽히고 위스를 내려놓았다.
“가십시오.”
“뭐?”
“저들은 저를 노리고 있으니, 위스미아 전하를 쫓지는 않을 겁니다. 유인할 테니 틈을 봐서 빠져나가십시오.”
위스까지 표적이 될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넌?”
“병사들과 합류해야죠.”
“병사들이 저걸 부술 수는 있고?”
“해 보겠습니다.”
그러더니 테오도어는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했다. 위스가 잡지 않았다면 나가서 골렘을 유인하고 있었을 것이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단 말인가?
습격자 중 위스미아에게 알은척을 한 놈이 있었다. ‘위스미아 전하’라고 부르는 소리를 위스도 들었으니 테오도어는 당연히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위스미아를 인질로 잡지 않겠다는 건 어떻게 도출된 판단인지 알 수 없었다.
물론 위스는 이런 기사가 영 어색하지 않기는 했다. 그의 휘하에도 이런 놈이 하나 있었던 것이다.
‘이놈은 진짜다.’
약자를 보호하고 어쩌고 하는 기사도를 신념으로 품고 사는 부류였다.
정말 어처구니없다고는 생각하지만…….
위스는 이런 고지식한 인간을 싫어하지 않았다.
“헛소리 말고. 죽기 싫으면 닥치고 내 말 들어.”
위스는 테오도어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체격과 힘의 차이가 현격한 만큼, 그를 붙잡으려면 온몸의 체중을 다 끌어다 써야 했다.
벽과 위스 사이에 깔린 테오도어가 당황한 듯 그를 쳐다봤다.
“너도 알 텐데. 저건 검으로는 못 부숴.”
“부술 수 있습니다.”
“너야 가능할지도 모르지. 네 병사들은? 지휘관이라면 냉정히 판단해.”
말하면서도 위스는 황당했다. 저걸 부술 수 있다고?
호기를 부리는 게 아니라면 눈앞의 기사는 상정 외의 괴물이라는 소리다.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골렘은 술사를 없애야 멈춰.”
“…….”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아느냐거나, 왜 내게 알려주느냐는 등의 하등 쓸데없는 질문은 없었다.
멀리서 비명이 들리고 있었다. 테오도어는 순식간에 판단을 끝내고 물었다.
“술사 위치를 알겠습니까?”
“어. 근데 거기 골렘 있다.”
“예. 당신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그러더니 테오도어는 위스를 다시 안아 들었다.
전장의 마법사는 습격당할 가능성을 항상 품고 있다. 마법사를 가장 먼저 노리는 건 기사단의 제1법칙이었다.
그렇다면 습격에서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마법사 자신이 후방에서 잘 쭈그려 있으면 된다. 앞선 병력을 다 뚫고 들어와 마법사를 암살하진 못할 거 아닌가.
……그게 일반적인 생각이겠지만, 그래서 마법사가 살아남았다면 전쟁은 쉬워졌을 것이다. 마법사를 다수 보유한 나라가 무조건 이기지 않겠는가?
전쟁 초반에는 그런 단순한 방법이 통했다. 마법사를 뒤에 숨기는 것만으로도 보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 역시 마법사를 이용한 전투에 익숙해지자, 마법사가 병력 후방에 있을 것을 상정하고 무작정 폭격하는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라고 마법사가 없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눈먼 마법 폭격에 우리 편 마법사들이 죽어 나가는 일이 생겼다.
이후로는 서로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방법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마법사를 하늘로 날려 보내거나 땅 밑에 묻어 놓는 게 그것이었다.
그러나 이 두 방법은 효율성이 좋지 않았고…… 보통은 숲을 전장으로 삼고 마법사를 수풀 속에 숨겼다.
그러나 이 모든 대비에도 불구하고 마법사는 종종 발각됐는데, 마법을 쓰는 그 순간은 상대편의 감지 마법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
‘찾았다.’
위스는 눈을 깜빡거렸다.
눈앞이 일순간 뿌옇게 흐려졌다 다시 맑아졌다. 마력을 사용한 탓에 코가 아릿하고 심장이 쿵쿵 뛰고 있었다. 남에게 안겨 있지 않았다면 달리다 비틀거렸을 것이다.
“저쪽.”
“……골렘이 다섯 기로군요.”
테오도어는 위스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등을 내밀었다.
“업히십시오. 진입하겠습니다.”
“다섯 기를 뚫고?”
“예.”
“…….”
테오도어는 뭐가 문제냐는 표정이었다. 위스는 일단 업혔다.
300년이 지나도 마법사를 숨기는 방법은 달라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왕성 북문은 깎아지를 듯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마력 반응은 그곳에서 감지되고 있었다.
‘이런 데서 마법을 쓰고 앉아 있으니 안내역이 필요했군.’
거리가 멀어질수록 마법의 정교함은 떨어진다. 골렘을 이십 기도 넘게 갖춰 놓고도 왜 습격조에 인간들이 필요했는지 알 만했다.
그 인간들은 골렘에게 방향성을 정해 주는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골렘을 어쩌겠다는…….’
쾅!
술사를 지키는 다섯 기의 골렘은 직관적인 외관을 갖추고 있었다. 전부 방패를 들고 있었는데, 그 무지막지한 크기의 방패가 반으로 부서졌다.
위스는 무심코 벌릴 뻔한 입을 다물었다.
쾅! 쾅!
철로 만든 검과 거대한 대리석 덩어리가 부딪히는 소리라고는 믿을 수 없는 굉음과 함께, 대리석 쪽이 조각이 되고 있었다.
위스는 의문이 들었다.
‘애초에…… 병사들 데리고 상대한다는 거 말릴 필요가 없었나?’
아까 좀 상대해 보더니 부수는 법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부순다고 멈추지 않는군요.”
테오도어는 난처한 듯했다. 위스는 이 괴물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싶었다.
그는 달리면서 골렘을 부수고 있었는데, 당연히 골렘은 어떤 꼴이 되든 테오도어를 쫓고 있었다.
애초에 몸이 돌덩어리였다. 심장이 존재하는 생물도 아니니 부순다고 아파할 리도 없었다.
공격력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도 그럴 게 들고 있는 방패는 장식용이기 때문이었다. 몸체로 깔아뭉개기만 해도 사람은 터져 죽을 터였다.
“술사가 살아 있으니까.”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지 않냐?
기사들이 죄다 테오도어 같다면 마법사들은 의욕을 잃고 사라질 것이다. 저토록 강도 높은 골렘을 무슨 두부처럼 터뜨리고 있다.
사실 위스는 반쯤 감탄하고 있었다. 골렘 기술이 이렇게나 발전하다니. 300년의 세월간 마법사들이 놀지는 않았군…….
쾅!
“어디로 갈까요?”
위스는 떨떠름한 감정을 숨기며 말했다.
“……더 안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