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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 메리드 트러블 (6)화 (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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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위스는 왕국을 세운 뒤 외방으로만 돌았다. 통치를 하고 경제를 살피는 일은 익숙지 않았다.

그는 대신 색다른 방식으로 왕국을 유지했다.

빚을 긁어모아 군대를 운용하고, 전쟁에서 이겨 받은 배상금으로 그 빚을 탕감하는 것이다.

물론 패전국들은 위스에게 배상금만 물어내지 않았다. 신하의 맹세를 하고 3년에 한 번 오마주를 바쳤다.

이게 왕국을 운용하는 예산이 됐다.

서머 왕국은 전쟁으로 돌아간 셈이다.

위스는 패전한 왕국을 어떻게 재건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그가 아는 건 결국 전쟁은 마지막에 이기는 자가 승자라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내부의 적이 가장 무섭다는 것.

팔라틴의 경우, 내부의 적이란 물론 아카젤 대공이었다.

“그게 아닙니다.”

대공이 말했다.

“조건이 아니라면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그럴 리 있겠습니까.”

‘뻔한 대답은 됐고.’

진짜 이유를 들을 차례다. 상대가 원하는 바를 알아야 협상을 이어 가지 않겠는가?

그런데 대공이 말했다.

“제가 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건 전하와 제레미아 폐하를 믿을 수 없어서입니다. ……얼마 전 형님께 명령을 받았습니다. 제가 위스미아 전하와 결혼해 서머를 통치하길 원하신다고요.”

위스는 인상을 썼다.

‘뭐라는 거야.’

팔라틴 왕이 어지간히 멍청한 놈이 아닌 이상에야 대공과 서머의 결합을 허락할 리 없다. 그런데 아예 명령했다고?

“그런데 형님은 제게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황무지라도 주기 아까워하실 분입니다. 하물며 왕국이라니. 정말 제가 왕국의 주인이 된다면 밤잠을 못 이루실 텐데요.”

대공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더니 팔짱을 꼈다. 무표정하던 얼굴에 설핏 미소가 어렸다.

“해서 저는 형님의 명령을 무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제레미아 폐하가 찾아와 제게 결혼을 권하시더군요. 제가 거절하자, 이번에는 위스미아 전하께서 직접 오셔서 청혼하고 계신 상황입니다.”

위스는 할 말을 잃었다.

‘수상할 만하군.’

“정말 스스로의 의지로 저를 찾아오셨습니까?”

대공의 얼굴에서 다시 미소가 걷혔다. 딱딱한 표정으로 그가 물었다.

위스는 고민했다.

제레미아 왕이 팔라틴 왕과 손잡았을 것인가?

‘그럴 리 있냐.’

계략도 머리를 쓸 줄 알아야 꾸밀 게 아닌가.

“대공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저, 대공께서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서 찾아왔을 뿐입니다.”

위스는 가련한 오메가처럼 말했다.

‘그런데 이놈은 돌아가는 상황을 왜 이렇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거지.’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대공에겐 거절의 이유를 설명할 의무가 없었다.

“리엔델 폐하께서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혹여 저희의 결합을 방해하시고자 하는 의도는 아니겠습니까?”

“그렇진 않을 겁니다. 형님께는 전적이 있으니까요.”

대공은 쓴웃음을 지었다.

“전하께서 정말로 형님의 명령과 아무 연관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만 돌아가십시오. 부축할 하인을 붙여 드리겠습니다. 신관의 치유를 받았다 하나 몸이 아직 편찮으시겠지요.”

축객령이다. 그러나 위스는 일어나지 않았다. 여기서 일어나면 끝이다.

“결백을 증명하면 청혼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대공의 눈썹이 모로 올라갔다.

“왜 그렇게까지 하려 하십니까?”

그가 팔짱을 꼈다. 오히려 의심스러워진 듯했다.

“결혼이 무산되면 위스미아 전하께도 좋을 텐데요. 연인이 계시지 않습니까.”

‘빌어먹을 위스미아.’

“……제겐 연인이 없습니다. 제가 리엔델 폐하와 연관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명하겠습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어떻게 돼도 제가 전하와 결혼할 일은 없을 겁니다.”

대공은 냉담하게 말했다.

‘X발.’

못 믿어서 결혼을 못 하겠다며?

위스는 인내심을 긁어모았다.

“왜입니까?”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과 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위스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표정 관리를 잊을 뻔했다.

‘이 자식 진심인가?’

하지만 진심이든 아니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중요한 건 말의 내용이다. 대공은 말실수를 했다.

위스는 명분을 잡았다.

‘후.’

“하지만 저는 대공 전하를 사랑하는데요.”

위스가 주장했다.

‘너 이 새끼 잘 걸렸다.’

본성과 상관없이 위스의 외모는 청순해서, 그 모습은 꽤 진실하게 보였다.

대공의 당황한 시선이 위스를 향했다.

⚜ ⚜ ⚜

“어떻게 되셨습니까?”

호위가 물었다.

위스는 침대에 앉아 다리를 주물렀다.

‘그거 걸었다고 지금 근육통에 시달리는 건가.’

농담이라고 믿고 싶었으나 아니었다. 이 말라빠진 몸은 중앙궁에서 왕자궁으로 이동하는 여정에도 지친 것이다.

“정말 결혼하실 겁니까?”

“너 파산한 왕국 살리는 법 아느냐?”

“모르죠?”

“그럼 잠자코 있어. 거기 앉아서 다리나 주물러 봐라.”

호위는 불퉁한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위스의 다리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입은 쉬지 않았다.

“혹시 대공께 첫눈에 반하셨습니까?”

위스는 물을 뱉을 뻔했다.

“너 헛소리 안 하는 법은 모르느냐?”

“이상한 말씀은 전하께서 하시지 않습니까. 그렇게 애타는 사랑을 하시던 분이 갑자기 다른 남자랑 결혼하겠다 하시는데 제가 걱정이 안 되겠습니까?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죽긴 했군.’

옛말이 무서웠다. 진실을 담고 있다.

“대공을 그냥 보낼 순 없지.”

“예에에? 아니, 대공이 미남이긴 했지만……. 진짜 반하셨어요?”

위스는 성질이 뻗쳤다.

‘이 왕자 놈이나 저 기사 놈이나.’

“남의 나라 왕성을 군화를 짓밟아 놨으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지. 어딜 내빼.”

“……예?”

위스는 찬물을 마시고 베개를 등받이 삼았다. 지끈거리던 두통이 한결 가셨다.

그는 반쯤 감은 눈으로 호위를 쳐다봤다. 위스미아의 몸에서 깨어난 둘째 날, 그는 호위를 바꾸려고 시도해 봤다.

‘답이 없었지.’

호위의 말이 옳았다. 멀쩡한 기사들은 죄다 전쟁 중에 항복하거나 도망쳐서, 성에 남은 건 극소수였다.

놀랍게도 이 호위는 충성심이 있는 편이었던 것이다.

‘그냥 주변머리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됐고, 팔라틴 왕에 대해 말해 봐.”

“신왕 리엔델 말입니까?”

“그래. 동생이랑 사이 나쁘던데.”

“아, 역시 그렇습니까?”

“뭐야, 모르느냐?”

“리엔델 왕은 유명 인물이 아니어서요.”

호위가 위스의 발목을 돌리며 말했다. 발목에서 두둑 소리가 났다.

“…….”

위스는 몸에서 이런 소리가 나는 게 정상인지 알 수 없었다.

“아시다시피 팔라틴도 서머와 왕위 승계 방식이 같지 않습니까. 선왕이 죽기 전에 후계를 지목하는데, 팔라틴에는 유명한 왕자가 하나 있지 않았습니까? 저 아카젤 대공 말입니다. 당연히 다들 대공이 왕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변이 일어난 거죠.”

“윽…….”

호위는 위스를 엎드리게 하고 등을 안마했다. 위스는 죽을 지경이었다.

‘이놈 화풀이하고 있는 거 아닌가.’

위스가 기억하던 안마는 천국 같은 경험이었다. 위스의 부관이 훌륭한 안마사였던 건지 이 호위가 열과 성을 다해 위스를 으깨는 중인 건지 모를 일이었다.

“아무튼 높으신 분들 생각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왜 대공이 아니라 리엔델 왕이었을까요? 즉위 때부터 말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살살 해라.”

“예? 예에.”

고통이 반감되자 위스는 생각할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신왕은 즉위 이후 대공을 앞세워 전쟁을 일으켰단 말이지.”

“예, 그겁니다.”

“동생이 어지간히 무서웠나 본데.”

위스는 코웃음 치며 몸을 일으켰다.

“그만 하고 대야에 물 가져와.”

“세안하시게요?”

“문 닫고 나가. 부를 때까지 들어오지 말고.”

“……?”

-하지만 저는 대공 전하를 사랑하는데요.

대공은 물론 위스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하도 어이가 없는 나머지 대꾸할 말도 잃은 모양이었고, 위스는 그걸로 충분했다.

‘요는 결백과 쓸모를 입증하면 된다는 거지.’

위스는 왕족의 결혼에 그 외의 조건이 필요하리라고는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

그는 호위를 쫓아낸 뒤 창문을 닫았다. 마법 발현을 눈치채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덥군.’

서머 왕국은 사시사철 온난한 나라였다. 건물은 창문이 크고 바람이 잘 통하는 구조로 지어져 있었다. 들어오던 바람이 사라지니 어쩔 수 없이 더웠다.

위스는 단추를 두어 개 풀고 집중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흰 이마를 간질였다.

그의 눈이 밝게 빛나며 대야의 물이 빙그르르 돌았다.

공기 중의 마력이 체내로 들어와 핏줄을 타고 돌았다.

그렇게 다시 빠져나간 마력이 대야에 정교한 진을 만들었다.

대야 속에는 이제 작은 소용돌이가 치고 있었다.

이 마력으로 전개할 수 있는 마법은…….

‘호신용 정도겠군.’

위스는 속에 고인 피를 뱉었다. 대야가 붉게 물들었다.

이 정도면 부작용도 크지 않다.

그 순간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가 들렸다.

“전하, 저입니다.”

위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멋대로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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