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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8)화 (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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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호위는 모어 백작의 수도 저택에 다녀온 뒤 보고했다.

“그분 안 계시던데요?”

“집에 안 들어갔다고?”

“그런가 봅니다.”

“그럼 기다렸다가 잡아왔어야지. 사용인이 ‘주인님 안 계십니다’ 했다고 믿고 그냥 돌아왔어?”

“아이, 설마요. 거기 집사야 ‘주인님 수도에 안 계신다. 왜 여기서 찾느냐’고 시치미였죠. 못 들은 척 죽치고 기다리고 있었더니 그 댁 하인 아이가 ‘주인님 요새 집에 잘 안 들어오신다’고 얘기해 줬습니다.”

호위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며 말했다. 돈 좀 쥐여 줬다는 뜻이다.

집사 같은 사용인들은 충성심이 높고 입이 무겁다. 반면 허드렛일을 하는 사용인들은 돈 몇 푼에 입이 쉽게 열린다.

일하며 받는 대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정보의 질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마부나 심부름꾼이라면 주인이 왔다 갔다 하는 일이야 줄줄 꿰고 있을 것이다.

위스는 호위를 새삼스레 봤다. 이 호위는 자기 말대로 한미한 가문 출신일 것이다. 귀족이라고 목에 힘주고 다니는 족속은 보통 하급 사용인들이 무언가를 알 거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집에 안 가고 어디에 박혀 있는지는 모르고?”

“듣기는 했는데요. 저기, 전하께서 직접 가실 건 아니죠?”

호위가 눈치를 봤다.

“뭔데?”

“아, 안 되는데. 들어도 모르실 텐데.”

위스는 호위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그 시선에 호위는 위기감을 느끼고 재깍 대답했다.

“맨슨 거리라고, 뒷골목이요.”

⚜ ⚜ ⚜

위스는 옷을 갈아입고 로브를 뒤집어썼다. 이만하면 눈에 띄진 않을 것이다.

호위는 뒷골목에 왕자를 데리고 간다는 데 잔뜩 긴장한 듯했다. 네 명 정도 인력 충원을 하면 안 되냐, 제가 그냥 가서 그분 끌고 오면 안 되냐 야단이었다.

위스는 무시하고 성을 나섰다. 안 그래도 왕국이 300년 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보고 싶었다.

광장은 의외로 활기가 있었다. 위스는 그 모습을 보고 약탈이 없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카젤 대공은 자신의 군대를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그럴 수 있다는 건, 저 군대가 대공의 사병이거나 혹은 대공의 능력과 명성이 용병들마저 통솔 가능할 정도라는 뜻일 터였다.

그 예로 위스는 약탈자였으나, 한 번도 자신의 병사들에게 사사로운 약탈을 허락한 적이 없었다.

병사들은 그가 나눠 주는 전리품을 하사받는 존재였다.

위스의 전쟁이 격렬한 저항에 직면하지 않았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통치자들은 자신들의 땅이 유린당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위스는 언제나 그들의 권리를 존중했다. 그래야만 하는 이유가 위스에게도 있었기 때문이지만.

수가 적은 군대로 타국의 원한을 사 봐야 곤란하지 않겠는가?

통치자를 박아 두고 그놈에게 돈이나 뜯는 게 더 수지맞는 장사였다.

위스는 호위를 앞세워 몇 개 술집을 돌았다.

술집을 전부 살펴볼 필요는 없었다. 도박장을 겸하는 곳만 찾으면 되었던 것이다.

‘만날 놈이 없어서 도박 중독자를 만나냐.’

위스는 내심 혀를 찼다. 못난 조카가 이상한 놈을 사윗감이라고 데려온 기분이었다.

위스미아는 위스의 조카가 아니었고, 그 이상한 놈은 현재 위스의 애인이 되어 있었지만…….

호위가 몇 번째인지 모를 술집 문을 벌컥 열었다.

“주인님, 저기!”

‘이거 사실 눈에 띄는 차림새인가?’

위스는 미심쩍어졌다.

모어 백작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도박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건물 안에서 그따위 차림새를 하고 있는 놈은 백작밖에 없었기 때문에 단번에 눈에 띄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위스는 손짓했다.

“저놈 끌어내.”

“이봐! 누구야! 뭐 하는 짓이야?”

백작은 버둥대며 끌려왔다. 꼴에 기사라고 저항이 심했다. 더 소란을 못 피우는 건 자기 신분이 들통날까 봐 두려워서일 터이다.

위스는 슬쩍 후드를 올려 백작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 줬다. 그를 발견한 백작이 놀랐다.

“저, 전하?”

“전하께서 어떻게 이곳까지…….!”

백작은 위스를 건물 뒤편으로 데려갔다. 위스는 차게 식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이놈 한두 번 드나든 게 아닌데.’

“여긴 전하처럼 존귀하신 분이 오실 곳이 아닙니다. 누가 전하를 이곳으로 안내했습니까? 네놈이냐?”

호위가 두 손을 내저었다. 위스는 호위의 멱살을 잡은 백작의 손을 떼어 내며 주위를 둘러봤다.

“시끄럽고. 너 혼자냐?”

“예? 그게 무슨……. 물론입니다! 제가 설마 전하를 두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까 봐 걱정하셨던 겁니까?”

백작의 얼굴이 펴졌다.

“그럴 리가요. 제 마음속에는 전하뿐입니다. 마음뿐 아니라 몸만의 배신이라도 제가 선택할 리가…….”

위스는 두 손으로 백작의 얼굴을 고정시켰다. 짝 소리 나게 두 뺨을 잡고 얼굴을 바짝 가져다 대자, 백작은 나불대던 입을 멈췄다. 위스는 은밀히 물었다.

“누굴 만났지? 팔라틴 왕이 보낸 자가 이곳에 머물고 있느냐?”

“저, 전하?”

“네놈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지나 알아?”

“그걸 어떻게……. 전하께도 사자가 찾아갔습니까?”

백작은 질문에 대답은 하지 않고 엉뚱한 소리만 했다.

위스는 자신의 짐작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이놈은 팔라틴 왕과 공모했다.

“팔라틴 왕이 무얼 약속했느냐?”

“대, 대공만 제거해 준다면, 서머를 자유롭게 놓아주겠다고……. 저와 전하의 결혼을 축복하겠노라고 했습니다. 전하께서도 알고 계셨던 겁니까? 설마 폐하께서도 알고 계십니까?”

“넌 그따위 걸 약속이라고 믿느냐?”

백작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위스의 두 손을 자신의 손으로 포갰다.

“전하, 전하께선 모르시겠지만 국가의 일이라는 것이 미묘합니다. 무엇을 걱정하시는지는 알겠지만, 팔라틴 왕의 약속이 그리 가볍지 않습니다. 현재 이 대륙에 팔라틴 왕을 위협할 자 그 누가 있겠습니까? 그는 대륙의 패자입니다. 하나 자신의 동생만은 두려워하고 경계하고 있습니다. 대공을 물리쳐 준다면 그 누구라도 팔라틴 왕의 은인이 되는 것입니다.”

위스는 기가 찼다.

“아, 그래. 전쟁 끝나자마자 최대 공헌자를 죽이려 드는 놈이 너와 한 약속은 지킬 거란 말이지.”

“전하…….”

백작은 빈정거리는 것도 알아듣지 못했다. 그는 알 수 없는 이유로 감동하더니 위스를 꽉 끌어안았다.

“제 부덕의 소치입니다. 전하를 안심시켜 드리지 못해 이곳까지 찾아와서 저를 추궁하게 만들다니……. 제가 드린 말씀은 전부 잊어 주십시오. 악!”

위스는 백작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백작은 위스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뭘 잊으란 말이냐? 그놈 어디 있어?”

“예?”

“네가 만났다는 팔라틴 왕의 종복.”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놈은 너더러 무슨 수를 써서 대공을 죽이라더냐?”

대공이 어지간한 인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팔라틴 왕이 더 잘 알 것이다.

적이 방심한 사이에 기습하는 거야 병법의 기본이지만, 대공이 방심하는 인물이던가? 적어도 이 성에선 아니었다.

“대공은 호위 없이 움직이지 않아. 서머 성에는 서머의 병사보다 팔라틴군이 더 많이 상주해 있을 텐데. 성에 머무는 대공을 무슨 수로 해친단 말이냐?”

백작이 안심하라는 듯 미소 지었다.

“아아, 이런. 그것 때문에 이리도 겁먹으신 거로군요. 저도 전하의 걱정을 덜어 드리고 싶지만, 이는 절대적인 기밀이라……. 전하처럼 여린 분이 아셔서 좋을 게 없는 얘기입니다. 하지만 걱정 마십시오, 전하. 제가 전하께 허튼소리를 한 적 있습니까? 이 계획은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하께선 저를 믿고 기다리시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그 침탈자의 손에서 전하를 반드시 구출하겠습니다.”

그가 주먹을 그러쥐었다.

“그래. 전하께서 그자와 결혼하기를 기다리라니 말도 안 되는 소리지…….”

“……?”

“가십시오, 전하. 이곳은 위험합니다.”

백작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위스는 로브 밑으로 손을 까딱였다. 백작을 제거해 당장의 위험을 없앨까 싶었지만…….

‘그만두자.’

그는 계략의 종범이었다. 주범이 멀쩡히 살아 있는데 종범 따위를 죽여 봤자 근본적인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팔라틴 왕은 대공을 제거할 무대로 서머를 골랐다. 실행자인 백작이 사라져도 대신할 자를 구할 것이다.

‘모르는 놈을 경계하는 것보다 아는 놈을 감시하는 게 낫겠지.’

위스는 판단을 마치고 호위에게 지시했다.

“너 여기 붙어서 백작 염탐해라.”

“예?”

“미행하면서 어딜 가고 누굴 만나는지 나한테 보고해.”

호위가 펄쩍 뛰었다.

“아니 그게, 저 전하 호위인데요? 제가 워낙 충심이 깊고 전하께서 또 좀 이상하시고 해서 잡무도 해 드리고 하긴 했는데, 제가 심부름꾼은 아니거든요?”

얌전하게 구는 게 하루를 못 간다. 호위는 억울해하며 자신의 직무를 인정해 주길 주장했다.

위스가 인상을 썼다.

“네가 누굴 호위해?”

“전하께서 세상 험한 줄 모르셔서 그러는데, 여기가 좀 무서운 곳이거든요? 불량배들이 길 막고 돈이라도 요구하면 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

“알아서 하마.”

“아니, 진짜…….”

위스는 무시하고 호위를 지나쳤다. 호위는 뒷골목에 출현하는 불량배처럼 길을 막고 있다가 위스에게 발이 걸리고 균형을 잃은 채 벽에 밀쳐졌다.

“악!”

“내가 알아서 하마. 어?”

호위는 벽에 머리를 박은 채 질문했다.

“아니……. 저 진짜 미행해요?”

“그렇게 떠들고 다니면 잘도 미행이 되겠구나.”

“근데 전하, 호신술은 어디서 배우셨어요?”

“네가 해야 할 건 질문이 아니라 반성 같지 않으냐? 모시는 사람도 제압 못 하는 게 무슨 기사야?”

호위는 입술을 삐죽이며 술집으로 들어갔다.

위스는 그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진 걸 확인하고 골목을 돌았다. 호위를 따돌렸으니 좀 편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아까 들른 술집 중에 이상한 곳이 있었다.

‘주인이 마법사였지.’

그런데 호위는 마법사들은 전부 마탑에 있다느니 뭐니 하지 않았는가.

마법사가 몹시 희귀한 존재여서 왕성에서도 모시기 힘들 정도라는 투였다.

‘마법사는 원래 수가 적긴 했지만.’

위스는 300년 후의 세상을 알 필요가 있었다.

무엇보다 마법사는 잘 활용하면 전쟁을 시작도 전에 끝낼 수 있는 병기였다.

그때였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

위스의 앞을 장정 셋이 가로막았다.

‘습격?’

왕자가 혼자 될 때를 노렸나? 경계하던 위스는 다음 말에 긴장이 풀렸다.

“예쁜아. 이런 데 너 같은 애가 혼자 돌아다니면 위험해. 우리가 지켜 줄게.”

남자들이 낄낄거리며 말했다. 위스는 기도 차지 않았다.

‘진짜냐.’

호위가 사라진 지 5분 만에 불량배한테 걸려?

수도 치안이 뭐 이따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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