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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를 하게 된 건 좋지만 내가 여자가 되어버렸다-524화 (524/542)

〈 524화 〉 몰래 들어가기­1

* * *

“흐아악! 하악, 하악……. 에, 에에……? 여, 여긴……?”

아샤의 목이 몸에서 떨어지는 걸 보며 정신을 차렸을 때, 레이시는 익숙한 숲속에 있었다.

딱 한 번 밖에 안 왔지만, 남은 기억이 너무나 충격적이어서 잊을 수 없는 숲.

이 세계로 환생하고 태어났을 때 본 숲이었다.

“뀌이이익!”

“멧돼지도 있네.”

하긴 처음 왔을 때도 맹수가 득실득실 산다고 엘라가 겁을 줬었지.

그 생각에 레이시는 어색하게 웃다가 자기를 향해 달려드는 멧돼지에게 손을 내밀었고, 멧돼지는 레이시의 행동에 더욱 속력을 붙이면서 그대로 머리를 들이박았다.

“뀍……?”

“으응, 착하죠?”

평범한 사람이면 그대로 팔을 부러트리고 배에다 어금니를 박을 수 있었던 돌진.

하지만 멧돼지에게는 안타깝게도 레이시는 평범한 사람과는 거리가 먼 존재.

애초에 전투에 적합한 몸이 아니고 기술도 없는 발차기로도 평범한 멧돼지를 터트려서 죽일 수 있는 존재였고, 기술과 마음가짐까지 익힌 레이시는 멧돼지가 뭔 짓을 해도 이길 수 없는 존재가 되어있었다.

“끼, 끼이익……!”

“저, 생각을 정리할 게 있어서 그런데 등에 좀 태워주실거죠?”

상냥하게 웃으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레이시.

멧돼지는 자기를 죽일 수 있는 레이시가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잠시 망설이는 듯 하다가 레이시에게 등을 내민 채 타라는 듯 몸을 숙였고, 레이시는 멧돼지의 등 뒤에 올라타 기억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블루드와 싸운 것까지는 기억하고 있다.

아니, 싸웠다고 하기에는 일방적이었으니 내가 블루드를 죽였다는 게 좀 더 맞겠지.

그리고 블루드는 죽었다가 되살아나서 자신의 몸과 정신을 걸고 나를 이상한 곳에 떨어트려놓았고, 자기는 그 안에서…….

“얼마나 있었지?”

뭔가 되게 많이 고민하던 건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거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애초에 시간이 흐름이 이상한 곳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만화나 애니처럼 자기가 시간여행을 했다면……?

이상한 생각이긴 하지만 이미 환생하고 여자끼리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점에서 이 이상의 판타지는 없다고 생각한 레이시는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기억 속도시를 찾아 발걸음을 옮겼고, 이내 도시에 도착하고는 자기 옷차림을 확인했다.

다행히 늘 입던 집사복과 약간의 돈이 있긴 하지만, 안타깝게도 신분증은 없는 상황.

레이시는 이래서는 도시에 못 들어가겠다면서 머리를 긁적이다가 이내 미스트의 스킬을 복사하며 몰래 도시에 잠입했고, 이내 떠들썩한 마을의 풍경에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떠들썩한 것까지는 이상할 게 없었다.

시간이 어떻게 됐든 축제야 언제 어느 시대든 일어날 수 있고, 건물도 깨끗했으니까.

그러니까 딱히 마을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리라.

다만 특이한 건 사람들이 전부 뿔을 달고 있다는 것.

그것도 진짜 뿔이 아니라 머리띠 같은 장식이라는 것이 이상했다.

아니, 진짜 뿔이면 더 이상하려나……?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멍하니 눈을 깜빡이다가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면서 대체 무슨 축제이길래 저렇게 머리에 뿔을 다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시장에서 로브를 산 다음 사람들에게 섞여들어가기 시작했다.

“거기 아가씨! 칠면조꼬치 하나 어때?”

“네? 어, 얼마에요?”

“3000하랑!”

“하나만 주세요. 그나저나 이거 무슨 축제인가요?”

역시 정보를 캘 땐 노점상이려나?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닭꼬치를 사면서 사람들이 왜 저런 분장을 하고 있는지 물어봤고, 점주는 레이시의 말에 멀리서 왔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시골에서 왔으면 모를 수도 있다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엘라 파우스트 오라토리엄 공주님의 아내 되시는 레이시 공주비님을 기리는 축제라네.”

“……예?”

“왜, 2년 전에 그랑메르 강에서 큰 전투가 있지 않았나?”

“2, 2년……?”

“그래, 엘라 공주님과 그 동료들이 나가서 대륙전쟁을 일으키려던 나쁜 새끼들을 전부 물리치신 그 그랑메르 전투 말일세. 글쎄 그게 무려 국왕님을 노리려던 블루드, 그 호로새끼의 계략이었단 걸세!”

“그, 그렇군요.”

“아들이 아버지를 노리다니 하늘에 둘도 없는 패륜아 새끼이지 않나? 큼큼! 뭐, 하여튼 그 계략을 몸 던져 막은 사람이 레이시님일세! 하지만 마지막 순간 블루드는 자폭했고 공주비님이 그대로 사라지셨다네. 처음에는 생존에 중점을 두고 수색했다지만, 지금은……. 참 안 되셨지, 아이도 있으신 분이. 에일렌 현녀님이 참 불쌍하게 됐어.”

“아, 아으…….”

에일렌.

레이시는 점주의 입에서 딸의 이름이 나오자 가슴이 따끔거리면서 빨리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혹시 수도로 가는 방향을 아냐고 물어봤고, 점주는 레이시의 말에 알겠다는 듯 베스티아 왕국 사람이냐고 물어봤다.

“네? 아, 그, 네, 그 부근에서 왔어요.”

“그럼 저쪽으로 쭉 가면 된다네. 좀 멀긴 하지만 걸어간다면 3주면 갈 걸세.”

“감사합니다.”

“혼자 갈 건가? 위험할 건데.”

“어, 괜찮아요. 이래 보여도 나름 강하거든요!”

레이시의 웃음에 조심해서 가라고 말하는 점주.

레이시는 점주의 인사에 손을 흔들면서 도시 밖으로 나갔다가 숨을 깊게 내쉬면서 뛰기 시작했다.

평범한 사람이라도 3주 정도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

그런 거리라면 야차인 자기가 쭉 뛰어서 가면 10일에서 12일 사이로 끊을 수 있으리라.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고, 며칠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몇 개의 도시를 지나친 레이시는 도시마다 축제를 여는 걸 보고는 사람들에게 왜 이렇게 화려하게 축제를 여는 거냐고 물어봤고, 그럴 때마다 마을 사람들은 레이시에게 축제에 대한 정보를 조금씩 풀기 시작했다.

2년 동안 가정도 돌보지 않고 돌아다니던 엘라가 에일렌이 크게 아프고 나서 에일렌을 위해서 포기한 게 한 달 전이라는 것.

미스트가 캘러미티의 이름으로 메이드가 아니라 특수부대 총 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것.

미네르바가 나비, 하양이를 돌보면서 루피너스의 이름을 받았고, 아샤는 벽천화 기사단을 포함한 모든 기사단의 훈련을 도와주고 있는 총 훈련 교관이 되었다는 것까지…….

“국왕님은 아직 듀세리안 레드포드 라이드 오라토리엄 님이신가요?”

“네, 그렇죠.”

“그렇구나…….”

“그나저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저희를 구해주신 은인의 이름을 알고 싶은데.”

“아, 아하하. 으, 으응~ 비밀이에요. 버, 범죄자는 아니니까 안심해주세요? 단지, 좀……. 그래서요.”

“아뇨, 이해합니다. 모험가에게 있어서 이름은 중요하니까요.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는 상인.

레이시는 상인의 인사에 어색하게 웃다가 자기가 제압한 도적들을 보고는 모험가들에게 데리고 갈 수 있냐고 물어봤고, 모험가는 레이시가 직접 데려가지 않는 거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못 해도 500만은 벌고 한 달 내내 거하게 놀 수 있을 건데…….

그렇게 생각하며 레이시를 바라보자, 레이시는 갈 길이 바쁘다면서 최대한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모험가들 말로는 이제 하루만 꼬박 걸으면 내일 저녁에는 도착할 거리라고 했으니 오늘 내로 볼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숨을 깊게 내쉬다가 다시 빠르게 뛰었다.

블루드에 의해 이상한 곳으로 날아갔을 때도 시간이 언제 어떻게 흘러가는지 몰랐고 지금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도 수도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블루드에 의해 날아갔을 때와 다르게 심장이 크게 뛰었다.

조금만 더 가면 된다.

조금만 더 가면 에일렌과 미르, 레아를 볼 수 있고 엘라와 미스트, 미네르바, 아샤를 볼 수 있다.

“에헤헤.”

꽤 먼 거리를 뛰고 있음에도 자꾸만 튀어나오는 웃음.

레이시는 그런 자신의 웃음이 무척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뛰었다.

가끔씩 숨이 막혀서 그늘에서 쉬고 넘어질 때도 있었지만 가족을 보러 간다는 일념 하에 계속해서 뛰어서 발걸음을 옮겼고, 그 노력 덕분에 레이시는 해가 질 때쯤 간신히 수도의 외벽에 도착했다.

“흐아아아…….”

엄청 높고 넓으면서 뭔가를 추모하는 듯한 깃발이 펄럭이는 성벽.

레이시는 오랜만에 보는 외벽에 눈을 빛내다가 신분증이 없다는 걸 떠올리고 왕궁까지 잠입해야 하겠다고 생각하면서 경비병들을 가만히 관찰했다.

“찾았다.”

평생 이런 걸 해본 적도 없는데…….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경비가 허술한 곳을 뚫으면서 수도 안으로 들어왔고, 이내 자신의 추모를 기리는 벽보를 보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평민이 사는 외벽 거주구와 부유한 평민이 사는 중벽 거주구는 꽤 쉽게 돌파하는 레이시.

하지만 내벽부터는 귀족 거주구라 그런지 경비를 뚫는 게 영 쉽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자기 정체를 밝히자니 뭔가 되게 불경한 사람이라고 잡혀갈 것 같다.

믿을만한 귀족이라도 있다면 그 귀족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들어갈 텐데…….

“마리아 씨 말고는 모른단 말이지…….”

마리아가 왕궁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긴 하지만, 마리아가 사는 곳은 또 모르고 있었기에 레이시는 머리를 긁다가 이내 어쩔 수 없다는 듯 내벽을 타고 들어갔다.

“으으으…….”

미스트의 스킬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레이시.

외벽이나 중벽을 돌파할 때와 다르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한 번 걸릴 뻔한 위험한 잠입이었지만, 레이시는 어떻게든 안으로 들어가는데 성공했고, 이내 마지막 벽 앞에 서서 침을 삼켰다.

다른 곳은 그래도 경비에 틈이라도 있지…….

그렇게 생각하며 성벽을 바라보던 레이시는 잠시 고민하다가 여기에서 소리라도 지를까 싶었지만, 이왕 여기까지 들키지 않고 온 거 끝까지 가보자면서 레이시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바로 스킬을 사용해서 도시 내벽 안으로 들어가는 레이시.

미스트가 하는 것처럼 그림자 안을 헤엄쳐서 내벽 안으로 들어간 레이시는 고개만 빼꼼 내밀었다가 이내 경비가 없는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사람의 시선이 느껴지지 않자 조심스럽게나와 배시시 웃었다.

생각보다 쉽게 들어왔네.

어쩌면 나, 잠입에 재능이 있는 걸지도……?

“푸후훗! 그럴 리는 없겠지.”

이건 전부 미스트의 스킬 덕분이지 내가 잘 나서 그런 게 아니니까.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기가 살던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이내 인기척이 느껴지자 곧바로 숨어서 인기척이 사라지길 기다렸다.

다행히 지나가는 길이었는지 얼마 안 가서 사라지는 인기척.

레이시는 인기척이 사라지자 다시 구석에서 빠져나와 헤실헤실 웃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여자애는 그대로 레이시의 등 뒤에 손을 올리면서 입을 열었다.

“손 들어.”

“에?”

“나는 현 국왕의 손녀, 현녀인 에일렌이야. 넌?”

경쾌하게 레이시의 귀에 꽂히는 목소리.

레이시는 그 목소리에 한 번, 그리고 그 목소리가 말한 내용에 다시 한번 놀라서 멍하니 입을 벌렸고, 에일렌은 침입자치고는 적의가 느껴지지 않는 분위기에 혹시 신입 기사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으……, 그게요.”

“응?”

“마, 많이 컸네요? 정말 많이 컸어요.”

“무슨 소리이……, 이잇!?”

2년 동안 보지 못했지만, 레이시가 블루드에게 당했을 때 에일렌의 신체 나이는 8살.

당연히 레이시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었고, 에일렌은 후드를 벗자 나타나는 녹빛의 머리카락과 자그마한 뿔에 입을 벌리고 그대로 굳어버렸다.

“마, 마망이 많이 늦었죠? 그래도 깨어나자마자 바로 달려왔는데…….”

“어버버버…….”

“에? 에, 에일렌?”

조금은 변한 듯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아는 엄마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 사실에 여러 감정이 몰아치던 에일렌은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고, 레이시는 그 모습에 당황하면서 에일렌을 안아 몸을 받쳐주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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