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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9)화 (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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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러나 위스가 후손의 한심함을 곱씹을 시간은 길지 않았다.

“어딜 봐? 부르면 이리 와야지.”

“누구 도와줄 사람이 있을 줄 알고?”

남자 한 명이 위스의 팔목을 잡아끌었다. 그 바람에 후드가 휙 젖혀져서 흰 얼굴이 드러났다.

“…….”

남자들은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로브 밑으로 드러난 하관만으로 미인임을 짐작하기는 했다. 그러나 위스의 외모는 상상 이상이었다.

위스는 틈을 놓치지 않고 가장 가까운 남자의 턱을 손으로 쳤다. 이만한 잡배들에겐 힘을 쓸 것도 없었다.

큰 힘으로 타격하지 않더라도 머리가 흔들리면 사람은 멀쩡할 수 없다. 남자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그런데 그 방향이 좋지 않았다.

위스에게로 쓰러진 것이다.

‘X발. 이걸 못 피해?’

위스는 남자의 몸에 깔렸다. 이 나약한 몸은 쓰러지는 놈 하나 감당 못 했다.

넘어질 뻔한 그를 잡아 준 건 뒤에서 뻗어 온 팔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단단한 팔이 위스의 어깻죽지를 잡아 어린애처럼 바로 세웠다. 위스는 비틀거리며 등을 기댔다. 뒤에 선 사람의 가슴팍이 위스가 넘어지지 않게 지탱하고 있었다.

‘……아카젤 대공?’

이자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물러나라. 너희가 함부로 할 분이 아니다.”

그가 불량배들에게 말했다.

위스는 길을 막고 있던 남자들이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용감한 놈이 남아 있었다.

“쳤어? 이게 미쳤나…….”

아카젤 대공은 두 번 경고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위스는 그가 검집을 쥐는 모습도 볼 수 없었다.

눈을 깜빡인 순간 용감한 남자가 무릎 꿇었다.

퍽!

“헉……. 으웩…….”

그가 내장을 토해 낼 듯 헛구역질을 했다. 검집으로 배를 맞은 것이다.

‘봐줬군.’

기사가 제대로 때렸다면 어디 하나 안 부러지고 저렇게 구토나 하고 있을 리 없다.

용감한 불량배가 쓰러진 뒤에야 다른 사람들도 아카젤 대공의 행색을 봤다. 대공은 누가 봐도 기사여서 길거리 불량배가 덤빌 상대가 아니었다.

“귀, 귀족이다.”

“도망쳐!”

불량배의 동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위스는 그들을 쳐다보지 않았다.

대공이 명령했다.

“잡아와서 경비대에 넘겨라.”

“예, 전하.”

대공의 호위 두 명이 그들을 따라갔다. 위스는 그들이 도망칠 수 없을 것임을 알았다.

위스가 당면한 문제는 저 시답잖은 패거리가 아니라 자신을 노려보는 대공이었다.

대공이 입을 열었다.

“여기까진 어쩐 일이십니까? 이곳은 전하께서 오실 만한 곳이 아닌 것 같습니다.”

“대공은 왜 여기 계십니까?”

그러는 넌 왜 여기 있냐.

뜻이 분명한 대꾸에 대공은 위스를 잠시 쳐다봤다.

위스는 말간 낯으로 있었다. 그가 이곳에서 뭐 이상한 짓을 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만나러 온 놈이 이상한 짓을 꾸미고 있긴 하지만…….

“궁에 허락받지 않고 침입한 흉수를 쫓고 있었습니다.”

대공이 말했다.

위스는 혀를 깨물 뻔했다.

“……흉수 말입니까?”

“예. 서머 성에 설치된 감지 마법에 ‘왕성 출입을 금지당한 자’가 출입한 흔적이 남았습니다.”

대공이 이곳에 있다는 건 침입자가 이곳으로 달아났다는 뜻이다.

왕성 출입이 금지당한 주제에 왕성에 들락거렸고, 현재 이곳으로 도망 와 있는 놈.

모어 백작이다.

왕이 그의 출입을 금지했다는 얘기는 들었다.

그게 마법적인 금지였단 말인가?

‘이놈은 생각이 없나?’

위스는 일단 모르는 척했다.

“그자가 누구입니까?”

“신원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곳으로 도망친 정황이 있어 쫓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아시는 바가 있으십니까?”

대공이 사무적으로 물었다. 그러나 눈은 위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의심받고 있군.’

누군가 왕성에 침입했다가 도망쳤는데 그놈이 도망친 곳에 왕자가 와 있는 셈이다. 누가 봐도 수상하지 않은가?

위스는 거짓말을 해 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그의 로브 차림은 눈에 띄는 듯했고, 모어 백작도 마찬가지였다. 백작이 있던 술집만 해도 목격자가 여럿이었다. 위스는 들통날 거짓말을 하는 취미는 없었다.

“예.”

“……아는 일이 있으시다고요?”

“그렇습니다. 오해가 있는 듯합니다. 왕성을 침입한 사람은 무언가 나쁜 생각을 품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스가 주장했다.

“누군지 아시는군요.”

위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 방으로 백작이 찾아왔습니다. 갑작스러운 일이라, 백작이 왕성 출입이 금지된 상태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말씀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거짓말을 성공시키는 방법은 간단하다. 절반의 진실을 말하는 것이다.

“백작과 무슨 대화를 나누셨습니까?”

“개인적인 용무라…….”

대공이 황당하다는 듯 위스를 쳐다봤다.

“……백작이 도피한 곳으로 오신 것도 개인적인 용무 때문입니까?”

“예. 말씀드리기 난감합니다.”

“…….”

위스는 부끄러워하는 척했다.

‘사태 파악 못 하는 왕자처럼 보이겠지.’

위스의 짐작대로, 대공은 미간을 찡그리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전하, 모어 백작에게는 혐의가 걸려 있습니다. 백작을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 입을 다무시면 전하께서도 의심을 피해 가기 힘듭니다.”

‘이쯤이면 됐나.’

위스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 초를 셌다. 겁먹은 얼간이라도 고민 정도는 할 테니까.

위스미아는 한심한 놈이 아닌가. 심약한 왕족이라면 이만한 추궁에 비밀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대공께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적인 일이니 비밀을 지켜 주셔야 합니다.”

“말씀하십시오.”

“저는…… 백작에게 이별을 통보하러 왔습니다. 백작은 받아들이기 힘든 듯하지만, 저는 새 사랑을 찾았으니까요. 제대로 정리하는 게 옛 사랑에 대한 예의라고 여겼습니다.”

진지하게 듣던 대공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그 새 사랑이라는 게…….”

“예. 대공이십니다.”

위스는 웃으며 말했다.

‘어디 추궁해 봐라.’

지금만큼은 위스미아가 사랑에 미친 얼간이라 다행이었다.

“……?”

순간 위스의 시야가 반쯤 가려졌다. 대공이 위스의 얼굴에 로브를 씌운 것이다.

“……백작을 잡으면 증언을 대질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괜한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은 말아 주십시오.”

대공은 스스로의 행동에 놀란 듯 자기 손을 보더니 위스를 놓아줬다.

위스는 그제야 자신이 대공의 품에 안겨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확히는 상대를 기둥 취급하며 기대 있었던 것에 가까웠지만.

‘튼튼하군.’

위스는 떨떠름하게 생각했다.

그가 부관 외의 다른 사람에게 뒤를 허락한 적이 있던가?

그곳은 부관의 자리였다. 부관이 부재중일 때 다른 기사에게 호위를 맡긴 적은 있지만, 그럴 때도 위스는 자신의 뒤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어 본 적이 없었다.

이 몸은 말라빠졌을 뿐만 아니라 여러모로 성능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그러겠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오직 대공밖에 계시지 않는데 다른 남자를 품었다는 의심은 정말 받고 싶지 않습니다.”

대공이 한숨을 쉬었다.

“타고 온 마차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곳은 위험하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그러더니 그는 손을 내밀었다. 위스는 저게 뭔가 쳐다보다가 깨달았다.

‘지금 에스코트하겠다는 건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위스는 그 손을 잡지 않고 물었다.

“대공도 같이 돌아가십니까?”

“마차까지 모시겠습니다. 불편하십니까?”

“기뻐서요.”

위스가 손을 얹었다. 애교를 떨어 줬는데도 대공의 표정이 떫어졌다.

“…….”

‘뭐. 그건 아무래도 좋고.’

당장 의심은 벗었다.

위스는 얼른 이곳을 뜨기로 했다. 대공이 직접 데려다주겠다는데 수상한 장소에서 더 머물 수는 없었다.

‘술집 조사는 다음을 노려야겠군.’

⚜ ⚜ ⚜

대공은 자신의 호위 하나를 위스에게 붙였다. 덕분에 위스는 다른 길로 샐 수도 없었다.

마차에 위스만 태워 보낸 까닭은 뻔했다.

대공은 왕성으로 복귀하지 않는 것이다. 남아서 왕성 침입자를 계속 조사할 터였다.

‘모어 백작부터 붙잡겠군.’

걱정은 되지 않았다.

백작이 아주 멍청하지만 않다면 말을 맞춰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위스가 친히 그를 세기의 멍청이로 만들어 줬으니까.

문제는 백작이 빠져나간 뒤였다.

팔라틴 왕은 무슨 수로 대공을 습격할 것인가?

서머군은 대공의 통제하에 있다.

모어 백작이 개인적으로 사람을 모은대도, 의미 있는 숫자가 모이리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위스는 인상을 썼다.

백작은 자신만만했다. 숫자 계산도 못하는 놈은 아닐 테니 무언가 방도가 있다고 봐야 했다.

‘모르겠고.’

위스는 생각해도 답 안 나오는 문제를 머리에서 치웠다.

그가 아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습격이 행해질 때.

-그래. 전하께서 그자와 결혼하기를 기다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백작이 제 입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위스의 결혼식을 두고 보지 않겠다고.

‘이놈은 사고 친다.’

팔라틴 왕의 의사와 상관없이, 습격은 급박하게 진행될 확률이 컸다.

“전하. 폐하께서 식사를 함께하길 원하십니다.”

왕성으로 복귀한 위스는 왕의 호출을 받았다.

“위스! 너 제정신이니!”

위스가 식당으로 들어가자마자 제레미아 왕이 소리쳤다.

“……?”

“너……. 아니겠지? 설마 네 애인을 궁 안에 들인 건…….”

“침입자 모어 백작 맞습니다.”

“뭐라고!”

왕이 펄쩍 뛰었다.

‘식사 자리가 아니었군.’

위스는 빈 접시를 쳐다봤다.

“네가 대공을 찾아갔다기에 정신을 차렸나 했더니. 정말 왜 그러느냐? 너도 이제 성인이야. 네가 왕국의 후계자다. 최소한의 책임감은 있어야 하지 않으냐?”

‘네가 할 말이냐?’

위스는 제레미아 왕이 이 몸의 아버지라는 점을 감안해 말을 참았다.

왕은 주먹을 쥐더니 결심한 듯 목소리를 쥐어짰다.

“안 되겠구나. 이 아비가 너를 아낀다 해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준비하거라.”

“뭘 말입니까?”

“약혼 말이다!”

‘X발, 이건 또 무슨 소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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