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8화 〉 소중한 사람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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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라를 뒤로 하고 새로운 문으로 들어간 레이시는 직감적으로 이 방이 미스트의 방이라는 걸 느끼고선 잔뜩 긴장했다.
다정한 엘라마저도 그렇게 무서운 곳에 있었는데 엘라보다 더 무서운 삶을 지낸 미스트는 얼마나 슬프고 무서울까?
그렇게 생각한 레이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주변이 변하는 걸 느끼고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레이시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섭기는커녕 아기자기한 풍경.
마치 동화속의 공주님이 당장에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에 레이시는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 왔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방에 들어갔고, 방 안에서는 지금의 미스트보다 조금은 어려 보이는 미스트가 나와 레이시를 마중했다.
“어머, 손님이신가요? 이상하네요. 여기는 저의 심상인데…….”
“네?”
“흐음, 그러고 보니 심연 마법에 몇몇 사람의 근원을 붙잡아서 그 사람들에게 모두 통과를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마법이 있었죠.”
“아, 알고 계세요?”
“뭐, 저야 이거 때문에 근원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요.”
머리를 슥 올리자 역시 바깥의 미스트보다 흉터가 진한 수술의 자국이 보였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모습에 침을 삼키면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시선에 눈웃음을 짓다가 자리에 앉아 레이시를 바라봤다.
묘하게 친밀감이 드는 여성이네.
미스트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자리에 앉아 차라도 마시지 않겠냐면서 싱긋 웃었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스트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기요.”
“미스트는……, 처음부터 메이드가 되고 싶었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네요.”
“네?”
“제가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을 때부터 저는 이런저런 교육을 받았거든요. 저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취지의, 그런 교육을요. 그리고 아시겠지만, 그런 교육을 받으면 주인공을 꿈꾸기는 영 어려워서요. 그런 꿈을 꾼 적이 없네요.”
키득 웃으면서 레이시를 보고 자기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사람 같냐고 물어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입을 우물거리다가 고개를 끄덕거렸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대답에 사람을 잘 못 보는 사람 같다면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주인공이라는 건 몇 명의 사람에게 국한된 존재랍니다. 이 세계의 모두가 주인공이라면, 이 세계가 얼마나 어지럽겠어요? 안 그래요? 저 같은 사람들은 조연이 되어야죠.”
“세상에 이야기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제 세상에서 미스트는 주인공 중 한 명이에요.”
“……?”
“으응?”
“아, 제 이야기를 잘못 이해하셨네요.”
싱긋 웃으면서 레이시를 바라보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그럼 무슨 이야기였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자기는 유일한 누군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다른 누군가는 안 보는 오로지 저만의……, 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저는 언제나 혼자가 되는 직업이니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죠. 결국 혼자만의 방 안에서 혼자만의 공주님이 될 뿐이죠.”
“공주님이 되고 싶은 건가요?”
“후후, 공주님은 주인공이잖아요? 안 그런 사람도 있다지만, 정적 제거용 공주인 엘라 공주가 태어났을 때도 그렇게 소란을 피웠던 걸 생각해보면……, 알 수 있죠?”
“으, 으응.”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레이시.
미스트는 자기가 그런 식으로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바깥의 미스트는 캘러미티 백작이 되셨거든요. 정확히는 엘라랑 같이 미스트가 캘러미티 가문을 멸문시켰다가 나중에 미스트 E 캘러미티 백작이 되요.”
“E……. 후후, 그런가요?”
눈을 지그시 감고 소파에 몸을 기대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의 말로 자신이 어떤 미래를 겪는지 생각해보기 시작했고, 이내 대충 추리가 끝나자 싱긋 웃으면서 혹시 엘라와 결혼했냐고 물어봤다.
“네? 네.”
“그렇군요. 지금 여기에 이렇게 보낸 것은 저희 가문에게 엘라 공주님의 암살 의뢰를 맡긴 블루드 왕자님이신가요? ……솔직히 어떻게 이런 마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경우의 수밖에 없네요.”
“마, 맞아요. 신물 같은 걸 사용했다던데…….”
“그런 거라면 거울의 신의 신물을 사용했나 보네요. 후후, 언제부터인가 전쟁을 일으킬 거라고 생각은 했는데, 실제로 일으켰네요.”
어렸을 때도 미스트는 이랬구나.
레이시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어떻게 그렇게까지 추측할 수 있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씩 웃으면서 알고 싶은 거냐고 물어봤다.
그와 동시에 끈적끈적하게 변하는 분위기.
레이시는 방 안의 공기가 변하자 움찔 떨면서 주변을 둘러봤고, 아기자기했었던 방에는 여러 균열이 생기며 그 균열 사이에서 끔찍한 형태의 시체들이 줄줄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전부 미스트의 또래로 보이는 시체들.
레이시는 그 시체의 모습에 침을 삼키다가 혹시 아는 아이들이냐고 물어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질문에 코드네임 같은 것을 말하면서 전부 자기의 동기라고 말했다.
“제가 살아남겠다고 모두 죽였지만요.”
“으, 으응…….”
“모두를 죽이고 살아남는 주인공 따위는 어디에도 없죠. 그러니 제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 리가 없죠.”
“그, 그건 캘러미티 가문의 잘못이잖아요.”
“후후, 과연 그럴까요? 제가 일부러 죽였을 수도 있잖아요?”
“그, 그건…….”
“자, 이래도 제가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네? 제가 다른 사람에게 다른 사람은 대신할 수 없는 특별한 한 명이 될 수 있을까요?”
레이시를 껴안으면서 달라붙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미스트가 자신의 뺨을 핥아 올리면서 키득키득 웃자 흠칫 떨었고, 방의 분위기는 레이시가 겁에 질린 것을 눈치챘는지 웃음을 터트리면서 레이시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녹아내린 시체의 손과 뼈만으로 된 시체의 손.
핏덩이가 얼굴을 스쳤다가 철퍽거리면서 몸으로 떨어졌고, 레이시는 시체들의 아우성이 귓가에 스치자 파르르 떨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다가 미스트가 자기 뺨을 잡고 이런 자기도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 같냐고 물어보자 레이시는 천천히 눈을 뜨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미스트는 이미 내게 있어서 한 명의 주인공이었으니까.
그렇게 말하자 미스트는 늘 머금고 있던 웃음을 싹 지우면서 레이시를 쳐다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표정에 용기를 내서 미스트의 뺨을 쓰다듬었다.
“다른 아내도 있으면서 그런 말인가요? 엘라보다 제가 소중한가요?”
“그, 그렇게는 말하지는 못해요.”
“흐응?”
“그래도 미스트는 제게 있어서 주인공이에요. 엘라나 아샤, 미네르바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저의 소중한 사람이에요.”
“이런 걸 보고서도요?”
발을 강하게 구르자 방 전체가 신음하며 미스트를 원망하는 말을 토해내기 시작했고, 그 소리를 듣는 레이시는 순간 헛구역질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의 원망이 차오르는 느낌을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쓰레기통에 안에 있는 걸 토해내고 말았다.
그러자 미스트는 다시 한번 이런 자신도 소중하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미스트를 꽉 끌어안고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대답을 가만히 쳐다봤다.
조금은 이상한 대답.
여기에서 아니라고 말하면 자기가 죽일 거라고 생각해서 이런 대답을 하는 걸까?
캘러미티 가문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노인도 죽이는 훈련도 해봤기에 미스트는 이런다고 자기가 살려줄 줄 아냐며 비아냥거리며 레이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살려달라고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절박함을 보인다.
생명을 잃고 싶지 않다.
하고 싶은 게 많이 남아있다거나 죽기에는 눈에 밟히는 사람이 있다거나 그런 식으로 절박함과 동시에 삶에 대한 열망이 보인다.
그렇지만 레이시에게는 그런 것들이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건 자신을 지키겠다는 열의.
실제로 레이시는 지금 저 같잖은 것들에게서 자기를 지키려는 듯 자기를 감싸고 있다.
자기를 지키려는 듯…….
레이시가 한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던 걸까?
미스트는 그렇게 생각하고는 헛웃음을 들이켰다.
한 사람의 원망도 제대로 견디지 못하면서 누가 누구를 지킨다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 미스트는 레이시를 떨어트려 놓으면서 이 정도 원혼도 견디지 못하면서 자신을 어떻게 견딜 생각이냐고 물어봤다.
“제가 10살 좀 넘게 먹을 때 동안 죽인 사람의 수가 5천하고도 973명이에요. 3살 때부터 살인을 했으니 휴일까지 생각하면 하루에 3명 좀 넘게 죽였죠. 그런 저를 보호하려고요?”
“네? 네……. 저는 미스트의 아내니까요, 미스트가 잘못한 거, 저도 같이 견딜게요.”
미스트는 눈물이 찔끔 흘리고 입가에는 위액을 닦은 흔적이 보이는 얼굴로 환하게 웃는 레이시를 보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굳이 안 겪어도 되는 걸 스스로 겪겠다고?
……정말로 저 여자에게 있어서 나는 다른 누군가가 될 수 없는 존재인가?
왜?
정말 결혼했다는 것 하나 때문에?
미스트는 그런 레이시의 모습에 자기 부모의 관계를 떠올려봤다.
순전히 유전자와 기술만 보고 결혼한 사이.
그걸 결혼이라고 말해야 할지 뭐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그들에게 사랑이나 그런 건 없었다.
그들에게 있는 건 철저한 계산뿐.
그렇기에 미스트는 점점 레이시에게 빠져들면서 자기가 그렇게 특별한 존재냐고 물어보며 매달렸고, 레이시는 미스트가 자기를 바라보자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같이 견디면 조금은 나을 거라면서 미스트를 꽉 끌어안았다.
“아니, 그럴 필요 없어요.”
“네?”
“어차피 저에게 죽어서 아무것도 못하던 쓰레기들의 집합체. 이딴 것들은 이렇게 제압할 수 있거든요.”
미스트가 손을 튕기자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대로 돌아오는 방 안.
레이시는 다시금 아기자기해진 방 안의 풍경에 눈을 깜빡이다가 멍하니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저런 쓰레기들은 신경 쓰지 말고 자기를 보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대로 미스트를 바라봤고, 미스트는 레이시의 에메랄드빛의 눈동자를 보다가 천천히 손을 뻗어 입술을 꾹 눌렀다.
“으응.”
“흐으응……, 정말, 정말로 제가 당신의 특별한 사람인가요?”
“네.”
“흐응~.”
망설임 없이 대답하는 레이시의 모습에 비음을 흘리다가 천천히 레이시를 공주님 안기로 안아 드는 미스트.
미스트는 레이시를 방 안에 있는 침대에 눕히면서 부부면 부부의 일도 해봤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말에 얼굴을 붉히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열적으로……?”
“그, 크흠, 으, 으응……. 그, 그런 편이죠?”
“아프게 해도 참았나요?”
“그, 그건, 미, 미스트가 조금 봐줘서 차, 참을만하게 괴, 괴롭혔어요.”
레이시의 대답에 잠시 고민하다가 하딘 자기라면 그럴 기술이 있다고 말하는 미스트.
그렇게 말한 미스트는 레이시의 몸을 만지작거리다가 대충 파악했다면서 그럼 자기도 안아줄 수 있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질문에 어색하게 웃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안는 건 미스트인 걸요?”
“후후, 그런가요?”
“네. 저를 안아줘요. 언제나 따스하게, 하지만 조금은 짓궂게요.”
레이시가 가볍게 볼에 입을 맞추자 뭔가 알 것 같다고 생각하는 미스트.
하긴 처음에는 심드렁하게 놀아주듯이 만났다고 해도, 자기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망가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다루었겠지.
미스트는 레이시의 입에 입술을 맞대면서 자기는 이렇게 입을 맞췄냐고 물어봤고, 레이시는 미스트의 물음에 미스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좀 더 적극적으로 혀를 섞었다.
“후읍! 읍, 으읍~! 파하아……. 이, 이렇게 했어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거칠게 해도 되겠네요.”
레이시의 대답에 씩 웃으면서 레이시의 옷을 벗기는 미스트.
레이시는 미스트의 손길에 얼굴을 붉히다가 너무 아프게는 하지 말아달라며 미스트를 꽉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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