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7화 〉 이세계 첫 취미생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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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나 평화롭게 진행되는 영입 전쟁.
레이시는 엘라의 말을 떠올리면서 슈레이가 만나기로 한 장소를 둘러봤다.
잘 보이겠다는 의지가 엿 보이는 건물.
사람을 만나는 데 방이 아니라 건물을 빌렸다는 점에서 왕족답다는 생각을 하던 레이시는 슈레이가 2층에서 자기를 보며 손을 흔들자 가볍게 손을 흔들어준 다음 엘라에게 가볍게 주의를 줬다.
“이번에는 막 화내지 마요?”
“……노력해볼게.”
“노력해볼게는 뭐예요. 화낸다는 거잖아요.”
“아니, 근데 포기하라고 했다고. 2년동안에.”
“에일렌을 신경 써준 거 아니에요?”
“그런 것보다는 내가 일도 안 하고 몬스터와 도적들 같은 걸 방치 해서 그런 걸걸? 나를 설득할 때 한 말도 그런 취지였고. ……국민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이 나라에 그렇게까지 애정이 없어서 말야.”
“으응.”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일만 생각해봐도 그들이 나에게 준 것들을 이지까지 모두 갚고도 남는 수준이잖아? 그런데 더 일해라, 나라를 위해서 사랑을 보여라. 그런 식으로 말하니 빡치지.”
“그건…….”
“속내가 따로 있다고 하더라도 말은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잖아?”
엘라의 말에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말 없이 엘라를 끌어안고 입술을 샐쭉하게 내미는 레이시.
엘라는 레이시의 투정에 웃음을 터트리다가 알겠다면서 가볍게 입을 맞춘 다음 위로 올라갔고, 슈레이는 엘라와 레이시가 같이 올라오자 반갑게 맞이하면서 뜨개질을 가르쳐줄 사람을 두 사람에게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동방의 염국에서 오신 벽린 씨야. 우리 왕국에서 외교관으로 일하시는 진기련 씨의 아내분이셔.”
“만나서 반갑습니다, 레이시 씨.”
“만나서 반가워요. 레이시에요.”
레이시의 인사에 웃는 얼굴로 내심 긴장하는 벽린.
도시 아멜리아의 주인에 2년 전 국왕을 구하고 실종되었다는 영웅.
편견이지만 그런 부류의 영웅들은 성격이 어딘가 모난 구석이 있으니 레이시도 그럴지도 모른다.
거기에다가 레이시는 야차.
동서양 할 것 없이 괴물이라고 불리는 종족.
가끔 사회적인 야차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벽린이 봐왔었던 야차는 전부 파괴적인 행동을 하다가 퇴치당한 존재였고 그렇기에 벽린은 레이시가 악수를 받아주고 있음에도 침을 삼키면서 긴장했다.
“으응……? 엘라, 엘라.”
“왜?”
“벽린 씨, 손에 땀 되게 많이 나는데 동양은 여기랑 비교하면 좀 춥나요? 고산지대에 있다거나 그런 건가요?”
“아니, 아마 그런 건 아닐 걸?”
레이시의 말에 킥킥 웃다가 레이시의 머리를 꾸욱 눌러주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손길에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볼을 부풀이면서 엘라의 손을 잡았고, 엘라는 레이시의 반응에 키득 웃다가 벽린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년 아멜리아에서 보고 이번이 처음인가? 우리 아내는 좀 서투르니까 잘 부탁하지.”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벽린의 인사에 피식 웃으면서 레이시의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 엘라.
레이시는 자연스럽게 엘라에게 반쯤 기댄 채 뜨개질을 배우기 시작했고, 벽린은 일단 레이시를 칭찬해주면서 레이시가 대바늘을 움직이는 것을 봤다.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좋아서 그런지 빠르게 배우는 레이시.
만드는 게 간단한 목도리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야차 특유의 신체 능력 덕분인지 레이시는 빠르게 대바늘에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벽린은 그런 레이시의 학습능력에 감탄하면서 레이시를 칭찬했다.
“에헤헤, 정말요?”
“네, 대바늘을 익히는 게 빠르세요. 매듭도 잘 묶고 계시고요.”
“고마워요. 전부 벽린 씨가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에요. 좀 더 열심히 해볼게요.”
벽린의 칭찬에 헤실 웃는 레이시.
벽린은 그런 레이시의 웃음에 눈을 깜빡이다가 잠시 자기가 아는 야차와 레이시의 모습을 번갈아 보면서 비교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연기라거나 아직 역린을 건들이지 않아서 본성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에헤헤, 칭찬 받았어요.”
“잘 했네. 쪽.”
“으응~. 쪽.”
……그냥 정말로 평범하게 사회에 잘 섞여들어간 존재가 아닐까?
아까는 영웅은 전부 모난 존재라고 생각했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면 모가 났는데도 사회에 섞여 들어가니까 영웅이라고 불리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한 벽린은 레이시를 바라보며 계속해서 뜨개질을 가르쳐주었고 이내 실이 떨어졌을 때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면서 레이시를 칭찬해주었다.
그러자 또 다시 열심히 뜨개질을 배우는 레이시.
슈레이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시간이 어느샌가 다른 일을 하러 갈 시간이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오늘은 여기에서 헤어지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슈레이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배웅하기 시작했다.
“벽린 씨는 한 시간 쯤 더 있을 수 있으니까 지내다가 편할 때까렴.”
“네, 그럴게요, 형님.”
“……너는 그런 식으로 부르는구나.”
“네?”
“아니, 아냐.”
레이시의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젓는 슈레이.
슈레이는 잠시 레이시를 미안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집사가 말하자 곧바로 자리를 떠났고, 레이시는 슈레이의 마차를 끝까지 배웅한 뒤에 마지막에 봤었던 슈레이의 얼굴을 떠올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지막에 보인 그 표정은 뭐였을까?
뭔가 미안해하는 거 같긴 했는데……, 엘라가 말한 걸 신경 쓰는 걸까?
레이시는 잠시 그렇게 생각하다가 엘라가 돌아가자면서 손을 잡자 배시시 웃으면서 벽린에게 가 고개를 꾸벅 숙였고, 벽린은 레이시의 인사에 당황하다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받아준 다음 두 사람을 배웅했다.
“벽린 씨는 뭔가 사람이 낯을 많이 가리나봐요.”
“레이시, 2년 동안 다른 곳에 다녀오더니 완전히 초기화됐구나?”
“네?”
“레이시는 공주비잖아. 외국의 대사관이 함부로 대하기 좀 그렇지. 거기에다가 평범한 공주비도 아니고 한 나라의 영웅이니까.”
“영웅이라고 하면 조금 부끄럽네요.”
“풋, 그럼 국왕을 구한 나라의 은인 정도?”
“에에에…….”
“뭐, 하여튼 그래서 레이시를 쉽게 대할 수는 없다는 거지.”
엘라의 말에 입술을 샐쭉하게 내밀다가 이내 피식 웃으면서 엘라에게 기대는 레이시.
엘라는 그런 레이시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어주다가 볼에 입을 맞추면서 집으로 돌아가자고 말했고, 레이시는 엘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엘라의 말처럼 뭔가 평범한 사람을 보는 눈은 아닌 사람들의 시선.
레이시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에 한숨을 내쉬면서 이제 기억나기 시작한다면서 자기는 이런 시선이 영 껄끄러웠다고 말했다.
“아하하…….”
“엘라랑 에일렌에만 신경 쓰느라 전혀 신경도 못 썼었어요.”
“츗. 다시 천천히 익숙해지자, 몇 년이고 기다려줄게.”
“에헤헤…….”
다른 사람들이 보든 말든 애정행각을 벌이는 엘라.
레이시는 엘라의 애교가 부끄러우면서도 괜히 기뻐서 엘라에게 애교를 부리면서 저택으로 들어갔고, 이내 저택 정원에서 마리아가 보는 앞에서 미스트와 훈련하는 에일렌을 발견했다.
“흐읍!”
“키가 작다고 파고 들기만 하면 이렇게 되요.”
마탄을 시야교란 용으로 쓰고 빠르게 달려드는 에일렌.
하지만 미스트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에일렌만 붙잡아 땅에 꽂아버렸고, 레이시는 그런 두 사람의 훈련을 바라보다가 에일렌이 가볍게 경련하다가 축 늘어지며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자 조심스럽게 다가가 에일렌의 얼굴을 털어주었다.
“훈련이라도 이렇게 험하게 할 필요는 없잖아요.”
“마망…….”
“레이시, 다녀왔나요?”
“네!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미스트, 정말 살살하는 거 맞아요?”
“네~. 방금 잡아던진 것도 에일렌의 힘만 이용해서 던진 거니까요. 제 힘을 추가했으면, 음. 좀 끔찍한 이야기가 될 거 같으니까 안 할게요.”
싱긋 웃으면서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는 시늉을 하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짓에 미스트가 무슨 말을 하는지 깨닫고 어색하게 웃었고, 미스트는 레이시에게 뜨개질을 잘 배우고 왔냐면서 입을 맞췄다.
“음~, 쪽! 에헤헤.”
다들 2년만이라 그런지 애정 행위가 좀 적극적이구나.
레이시는 미스트의 입맞춤에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목도리를 짜는 방법은 배웠다고 말했다.
“안에 무슨 그림을 그린다거나 그러지는 못하지만요.”
“나중에 레이시가 옷 만드는 거에 취미가 생기면 베틀도 마련해드릴까요? 아예 천부터 만들 수 있게요.”
“네에? 저는 옷 디자인 같은 건 잘 모르니까 무리에요.”
“레이시도 왕가의 사람인데 뭐 어때서 그래요. 물론 아직까지 결혼은 못 했지만요.”
“아…….”
그러고 보니 못 했구나.
미스트의 말에 자기가 새삼스럽게 사실혼 관계지 결혼식은 안 했다는 걸 떠올린 레이시는 잠시 입을 꾹 다물다가 엘라를 바라보며 귓속말로 결혼은 언제 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엘라도 새삼스럽게 깨달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한 얼굴로 고민하기 시작했고, 레이시와 미스트는 엘라의 고민에 똑같이 고민하면서 한참을 정원에서 우두커니 서있었다.
“저, 공주님, 이러지 말고 안에 들어가서…….”
“아, 맞네. 그러네. 에일렌, 씻고 와.”
“알았어, 엄마. 끄으응…….”
“에일렌, 많이 아파요?”
“아, 아냐. 그렇게 많이 안 아파. 그냥……, 갑자기 머리부터 박히니까 놀랐어.”
“아하하, 쪽. 너무 무리하지 말고요. 에일렌이 열심히 하는 건 좋지만 다치면 안 되요.”
“응, 이 정도는 안 다쳐.”
얼굴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묶은 머리를 푸는 에일렌.
에일렌은 한 대도 못 때릴 줄은 몰랐다며 투덜거리다가 이내 레이시에게 팔짱을 끼면서 머리를 기댔고, 레이시는 에일렌이 자기가 엘라에게 하는 것처럼 애교를 부리자 눈웃음을 짓다가 에일렌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서 에일렌의 목을 바라봤다.
“으음…….”
“왜요? 마망.”
“뜨개질 배우는데 가을 쯤에는 제대로 배워서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서요. 에일렌은 목이 참 예쁘네요.”
“그, 그래?”
“네, 엘라도 목이 예쁜데.”
에일렌의 뺨을 쓰다듬으며 웃다가 이내 에일렌을 욕실까지 배웅해주는 레이시.
에일렌은 레이시의 배웅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다가 문이 닫히자마자 한숨을 푹 내쉬면서 욕조에 몸을 담궜다.
“하아아아…….”
샤워도 안 하고 들어가면 안 되는 걸 알지만, 그런 건 신경도 안 쓰일 정도로 복잡한 마음.
레이시가 자기가 생긴 걸 칭찬해주는 건 좋았지만……, 역시 레이시는 자기를 아이로 바라볼 뿐 여자로 보지 않는다.
……아니, 여자로 볼 수가 없는 거겠지.
엘라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사랑스러운 아이인데 연인 간의 애정 같은 불순한 감정으로 바라볼 수 없겠지.
“으뷰뷰뷰뷰.”
그걸 알고 있지만, 그걸 받아들이기가 너무 싫다.
에일렌은 눈앞에서 터지는 거품에 그렇게 생각하다가 이내 욕조 안으로 몸을 담그고 왜 하필 자기가 레이시의 딸로 태어났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사촌이었다면…….
작은 할아버지의 딸이었고 나이 차이가 좀 나도 어디까지나 사촌이었다면 어떻게든 대시하고 그랬을 텐데, 왜 하필이면 레이시가 내 엄마인 걸까?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덜 매력적이었으면…….
“……부부부뷰뷰. 무슨 쓰레기 같은 생각이람.”
마망에게 반한 변태 주제에 그걸 또 마망 탓을 하다니…….
“으우우…….”
“언니, 언제까지 씻어?”
“마망이 밥 먹으러 나오래.”
“사실 밥이 아니라 간식이야.”
“아니야, 여자애의 주식은 달콤한 거니까 밥 맞아.”
“미르가 틀렸어!”
“레아가 틀렸어!”
“꺄르륵!”
“꺄르르륵!”
“둘 다 바보 같은 소리 좀 하지 마.”
“바보 아냐~.”
“우리는 여자애인걸.”
“맞아! 여자애야! 여자애는 쓸데없는 걸로 꺄륵꺄륵 웃어야 해!”
또 무슨 실없는 소리를…….
에일렌은 미르와 레아의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에 한숨을 내쉬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마법으로 몸을 씻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근데 너희 둘은 달콤한 거 싫어하잖아.”
“응, 싫어.”
“아니, 좋아.”
“사실 아무래도 좋아.”
문을 나가자 서로 킥킥 웃으면서 몸을 닦아주는 미르와 레아.
에일렌은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 자기는 두 사람을 메이드로 생각하지 않으니까 이런 일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지만, 미르와 레아는 나중에 미스트처럼 되고 싶으니 연습하는 거라고 말했다.
“미녀 메이드 삼인방이 되는 거야.”
“맞아, 맞아.”
“세계를 구하는 미녀 메이드!”
“왕보다 센 메이드!”
“……그걸 메이드라고 할 수 있어?”
그쯤이면 국가를 초월한 존재겠지.
에일렌은 그렇게 생각하다가 미르와 레아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웃자 한숨을 내쉬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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